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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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이자, 現 원주 DB 프로미 감독. SBS의 창단 멤버로 입단한 이래 SBS - KT&G -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선수 감독 코치를 역임했던 프렌차이즈 농구인이다. 2017년 부터 원주 DB 프로미 감독이다.
2. 경력
2.1.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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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1981년 서대전초등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해 대전중학교를 거쳐 대전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SBS 실업 농구단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여 2000년까지 SBS의 선수로 활동했으며, 코치로 전업한 후에도 줄곧 SBS - KT&G - 안양 KGC인삼공사 프랜차이즈를 지켜 온 선수였다. 현역 시절에는 무난한 공격력과 수비력을 가진 가드였다. 특기할 사항은 1997년 2월 1일 프로 원년 개막전에서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 슛이 바로 프로농구 역사상 첫 득점이라는 것. 동시에 첫 3점슛도 그가 기록하게 되었다.[2]
2.2. 감독 생활
2.2.1. SBS 코치-KT&G 코치 및 감독대행 시절
2000년에 은퇴한 후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2001년부터 SBS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12월 20일에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경기가 몰수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 사건으로 김영기 당시 총재가 사퇴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자, 상벌위원회에서 정덕화 당시 SBS 감독은 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이상범 코치는 3시즌 간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으며, SBS 농구단 단장도 2시즌 간 자격정지를 당했다. SBS 스타즈 농구단에는 3천만원의 제재금이 부과되었다. 하지만 상벌위의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아 2004년 1월 31일 농구연맹에서 이상범 코치에 대한 징계를 2004년 10월까지로, SBS 단장은 2시즌에서 1시즌 간 자격정지로 경감했으며, SBS 농구단이 냈던 제재금 3천만원도 다시 돌려 주었다. 그렇게 벤치로 돌아온 후, 감독이 바뀌고 팀명이 바뀌어도 계속 코치로서 안양의 벤치에 남았다가 유도훈 감독이 일신상의 이유로 갑자기 사임한 2008-09 시즌부터 감독 대행을 맡았다.
2.2.2. KT&G 카이츠-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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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감독 지휘봉은 2009-2010 시즌부터지만, 감독대행 시절인 2008-2009시즌부터 사실상 감독생활이 시작된다.
이 당시 안양 KT&G의 상황은 상당히 암울한 상황이었는데, 유도훈 감독이 구단과의 마찰 끝에 개막 2달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퇴진하면서 팀 행보가 미궁으로 빠졌다. 전력상으로도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수장까지 이탈했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한 상황. 그러나 이상범 감독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고 스피드 농구로 돌풍을 일으키고 시즌 초반에는 창단 이후 첫 5연승까지 달성하는 등 한 때 원주 동부, 울산 모비스와 공동 선두까지 올랐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3일 켈빈 워너의 부상 이탈과 함께 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PO 진출조차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상범 감독은 성적 하락에도 선수들이나 구단 운영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을 탓하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선수단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데, 자칫 초반 돌풍이 사그라 든 이후 위축될 수 있던 상황임에도 다시 한 번 힘을 내면서 결코 중위권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며[3] 하지만 결국 거듭되는 부상 악령을 극복하지 못하고 최종 성적 29승 25패로 정규리그 7위, 그것도 득실 공방에서 밀린 최초의 사례로 PO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이 당시 KT&G를 비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상범 또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감독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그는 김호겸 사무국장의 제안과 함께 KBL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리빌딩의 길을 하게 된다. 먼저 주희정을 김진 감독이 있는 서울 SK 나이츠로 트레이드하는 대신 김태술을 받아오는데 상무 농구단에 불합격으로 인해 공익으로 보낸다. 이미 양희종도 상무에 입대하면서 전력약화는 불보듯 뻔했다.
추가로 힘들게 뽑은 외국인 센터였던 나이젤 딕슨 또한 전창진 감독이 있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트레이드하는 대신 2010 KBL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오게 된다.[4]
이는 결국 2009-10시즌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2009-2010 시즌 종료 이후 모기업도 KT&G에서 KGC 인삼공사로 바뀌게 되는데 리빌딩이라는 명목 아래 성적부진에 대한 우려가 있는지 구단관계자에 설득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KT&G는 KBL 역사를 통틀어도 역대 최악체 전력을 자랑했는데, 대구 오리온스와 더불어 가장 우력한 꼴찌 후보로 꼽혔다. 성적은 예상대로 16승 38패로 창단 후 최악의 성적. 그러나 순위는 8위로 전력이나 팀 상황을고려하면 상당히 선전했으며, 역사상 최악의 양극화 시즌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팀이었다.
