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칠정논변

 


1. 개요
2. 예비적 개념 고찰
2.1. 理와 氣 (이와 기)
2.2. 四端과 七情 (사단과 칠정)
2.3. 퇴계이황의 심통성정도에서 보이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
2.4. 퇴계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변 핵심쟁점
2.5. 조선 역사에 있어서의 정치적 쟁점과 사단칠정논변
3. 논쟁의 진행과정
4. 사상사적 의의
5. 과정에 대한 의의
6. 편지 본문


1. 개요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 사이에서 사단·칠정을 주제로 편지의 왕래를 통해 행하였던 논변을 의미한다. 사칠논변이라고도 칭한다. 아래 문단의 글들은 모두 다음 책을 요약한 것이다. [출처]

2. 예비적 개념 고찰



2.1. 理와 氣 (이와 기)


사단칠정논변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理(이)와 氣(기)의 개념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단과 칠정의 개념보다 이 개념을 우선 알아야 한다. 단순히 이 개념을 추상적 원리로서 이와 형상적 기물로서 기로 생각하면, 논의 곳곳에서 암초에 빠지게 된다.이렇게 극도로 경직된 이분법으로 선유들이 사고하지는 않았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시작된 다소 폭력적인 형이상과 형이하의 구분을 유학은 피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운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氣(기)는 작동하는 힘을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물의 작동은 그것이 비록 추상적으로 보일지라도 기의 개념에 더욱 가깝다. 예컨대 이치를 다룬다고 쉽게 이의 개념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논리학, 법학, 화학, 물리학 등도 기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지 이를 직접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감기에 들었을 때, 원기가 없다고 하는 것은 몸을 이끌어가는 힘이 딸린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아플 때 원리가 부족하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은 이는 힘의 부족 혹은 충전을 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보듯이 기는 '움직이는 힘' 이라는 그 상황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理(이)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한번 보고 넘길 것이 아니라, 논변 전체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잡히는 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이는 움직임 이전에 있는 어떤 바탕과 같은 것이다. 그 바탕이 있어야, 움직임 자체가 이루어질 터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와 기가 절대적인 선후 관계는 또 아니다. 왜냐하면, 움직임이 있어야 일면이 아니라 바탕이라 따로이 칭해야 할 것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루뭉술하게 이와 기가 아울러서 작동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밀히 말하려 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논쟁거리가 된다. 그리고 조선 중기 내내 각구쟁론이 있었다. 아예 극단의 주리론처럼 바탕의 움틀거림이 기를 낳아서 떠미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고, 극단의 주기론처럼 바탕은 없고 움직임의 흐름들이 얽히고 풀리면서 세상이 있는데, 다만 이를 쉽게 풀이하려 이를 도입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현대 과학에 푹 젖어있는 현대인으로서는 사실 이 없는 기를 사유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예컨대 진화론에 대한 소박한 이해는 생물들이 변화가 창조력에 달려있다기 보다, 환경과 다른 생물 사이에서 점차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즉, 오직 기의 충돌들이 진화를 이끌어온 유일한 힘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소박한 이해로 볼 때는, 각 몸에 내존하면서도 또 공연적인 理에 대한 천착은 생물 진화에 어떤 방향을 설정해내려는 강박처럼 치부해버리기 쉽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적잖이 종교적이라고 비판할 여지도 생긴다. 우리가 유학을 유교라고 할 때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소박한 이해를 벗어나면 다른 시선이 보인다. 진화는 완벽한 생물체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일일이 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생물들의 변화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의 법칙에 맞게 진행되었고 지금 부족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렇게 진행될 것인 그러한 바가 아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개체들의 자기 창조의 노력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단지 효율적으로 흘러가고자 하는 움직이는 힘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하기 짝이 없더라도 자기 창조력에 더 부합하는 것을 선택하여 적응해내면서 존속하기도 하는 것이 생명체이다.
그렇게 볼 때, 생명에는 장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도, 어쩔 때는 그것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언제나 한결같이 자기를 만들어내려는 어떠한 원리가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理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보자면, 어떠한 상황에도 얽매이지 않고,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어떠한 근원적인 맹아가 理다. 그리고 그것이 순선한 것이라는 신념이 성선설의 바탕인데, 이는 기대승과 이황 모두 공유했던 것으로, 대부분의 유학자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2.2. 四端과 七情 (사단과 칠정)


이기와 사단칠정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아래 논변에 대한 해석에 할당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가능한 하지 않겠다.
사단과 칠정은 감정의 양태들이다. 사단칠정논변을 4.7논변이라고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전혀 없다. 논쟁자들도 이것의 개수를 두고 싸우지는 않았다. 따라서 유학에서 단을,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4가지로, 정을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 7가지로 간주하는데, 그것 이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사단에 대한 공격일 수는 없다. 감정의 양태들을 체계적으로 논구하려 도입한 틀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야 했을까? 모두 다 같은 감정 아닐까? 이것을 주지적 감정과 신체적 감정으로 나누면 일견 이해는 쉬울지 모르겠지만, 오해이다. 생각한 끝에 발휘되므로 사단이고, 즉시 느껴지는 것이므로 칠정이 아니다. 실은 서구 철학은 이성과 오성이니 하면서, 인간의 의식 체계를 이런 식으로 나누는 관습이 있는데, 유학은 그렇지 않다.
유학은 이렇게 지성적인 관점에서 덕을 논하기 보다는 인성적인 측면에서 덕을 논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따지자면, 사단과 칠정 모두 신체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즐기니 즐겁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두 주제가 충돌하게 되는데, 덕이 인성적인 것이라면, 배움을 통해 어떻게 닦을 수 있는가?
유교에서 인성적인 것이 반드시 본성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덕의 근거가 지성이며, 지성의 근거는 본성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는 사실 판단에 대한 어떠한 준거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덕이 본성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덕의 가장 주요한 바탕은 본래 타고난 성품에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유학은 이러한 전거를 강조하지 않는다. 유학은 성품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많은 인간 판단의 근거가 되지만, 본성적인 무엇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품이라는 것은 길러지는 것이라고 유학은 보아왔다. 조선 시대 그토록 교육을 강조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또 조선 왕조가 이상으로 삼은 과거 제도가 본래 응시자격에 신분차별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차별을 정당화할 만큼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이 있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그밖에도 유학 자체는 여러모로 개방적인 학문이었다. 단, 인간의 욕망이 왜곡시키지 않았더라면.
따라서 그 성품을 어떻게 바르게 길러가느냐가 심학의 과제가 된다. 사단칠정논변의 시작도 이황이 도면화한 심학에 주석을 단 것이 발단이 된 것이었고, 말년에 이황은 이 분야를 집성하고자 열정을 바친다. 그 상세를 여기서 모두 논할 수는 없다.
자, 이렇게 주정적인 것과 주지적인 것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주지적인 것이 결국 인성적인 것을 강조한다면, 남는 것은 의식 자체이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덕은 배워서 기를 수 있는데, 열심히 배울 때 달라지는 것은 인성 자체라면, 남는 것은 인성부터 인식, 그리고 지성까지 이어지는 한 길의 의식 자체라는 것이다. 서구 철학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본다면 의식과 마음은 같이 쓸 수 있는 말이 된다.
이렇게 보고 말하자면, 사단은 깊은 의식에서 발하는 감정이고, 칠정은 얕은 의식에서 발하는 감정이다. 사단이 정념이라면, 칠정은 사념이다. 즉, 무언가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정념이라 일컫는데, 이는 사단에 해당된다. 이 사단에서 발하되, 무언가를 판단하고 고려하기 위한 생각들을 사념이라 일컫는데, 이것은 칠정에 해당된다.
오해들 하지만 정념과 사념은 결코 처음부터 다른 두 갈래가 아니다. 아무리 철저한 판단이더라도, 그것을 판단해보고자 하는 충동이 있었기에, 행한 것이다.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행동은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다. 그러기에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을 헤아리려면, 올바른 충동을 지닌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사단과 칠정이 의식의 깊이를 일컫는 말이 될 수 있다.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마다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니, 선왕(先王)은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베푸어 두었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를 행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마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러하니>, 이제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언뜻 보게 되면 모두들 겁이 나고 '''측은지심'''이 생기는데 그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기 위해서도 아니요, 동네 사람들과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요, 그 욕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이로부터 본다면,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사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들이 이 사단이 있는 것은 그들이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이고 자기의 임금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불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임금을 해치는 사람이다. 무릇 나에게 사단이 있는 것을 모두 확충할 줄 안다면, 마치 불이 확충할 수 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요, 진실로 확충하지 않는다면 부모를 모시기에도 부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손추상' 제 6장

