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신

 

白樂莘
1814~1887
1. 소개
2. 미디어에서 등장


1. 소개


조선 말기의 무신으로 탐관오리의 대명사. 본관은 수원(水原)[1], 자는 경윤(景尹).
1814년 영종첨사를 지낸 아버지 백형수(白珩洙)와 성종의 13번째 아들인 무산군(茂山君) 이종(李悰)의 11대손으로 진사 이정은(李正殷)의 딸인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백낙신의 문음진신보(文蔭縉紳譜)
1858년 전라 좌수사에 임명되어 탐관오리 짓을 일삼다가 조정에 보고되어 처벌받았지만 다시 줄을 잘 탔는지 1861년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에 임명되어 진주목사 홍병원과 결탁하여 역사에 남을 탐관오리의 명성을 쌓게 된다. 보통의 탐관오리들과는 다르게 개인 문서까지 만들어질 정도면 얼마나 수탈을 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당시 백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삼정의 문란, 그 중에서도 환곡의 문제였는데 백낙신과 홍병원은 장부를 조작하고 백성들을 쥐어 짜내서 막대한 환곡을 거둬들였다. 뿐만 아니라 개간지에 불법적으로 과세하고 세곡을 빼돌렸는데 1년도 안 되어서 모여진 재물이 미곡 15,000석에 달했다.
백낙신의 탐학에 끓어오른 진주의 민심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결정적 계기는 역대 진주목사들이 빼돌린 미곡 28,000석과 경상 우병영의 밀린 환곡과 군포 24,000석을 일시에 부과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에 몰락 양반 출신인 유계춘, 김수만, 이귀재 등이 진주 백성 8만명을 모아 농민군을 조직한 후 1862년 2월 18일 일제히 봉기했다. 봉기를 진압하라고 보낸 포졸들이 하라는 진압은 안 하고 오히려 포졸들도 봉기에 가담했다. 백낙신의 인망이 얼마나 더럽고 탐욕스러웠으면 자신의 탐욕을 부추긴 아전들 외에는 부하들이 항명하고 농민군 편에 들 정도였다.
백낙신은 농민군을 달래려고 나섰다가 오히려 포위당했고 백성들은 아전 두 사람을 곤장으로 때려 죽이고 백낙신을 하루 동안 감금했다가 풀어주는 등의 사태가 일어났다. 진주의 사태를 보고 받은 조정에서는 당장 안핵사 박규수를 진주로 파견했다. 박규수는 조사 과정에서 백낙신의 비리를 알게되어 조정에 백낙신의 재산을 몰수하고 귀양을 보내는 것만이 진주의 민심을 달래는 방책이라 건의하여 결국 조정은 박규수의 주청대로 백낙신의 재산을 몰수하고 전라도 강진현 고금도로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백낙신은 귀양간지 1년만에 귀양처가 고향으로 옮겨졌고(전리방원) 1865년 귀양에서 풀려 영종진첨절제사로 복직되었다. 병인양요 때는 영종도와 행주를 방어했고 1877년 평안도 병마 절도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임기가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아 1885년 다시 유배되었다. 1887년 4월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당시에 탐관오리들의 학정이 도처에서 있었다고 하지만 백낙신의 경우는 엄청난 스케일의 탐관오리 짓을 한 덕에 1862년 조선 각처에서 일어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농민 봉기인 임술농민봉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첫째 부인이 덕수 이씨 가문 출신으로 이순신의 10대손인 훈련원정 이규동(李奎東)의 딸이다. 첫째 사위 이민응(李敏應) 또한 덕수 이씨로 이순신의 10대손인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규찬(李奎燦)의 아들이다. 셋째 사위 이규증(李奎曾) 또한 덕수 이씨로 이순신의 9대손인 훈련원정 이완희(李完熙)의 아들이다. 세 사람 모두 이순신의 직계 후손이기는 하지만 모두 이순신 이후 공통 조상은 7대조 정도 되기 때문에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대조인 첨지중추부사 백상우(白尙友)는 백시구(白時耉)의 장남인데 그의 배다른 둘째 동생이 백상화(白尙華)로 백동수의 조부가 된다백상우의 진사시방목. 따라서 백낙신은 백동수의 삼종증손(6촌 형제의 증손)으로 9촌지간이므로 당시로 보면 가까운 친척이었다.

2. 미디어에서 등장


MBC 주말 드라마 닥터 진에서 진주 민란을 다루었는데 백낙신과 진주목사 홍병원을 모델로 결합한 듯한 진주의 지방관이 1명 등장한다. 민란 진압의 목적 아래 부녀자를 겁탈하려 드는 천하의 개쌍놈. 백성들에게 피습을 당하나 진혁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여전하다. 결국 치료는 받지만 백성들에게 포로로 붙잡혔는데 백성들이 밀리게 되자 포박을 풀고 홍영휘를 총으로 쏴 버렸으나 화가 날 대로 난 김경탁에게 베어 끔살당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미 역사가 바뀌어 버렸기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1] 27세손 낙(樂)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