실제로 2009년 한 해동안 10승 19패로 7위를 유지하는 등 전력에 비해서 상당히 선전했다.[5] 하지만 2010년 첫 날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63-71로 완패하며 추락이 시작되는데, 이 당시 KT&G는 무려 23개의 턴오버, 전반에만 17개의 턴오버를 범하며 스스로 무너졌고, 6위 삼성과의 격차는 5.5게임까지 벌어졌다. 이로인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이상범 또한 "이건 마인드가 잘못된 수준 이하의 경기다. 이렇게 턴오버가 많아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참패다." 라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질책을 가했고, 이후 2경기에서도 모두 완패, 3경기에서 59개의 턴오버를 남발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이상범 감독은 1월 7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75-93 대패 이후 "고등학생만도 못한 경기다. 농구 경기라고 볼 수도 없고, 우리 모두 프로자격이 없다."라며 부임 이래 가장 강력한 독설까지 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시련을 참아내면서 2010 KBL 드래프트에서 원순위였던 1순위로 박찬희를 선발했고 KT에서 양도받은 2순위로 이정현을 선발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0-11시즌. 그러나 한창 리빌딩에 있던 시기였기에 이해도 성적부진이었다. 전 시즌과 같은 16승 38패의 성적으로 창단 이후 최악인 정규리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에는 경질설까지 불거지는 등 힘겨운 두 시즌을 거쳐야 했다.[6]
하지만, 인고의 시간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2011 KBL 드래프트에서 원했던 1순위로 중앙대 52연승 신화의 주역이자 국가대표 센터인 오세근을 지명하면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3년 간 지속된 인삼공사의 리빌딩을 참아 내고, 양희종,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오세근과 같은 젊은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끝에 2011-12 시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2016-17시즌 이전까지의 팀 사상 최고의 성적을 찍으며 정규 시즌 2위에 올려 놓았다. 다만, 전술 운용에 있어서는 다소 의문부호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즌 막판 무성의한 경기[7] 때문에 엄청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8] 우승을 위해서는 이상범을 쓰면 안 된다는 팬들도 제법 많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동은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도 2011-12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면 강압 수비와 체력과 힘을 위주로 한 공세로 정규시즌 1위이자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원주 동부 프로미를 4승 2패로 누르고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내면서 재평가받는 분위기. SBS 시절부터 팀을 지켜온 이상범 개인으로서도 첫 우승이라 감회가 남다를 듯 하다.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인해 주가도 올라 KBL 우승팀 감독이 맡게 되는 국가대표 팀 감독에 올라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농구 예선전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소속 팀인 KGC인삼공사와도 연봉 3억 5천만원에 3년 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에 부진을 겪었다. 8연패도 겪어봤으며 10위도 겪어봤으나 2014년에 반짝 상승세로 7위에 올랐다.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결국 실패하면서 2014년 2월 22일 자로 경질되었다. 사유는 구단이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직으로 인해 팀에 전념하지 못하면서 외국인 농사 실패 및 부상이었다.
SBS / KT&G 농구단 '''프런트 출신'''의 이동남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잔여 2013-2014 시즌을 치른 뒤 2014-2015 시즌을 치렀다.
이후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친정인 안양 KGC 인삼공사를 떠난 후에는 2014 FIBA 농구 월드컵 대회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코칭스탭으로 활약하면서 선진농구를 배웠으며 12년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공헌하게 된다.