공도자가 말하기를 “고자는 ‘성(性)에는 선함도 없고, 불선함도 없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은 선할 수도 있고 불선할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문왕과 무왕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선을 좋아하였고 유왕과 여왕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포악함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이 선함도 있고 불선함도 있다. 이런 까닭에 요를 임금으로 삼았는데도 상 같은 사람이 있었고 고수를 아버지로 삼았는데도 순 같은 사람이 있었떤 것이요, 주를 형의 아들로 삼고 또 임금으로 삼았는데도 미자 계, 왕자 비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성이 선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잘못입니까?”가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그 '''정(情)'''이라면 선할 수 있으니 곧 이른바 선이라는 것이다. 저 불선한 것 같은 것은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 측은지심을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으며 수오지심을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으며 공경지심을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으며, 시비지심을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이며, 수오지심은 의이며, 공경지심은 예이며, 시비지심은 지이다. '''인 의 예 지'''는 외부로부터 나에게 녹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디 가지고 있는 것이건만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서로 두 배, 다섯 배가 되고 계산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은 그의 재질을 다하지 못한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자상' 제 6장

무엇을 인정이라고 하는가? '''희, 노, 애, 구, 애, 오, 욕''' 일곱 가지처럼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잇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인의라고 하는가? 부모의 자애로움, 자식의 효성, 형의 어짊, 아우의 공경, 남편의 의로움, 아내의 따름, 어른의 은혜로움, 어린이의 순함, 임금의 인자함, 신하의 충성스러움 등 열 가지를 인의라고 한다. 신의를 강구하고 화복을 닦는 것을 인리라 하며 싸우고 빼앗고 서로 죽이는 것을 인환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의 칠정을 다스리며 십의를 닦으며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으며 사양을 숭상하며 쟁탈을 제거하는 방법에 예를 버리고 무엇을 가지고 그것들을 다스리겠는가? 음식과 남녀에 사람의 큰 욕구가 있는 것이요 사망과 가난과 고통에 사람이 크게 싫어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바람과 싫어함은 마음의 큰 단서인데 사람이 그 마음을 감추는 것은 헤아리거나 잴 수 없으며 아름다움과 추악함도 모두 그 마음속에 있어서 그 얼굴에 나타나지 않으니 한결같이 그런 점을 궁구하려며 예를 버리고 무엇으로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란 천지의 덕이자 음양의 교합이자 귀신의 모임이자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양을 잡아 해와 별을 드리우고 땅은 음을 잡아 산천에 기를 통한다. 오행을 사시에 뿌려 그 뿌려진 것이 조화롭게 된 뒤에 달이 생긴다. 이로써 달은 십오일 만에 차고 십오일 만에 이지러진다. 오행의 움직임은 교대로 서로 다하는데 오행 사시 십이원은 순환하여 서로 근본이 된다.

"예기", 예운 편의 칠정

희 노 애 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라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리이다. 중화를 극진하게 하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생육(生育)된다.

"중용"의 희 노 애 락


2.3. 퇴계이황의 심통성정도에서 보이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


사단과 칠정이 어떻게 이와 기와 관계를 가지고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퇴계이황이 직접 그려넣었다는 '성학십도' 가운데 제 6도:심통성정도의 '중도'와 '하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링크참조)

이황선생의 이론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래, 해당 그림의 상도라 불리는 부분은 이황선생의 그림이 아니며, 이황선생의 그림은 중도와 하도에 있다.
성리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주자는 예'禮'를 인간이 지니는 자연스러운 도리의 행위를 규칙화 시킨것이라 정의한바 있는데, 이후 그러한 전통에 따라서 상기 그림에서는 인,의,예,지,신 이라는 유교의 덕목을 물,목,화,토,금,라는 도교적 질서와 합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설명에 더해서 이황선생은 해당이론을 보다 인간 '심리'(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심리의 용법과 다를 수 있으니 주의)에 기초하여 인의예지신이라는 덕목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서 발현되는 것인지를 설명하려 하였다.
요컨데, 중도에서 설명하는 바는 사단(맹자에 의해 최초로 언급된 윤리적 행위의 기초가 되는 인간의 본성)과 칠정(인간의 감정, 즉 윤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 뒤섞여 있는 형상을 보이는데, 이는 아무런 의식적 각성이 없는 인간의 마음으로서 윤리적 판단을 명석히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때의 인간의 행위는 가끔씩 올바를 수는 있으나, 온전히 올바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도에서 설명하는 바는 윤리적 교육 혹은 윤리적 각성에 의해서 사단과 칠정의 본성을 구분하여 마음 속에서 질서를 잡은 모습으로서 윤리적 판단을 명석히 구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때의 인간의 행위는 지속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상태의 구분은 공자의 언급에 기초한 것이다. 공자는 "안회는 그 마음이 석달에 이르도록 인에 어긋나지 않으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뿐이다."라고 언급하였다.[1] 이 언급은 이후에 중요하게 다루어 지는데, 특히 맹자는 이 언급을 토대로 하여 안회 같은 인물(안회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윤리적 모범을 보인사람 이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였다. 그러함에도 공자가 극찬한 인물이다.)이 윤리적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까닭은 '심성'에 있다고 판단, 이에 윤리적 판단을 하는 그 근원이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보고, '성선설' (엄밀히 말하자면 선함의 근거가 성품에 있다라고 하니 性有善設라고 칭하는게 맞을 것이나)을 전개한 것이다.
이는 맹자의 주장을 극도로 존중한 주자에 이르러 중요하게 다루어 졌으며, 성리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퇴계 이황선생은 이를 한폭의 그림 안에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데, 당대의 이 난잡해질 수 있는 논리들을 그림으로 풀어서 설명하니 많은 유학자들의 근본적 교과내용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2.4. 퇴계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변 핵심쟁점


