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1959)

 

이름
박성현
출생
1959년
서울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중퇴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학사
경력
한국일보 기자
고려시멘트 대표이사
(주)나우콤 대표이사
뉴데일리 주필
사단법인 역사문화센터 대표
/
1. 소개
2. 가족관계
3. 경력
4. 정치활동
5. 저서
6. 견해
7. 기타


1. 소개


한국의 우파 유튜버.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가담했으며, 이 때문에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잠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았지만 몇 년 안가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몰락하였다. 그 뒤 종적을 감추었다가 2010년대 들어서 갑자기 '''뱅모'''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극우 활동가가 돼서 나타났다.

2. 가족관계


아버지는 박철웅 전 조선대학교 총장, 어머니는 정애리시[1] 전 조선대 이사장. 이 부부는 4남3녀를 두었는데 박성현은 이중에 4남이다.
아버지 박철웅 전 조선대 총장은 수십년 넘게 조선대학교 재단을 사유화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나, 1988년 조선대 학생들의 투쟁으로 재단에서 쫓겨났고, 이후 법원판결로 조선대 운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대학교 박철웅 일가의 만행 항목 참조.
어머니 정애리시는 일명 "서석동 할머니"라고 불리던 사채업자로 한때는 장영자에 버금갈 정도의 현금동원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박철웅-정애리시 부부는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고려시멘트, 무등건설, 홍성산업, 충북투금, 무등일보 등 덕산그룹이라 불리는 20여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었다.

3. 경력


  • 1977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 1981년 지하조직 학림의 중앙위원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학림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으나 곧 형집행면제로 풀려났다. 당시 학림사건 관련자 중에서 유일하게 석방되었다. [2]
  • 1986년 제헌의회 사건 당시 자금 5000만원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다시 수배되었다가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과 함께 수배가 해제되었다.
  • 잠시 한국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90년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동진정보통신을 창업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하였다. 이후 아버지 박철웅 전 조선대 총장에게서 고려시멘트를 물려받아서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DGC[3], 동진정보시스템[4]을 설립했다.
  • 1992년 자본금 50억으로 한국출판정보통신을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2년뒤에 나우콤으로 이름을 바꾼다. 즉 90년대 대학생들의 친구 나우누리를 만든 사람이다.
  • 1995년 고려시멘트가 부도처리되면서 기업경영에서 손을 떼게 된다. 박철웅-정애리시 일가가 소유한 기업들이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줄줄히 무너졌고, 고려시멘트도 그 파편을 맞은 것이다. 기사1, 기사2 이후 고려시멘트 계열 기업에 대해서 모든 소유권, 경영권을 포기한다.

4. 정치활동


2010년대 들어서 극우 논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뉴데일리, 펜앤드마이크에서 활동 중이며 뉴데일리 주필을 역임하였다.
유튜브 Bangmo뱅모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2018년부터 시작한 '''세뇌탈출''' 시리즈가 1년만에 700회를 돌파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가입자와 조회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 학림의 부산지역 조직이었던 부림사건의 담당검사였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부림사건을 변호했던 "노무현은 변질된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되었을때 YTN 토론에 출연해서 '''"학림은 공산주의 통일전선 운동이었다고 생각해서 재심 청구도 하지 않았고, 민주화운동 보상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홈페이지 뱅모 카페도 있지만, 2019년 현재는 더 이상 업데이트 하지 않는 듯 하다.
사단법인 역사문화센터의 대표인데, 이 역사문화센터는 우남위키를 운영하는 이런선한지식문화 운동본부(약칭 이선본)를 산하에 두고 있다.

5.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2011년 들녘 출판사, 2017년 개정판 심볼리쿠스)
  • 망치로 정치하기 (2011년 심볼리쿠스)
  • 상징의 탄생 (2017년 심볼리쿠스)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2007년 야그, 2012년 개정판 심볼리쿠스) -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번역서.

6. 견해


진보vs보수 구분 틀은 정확하지 않고 역사성이 없는 한국 한정 용어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원산지인 서구에서는 보수vs리버럴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한다. [5]
미국의 극단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신봉하는 '''QAnon 음모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로, 2020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패배로 마무리되자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부정선거 음모론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7. 기타


  • 나우콤은 박성현과 문용식, 김철균, 천호영, 강창훈 등 19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이다. 이들은 나중에 뿔뿔히 흩어지는데 김철균은 다음 부사장으로 옮겨갔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인터넷홍보비서관이 되었다. 문용식은 꾸준히 나우콤 경영진으로 활동하다가 2008년 촛불집회 아프리카 생중계 때문에 구속되었다. 이후 문재인 대표 지지를 선언하면서 민주당계 정치인이 되었다.

  • 나우콤 설립에 관해서 언론기사에 따라서 내용이 약간 다르다. 문용식 대표가 박성현 고려시멘트 대표에게서 50억을 투자받아서 창업했다고 하는 인터뷰 기사와 박성현 대표가 자신이 직접 구상해서 설립했다는 기사가 모두 존재한다. 다만 문용식이 2000년대 이후까지 나우콤 경영을 이끌었던 것에 비해, 박성현은 초기 투자 이후에는 딱히 관여한 흔적이 없다.
  • 새로운 PC통신 기업 출범을 고민하다가 박성현 고려시멘트 사장에게 투자를 요청했더니, 한국출판정보통신을 맡으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회고담도 있다. 이때문에 주먹구구식 자금줄을 고민했다는 이야기까지.
  • 1995년 2월 덕산그룹이 1조원대 부도를 내면서 무너지자 언론은 단군이래 최대규모 라면서 보도했고, 광주 지역경제가 휘청였다고 한다. 이때 덕산그룹 수사를 담당했던게 당시 대검 중수부의 박주선 검사.


[1] 오타가 아니라 진짜 이름이 "애리시" 3글자이다.[2] 아버지 박철웅 조선대 총장이 당시 전두환 정권에 로비를 해서 풀려났다는 썰이 파다하다.[3] 전자문서교환(EDI) 소프트웨어 개발[4] 컴퓨터판매.[5] 보수 공화당 vs 리버럴 민주당의 양자 구도인 미국이라면 정확하지만, 그외 유럽, 캐나다, 호주 등에선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들 국가들은 대부분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내각제라서 다양한 정파들이 경쟁하는 다자 구도이기 때문이다. 언론지형도 마찬가지로 극우부터 극좌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다. 특히 유럽은 유럽연합을 둘러싸고 통합주의, 연성회의주의, 고립주의 등으로 대결하기 때문에 단순히 보수vs리버럴이라고 구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