한 때 부산 kt 소닉붐 등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국가대표 전임감독직을 노렸으나 해당 자리는 허재에게 돌아갔고 이상범 본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팀, 고교팀에서 인스트럭터 일을 맡으면서 훗날을 기약했다.DB발 태풍, 이상범 '지분'은 얼마나 될까[9]
2.2.3. 원주 DB 프로미 감독
2.2.3.1. 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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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전창진 감독이 떠난 뒤 신선우 감독 선임설이 있는 부산 kt 소닉붐과 김진 감독이 떠난 뒤 서동철 감독을 포함해서 후보군에 있었던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후보에 있었지만 최종선택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DB 구단 프런트에서 최고위층에 리더쉽을 말하는 등 정성까지 보였다. [10]
3년간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선전했으나 재계약을 포기한 김영만 감독 후임으로 2017년 4월 21일자로 원주 DB 프로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1]
하지만, 동부에서 DB로 회사명칭이 바뀌면서 구단 로고까지 바꾸었지만 전창진-강동희-김영만 시절부터 이어진 과도한 주전의존도가 약점이었는데 그것도 모잘라 허웅의 상무 입대와 윤호영의 부상 그리고 김주성의 은퇴 시즌으로 인해 안양 KGC 인삼공사 시절처럼 재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17년 10월 20일자로 '''꼴찌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DB 프로미를 개막 3연승으로 이끌고 있다.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서민수를 포함한 식스맨들의 기량이 비시즌 동안 전체적으로 상승했으며 그에 따라 주전 의존도가 대폭 줄어들고 디온테 버튼과 두경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변칙 스몰 라인업(!)이 통하는 일도 심심찮게 늘어나며 개막 5연승까지 하면서 2017-18 시즌 1월 20일 현재 26승 9패로 대단히 성공적인 리빌딩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본인은 시즌은 길다면서 6라운드 시점까지도 1위권을 지키고 있다면 그 때 1위 수성에 도전하겠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는데, 현재의 페이스로 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8년 3월 11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12]
정규시즌 우승 후 인터뷰에서 그 동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는데, 처음에는 사실 LG에서 본인에게 감독 제의를 했었다고 밝혔다. 거의 합의가 됐 있었던 상태에서 일주일만 기다리면 윗선의 결재가 나오는 시기였기에 이상범 감독은 일본에서 고교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기다렸었는데, DB 구단 관계자가 일본으로 직접 찾아와서 '''전권을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결국 이상범 감독은 DB행을 택했다.
2018년 3월 14일 개최한 프로농구 시상식에서 108표 중 106표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상은 이효상 수석코치가 대리 수상을 했고, 다음 날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 데이에도 김주성이 선수 겸 감독대행(?)으로 참석했다. 그래도 4강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는 정상적으로 참석했다.
2.2.3.2. 18-19 시즌
2017-2018시즌 팀의 정규시즌 우승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어가지 못한 채 24승 30패 8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한채 시즌을 끝냈다. 하지만 시즌 전 꼴찌 후보라고 평가받던 팀을 PO 문턱까지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대다수 팬들과 전문가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2.2.3.3. 19-20 시즌
2019-2020시즌 전시즌 8위라는 최악의 성적에 불구 창원 LG에서 센터 김종규를 영입 한후 팀이 확달라져 28승 15패로 가장 높은 순위 기록한채 시즌 조기 종료로 SK와 공동 1위 트로피를 받았고 감독상을 2년만에 탈환했다.그후 2020년 4월 28일 DB와 4년 재계약에 성공해 2024~2025시즌 까지 이끌게 되었다.
2.2.3.4. 20-21 시즌
김종규의 DB 이적 후 두 번째 시즌으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는 시즌이다. 특히 KGC와의 계약이 끝나고 야인 시절 일본 고교에 인스트럭터로 있을 때 인연을 맺게 된 나카무라 타이치라는 선수를 아시아쿼터로 영입 추진 중이다. 아시아쿼터 제도가 신설되어 영입할 수 있게 된 것. 이 제도에 의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에는 국내 선수 샐러리캡에 들어가게 된다. 샐러리캡의 맞추기 위해 김창모를 무상으로 KCC로 트레이드했다. 아시아쿼터 제도를 통해 나카무라 타이치를 영입하면서, 가드진 라인업 짜기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기존 용병 치나누 오누아쿠가 팀 훈련 합류 거부로 새로운 외국인 빅맨을 영입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그가 선호한 대로 대학교를 막 졸업한 신예 타이릭 존스를 영입했다가 실패해 퇴출시키고 미국 국가대표 출신으로 NBA 마이애미 히트에서 뛰었던 얀테 메이튼을 영입했다.