아래에서 이 논쟁이 자세하게 다루어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 째, 이와 기가 구분될 수 있는가?
둘 째, 이가 어떻게 발할 수 있는가?
첫 째, 논쟁에서 이황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천지지성은 비유하자면 하늘에 있는 달이고 기질지성은 비유컨대 물속에 있는 달과 같으니, 달이 비록 하늘에 있고 물속에 있는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달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동일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늘에 있는 달은 달이라 하고 물속에 있는 달은 물이라고 한다면 어찌 이른바 “막힘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이른바 사단 칠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가 기질에 떨어진 뒤의 일로서 마치 물속에 있는 달빛과 흡사한데 칠정은 그 빛에 밝고 어두움이 있으나 사단은 단지 밝은 것일 뿐입니다., 칠정에 밝고 어두움이 있는 것은 참으로 물의 청탁 때문이고, 절도에 맞지 않는 사단은 빛은 비록 밝지만 물결의 동요가 있음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데 이런 도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이황의 「논사단칠정 제삼서」: 실제로 써놓기만 하고 기대승에게 부치지 않은 것이다.「」는 기대승이 이황에게 실제 편지로 부쳐 논한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위의 글이 매우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이해하기 어려운데,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황은 이와 기는 다르다고 보았다. 이황은 이를 달에 비유하였고, 사단과 칠정이 나타나는 심적 상태를 물에 비쳐진 달에 비유하였다. 심리적 상태가 안정되어 (이와 기가 분리되어 윤리적 행위가 판단 가능할 때에)있을 때는 마치 고요한 물에 달이 그대로 비춰진 것처럼 바르게 행동하나, 심리적 상태가 불안정 할 때에는 (이와 기가 분리되지 못하여 윤리적 행위가 판단되지 못할 때) 물이 탁하여 달을 제대로 비추지 못한 것에 비유하였다.
기대승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 어리석은 생각은 이와 다릅니다. 대개 사람의 정은 하나인데 그 정이 되는 소이의 것은 진실로 이(理) 기(氣)를 겸하고 선·악이 있습니다. 다만 맹자께서는 이 기가 묘합한 속에서 나아가셔서 오로지 그 이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만을 가리키시어 말씀하셨으니 사단이 이것입니다. 자사께서는 이 기가 묘합한 속에서 나아가셔 혼륜하여 말씀하셨으니 정은 진실로 이 기를 겸하고 선 악이 있으니 칠정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아가 말씀하신 바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낸 편지(사칠 4서)와 함께 보낸 별책 논사단칠정서(論四端七情書)

위와 같이 기대승은 마음의 심리가 이와 기를 분리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 근거는 사단이라고 불리는 것 또한 인간의 감정의 부분일 뿐이고 감정의 또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윤리적 개념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의 주장은 이후 조선 유교사상에서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이라는 학설로 나뉘며 엄청난 동인과 서인 그리고 남인과 서인이라는 심각한 정치적 계파싸움으로 전개된다.(이는 정치적 입장과도 관계하기 때문인데, 후술하기로 한다.) 하지만 기대승은 이기일원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며, 대표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다음으로 발전한다.
둘 째, 이가 어떻게 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기대승이 이황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5. 고봉답퇴계 제3서 가운데

8. 선생은 제5조에서 “그 발이 각각 혈맥이 있고 그 이름이 각각 가리킴이 다르다” 하였고, 제7조에서 “그 향상근원을 추구하면 실로 리기의 분分이 있다” 하였으며, 제9조에서 “실제로 리발.기발의 분이 있으므로 각기 다른 이름(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 불렀다” 하였다. 제12조에서는 “사단의 소종래가 리인 이상 칠정의 소종래가 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였고, 제14조에서는 “맹자의 희, 순의 노, 공자의 애와 락은 기의 리를 순하여 발한 것이다”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분별을 주장하는 설이다. 감히 묻노니 희로애락이 발하여 중절한 것은 리에서 발한 것인가, 기에서 발한 것인가? 발이중절하여 순무불선純無不善한 선이 사단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발이중절한 것이 리에서 발한 것으로서 그 선이 부동不同이 없다고 한다면, 무릇 위에 열거한 다섯 조목에서 한 말들이 모두 적확한 논이 못되는 것이다. 만약 발이중절한 것이 기에서 발한 것이라고 하고 그 선이 부동이 있다고 한다면, 무릇 [중용장구], [혹문] 및 기타 설한 바가 모두 칠정의 겸리기를 말하는 것인데 그런 말들이 어떻게 낙찰된 것인가? 이와 같다면 내회來誨에 번번이 칠정으로써 겸리기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빈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기대승은 '理'라고 하는 것은 원래 부동의 성질인데, 이황이 사단의 발생은 이의 발함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놓고 지적한 것이다. 원래 '理'라고 하는 것은 이치이고, 이는 기준을 의미한다. 기준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심정의 성질 가운데에서 고정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황은 스스로 '이가 발하다'라는 단어를 스스로 하였고, 그 주장을 토대로 이기이원설을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이 논쟁은 이 부분만을 놓고 보았을 때, 기대승의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좀더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이 논쟁들은 중국어로 서술된 것들이다. 즉 한자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한자라는 것은 그림 문자이며, 언어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복수의 개념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동양철학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언어표현의 불명확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황 선생이 말한 '發'이라는 단어를 놓고 보자면, 크게 2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움직인다'라는 '動'의 의미를 지니며, 도 다른 하나는 '나타남'이라는 '現'의 의미를 지닌다. 위 기대승의 주장에서 '發'을 '動'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기대승의 지적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發을 現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는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인간이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둔다. 그 원인이 심정에 기인한다는 것은 것은 성리학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는 과제이다. 이 심정의 원리가 움직이는 것이냐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이냐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으며, 성리학에서는 사실 이 과제를 결론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황 선생은 이를 본성의 나타남의 개념을 보다 가까이 했음은 그가 사용한 비유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황은 '달과 물의 관계'를 통해서 이와 기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다. 즉, 고정된 달의 모습이 물에 비추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물론 이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진의를 확인할 길은 없다. 중국어로 기술된 문장들은 의미상의 관계가 불명확한 경우가 더러 있고, 이에 여타 문장들과 교차검증하여 내용을 추측할 따름이다.

2.5. 조선 역사에 있어서의 정치적 쟁점과 사단칠정논변


이 논변은 사실 성리학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매우 고루한 논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후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학설로 발전한다.
먼저, 이기이원론을 주장한 이황과 이를 따르는 동인과 남인의 정치적 입장은 소위 '군주우위설'이다. 원래 동인은 이황의 주 활동지였던, 현재 경상북도 안동 및 영주 지방을 중심으로 등장한다.(참고로 동인과 서인 모두 기반은 서울 경기도에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경상북도 북부 출신의 유림들이 동인에 참여하였으며, 사실상 동인의 핵심적 기반은 당시 경북지방에 위치했다.[2]) 이황선생의 수제자인 서애 류성룡(이후 임진왜란에서 자신의 친우인 이순신을 등용시키며 큰 활약을 했던)역시도 안동 출신이다. 이들은 지역에서도 보듯이 주 권력집단이 모이던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는 먼 곳에서 활동하던 이른바 권력집단에서 배제된 인물이었다. (안동권씨의 세도 정치는 조선말기에 등장하는 사건이니 혼동하지 말도록 하자.)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이 왕권에 의해서 보호받기를 원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남인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왕권강화에 가장 주력했던 조선후기의 왕 '정조'임을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들이 이기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군주우위설이 이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이기이원설은 선함의 근거가 인간의 심정에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윤리적 근거를 자신의 이성과 양심에서 찾아야 한다. 군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군주는 신하의 여러 주장에 윤리적 판단을 의존하기 보다 자신의 윤리적 판단을 보다 신뢰해야 한다. 그래서 군주는 신하의 권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한 이기일원론은 사실상 이황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율곡 이이에 의해서 집대성 된다. 이기일원론은 이와기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와 기는 명칭에 지나지 않으며, 그 구분은 무익한 것이다. 윤리적 기준은 '윤리적 규범', 즉 문서나 전통 등으로 규격화 되어있고 규범화 되어 있는 형식을 통해서 배울 수 있으며, 윤리적 행동은 그것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 이다. 이는 군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군주도 인간이기에 모든 윤리적 규범을 준수할 수 없고,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윤리적 규범을 잘 아는 신하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명군의 자세이다.
이러한 이기일원론은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속적으로 가진 경기도를 중심으로한 서인 계통의 양반들에게 주로 차용되었다. 그들은 왕이 자신들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언급을 듣지않는 것을 가장 꺼렸다. 그들은 되도록 이면 왕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길 바랬고, 실제로 자신들의 입장을 통찰시키기 위해, 이기일원론을 그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이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주장은 조선 유교의 정치적 갈등관계의 핵심 쟁점이었다. 각 당파들은 이 이론들을 앞세워 정치적 주장을 정당화 했으며, 그것을 토대로 상대방의 논점을 공격하는데 주력했다.

