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관광

 





복원중인 부여 나성의 모습.
1. 개요
2. 관광지


1. 개요


부여는 1차산업과 더불어 백제문화유적을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이 핵심이다. 그러나 관광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관광업에 대한 기본 인프라가 거의 구비되어 있지 않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옛 백제 왕성인 부소산성은 읍내 주민들이 막걸리 마시러 가는 정도였고 고란사나 낙화암까지 가는 길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관광안내소랄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였는데,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1]
과거 충청 권역에서는 초등, 중등생의 당일 현장학습이 곧잘 있어왔으나, 당시 이마저도 인솔교사가 군창(軍倉) 터 등 오래된 안내판을 보고 읽는 수준에 그쳤었다. 그나마 2010년대 전후로 공주와 함께 대백제전 등의 연례행사를 주최하고 있지만, 부여는 전반적으로 유적 권역이 잘 개발되어 있는 상태도 아니고 유적 대부분과 국립박물관이 읍내에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관광객들이 문화제나 부대행사를 관람한 뒤 돈을 소비할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사실상 반나절 코스인 셈.
정림사지는 말 그대로 터만 남았고, 그나마 석탑이 있지만 너무 시내와 가까워서 좀 보기가 그렇다. 궁남지의 경우는 그나마 사극의 포인트 촬영 등으로 알려진 뒤 연못 일대에 연꽃을 심어 포토스팟으로 활용시키고 있지만, 이마저도 입구에 차 대고 걸어서 한 바퀴 돌면 10분이면 충분할 정도다. 이는 오래된 부여군의 행정 병폐와 타고난 문화유산 배치의 결과로, 오죽하면 군민들 사이에서도 "뭐 볼 게 있다고 먼 데를 왔지?"하는 생각을 하니 부여군민들이 관광객을 낯설게 여길지언정 인심까지 운운할 정도는 아니다.

2. 관광지


유명 관광지로는 다음과 같다.
  •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정림사지 - 후기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이 여기에 있다. 다만 정림사지 5층 석탑 외에는 허허벌판에 가까우니 기대하고 찾아가면 금물...이었지만 2008년경 정림사지박물관이 생겼다.
  • 낙화암과 고란사등이 있는 부소산성
  • 관북리 유적과 부여관아 유적
  • 부여 나성
  • 궁남지
  • 국립부여박물관[2]
  • 롯데리조트, 롯데아울렛,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등이 같이 있는 백제문화단지와 백제원
  • 능산리 고분군
  • 무량사
  • 대조사
  • 구드래
  • 홍산현 관아
  • 경찰 대간첩 전적지(부여군 석성리에 위치하지만 부여군이라 포함)
'''백제의 고도'''가 마케팅의 중심. 큰 돈을 들여 백제문화단지를 짓기도 했고 그 말처럼 이 동네 땅은 개발을 하려고 파다보면 유물이 나와서 개발이 중지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다 부여읍에는 고도제한도 있어서 일정층 이상 높이(부소산 높이)의 건물은 짓지도 못하는 등, 발전하기 힘든 동네다. 집을 지으려고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나와서 보상금 받고 터를 옮겨야 하는 수준. 게다가 부여여자고등학교 아래에서 유적이 발견돼 학교 이전 준비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매우 빈약한 것이 문제. 부여 읍내에는 고작해야 정림사지 5층석탑 정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화암을 포함한 부소산성이나 궁남지에서 백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뭐가 남아 있어야 말이지... 같은 삼국시대의 고도를 주장하는 경주와 비교해 봤을 때 매우 안습하기 그지없다.[3]
거기다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튀어나온다고도 하지만 도시화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층교란이 심하다. 실제 부여 문화재연구소 바로 앞의 관북리 백제왕궁터 발굴조사 당시 백제시대 추정 지층 하부에서 언제 공사됐는지도 모르는 콘크리트 기초부가 튀어나오는 아스트랄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물론 지표면에 건물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이러다보니 백제의 고도라고 광고하면서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쓰지만 '''실제 와서 볼 만한 것이 없고 그나마도 하루 정도면 전부 둘러볼 수 있는''' 만큼, 관광객이 숙박하면서 장기적으로 돈을 쓰게 만들기도 어려운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백제문화단지 건립과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이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부여관광에도 훈풍이 불 여지가 생겼다. 더군다나 부여에 다른 관광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백제석탑은 아니지만, 보물급 백제계 석탑인 장하리 삼층석탑이나 무량사 오층석탑도 충분한 백제관광 볼거리이고, 백제시대 절터인 군수리사지에는 보물 329호인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이 위치해있다. 복원중인 부여 나성과 가림성도 볼만한 백제관련 컨텐츠이다. '''백제에서 눈을 돌리면, 웅장한 사찰 무량사가 있고, 발굴중인 송국리 유적과 조선시대 홍산현 관아도 있다. 그리고 꾸준한 발굴성과 덕분에 국립부여박물관의 소장품들도 더욱 훌륭해지고 있으니, 앞으로 예산만 뒷받침 되어준다면 충분히 세계적 관광도시로 도약할 수도 있다.'''

2013년에 신동엽 생가 옆에 신동엽문학관이 생겼다.

[1] 이런 점들은 흥미요소 발굴에 적극적인 경주와 대번에 대비된다.[2] 그 유명한 백제금동대향로가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실상 부여박물관의 젖줄.[3] 사실 경주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천 년 동안 수도였고 사비는 성왕부터 멸망까지 10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도였다. 같은 옛 수도라고 해도 백제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고 기간 차이가 커서 남아있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비교적 평화롭게 망해 문화재 파괴가 덜했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물리적 공격을 받아 멸망한데다 신라왕릉과 달리 백제왕릉은 도굴도 쉬워서 남아있는게 10분의 1도 안된다. 더욱이 경주는 통일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통일 신라의 수도였고 고려 건국 이후에도 효심-김사미의 난 이전까지 고려의 3경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몽골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면 황룡사 등 경주에 훨씬 더 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있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