일단 개막하자마자 3전 전승을 기록하며 출발은 좋았는데, 그 이후로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13] 11연패나 하며 분위기가 심히 좋지 않아졌다. 샐러리 캡이 2,200만원밖에 남지 않아서 트레이드도 할 수 없는 상황. 다행히 11월 15일, 길고 길던 연패를 11연패에서 끊었다.
2.2.4. 통산 감독 성적
2.3. 코칭 스타일
2.3.1. 장점
풀코트 프레스 포함 수비 전술이 뛰어나다. 로테이션 디펜스도 가미해서 압박수비만 보면 유재학에 버금가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는 11-12 KGC 인삼공사 시절 동부 프로미에 풀코트 프레스와 로테이션 디펜스가 통하면서 KGC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끈 점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 시절에도 유재학 감독을 보좌하면서 수비전술을 서로 공유하면서 12년만에 금메달을 함께했다. 특히 이 부분은 이상범 감독의 대표적인 강점 중 하나인데, 열린 리더십으로 시즌 도중에도 꾸준히 스승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고, 이는 팬들에게도 많은 호감을 샀다. 또한 우승 시즌인 2011-12시즌에는 홍삼을 선물하는 댓가로 선배 감독들에게 배우고 또 배운다는 사실까지 나오면서 열린 리더십을 가진 대표적인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선수의 의견을 들으면서 합리적으로 지도하는 방법도 장점이다. 이는 이상범 감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감독 초창기 시절부터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KBL 내에서도 대표적인 '''덕장'''으로 꼽힌다. 특징이라면, 경기 중 왠만하면 선수들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감독대행 시절인 안양 KT&G 카이츠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감독 스타일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위축되거나 힘든 상황이라면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수 차례 중계화면에 잡힐 정도다. 특히 심판 항의의 경우에도 다른 감독들에 비해면 굉장히 점잖으며, 때로 강하게 항의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사과로 끝내는 것이 많은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유순하지는 않은 편. 중간중간에 조직력을 해치거나 집중력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는 살벌한 독설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질타하는 경우도 많다.[16] 또한 심판과의 항의도 꽤 잦은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판정에 대한 항의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수 편에서 들어주는 항의를 한다는 것이다.[17] 물론 그 강도도 전창진, 허재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유순한 편이다.
오펜스에서 선수를 조직적으로 묶기보다 정통 포지션에서 잘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잘 깔아준다. 물론 어느 한 선수가 극도로 튀는 것을 싫어하는 조직력 성향을 가진 것은 맞다.
포인트 가드의 박찬희는 슛이 약하지만 수비와 패스 및 투맨 게임이 좋으면서 리딩을 극대화했고 두경민은 시야와 패스가 약하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공수 활동량이 많으면서 슈팅이 좋으니 슛을 극대화했다. 김태술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리더로서의 중심을 잡도록 유도했다.
슈팅 가드에서 해결사 본능이 있는 이정현과 허웅의 공수조화를 잘 살려준다.
가장 중요한 건 로스터 또한 12명을 고르게 쓰면서 베스트 5와 식스맨들의 경쟁체제를 구축해서 수비가 되지 않으면 경기에 나가기 어렵게 하면서 선수단의 분발까지 요구한다. 이 때문에 이상범 감독 체제에서는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거나 치명타를 입은 경우가 거의 없다.[18]
2.3.2. 단점
초창기에는 앞에 언급한대로, 주전 의존도가 높고 임기응변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꾸준이 제기 되었는데, 이는 2013-14시즌 경질당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적된 부분이다. 한 마디로 덕장인 면모에 비해 지략적인 면은 다소 부족했던 것.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우선 투맨 게임 전술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이다. 김승기의 경우 치밀한 투맨 게임이 있는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가드 라인의 선수를 잘 살리지만 스크린을 통한 확 짜인 오펜스를 잘 쓰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디펜스 또한 체력저하와 부상일 때 완급조절에서 문제점이 드러냈다. 2011-12시즌 풀코트 프레스가 대표적인 사례. 물론 2012-13시즌 역대 최악의 부상대란이 쏟아졌을 때는 과도한 풀코트 프레스를 자제하는 등 체력 안배에 신경쓰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도 미디어 패장 인터뷰 때 이 부분을 솔직하게 고백을 하지만 욕심인지 완급 조절은 물음표였다.