3. 논쟁의 진행과정


이 논쟁의 출발은 이황이 정지운(鄭之雲)이 지은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 가운데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는 구절을 “사단은 이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수정한 데서 연유하였다.[3]
이황과 기대승은 두 사람 사이에 사칠 논변이 있기 전, 명종13년 1558년에 만난 적이 있다. 이황은 이 해 윤 7월에 예안에서 왕의 부름으로 서울에 오고 10월엔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이달 기대승은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되었다. 그해 10월 32세의 기대승이 58세의 이황의 서울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고봉집』의 「연보」에 의하면 바로 이달에 정지운이 기대승에게 「천명도」를 보여주었는데 기대승은 대강만을 논하고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 기록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이 「천명도」는 이황이 수정한 『천명도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에 논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대승의 이황의 사칠설에 대한 비판이 여러 경로를 거쳐서 이황에게 전해지게 되고, 기대승 비판을 접한 이황은 숙고 끝에 기대승의 비판을 일정 부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학설을 수정하여 통지하는 방식으로 먼저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것이 이황과 기대승의 사칠논변의 시작이다. 이른바 퇴·고 사칠논변의 첫번째 편지는 서울의 이황이 광주의 기대승에게 1559년 1월 5일 써서 보낸 것이다. 그 요지는 “사단의 발은 천리(天理)를 따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기를 아우르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四端之發 順理故無不善 七情之發 兼氣故有善惡로 개정하자는 것이다. 기대승은 이 편지를 2월 18일에 받는다. 기대승은 이황의 편지를 받고 이해 3월 5일 답서를 쓴다.
이렇게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논변이 진행되다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순간이 오게 된다. 기대승은 정묘년1567년 1월 24일 이황에게 편지를 하였다. 이 편지에서 “「후설」 「총설」 2설을 인가받아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다만 그간에 합상량처가 많으나 감히 경솔하게 논할 수 없으니 뒷날 혹 얼마간 다른 견해가 있게 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황은 3월 18일에 편지를 써 서울의 기대승에게 부쳤는데 여기서 “사칠설의 합상량처에 대해 조만간 깨우쳐 줌을 받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황의 편지를 받고 기대승이 5월 11일 쓴 답서에는 사칠설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기대승이 사칠설에 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 기미년 1월에 시작되어 9년 동안 진행된 퇴·고의 사찰논변은 한 매듭을 맺는다.

4. 사상사적 의의


조선 개국 후 약 150년 사이에 역사적 굴곡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태종(조선)세조의 등극, 연산군의 무도, 중종의 무신 등으로 참혹한 사화가 연달아 일어나 사기를 크게 해쳐, 후대로 올수록 가능한 정치 현장에서 벗어나서 학문에만 전념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것이 학문적으로 심도 있는 조선 성리학의 2단계를 여는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고 하겠다. 평생 동안을 학문에 전념하여, 국내에 이미 보급되어 있는 주자학 관련 서책들을 구입하여, 주렴계, 이정, 장횡거, 소강절, 주자의 저술을 연구하는 유자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창의적인 자기 학설을 주장하는 데에까지 발전하였다. 화담 서경덕이언적이 그 가운데에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은 학문적 분위기를 계승하여, 16세기 후반 조선조 학문의 백미를 이루는 것이 다름 아닌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사단칠정논변과 우계 성혼와 율곡 이이 사이의 사단칠정논변이다. 우·율 사칠논변은 퇴·고 사칠논변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으로 그 선구는 퇴·고 사칠논변이다.
반면 동시대의 또 다른 대유학자 남명 조식은 당시 조선의 현실적인 문제인 정치 혼란과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철학을 시대가 요구하는데 지금 젊은 애들하고 무슨 고담준론이나 하느냐고 이황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조식의 의견에 동의하는 시각이 더 많을 것이다.

5. 과정에 대한 의의


학술적인 의의 뿐만 아니라 이 토론은 이황과 기대승의 능력과 인품을 설명할 때 잘 쓰이는 사례이기도 하다. 논변을 처음 시작할 당시 기대승은 대과에 급제해 이제 막 관직 생활을 시작한 신인이었던 반면 이황은 이미 성균관 대사성이란 중책을 맡고 있었다. 현대로 비유하면 장관급인 국립대학교의 총장과, 대학 졸업 후 이제 막 임용 시험을 통과해서 일하기 시작한 고시 출신 신임 공무원[4] 이 1:1로 토론을 벌인 격이다. 그럼에도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한 기대승의 능력과, 대사성이란 고위직에 있음에도 기대승을 전혀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고 품위있게 토론을 받아들인 이황의 인품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6. 편지 본문


대개 보내오신 변론에서 “사단은 인 의 예 지의 성에서 발하기 때문에 비록 이 기가 합쳐진 것이기는 하지만 가리켜 말한 바의 것은 이를 주로하고, 칠정은 외물이 그 형기에 접촉이 되어 마음에 감동을 주어 경우에 따라 나오니 그러므로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리켜 말한 바의 것은 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속에 있어서는 순순한 이가 되니 바야흐로 발함에 기에 섞이지 않으며, 칠정은 밖으로 형기에 감촉되어 그 발하는 것이 이의 본체가 아니니, 사단 칠정의 소종래란 것이 같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몇 마디 말씀은 실로 선생님께서 자득하신 바입니다. 그러므로 한 편 중에 비록 자세히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그 대의는 줄곧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 어리석은 생각 같으면 이와 다릅니다. 대개 사람의 정은 하나인데 그 정이 되는 소이의 것은 진실로 이(理) 기(氣)를 겸하고 선·악이 있습니다. 다만 맹자께서는 이 기가 묘합한 속에서 나아가셔서 오로지 그 이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만을 가리키시어 말씀하셨으니 사단이 이것입니다. 자사께서는 이 기가 묘합한 속에서 나아가셔 혼륜하여 말씀하셨으니 정은 진실로 이 기를 겸하고 선 악이 있으니 칠정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아가 말씀하신 바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낸 편지(사칠 4서)와 함께 보낸 별책 논사단칠정서(論四端七情書)'''

