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미국 밴드)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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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버즈
THE BY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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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
'''로저 맥귄, 데이비드 크로즈비, 진 클라크,
마이클 클라크, 크리스 힐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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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연도'''
'''1991년'''
'''후보자격 연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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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왼쪽부터>
데이비드 크로즈비 (1941~)[2], 진 클라크 (1944~1991), 마이클 클라크 (1946~1993), 크리스 힐먼 (1944~), 로저 맥귄 (1942~)
The Byrds
1. 개요
2. 역사
2.1. 결성 & 포크 록 시기
2.2. 사이키델릭 록 시기
2.3. 컨트리 록 시기
2.4. 재결합, 그리고 해체
3. 기타
4. 디스코그래피


1. 개요


미국의 록밴드.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컨트리 록 등 여러 장르에 음악적으로 기여하여 1960년대와 그 이후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민경훈 보컬의 대한민국버즈하고는 관계가 없다. 한글로는 둘 다 버즈로 쓰지만 위에서 보듯 철자부터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라고 해봤자 별건 없다. 각 멤버 홈페이지로 갈 수 있는 링크 정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만들어놓고 안 돌리고 있다. 지금도 활발히 돌아가는 1960년대 대표 밴드 비틀즈비치 보이스 SNS에 비하면 안습.
대표곡은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Mr. Tambourin Man.(발표는 이쪽이 먼저 했다.) 본디 로저 맥귄의 찰랑거리는 기타음을 주축으로 하는 포크록 밴드지만 66년도 부터 68년도 까지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이다, 60년대 후반에 그램 파슨스의 영입으로 컨트리 록으로 전향했다.

2. 역사



2.1. 결성 & 포크 록 시기


1964년 채드 미첼 트리오 등 다양한 밴드를 전전하며 브릴 빌딩에서 작곡 알바를 하던 로저 맥귄(당시엔 짐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 진 클라크와 데이비드 크로즈비를 끌어들여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들 전원이 원래는 포크, 컨트리, 블루그래스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곧 비틀즈의 로큰롤에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적 배경과 접목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맥귄은 이미 버즈 결성 이전에도 비틀즈의 곡들을 모두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부를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비틀즈의 1964년도 앨범 A Hard Day's Night에서 조지 해리슨이 사용한 12현 리켄 베커 기타에 영향을 받아 버즈도 같은 기타를 사용했으며 조지 해리슨과 로저 맥귄의 쟁글거리는 기타 사운드는 훗날 쟁글 팝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초기엔 제트 세트, 비프이터라는 이름을 썼지만 곧 버즈로 바뀐 뒤 드러머 마이클 클라크와 베이시스트 크리스 힐먼이 들어오고 밥 딜런이 써준 'Mr. Tambourine Man'[3]을 데뷔 싱글로 발표하면서 빌보드 & 영국 차트 모두 1위를 달성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포크를 로큰롤의 DNA에 접목시킨 이 곡은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와 쟁글쟁글 거리는 기타로 포크 록의 시대를 열여 젖히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동명의 앨범은 대중음악 명반을 꼽을 때 자주 나오는 앨범이다. 게다가 빌보드 차트 6위, 영국 차트 7위도 기록했다. 당시의 인기와 위세가 대단해서 미국을 대표할 만한 밴드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다음으로 그들은 음악적 성숙의 박차를 가한 앨범인 Turn! Turn! Turn! 을 발표하게 된다. 앨범은 빌보드 차트 17위, 영국 차트 11위로 전작보단 차트 성적이 안 좋아졌다. 동명의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영국 차트 26위에 오르게 된다. 이 앨범부터 버즈 멤버들끼리 다른 음악 성향 때문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2. 사이키델릭 록 시기