KGC 리빌딩 시절을 보면 영건 위주로 게임을 풀어갔지만 승부처에서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DB 시절 또한 18-19 시즌을 보면 풀코트 프레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또한 지나친 체력 안배 때문에 정작 잡아야 될 경기들을 놓치는 자충수를 범한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 쪽이든 혹사나 체력 안배나 극단적으로 쏠리면 자충수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전창진, 강동희, 김승기[19] 감독이 모두 혹사 논란으로 비판을 받는다면, 이상범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비판받는다. 물론 이는 부상악령이 절정에 달했던 2013-14 시즌 KGC와 2020-21 시즌 DB에 한해서 한정이다. 이 시즌 외국인들이 말썽을 일으켰다.
2.4. 전술 스타일
'''제갈상범''', '''리빌딩 스페셜 원''', '''호빵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지략과 용병술, 인품을 모두 갖춘 몇안되는 KBL 감독 중 한 명이다. 추가로 인품에서도 좋은 모습까지 더해지며 KGC 시절부터 '''호빵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1-12시즌 인삼공사를 이끌고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챔피언 반지를 거머쥐었고, 17-18 시즌 최약체 중 하나로 꼽히던 원주 DB에서 두경민-버튼 원투펀치를 앞세워 정규시즌 1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가드진의 로테이션을 앞세운 앞선의 강력한 '''맨투맨 풀코트 프레싱'''과 존 디펜스를 위시한 '''지역 수비'''를 가장 잘 사용하는 감독이다. 다만 저 두 가지의 수비 방식은 가드진이 로테이션을 돌려도 풍족한 벤치진을 갖추거나 수비력이 좋은 센터와 파워 포워드가 버텨주어야 효율성이 나오는 전술들이기에 이상범 감독 본인이 저 전술들에 욕심을 가지지 않는 편. 실제로 저 두 가지 전술을 동시에 구현한 시즌은 11-12 시즌 인삼공사와 19-20시즌 DB 정도밖에 없다. 이 두 시즌 인삼공사의 경우에는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을 비롯한 가드진과 오세근, 양희종이라는 강력한 센터, 파워 포워드를 기반으로 플레이오프에서 풀코트 프레싱과 지역방어로 동부를 체력전으로 밀어붙여 우승을 거머쥐었고 19-20시즌 DB는 김태술, 허웅, 두경민, 김현호, 김민구라는 로테이션 가드진과 김종규, 오누아쿠라는 센터진으로 무자비하다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상대 가드진을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저 두 전술은 '''전제조건이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감독 본인이 선수에 맞추어 전략을 짜는 맞춤전술을 상당히 잘구사한다. 실제로 원주 DB 첫시즌인 17-18시즌은 디온테 버튼이라는 용병을 포인트 가드로 돌리면서 유연한 전술 움직임을 보여준 덕분에 최약체라는 DB가 정규시즌 13연승을 포함한 정규시즌 우승을 얻어냈다. 인삼공사에서의 12-13시즌의 경우에도 오세근이 부상이었지만 김태술, 양희종의 분전과 최현민 등 수비력이 있는 자원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6강 싸움을 해냈을 정도.
맞춤전술을 짜내는 능력이 탁월해서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거나 폼이 떨어진 선수들을 부활시키는데에 일가견이 있다. 특히 가드진을 위주로 전술을 잘짜는 감독이어서 이상범 감독 아래 전성기를 끌어내거나 부활 혹은 성장하는 가드들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김태술의 경우에 KGC에서 전성기를 보내다 KCC, 삼성에서 무너졌지만 DB에서 이전에 무너진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KCC에서 DB로 넘어온 김민구도 DB에서 이상범 감독의 전술 아래에 전성기로 돌입하고 있다. 두경민은 이상범 감독 재임 이전에는 슈팅에 재능이 있는 애매한 슈팅 가드였으나 재임 후에 KBL 최고급 듀얼가드로서 MVP급으로 올라섰다고 평가받고 있고, 허웅 역시 19-20시즌 MVP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 KGC 시절 이정현, 박찬희 역시 이상범 감독 아래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스텝업에 성공했고 그 뒤에도 성장을 지속해낸 선수들.