사단 칠정의 설에 대하여, 전에는 칠정이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사단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은 각각 이 기에 분속하는 것에 의심을 품고, 정의 발은 이 기를 겸하고 선 악이 있는 것인데 그중 사단은 오로지 이에서 발하여 선하지 않음이 없는 것만을 가리켜 말하고 칠정은 참으로 이 기를 겸하고 선악이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사단을 이에 분속하고 칠정을 기에 분속한다면, 이것은 칠정 중의 이에 해당하는 측면을 도리어 사단이 차지해 버리고, 그렇게 되면 선악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단지 기에서 나온 것처럼 되니, 그러한 논리 속에 의심스러운 곳이 없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자의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반복하여 궁구해 보고서 끝내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에 따라서 다시 생각해 보니 곧 저의 지난날의 주장은 상세히 고찰하지 못하고 극진히 살피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맹자께서 사단을 논하시면서 “무릇 나에게 사단이 있는 것을 모두 확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단이 있어 그것을 확충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란 말이 참으로 타당합니다. 정자께서 칠정을 논하시면서 “情은 세차게 타오를수록 더욱 방탕해져 그 성에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는 그 정을 단속하여 절도에 맞게한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칠정이 강성하고 더욱 방탕해지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단속하여 절도에 맞게 하려 하였으니, 그렇다면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란 말이 또한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사단 칠정이 각각 이 기에 분속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사단 칠정이라는 이름 붙인 의미에도 참으로 그럴만한 까닭이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칠정이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애당초 사단과 다르지 않습니다. 칠정이 비록 기에 속하긴 하지만 이가 본래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발하여 절도에 맞는 것은 바로 천명의 성이고 본연의 체이니, 그렇다면 어찌 이것을 기가 발한 것이라 하여 사단과 다르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보내오신 글에서 “맹자의 喜, 순(舜)의 노(怒), 공자의 애(哀)와 낙(樂)은 바로 기가 이에 따라 발한 것이어서 털끌만큼의 막힘도 없다.”는 말씀과, “각각 소종래가 있다.”는 등의 말씀은 모두 타당치 않으신 듯 합니다. 무릇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화(和)이며 화는 곧 이른바 언제 어디서나 두루 통하는 도입니다. 그런데 만약 과연 보내오신 말씀대로라면 언제 어디서나 두루통하는 도 역시 기의 발이라고 일컬을 수 있습니까? 이것 또한 살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낸 편지 (사칠8서) 사단칠정후서(四端七情後說)'''

공의 그 말에 “이의 발이란 오로지 이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기의 발이란 이와 기를 섞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이 말을 가지고 “근본은 같으나 말절은 다르다”고 한 것은, 내 의견이 참으로 이 설과 같으니 이른바 “근본이 같다.”는 것이고, 하지만 공이 설로써 마침내 사단 칠정을 결코 이 기에 분속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은 이른바 “말절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일 지난날의 공의 견해와 논의가 지금 보내온 양설처럼 분명하고 티없이 산뜻한 것이었다면 어찌 말절에 다름이 있겠습니까.

'''이황이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 (사칠10서)'''

