밀랍소년
白蝋少年[1]
1. 개요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 유리 린타로 시리즈의 단편.
잡지 《킹》 1938년 4월호에 처음 발표된 단편소설로 미츠기 슌스케의 단독 사건이다. 작중에서 도도로키 경부가 약간의 삽질(...)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사건 해결에 난항을 빚을 뻔하기도 하지만 사건 자체는 무사히 해결되었다.
2. 특징
사건의 내용 자체보다는 범인의 본성을 알고 나면 살짝 소름이 돋는 작품. 현대로 치면 일종의 인격장애 내지는 사이코패스가 의심되는 수준으로, 나날이 범행 수법이 잔혹해지고 범죄를 저질러도 상대적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미성년 범죄자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재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소년범죄 묘사에 있어서 시대를 앞서갔다고도 볼 수 있다.
3. 등장인물
- 우도 슌사쿠(鵜藤俊作)
은퇴한 전직 관료. 작중 시점에서 6개월 전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 우도 아유조(鵜藤鮎三)
우도 슌사쿠의 첩실 소생 아들. 작품 초반에서 사망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망 당시 16~7세 가량으로 추정.
- 우도 쿠니히코(鵜藤邦彦)
우도 슌사쿠의 본처 소생 아들. 아유조의 이복형.
- 우도 미에코(鵜藤美枝子)
쿠니히코의 여동생. 아유조의 이복누나.
- 후키야 코스케(蕗屋弘介)
우도 가의 전 가정교사. 모종의 이유로 우도 가에서 쫓겨났다.
- 오가타 모토코(緒方もと子)
- 미츠기 슌스케(三津木俊介)
신닛포사의 간판 기자. 본작의 탐정.
- 도도로키 경부(等々力警部)
경시청의 형사.
4. 줄거리
오가타 모토코는 한 미소년의 시신이 안치된 관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관 속의 소년, 우도 아유조는 자신이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이복남매인 쿠니히코와 미에코에게 학대를 받았다며,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모토코 앞으로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는 부탁이 담긴 유서를 남겼던 것. 과연 아유조의 시체에는 전신에 보라빛 멍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아유조의 시신에 남은 멍과 그의 유서를 본 모토코는 반드시 그의 원수를 갚아 주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아유조가 이 사실을 조금만 더 빨리 자신에게 알려 줬더라면 그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통곡한다.
한편 미츠기 슌스케는 모처럼만의 휴일 새벽에 편집장의 전화를 받고 후카가와의 키바에서 발생했다는 살인사건 현장으로 향한다. 도도로키 경부의 안내로 현장에 들어간 미츠기는 수로에서 남녀의 시체를 목격한다. 대략 26~7세 정도로 보이는 추녀와 16~7세 정도의 풀색 옷을 입은 미소년이었는데, 기묘한 것은 두 구의 시체 모두 마치 향수를 채운 욕조에 담궜다 꺼낸 것처럼 짙은 헬리오트로프 향수 냄새를 풍겼고, 남자 쪽은 가슴에 찔린 상처가 있는데다 이미 사망한 지 1주일도 넘어 시신이 부패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시신의 신원이 우도 아유조라는 소년과 그의 가정교사였던 오가타 모토코로 밝혀지고 도도로키 경부는 두 구의 시신을 누군가 강 상류에 유기해서 도쿄만으로 떠내려가게 하려 했다고 추측했지만, 미츠기는 전날 밤 도쿄만의 만조가 밤 11시 40분부터 시작된 것을 확인하고 만조 때는 바다와 맞닿은 강어귀의 물이 역류한다는 점에서 착안, 시신이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류 쪽에서 거슬러 올라온 것으로 추리했다.
미츠기의 추리를 토대로 사건이 처음 발생한 장소를 더듬어 올라가던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는 '우도(鵜藤)'라고 적힌 문패가 걸린 강가의 서양식 저택에 도착한다. 이 저택은 퇴직 관료인 우도 슌사쿠의 자택으로, 집주인인 슌사쿠가 반년 전 뇌졸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뒤 본처의 자식들인 쿠니히코와 미에코, 첩의 아들인 아유조의 세 남매가 남았지만 그 아유조마저 1주일 전 세상을 떠났으며, 전날 밤이 마침 아유조의 초칠일이었다.