3. 여담
- 가수 박상민과 친분이 있다. 12월 21일. 원주 DB 프로미의 홈 경기를 직관하면서 가졌던 MBC SPORTS+와의 인터뷰 당시 박상민 본인이 직접 친분을 드러냈다. 박상민은 이 날 하프타임 때 축하 공연으로 슬램덩크 주제곡을 불렀다. 여담으로 박상민은 직관을 가는 곳마다 홈 팀의 승률이 높은 승리요정이라 카더라.
- 일본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던 시절의 경험이 원주 DB 프로미 감독 시절의 지도법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시절, 정확히는 오세근, 박찬희, 이정현의 합류 이전 시즌은 본인 스스로 철저하게 실패라고 인정하면서 스스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KBL의 감독 중에서 피드백이 빠른 몇 안 되는 감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사실상 현재 스타일로 코칭 스타일을 처음부터 다 갈아엎은 전환점이 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20]
- 별명은 호빵맨이다. SBS 현역 시절부터 통통한 모습과 함께 3점슛을 넣는 모습과 KGC 인삼공사 감독이 되어서도 친근감있는 미소로 인해 팬들은 호빵감독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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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상범이라는 별명이 생겼던 11-12 시즌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시절에 그의 얼굴을 삼국지 11의 제갈량의 초상화에 합성한 짤방이 농구 갤러리에서 종종 돌아다니기도 했다. 안양 KGC의 감독직에서 사임한 이후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편.[22]
- 작전타임 시에는 웬만하면 웃으면서 선수들의 다독여 준다. 2017년 10월 22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홈 경기 막판에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는데 작전타임을 부르고는 "(너희들)쉬라고 타임 부른 거니까 한 타임 쉬고 들어가라"는 여유를 보인 적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할 플레이를 보일 시에는 매섭게 다그치기도 한다. 2017년 11월 2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홈 경기 4쿼터에서 경기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자, 5분 59초를 남기고 마지막 작전타임을 부르고는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를 높이면서 강한 어조로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캐스터: ...역시 다시 한번, 이상범 감독이 작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
>이상범: ...자 이렇게 상훈이, 들어가라구. 이렇게 들어가서 프레스 하라고. 위에서부터 어?! 파울 나와도 되니까, 좀 강하게 밀어 붙이라고! 지금 뭐가 안되냐면, 서있다가 리바운드 당하고 허용하고! 백코트 안해갖고 얻어맞고! 어?! 마인드가 대가리가 썩었잖아, 썩으니까 안되는 거지!! 니네가 (언제)부터, 언제부터 니네들이 이렇게 농구했어?!
>선수들: 네!!
>김태홍: 자 가자!
>선수들: 가자!! 원투쓰리, 야~!!
>이효상: 야 리바운드 잡어~! 어?!
>
>캐스터: 자, 강력한 작전지시로 선수들의 집중력을 좀 유도해 냈던 이상범 감독이었습니다.
>해설자: 그렇죠~!
이 일침에 각성했는지, 이 날 원주 DB는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디온테 버튼의 막판 맹활약에 힘 입어 102-98로 창원 LG에게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4. 관련 문서
[1] 중간에 1년이 비는 것은 후술하는 몰수게임 사건 때문에 잠시 자격정지를 받았기 때문이다.[2] 첫 리바운드 기록도 가지고 있음.[3] 이 당시 KT&G는 2012-13시즌에 필적하는, 아니 그보다 더한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켈빈 워너를 시작으로 양희종, 은희석, 마퀸 챈들러, 시즌 막판에는 김일두등 거의 선수단 전체가 전염병처럼 부상 망령이 옮겨붙었다. 이런 상황이면 진작에 PO에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끝까지 지지했으며, 이로 인해 선수들은 오히려 감독의 믿음에 더욱 사기를 끌어올려 시즌 막판 양희종의 어깨 부상과 워너의 대마초 파동으로 인한 이탈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PO 문턱에서 분투했다.[4] 이 당시에는 정말 감독직에서 잘릴 뻔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5] 어느 정도냐면 시즌 전 10승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다.[6] 오죽했으면 당시 연일 계속된 패배로 팬들의 비난이 두려워 숙소에서 나가지도 못했을 정도였다.[7] 특히 2012년 2월 25일에 열린 모비스 전에서 3Q까지 64-43으로 이기던 가비지 게임을 뒤집히기도 했다![8] 체력 안배를 위해서 4쿼터에 주전들을 모두 제외한 것은 정상참착으로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후 점수차가 좁혀짐에도 아무런 조취도 치하지 않고 관망한 것은 승부조작이나 다름없는 망발이었다. 