1966년, 이때는 버즈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또 다른 걸작인 1966년 Fifth Dimension을 발표한 뒤 싱글 'Eight Miles High'이 약물을 다뤘다는 이유로 라디오에서 금지당하고[4] 진 클라크가 탈퇴하면서[5] 버즈는 한차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닥쳐온 위기 때문에 인기가 시들해져서 버즈는 초기의 인기에 무색하게 더 높은 단계의 스타덤에 오르는 데에는 실패했다. 또 앨범 차트 성적도 빌보드 24위, 영국 27위로 낮아지고, 싱글들은 'Eight Miles High'를 제외하고 딱히 좋은 성적엔 오르지 못했다.
어찌 맥귄과 크로즈비 체제로 밴드를 재정비한 버즈는 게리 어셔라는 걸출한 프로듀서를 끌어들여 Younger than Yesterday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지금까지 다듬어진 작곡 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이 앨범에는 TV 쇼에서 만들어진 밴드인[6] 몽키즈디스 하는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라든가 'Have You Seen Her Face', 밥 딜런의 'My Back Pages' 등 널리 애창되는 버즈의 곡이 실려 있으며, 후일 버즈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항상 나오는 앨범이 되었다. 또 이 앨범부터 크리스 힐먼의 기여가 커져서, 이 앨범에서 크리스 힐먼은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5개씩이나 올리게 된다. 뛰어난 완성도를 지녔지만 역시 차트 성적은 별로였다.[7] 이 앨범이 끝난 후 그들은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딜런 빠였던 맥귄과, 보다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추구하고 싶어 했던 크로즈비 간에 충돌이 발생해 결국 크로즈비가 탈퇴하고 말았으며 맥귄은 앙심을 품었는지 The Notorious Byrd Brothers 앨범 커버에서 대놓고 크로즈비를 말로 표현해 디스 하기도 했다.[8] 게다가 마이클 클라크도 이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후 탈퇴했으며, 판매량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The Notorious Byrd Brothers는 무그 사운드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흡수해 찬사를 받으며 버즈판 페퍼 상사펫 사운즈로 남게 되었다.

2.3. 컨트리 록 시기


로저 맥귄과 크리스 힐먼만 남은 버즈는 그램 파슨스와 힐먼의 사촌인 케빈 켈리를 기용해 테네시 내시빌에 짱박혀서 Sweetheart of the Rodeo를 만들었다. 원래는 컨트리에서 시작해 우주적인 스페이스 록에 이르는 더블 앨범이었으나 그램의 강력한 주장으로 컨트리록만 남게 되었다. 기존 버즈와는 다른 컨트리 록 일색의 이 앨범에 그나마 남아있던 팬들이 질겁을 하며 비난했으며 밴드 권력을 잡고 싶어 했던 그램의 시도[9], 저조한 판매량 역시 갖가지 충돌을 낳다가 남아공 투어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탈퇴했다. 이후 이 앨범은 얼트 컨트리 록의 시발점으로 재평가 받았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버즈의 또 다른 명반이 된다. A 나중에 그램 파슨스는 탈퇴 후 짧고 굵게 솔로 활동을 하면서 얼트 컨트리 장르의 시금석을 놓은 뒤 약물로 산화했다.
[image] <왼쪽 부터>
클래런스 화이트, 스킵 배틴, 진 파슨스, 로저 맥귄
다른 멤버들의 탈퇴로 로저 맥귄 과 크리스 힐먼만 남은 버즈는 Younger Than Yesterday 세션에 참가한 기타리스트 클래어렌스 화이트를 정식 멤버로 영입하여 트윈 리드기타 체제를 구축하고 드럼에 진 파슨스를 영입한다. 하지만 곧 크리스 힐먼도 떠나고 대신 베이시스트 존 요크가 가입해서 활동을 재개한다. 하지만 이 당시에 앨범들의 퀄리티는 전 라인업의 걸작 앨범들에 비해 영 좋지 못했는데, 'Ballad of Easy Rider'와 'Untitled'이 두 앨범만이 꽤 괜찮은 평가를 받고[10] 다른 앨범들은 취약한 사운드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결국 11번째 정규 앨범 'Farther Along'을 발표하고 그들은 해산한다.
하지만 이 당시 라인업의 라이브는 정말 뛰어났다. 각 멤버 모두 그 분야의 내로라할만한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때 시절에 그들이 연주한 'Eight Miles High'는 정말 놀랍다. 비록 당시에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여러 곡들과 앨범들의 퀄리티는 처참했지만, 리드기타 (주로 12현 기타) 와 보컬의 로저 맥귄, 리드 기타의 클래런스 화이트, 베이스의 스킵 배틴, 그리고 드럼의 진 파슨스 이 네 명의 라인업 시절이 연주력만은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라 할 수 있다.