저택에 도착한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는 베란다 아래쪽에서 후카가와의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풍기던 것과 같은 헬리오트로프 향수 냄새를 맡고, 저택 안으로 들어간 순간 한층 더 짙게 풍기는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안에서 연달아 상을 치르느라 초췌한 몰골의 미에코와 술에 취한 쿠니히코 남매를 만난다.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가 사정을 설명하자 쿠니히코는 대번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아유조의 시신은 1주일 전에 이미 화장'''되었기 때문에 시신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쿠니히코와 미에코는 자신들의 가정 사정을 이야기한다. 아유조는 5년 전, 12세 때 우도 가에 들어오게 되었고, 당시 아버지 슌사쿠는 이미 반신불수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 때문에 슌사쿠의 간호사로 고용된 사람이 바로 오가타 모토코였다. 그러다 슌사쿠가 사망하면서 모토코도 한동안 우도 가를 떠났으나, 때마침 그 무렵 가정교사였던 후키야 코스케라는 청년이 불미스러운 사정으로 쫓겨나다시피 해서 그만두게 되자 쿠니히코 남매의 부탁으로 모토코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니히코는 그 후키야가 전날 밤 집에 찾아왔었다고 했지만, 미에코는 오빠가 착각한 것이라며 이를 부인한다.
단서를 찾기 위해 모토코의 집으로 향한[3]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 빈 관과 수의가 놓여 있고, 아유조의 영정 앞에 향이 피워져 있는 괴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이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모토코가 전직 간호사였다는 것과 아유조의 유서 내용을 떠올리고, 그녀가 어딘가 병원에서 빼돌린 다른 시신을 아유조의 시신과 바꿔치기한 다음 진짜 아유조의 시신을 우도 저택에 가져다 놓고, 이를 이용해서 쿠니히코 남매를 협박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아유조의 복수를 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방수복을 입고 방수모를 쓴 의문의 사내가 모토코의 집을 찾아오는데, 그는 어째서인지 아유조의 영정을 보자 증오에 찬 목소리로 '''악마, 아름다운 악당'''이라며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사내의 눈을 피해 관 속에 숨어 있던[4] 도도로키 경부가 실수로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의문의 방수복 사내는 도주하고,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는 그를 추격한다. 방수복 사내를 추격하던 도중 미츠기는 그가 떨어뜨린 지갑을 발견하는데, 그 안에서 발견된 명함에는 후키야 코스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가 탄 보트를 추격한 끝에 가까스로 붙잡는 데 성공하는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였지만...
4.1. 진실
모든 것은 '''쿠니히코와 미에코를 파멸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유조가 꾸민 자작극'''이었다.
아유조는 어린 나이와 아름다운 외모와는 딴판으로 잔혹하고 무서운 면을 가진 소년이었다. 후키야 코스케가 아유조를 '악마', '아름다운 악당'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바로 이것으로, 그에게 있어서 타인의 행복은 모두 자신의 불행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유조는 첩의 자식이라는 불우한 처지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자신에게 거슬리는 모든 것을 배척하고 타인을 불행에 빠뜨려서 쾌락을 얻는 인간이었다. 아유조의 시체에 있던 멍 자국들도 실은 그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으로, 그는 이 멍을 이용해 아버지 슌사쿠에게 '아무개가 나를 괴롭혔다', '아무개가 나에게 욕을 했다'는 등 온갖 모함을 하는 바람에 쿠니히코 남매와 후키야의 고생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쿠니히코의 혼담도 아유조의 모함 때문에 깨져 버렸고, 후키야가 우도 가에서 쫓겨난 것도 아유조 때문이었다. 후키야가 우도 가의 가정교사로 있을 무렵 슌사쿠의 금고에서 꽤 큰 액수의 돈이 분실된 일이 있었는데, 아유조는 교묘한 계략으로 후키야에게 금고의 돈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워 우도 가에서 쫓아낸 것이다. 얼마나 아유조의 수법이 치밀했던지 당시에는 늘 후키야를 신뢰하던 쿠니히코와 미에코조차 그를 범인으로 의심했을 정도였는데, 아유조가 이렇게까지 해서 후키야를 몰아낸 이유는 단지 '''미에코와 후키야가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미에코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의문을 갖게 되었지만, 쿠니히코는 여전히 후키야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쫓겨난 후키야는 우도 가에 당당하게는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날 밤 미에코에게 미리 편지를 보낸 뒤 밤 12시쯤 베란다를 통해 우도 저택으로 들어가 어두운 방 안에서 미에코와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오해를 풀었다.[5] 그러다 점차 달빛이 유리창으로 새어 들어오면서 방이 조금씩 밝아진 순간, 두 사람은 방 한켠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아유조의 시체와, 안락의자와 벽 사이 좁은 공간에 쓰러져 있는 오가타 모토코의 시체를 발견하고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후키야와 미에코는 두 사람의 시체를 강으로 띄워보냈지만[6] , 미츠기의 추리대로 도쿄만의 만조 때 강어귀의 물이 역류되면서 두 구의 시체가 강을 거슬러 올라와 후카가와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모토코 앞으로 남긴 아유조의 유서 내용도 전부 그가 날조한 이야기였고, 학대 따위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 슌사쿠가 죽고 나자 아유조는 점차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을 정도로 막나가는 인간이 되어갔고, 급기야는 쿠니히코 남매가 아유조에게 필요 이상으로 잘 대해주던 모토코를 내보내자[7] 앙심을 품고 남매를 독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그 동안 그래도 이복동생이라고 아유조의 처지를 생각해서 아무리 제멋대로 굴더라도 참고 받아주던 쿠니히코도 이 때만은 크게 분노해서 아유조를 심하게 꾸짖었다. 