그리고 패배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더욱 가열찬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이런 모습으로는 PO에서도 선수를 더 쓰긴 어렵다."라는 트롤링까지 벌이면서 사퇴 여론까지 일었고, 급기야 구단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까지 올려야했다.[9] 이때 일본에서의 인연으로 훗날 나카무라 타이치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10] 여담으로, 이상범 감독을 먼저 접촉했던 팀은 부산 kt 소닉붐이었고 이후는 창원 LG 세이커스라고 한다. 합의가 거의 다 되어있는 상황에서 윗선의 결재로 1주일 동안 시간을 보내던 중, DB에서 '''전권을 주는 조건'''으로 러브콜을 했고, 이상범 감독이 마음을 뺏긴 것.[11] 2년전 부산 kt는 유재학 감독 밑에서 선수-보조코치였던 팀 주장 출신인 조동현 감독을 선임했고 2년뒤 창원 LG는 감독보다 코치 경험도 없는 슈퍼스타 현주엽 감독을 선임했다. 결과는 참패.[12] DB가 KCC에게 2경기 차로 앞서있는 상태에서 잔여경기가 각 2경기씩 남았는데, 이 날 DB가 이기거나 KCC가 지는 순간 DB의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13] 로스터 최소 한도인 선수단 12명도 겨우 꾸려가는 상황이다.[14] 감독대행 시절[15] 경질[코로나-19] 로 인한 시즌 조기 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16] 대표적인 장면이 밑에 나오는 2017년 11월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나온 영상이다.[17] 2012년 12월 28일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심판 욕설 논란 당시 "감독이 선수편에 서야지, 그러면 어디 서야되냐?"라고 심판에게 물어본 것이 대표적이다.[18] 물론 초창기에는 이상범 역시 이러한 점이 미숙했다. 특히 우승 시즌이었던 2011-12시즌이 끝난 후 오세근이 발목 후경골견 골절로 시즌 아웃 된 이후에는 실수를 인정하고 더욱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해주고 있다. 자신의 성적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체력안배를 먼저 생각하고, 성적의 압박감에 시달려 선수들을 몰아붙이지 않고 쉴 때는 확실히 안배해준다. 이는 2013-14시즌에 가장 잘 나타났는데, 야전사령관이었던 김태술에게 부친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1주일간 휴식을 줬으며, 간신히 장기부상에서 복귀했으나 여전히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오세근과, 시즌 내내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렸던 양희종 등 특히 주축 선수들에게 더욱 체계적인 선수 관리를 부여했다. 원주 동부 시절에도 마찬가지. 커리어 내내 혹사의 대명사였던 김주성의 체력 안배까지 성공했으니 더 말이 필요한가.[19] 초창기 시절. 현재는 이러한 논란이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20] 사실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시절까지만 놓고 보면 이상범도 여느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세근이 11-12 시즌을 모두 불태우고 12-13 시즌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도 했고 김태술도 출전시간을 많이 할당해야 했던 점 때문에 KGC를 떠난 이후에는 당시의 폼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 그러다가 현재 DB에서는 혹사 논란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일본에 인스트럭터로 다녀온 것이 원주 DB 프로미 구단뿐만 아니라 감독 본인의 운명까지 바꿔놓은 셈이다.[21] 그가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으로 있을 때부터 내세우던 원칙이며, 기존에 뛰던 선수들은 잔머리가 많아 심판을 속이는 행동을 해 좋지 못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선수들은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해 팀워크가 저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 원칙에는 단 두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한 번은 정규리그 중반 이후 크리스 다니엘스를 대체 선수로서 영입한 것, 다른 경우는 부상으로 팀에 이탈한 저스틴 틸먼의 대체 선수로 리온 윌리엄스를 영입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니엘스, 윌리엄스 두 선수 모두 인성이 좋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2019~20시즌 활약했던 치나누 오누아쿠가 연락두절로 오지 않아 대신 뽑은 타이릭 존스 또한 대학교를 졸업한 신예이다.[22] 대신 상범매직이라는 별명이 원주팬들에게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