'''이황의 「논사단칠정 제삼서」: 실제로 써놓기만 하고 기대승에게 부치지 않은 것이다.「」는 기대승이 이황에게 실제 편지로 부쳐 논한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천지지성은 비유하자면 하늘에 있는 달이고 기질지성은 비유컨대 물속에 있는 달과 같으니, 달이 비록 하늘에 있고 물속에 있는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달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동일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늘에 있는 달은 달이라 하고 물속에 있는 달은 물이라고 한다면 어찌 이른바 “막힘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이른바 사단 칠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가 기질에 떨어진 뒤의 일로서 마치 물속에 있는 달빛과 흡사한데 칠정은 그 빛에 밝고 어두움이 잇으나 사단은 단지 밝은 것일 뿐입니다., 칠정에 밝고 어두움이 있는 것은 참으로 물의 청 탁 때문이고, 절도에 맞지 않는 사단은 빛은 비록 밝지만 물결의 동요가 있음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데 이런 도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달이 수많은 강에 비침이 어느 강의 달이건 모두 둥글다는 설에 대해서 일찍이 선유가 그러한 논리의 불가함을 논한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내온 글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던 물속에 있는 것이던 비록 같은 하나의 달이긴 하지만, 하늘의 것은 진짜 달이고 물속의 것은 단지 그 그림자에 불과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달을 가리키면 달의 실상을 얻지만 물속에서 달을 잡으려면 얻지 못합니다. 만일 성을 기 가운데 있게 하면 그것은 물속의 달그림자와 같아 잡으려 해도 얻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선을 밝히고 몸을 성실히 하여 성의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성에 관해 비유를 든 것이므로 오히려 얼마간은 그럴 수도 있다 하겠지만, 만일 정에 비유한다면 더욱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대개 물에 있는 달은 물이 고요하면 달도 고요하고 물이 일러이면 달도 또한 일렁입니다. 그 일렁임에 있어, 물이 맑고 고요히 흘러 그림자가 밝게 비칠 경우에는 물과 달의 일렁임이 아무런 장애도 없지만, 물의 흐름이 점차 세차지고 바람이 불어 물결을 일으키며 돌에 부딪쳐 물이 튀어 오르게 되면, 달은 그로 인해 부서지고 언뜻언뜻 흔들거리며 침몰하다가 심하면 마침내 아주 없어지고 맙니다. 무릇 이와 같으니, 어찌 “물속의 달에 밝음과 흐림이 있는 것이 모두 달의 작용이며 물과는 관계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달의 그림자가 고요하고 맑게 흐르는 물에 비친 경우에는 비록 달을 가리켜 그것의 일렁임을 말하더라더도 물의 일렁임이 그 안에 있다. 만약 물이 바람에 출렁이고 돌이 부딪쳐 달을 가라앉게 하거나 없어지게 하는 경우에는 마땅히 물을 가리켜 그 일렁임을 말해야 하니, 달이 있고 없음과 밝고 흐림은 모두 물이 일렁거림의 크고 작음 여하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단칠정논변은 유심론적 논쟁으로 사유해볼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무엇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논의는 현대 철학에서도 유구한 논의 주제였다. 특히 이 유학자들 사이에서의 논쟁이 눈에 띠는 점은 인간의 마음의 작동 기제들을 단지 순수하게 추상적인 논리구조로 접근하기 보다, 희 노 애 락 등의 실제하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는 사실 서구 철학에 비해 동양 철학이 가진 장점으로, 그것의 백미가 바로 이 사단칠정논변인 것이다.
1. 고봉답퇴계 제1서
명종 14년(1559년) 봄 고봉은 퇴계로부터 추만의 ‘천명도설(天命圖說)’에 표기되어 있는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는 말을 “사단의 발은 순수한 리이므로 불선不善이 없고, 칠정의 발은 기를 겸하고 있으므로 선악이 있다”(四端之發純理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故有善惡)라고 고치면 어떻겠느냐 하는 문의 편지를 받고 그 답서로서 제1신을 썼다. 내용의 골자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단과 칠정은 다 정情이다. 다만 칠정은 정 전체를 다 들어서 말한 것이요, 사단은 칠정 가운데서 선善 일변을 척출剔出해 말한 것이다.
2. 사단은 성性이 발할 때 기氣가 용사用事하지 아니하여 그 발한 것이 직수(直遂)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성이 발하여 중절中節한 것이다.
3. 리와 기는 사물에 있어서 혼륜하여 나눌 수 없다. 사단과 칠정을 대거對擧하여 리와 기로 호언互言2)[2) 서로 발한다고 대립시켜 말함.] 하는 것은 리와 기를 두 물건으로 갈라놓는 것이 되어, 칠정은 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되고 사단은 기를 타지(乘) 않은 것이 된다.
4. 기의 과불급過不及이 없이 자연발현되는 것이 리의 본체가 그러한 리이다.
<한국의 사상가 10人 퇴계 이황> 260 페이지 ~ 261 페이지
2. 퇴계답고봉 제1서
이상과 같은 고봉의 반대 이론을 퇴계는 어떻게 답변하였는가? 퇴계는 이원론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답변하였다.
1. 사단.칠정이 다 하나의 정임을 승인한다. 그러나 ‘취하여 말하는 것’(所就而言者)이 다르다.
2. 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갈라서 말하는 이상 정을 사단과 칠정으로 갈라서 보는 것도 잘못될 것이 없다.
3. 사단과 칠정은 ‘소종래所從來’가 다르다. 즉 사단은 인의예지의 성(즉 本然之性)에서 발하여 나온 것이요, 칠정은 외물이 형기形氣에 감感하여 생기는 것이니 기질지성에서 온 것이다.
4. 사단과 칠정은 다 리기가 겸한 발이지만 그 소종래가 다르고 주主해서 말하는 것(所主而言)이 다르다. 따라서 하나는 리를 주로 하고 하나는 기를 주로 한 것으로 갈라 보아야 하는 것이요, 혼륜해서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된다.
5. ‘소종래所從來’와 ‘소지이언所之而言’의 다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겸리기유선악兼理氣有善惡’이라 하는 것은 리와 기를 일물一物로 보는 것으로서 그 결과는 인욕을 천리로 간주하는 데까지 이르고 말 것이다.
<한국의 사상가 10人 퇴계 이황> 266 페이지 ~ 267 페이지
3. 고봉답퇴계 제2서
고봉은 퇴계의 제1신을 12절로 분절하여 상세히 검토하면서 매우 장황한 논변을 펴내었다. 그 세목에 관한 것은 생략하고 주요 골자만을 뽑아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주자는 “천지지성을 논하면 리만을 전지專指하고 기질지성을 논하면 리와 기를 섞어서 말한다”고 하였으니, ‘사단을 리의 발’이라 한 것은 리를 전지한 것이지만 ‘칠정은 기의 발’이라 한 것은 리와 기를 섞어서 말한 것이다.
2. 사람의 정情은 하나이다. 그 정됨은 리기를 겸하고 선악이 있다. 칠정이 발하여 중절한 것은 천명의 성이요 본연의 체로서, 맹자가 말하는 사단이란 것과 동실이명同實異名의 것이다. 그 발하여 부중절한 것은 기품氣稟.물욕物欲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요 성의 본연한 것은 아니다.
3. “사단의 발은 순리純理이므로 무불선無不善하고, 칠정의 발은 겸기兼氣이므로 유선악有善惡이다”로 고친 것은 먼저보다 이해되기 쉬우나, 그래도 타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사단.칠정을 범론泛論할 때는 갈라도 좋지만 그림으로 그려서 대거호언해 보면 마치 정이 두 가지 있는 것 같고, 정에는 또 두 가지 선이 있어서 하나는 리에서 오고 하나는 기에서 오는 것 같은 의심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4. ‘소취이언자부동所就而言者不同’이란 말은, 당초 나는 본래 하나의 정인데 소취이언所就而言이 다르기 때문에 사단.칠정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는 뜻으로 하였다. 그런데 선생은 사단.칠정이 각각 소종래所從來가 다르기 때문에 소취이언도 다르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내가 말한 것과 선생이 말한 것은 서로 뜻이 다르다.
5. 인간의 성으로 논하면 소위 기질지성이란 것은 리가 기질 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요 별개의 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을 논하면서 본연지성이니 기질지성이니 하는 것은, 천지.인물을 말할 때처럼 리기를 나눠서 각각 하나의 물物이라 말할 수 없다. 오직 하나의 성을 그 소재에 따라 구별해 말하는 것일 뿐이다.
6. 정이란 본성이 기질 속에 타재墮在한 뒤에 발하여 정이 되는 것이므로 리기를 겸하고 선악이 있어서, 그 발현할 때에 저절로 리에서 발하는 것이 있고 또 기에서 발하는 것이 있으니, 비록 갈라서 말해도 불가할 것은 없지만 자세히 따져 보면 결점이 없지 않다.
7. 칠정은 겸리기.유선악한 것이고 사단은 칠정 가운데의 리이며 선임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단과 칠정을 리기로 분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8. 사단은 그 소종래가 인의예지의 성에서 발한 것이라고 하나 사실은 사단만 인의예지에서 발하는 것이 아니라 칠정도 인의예지에서 발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정을 성의 발이라고 하였겠는가?
9. 사단과 칠정을 대거호언하여 리발.기발로 설명하는 이유는 그 소종래가 다르고 소주이언所主而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소종래가 다르다는 것을 승인할 수 없다.