사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아유조의 행실도 행실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이 독살 시도 미수로 인해 어쩌면 슌사쿠도 뇌졸중이 아니라 독살당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의혹을 추궁했지만, 아유조는 다음날 쿠니히코와 미에코에게 보복하려는 의도로 모토코 앞으로 거짓 유서를 남긴 뒤 '''음독자살'''하고 말았다. 마침 아유조가 평소에 간질을 앓았다는 것을 떠올린 남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도 가의 주치의에게 부탁해 사인이 간질 발작으로 처리된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8]
한편 오가타 모토코의 사인은 마찬가지로 독살이었다. 아유조는 자살하기 전 이복형 쿠니히코가 밤에 자기 전 향수를 뿌리는 습관이 있는 것을 알고 향수병에 독약을 섞어 두었다. 그런데 이 뿌리는 방식이 약간 특이해서 입 안에까지 향수를 뿌리는 것이었다.[9] 아유조의 음모를 알 리가 없는 모토코는 오로지 쿠니히코 남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몰래 빼돌려 두었던 아유조의 시체를 저택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을 때 이 향수병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쿠니히코 남매가 하던 그대로 독이 섞인 향수를 뿌렸다가 목숨을 잃었다.[10] 아유조와 모토코의 시신에서 향수 냄새가 짙게 풍긴 것은 이런 이유였다.[11]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모토코도 아유조가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
한편 후키야는 누명을 쓰고 우도 가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여전히 쿠니히코 남매를 걱정했기 때문에 우도 가로 돌아가지 못하는 대신, 저택이 보이는 물 위에서나마 계속 남매를 지켜보고 있었다.[12] 결국 사건은 죽은 아유조 자신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동시에 후키야의 결백도 증명되면서 마무리되었다.
[1]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백랍소년'이지만, 백랍이 밀랍의 일종이기 때문에 '밀랍소년'으로 번역해도 의미는 통한다.[2] 작품 초반부에서 대놓고 '곱슬머리의 추하게 생긴 여자'라는 서술이 나온다.[3] 쿠니히코 남매를 통해 주소를 알아내서 후키야와 모토코 양쪽을 모두 조사하려 했지만 후키야는 우도 가를 떠난 이후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모토코의 주소만 알아낼 수 있었다.[4] 집이 워낙 단칸방 수준으로 좁은지라 마땅히 숨을 곳을 찾지 못해서 궁여지책으로 관 속에 들어가 뚜껑을 덮고 있었다. 그나마 미츠기는 어찌어찌 요령있게 숨을 장소를 찾아서 발각되지는 않았다.[5] 쿠니히코가 후키야를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만큼 섣불리 밝은 방에서 대화를 하다가는 언제 쿠니히코에게 들킬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6] 공황상태에서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자칫하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다고 판단해서 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아유조의 시체는 이미 1주일 전에 화장까지 마친 만큼, 화장했다고 알려진 시체가 다시 나타났다고 알려지는 순간 우도 가를 둘러싸고 무슨 흉흉한 소문이 돌 지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후키야와 미에코에게는 아유조와 모토코의 시체를 강에 버리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아유조의 시체에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던 것은 후키야가 패닉 상태에서 해군용 나이프로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었다.[7] 모토코는 아유조의 본성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에게 뒤틀린 애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쿠니히코와 미에코에게는 이것이 아유조가 어떻게 행동하든 무조건 받아주고 편들어 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모토코가 아유조를 감싸고 도는 것이 아유조에게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 그녀를 내보낸 것이다.[8] 아유조의 자살은 전직 관료인 우도 가 입장에서는 큰 추문이었기 때문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의 진짜 사인을 은폐해야 했다.[9] 원래는 미에코가 이렇게 했는데 어느샌가 오빠 쿠니히코도 이 습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었다.[10] 쿠니히코도 이 독약이 든 향수를 뿌렸다가 한때 죽기 직전까지 몰리지만, 다행히 미츠기가 이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의사를 불러 조치를 취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11] 모토코는 시체가 발견될 당시 향수병을 손에 쥐고 있는 상태였고, 바닥에는 그녀가 쓰러지면서 쏟아진 향수가 배었기 때문에 처음 미츠기와 도도로키 경부가 우도 저택을 찾았을 때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도 향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12] 미츠기는 후키야의 방수복과 방수모를 보고 물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고 말했다. 이로 보아 정황상 가정교사를 그만둔 뒤 매립지 같은 수상에서 하는 일에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