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

 

박상률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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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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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상률(朴相律)
생년월일
1981년 3월 4일 (43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마산시
출신학교
마산고등학교 - 목포대학교
포지션
포인트 가드
신체사이즈
178cm, 73kg
프로입단
2003년 드래프트 2 라운드 6 순위 (인천 SK 빅스)
소속팀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2005)
상무 (2005~2007)
전주 KCC 이지스 (2007~2008)
부산 KTF 매직윙스 (2008~2009)
안양 KT&G 카이츠/KGC인삼공사 (2009~2014)
등번호
3[1], 6[2]
지도자
목포대학교 감독 (2014)
안양 KGC인삼공사 코치 (2014~2015)
부산 kt 소닉붐 코치 (2015~2018)
1. 개요
2. KBL 입단 전
3. KBL 입단 후
4. 은퇴 후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2. KBL 입단 전


커리어 하이가 평균 득점은 2009-10 시즌의 7.1점, 어시스트는 2003-04 시즌의 3.6개에 불과한 평범한 백업 가드였다. 팀도 팀을 쳤고, 주전으로 뛴 시즌도 거의 없던 선수. 쏠쏠한 백업 가드였지만, 주전으로 뛴 시즌은 아예 없다시피한 이 선수가 유명한 이유는 딱 하나, 대학 2부 리그 출신으로 유일하게 프로에서 오래도록 뛴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KBL 무대에서 1998년 청주대학교의 박용호가 프로에 지명받아 2경기를 뛴 이후, 2012년 드래프트에서 박상률과 같은 대학인 목포대학교 출신의 장동영[3]의 등장 전까지 박상률만큼 뛰거나 박상률처럼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는 없다.
마산고 시절에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동기인 김동욱고려대학교로 진학할 때, 꼽사리로 끼어서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대신 고려대에 입학시켜주는 조건으로 입학하자마자 농구는 그만둬서 TO를 마련해주는 조건. 하지만, 농구를 원했던 박상률은 고려대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농구를 위해 2부리그 대학교인 목포대학교 진학을 선택한다.[4][5]
2부리그 대학은 클럽 위주라서 수업과 농구를 병행했는데, 운 좋게도 당시 SBS의 코치였던 이상범의 눈에 띄면서 프로 드래프트 신청을 권유받는다. 프로 드래프트 직전의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예상을 뒤엎고, 2라운드 16번으로 당시 SK 빅스 농구단(지금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지명받는다. SBS에서는 3라운드에 뽑으려고 계획했는데, 유재학 감독이 먼저 눈여겨보고 채간 것이다.

3. KBL 입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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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말 그대로 백업 가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 전자랜드에서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은근히 어려운 상무 시험에도 통과해서 두 시즌 동안 군 복무를 한다. 제대 후에는 전자랜드 대신에 KCC로 이적했는데 멤버가 워낙 좋은 KCC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KTF로 이적을 택했지만, 그것 마저도 별 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2군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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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에서 방출되었지만[6], 그를 프로 무대로 나가도록 권유한 이상범 감독이 다시 박상률을 영입하며 마침 김태술의 입대와 주희정의 이적으로 가드진의 공백이 생긴 KT&G의 백업 가드 역할을 맡겼다. 당시만 해도 이 선수에게 기대하는 안양팬은 누구도 없었으나 의외의 쏠쏠한 활약으로 농갤 등에 '어디서 나타난 선수냐' 묻는 글들이 종종 올라왔다. 거저 얻은 잡동사니가 알고 보니 보물이었던 셈.
2011-12 시즌에는 멤버들이 워낙 좋은 인삼공사 사정 상 출전 기회가 줄어든 편. 아쉽게도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팀이 우승하면서 우승 반지는 하나 득템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2부 대학 출신으로 KBL에서 오래도록 뛰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2부 리그 대학 선수들에게는 희망을, 그리고 큰 족적을 남긴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담으로 둥글둥글한 외모에 걸맞지 않게 마치 미국의 스트릿 볼러들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스타일의 농구를 구사했다. 농구 갤러리에 '키는 작고 느린데에다 농구 정말 못 하게 생긴 선수가 어울리지 않게 멋있는 농구를 하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4. 은퇴 후


2013-14 시즌 최종전이자 마지막 홈 경기가 열린 2014년 3월 9일 은퇴식을 치렀으며 곧바로 모교인 목포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았다. 그러다가 미국 연수를 마친 뒤 2014-15 시즌부터 KGC 코치를 맡을 예정이었던 은희석이 연세대 감독으로 이동하자 KGC 코치로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그와 악연이 있던 전창진 감독이 팀을 맡게 되자 kt의 코치 겸 전력분석 담당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조동현 신 감독 체제 이후부터는 처참한 성적만 보내기만 하였고 결국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1] 전자랜드, KCC, KTF 시절[2] KGC 시절[3] 여수전자고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자퇴하고 군대를 갔다와서 다시 목포대로 간 케이스다.[4] 정작 김동욱은 수능 점수 미달로 인해 졸지에 1년을 쉬어야 했고 이는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5] 당시 박상률은 단국대로부터로도 스카웃을 받았다고 한다.[6] 이 부분은 당시 이상범 감독이 우승에 도전하는 KT에 나이젤 딕슨을 안겨준 보답으로 전창진 감독이 박상률을 무상으로 안양에 넘겨준 것 같다는 이상범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있다. 사실확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