ㄱ) 사단만 인의예지에서 발하는 것이 아니라 칠정도 인의예지에서 발한다. 왜냐하면 정을 성의 발이라고 하고, 주자도 희노애락이 정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ㄴ) 선생은 사단은 안에서 발하고 칠정은 밖에서 감하여 안에서 응한 것이라 하지만, 나는 사단과 칠정이 다 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심이 리기의 합인 이상 정이란 다 리기를 겸한 것이다. 따로 어떤 정이 있어서 리에서만 나오고 기를 겸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ㄷ) 물에 감하여 동하는 것은 칠정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단도 그러하다. 적자赤子가 입정入井하는 일에 감하였으니 인仁의 리가 안에서 응하여 측은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요 종묘 앞을 지나는 일에 감하였으니 예禮의 리가 안에서 응하여 공경지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물에 감하여 발함은 사단도 칠정과 다를 것이 없다.
ㄹ) 발하기 이전의 순리純理는 성이라 할 수 있어도 정이라 할 수 없다. 일단 발하면 곧 정이다. 그 때는 중절.부중절 즉 화和.불화不和로 갈라져 다른 것이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미발인 때는 오로지 리일 뿐이고, 이발已發하면 곧 기를 타고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단도 또한 기라 할 수 있다. 주자도 제자의 물음에 “측은해 하는 것은 기요 능히 측은하게 하는 소이는 리이다”라고 답하였다.
ㅁ) 선생은 칠정이란 경境에 연緣하여 출出한 것으로서 형기形氣가 감한 것이라 하여 리의 본체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만약 그렇다면 칠정은 성 밖의 물物이 된다. 맹자의 ‘희이불매喜而不寐’의 희喜와 순舜의 ‘주사흉誅四凶’의 노怒, 공자의 ‘곡지동哭之憧’의 애哀와 ‘제자시측弟子侍側’의 락樂을, 어찌 리의 본체가 그렇게 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일반 사람에게도 천리가 발현되는 때가 있다. 부모 친척을 만나면 흔연히 기뻐하고 사상질병死喪疾病을 보면 측연히 슬퍼하고 하는 것이 리의 본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어찌 다만 형기만의 소위所爲이겠는가?
ㅂ) “사단은 다 선하고 칠정은 선악이 미정未定이다”라고 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자는 “희노애락의 미발이 어찌 불선이라 하겠는가, 발하여 중절하면 무왕이불선無往而不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사단이 선함은 물론이지만 칠정도 다 선한 것이다. 다만 그 발함이 부중절하면 일변一邊에 편偏하여 악이 될 뿐이다. 어찌 선악미정이라고 하겠는가? 또 한 걸음 양보하여 칠정은 선악의 미정이라고 하더라도 사단이 반드시 선하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세히 따져보면 사단의 발도 부중절한 것이 있다. 마땅히 수오羞惡하지 않을 것을 수오하고 마땅히 시비是非하지 않을 것을 시비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런 것이 사단에 있어서의 부중절한 것이다. 대개 리가 기 속에서 기를 타고 발현함에 있어서, 리가 약하고 기가 강하여 그것을 관섭할 수 없으면 그 유행지제流行之際에 중절.부중절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 정을 무유불선無有不善이라 할 수 있으며, 또 어찌 사단을 무불선이라 할 수 있겠는가?
10. 이상에서 검토한 결과로 보면 소위 그 소종래에 따라서 각각 그 소주所主와 소지이언所指而言이 다르다고 한 말은 모두 온당치 못한 것이다. 대저 ‘각유소종래各有所從來’란 말은 그 원두原頭의 발단한 곳이 다르다는 말인데, 사단과 칠정이 다 성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각유소종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근원을 항상추구해 보아도 사단과 칠정은 두 개의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11. 선생은 내가 말한 “기의 자연발현이 다 리의 본체가 그렇게 한 것이다”란 말을 리기를 일물로 본 것이라 하여 배척하나 이 말은 근거가 있다. 첫째, 리는 무짐無朕하고 기는 유적有迹한 것인즉, 리의 본체는 막연하여 형상을 볼 수 없고 오직 기가 유행하는 곳에서 이것을 험득驗得할 뿐이다. [논어] ‘자재천상子在川上’장의 집주에 말하기를 “천지의 화化는 가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은 옴이 계속하여 일식一息의 사이도 쉼이 없으니, 이것이 도체道體의 본연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기에서 도를 식취識取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혹문或問에, “리가 기에서 발현하는 곳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고 물으니 주자가 답하기를 “음양오행이 착종錯綜하는 데서 그 조서條緖9)[9) 高峯의 서한에서는 “陰陽五行錯綜, 不失端緖……”라고 하였는데, 朱子의 원문에 따르면 ‘端緖’가 아니라 ‘條緖’이다. 이에 주자의 원문대로 고친다.]를 잃지 않으면 이것이 곧 리이다. 만약 기가 결취結聚하지 않으면 리도 부착할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의 자연발현하여 과불급이 없는 것이 어찌 리의 본체가 아니겠는가? 예컨데 측은.수오와 같은 것도 어찌 기의 자연발현이 아니겠는가? 셋째, 만약에 칠정의 발이 리의 본체가 아니라 한다면 소위 ‘발어리發於理’라는 것은 어떻게 알 것이며 소위 ‘발어기發於氣’란 것은 리 밖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리기를 너무 갈라놓은 잘못이다. 나는 나정암의 글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나는 리기를 일물이라 하는 것도 아니요 리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사상가 10人 퇴계 이황> 275 페이지 ~ 279 페이지
4. 퇴계답고봉 제2서
퇴계는 고봉의 제2서에 대한 답변으로서 이 제2서를 썼다. 그는 우선 자기의 제1서의 말을 몇 군데 수정하여 개정본을 제출하고, 그 뒤에 이 제2서의 답변을 첨부하여 보냈다. 이번에는 퇴계가 다시 고봉의 제2서를 분조하여 각 조별로 검토해 가는 방식으로 세밀한 논진을 편다. 그는 우선 지금까지 자기와 고봉 사이의 견해가 어느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가를 서두에 열거하였는데, 내서來書의 말이 옳고 자신이 잘못 보았음을 발견하여 고친 것이 1개 조목(1.), 자기의 말이 적당하지 못했음을 발견하고 고친 것이 4개 조목(2.), 자기가 본래 아는 바에 틀림이 없으므로 다시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 13개 조목(3.), 본래 같으나 취향이 달라진 것이 8개 조목(4.), 견해가 달라서 끝까지 동의할 수 없는 것이 9개 조목(5.)이다. 그는 그것을 먼저 열거한 뒤에 제4.,5.에 관계되는 조목들은 서신에 있는 말을 일일이 들어가면서 답변하였다. 이 글에서는 열거된 조목들을 모두 생략하고 직접 변론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지엽적인 문제에 관한 논변은 생략하고 두 사람의 주요 견해와 관계된 점들만 조목별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지의 성은 물론 리만 전지專指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리만 있고 기는 없었겠는가? 천하에 기 없는 리는 없다. 리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리만 전지할 수 있다면, 기질지성도 비록 리기가 섞였지만 어찌 기를 가리켜 말하지 못할 것인가? 하나는 리가 주되므로 리에 취해서 말하였고, 하나는 기가 주되므로 기에 취하여 말하였을 뿐이다. 사단은 기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리지발理之發’이라고 말하고 칠정은 리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기지발氣之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다. 공은 ‘리발理發’이라 한 데 대해서는 틀림없다 하면서12)[12) [高峯文集], [四七理氣往復書] 상, 제8항 후면 참조] ‘기발氣發’이라고 한 데 대해서는 전지기專指氣가 아니라고 하니, 한 가지 말을 왜 이렇게 두 가지로 하는가? 만약 참으로 기만을 전지하는 것이 아니고 리를 겸지兼指하는 것이라면 주자는 그것을 ‘리지발’이란 말과 대거對擧하여 맞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2. 사람의 일신一身은 리와 기가 합하여 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자二者는 서로 발용發用이 있고, 그 발은 또 서로 필수必須하게 된다. 호발互發하니 각각 주主하는 바를 알 수 있고 상수相須하니 그 속에 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속에 같이 있으므로 혼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각각 주하는 바가 있으므로 분별해서 말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성을 논하면 리가 기 속에 있는데, 자사.맹자는 본연의 성을 지출指出하였고 정程.장張은 오히려 기질지성을 논하였다. 정을 논하면 성이 기질 속에 있는데, 유독 여기에서 각각 발하는 바에 취하여 사단.칠정의 소종래를 가를 수 없겠는가? 리기를 겸하고 선악을 가짐은 정만이 아니라 성도 그러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이것으로써 나누지 못하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는가?
3. “사단만 인의예지에서 발한 것이 아니라 칠정도 인의예지에서 발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내가 말한 ‘다른 것에 취하여 같은 것을 말한 것’이다.
4. “따로 하나의 정이 있어서 리에서만 나오고 기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답은 이러하다. 사단의 발을 가리켜 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맹자가 가리켜 말한 것은 실은 기에서 발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기를 겸해서 가리킨 것이라면 이미 사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변회辯誨(高峯의 논변을 뜻함)에는 왜 “사단이 리의 발이라 함은 틀림없다”고 말했는가?