2.4. 재결합, 그리고 해체


그들은 1973년, 1965년 라인업인 진 클라크, 로저 맥귄, 크리스 힐먼, 데이비드 크로즈비, 마이클 클라크 라인업으로 다시 재결합하여 재결합 앨범인 셀프 타이틀 앨범 Byrds를 발표하고 비틀즈비치 보이스 수준의 흥행에 미치지 못한 채 버즈는 해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3. 기타


  • 해외에서는 히트곡이 여전히 애창되고 명반들 순위에 오르는 등 비치 보이스[11] 비틀즈보다는 못해도 나름 메이저라 할 수 있는 밴드이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바닥이다. 한국인들이 아는 노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온 'Turn! Turn! Turn!'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12현 리켄배커 기타의 찰랑거리는 하모니는 이후 후대 뮤지션들에게 큰 영감을 줘서 비틀즈와 함께 파워 팝쟁글 팝의 선구자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틴에이지 팬클럽이라던가 빅 스타, R.E.M.에게 영향을 많이 준 편이다.
더 스미스조니 마의 기타 사운드 역시 찰랑이는 기타 사운드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조니 마 본인은 버즈의 영향을 부정했다. 심지어는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버즈의 로저 맥귄이나 스미스의 조니 마나 둘 다 리켄배커 12현 전기기타 연주를 제일 선구적으로 구사한 비틀즈조지 해리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유난히 멤버 교체가 많았던 밴드이기도 한데, 아래 표는 버즈의 멤버 교체를 잘 알려준다. [image]
  • 1996년부터 나온 버즈 카탈로그 리마스터 재발매 프로젝트는 소니 뮤직 리이슈 프로젝트 중에서도 수준급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가격도 비싸지 않은 데다 충실한 부록과 최신 음향 기술을 동원한 리마스터링으로 호평을 받았다. 링크

4. 디스코그래피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이때는 머리가 풍성했지만 버즈 활동 중에 앞머리에 탈모가 찾아와 한동안은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버즈 탈퇴 후에는 자신의 모발 상태를 만천하에 공개한 후 '앞머리를 포기하고 뒷머리만 풍성하게 기른' 특유의 헤어스타일(+콧수염)을 백발이 되도록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3] 여담으로 이 곡과 I Knew I'd Want You 녹음 때 프로듀서 테리 머처는 멤버들의 연주력을 의심했는지 로저 맥귄을 제외한 나머지 악기를 세션 밴드인 뤡킹 크루가 담당하도록 했다 한다. 물론 그 이후부터는 멤버들이 악기를 담당하게 된다.[4] 그래도 빌보드 차트 14위, 영국 차트 24위에 올랐다.[5] 가장 큰 사유는 비행기 공포증이었다고 한다. 또 초기엔 진이 작곡을 도맡아 했는데 이 때문에 멤버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진은 탈퇴 후 솔로로 명반들을 내놓지만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서야 겨우 재발굴되었다.[6] 사실상 악기를 든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밴드였다.(아니 사실 '''기획형 아이돌 그룹'''의 시초가 된 밴드다.) 나중에는 자기들 스스로 작곡과 연주를 주도한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음악성을 인정받긴 했지만...[7] 빌보드 앨범 차트 24위, 영국 차트 37위를 달성했다.[8] 크로즈비는 쫓겨났다고 말했다.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는 걸 본인도 인정[9] 원래 버즈의 리드 보컬은 로저 맥귄이 맡고 있었지만 그램은 그 리드 보컬도 자신이 맡으려고 했다. 즉슨 버즈 자체를 자신의 백밴드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10] 두 앨범 모두 올뮤직에서 4/5점을 받았다.[11] 참고로 비치 보이스랑은 친구 사이였다. 교류도 활발했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