5. 사단.칠정에 대하여 혼륜해서 말하는 것도 있고 분별해서 말하는 것도 있음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다. 하나만 취하고 하나를 폐할 수는 없다. 혼륜해서 말하면 칠정이 리기를 겸했다는 것은 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칠정만 외물外物에 감하여 동한 것이 아니라 사단도 그러하다”고 함은 혼륜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칠정과 사단을 상대하여 그 다른 점을 말한다면, 칠정은 기와 관계되고 사단은 리와 관계되어 그 발함이 각각 혈맥이 있고 그 이름이 각각 가리키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주主하는 바에 따라서 나누는 것일 따름이다. 나도 칠정이 리에 관계없이 외물과의 촉감觸感만으로 발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단도 물에 감하여 동함이 칠정과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요(四端理發而氣隨之),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것이다(七情氣發而理乘之).
6. 공은 인의예지를 미발 때의 이름이라 하여 순리純理라 하고, 사단은 이발已發후의 이름으로서 기가 아니면 행하지 못한다고 하여 사단도 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단이 비록 기를 타지만, 맹자가 가리켜 말한 것은 기를 타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리가 발하는 곳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仁의 단端이니 의義의 단이니 하는 것이며, 후현後賢도 척발剔撥하여 선 일변을 말했던 것이다.
7. 사람이 말을 타고 출입하는 것을 리가 기를 타고 행하는데 비유하는 일이 있는데, 이제 이 비유로서 말해 보면 이러하다. 사람은 말이 아니면 출입을 못하고 말은 사람이 아니면 궤도를 잃는다. 사람과 말은 서로 기다려 떠나지 못하는 것으로, 이것을 가리켜 말할 때 혹은 일반적으로 다만 간다고만 말해도 이미 사람과 말이 다 그 속에 들어 있으니 사칠四七을 혼언渾言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혹은 사람이 간다고만 가리켜 말하는데, 말을 함께 말하지 않아도 말의 감이 그 속에 들어 있으니 사단이 이런 것이다. 혹은 말이 간다고만 가리켜 말하는데, 사람이 감을 병언並言하지 않아도 사람의 감이 그 속에 들어 있으니 칠정이 이런 것이다. 이제 내가 사단과 칠정을 분별해서 말하면 공은 매양 혼륜해서 말하는 이론을 끌어대서 공격하니, 이것은 사람이 간다 말이 간다 할 때 사람과 말이 한 가지이니 나눌 수 없다고 역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내가 기발氣發로써 칠정을 말하면 리발理發을 역설하니 이것은 말이 간다고 할 때 반드시 사람이 간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내가 리발로써 사단을 말하면 또 기발을 역설하니 이것은 사람이 간다 할 때 반드시 말이 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주자가 말하는 ‘숨바꼭질’의 장난과 같은 것이다.
8. “그 위의 근원을 올라가 캐어 보면 원래 두 개의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같은 점으로 논하면 ‘두 개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함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만약 이자二者(四端.七情)를 대거하여 그 향상근원向上根原을 추구한다면 실로 리와 기의 구별이 있는 것인데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9. “동실이명同實異名이다”, “칠정 밖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단칠정의 뜻이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운운하였지만 그대로 따를 수 없다. 같은 것 가운데서 리발.기발의 구분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 말하는 것이다. 만약 본래부터 다른 바가 없다면 어찌 이름을 달리하였겠는가? 그러므로 칠정 밖에 다시 사단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해서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안 된다.
10. 변회에 “일반적으로 논하면 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고 하면 불가할 것이 없으나, 그림을 그려 사단을 리권理圈에 두고 칠정을 기권氣圈에 두면 이석離析이 너무 심하다” 하였다. 가하면 다 가할 것이요 불가하면 다 불가할 것이지, 어찌 일반적으로 논하면 둘로 갈라서 말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가 그림에 둘로 갈라놓을 때에는 불가하다고 하는가?
11. 변회에 “혹은 무불선이라 하고 유선악이라고 하니,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이 두 가지 있고 선이 두 가지 있는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고 하였다. 순리純理이므로 무불선이요 겸기兼氣이므로 선악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본래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는 자라면 동同에 취하여 이異를 알 것이요, 또 이異로 말미암아 동同을 알 것이다. 모르는 자가 볼까 염려하여 이치에 합당한 말을 못할 수는 없다.
12. 사단칠정이 각각 소종래가 있다는 것을 변회에서는 같은 정이라 하여 이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비록 다같이 정이지만 소종래의 다름이 없지 아니하다. 만약 소종래가 본래 다름이 없다고 하면 말하는 것이 어찌하여 같지 아니한가? 공문孔門에서는 자세한 것을 말하지 않았고, 자사는 전체를 말하니 소종래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맹자가 척발剔撥하여 사단을 말할 때 어찌하여 리 일변一邊만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못하겠는가? 사단의 소종래가 리라면 칠정의 소종래가 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3. 주자가 맹자의 척언剔言과 이천의 겸언兼言에 취하여 말하면서 요要는 분리해서 안 된다 한 것은, 곧 내가 말한 이異 속에서 동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성이 기 중에 있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 기는 기대로 성은 성대로 서로 섞이지 않는다 한 것은, 내가 말한 동同 속에서 이異를 보는 것이다.
14. 대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 있으면 리에 주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리에 주하여 말하는 것이 리가 기 밖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단이 그런 것이다. 또 기가 발하여 리가 거기에 타는 것이 있으면 기에 주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가 리 밖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칠정이 그런 것이다. 맹자의 희喜와 순舜의 노怒와 공자의 애哀와 락樂은 기가 리에 순順하여 발한 것으로, 일호一毫의 방해도 없으므로 리의 본체가 혼전渾全하다. 상인常人이 친척을 보고 기뻐하고 상喪에 임하여 슬퍼함도 기가 리에 순하여 발한 것이다. 다만 그 기가 한결같지 않으므로 리의 본체도 순전할 수 없다. 이것으로 논하면 칠정으로써 기의 발이라 해도 리의 본체에 무슨 방해될 것이 있으며, 또 어찌 형기와 성정이 서로 간섭 없는 것이 될 염려가 있겠는가?
15. ‘일유지이불능찰一有之而不能察’에 대하여 고쳐 설명한다. [정성서定性書]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발하기 쉽고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노怒가 특히 심하다. 그러나 노했을 때 곧 그 노를 잊어버리고 리의 시비是非를 살펴보면 외유外誘를 꺼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발하기 쉽고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이 리인가, 기인가? 리라면 어찌 제재하기 어렵겠는가? 오직 기이기 때문에 빨리 달려서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노怒가 리의 발이라면 어찌 노를 잊어버리고 리를 살필 수 있겠는가? 오직 기발이기 때문에 노를 잊어버리고 리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리로써 기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말을 인용하여 칠정이 기에 속함을 증명하는 것이 왜 틀린 것인가?
16. ‘허虛’에 대하여 해석을 새로 한다. 주자朱子는 “지허至虛한 가운데 지실至實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허하면서 실하다는 말이요 허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무至無한 것 가운데 지유至有한 것이 있다고 한 것도 무이면서 유란 말이요 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자程子가 혹인或人에 답하는 말에서 태허가 없다고 하면서 허공을 가리키며 리라고 한 것도, 허에 취하여 실을 인식하려고 함이지 본래 허는 없고 실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정자의 “도는 태허이다”라는 말, 장자張子의 “허와 기를 합하여 성의 명名이 생긴다”는 말, 주자朱子의 “형이상의 허한 것은 혼연히 이 도리道理이다” 하는 말 등 이러한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주자는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을 논하면서, 무극을 말하지 않으면 태극이 하나의 물과 같이 되어 만화의 근본이 되기 부족하고, 태극을 말하지 않으면 무극이 공적空寂에 빠져 역시 만화의 근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말해야 사방팔면으로 두루 다 주편周徧되어 깨뜨리고자 해도 깨뜨릴 수 없게 된다. 이제 리의 실을 밝히기 위하여 리는 허가 아니라고 한다면 주周.정程.장張.주朱 제대유諸大儒의 논論은 다 폐해야 할 것인가? [주역]의 ‘형이상’이나 [중용]의 ‘무성무취’가 모두 노장의 허무虛無와 같이 도를 어지럽히는 것이 된다는 말인가? 공은 허虛자의 폐단이 학자로 하여금 허무의 논을 하여 노불老佛의 역域에 빠져들게 할까 염려하지만, 나는 ‘허’자를 쓰지 않고 ‘실’자를 고수하면 또 학자로 하여금 참말로 어떤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있는가 하고 억측하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된다.
<한국의 사상가 10人 퇴계 이황> 282 페이지 ~ 287 페이지
5. 고봉답퇴계 제3서
고봉은 이 제3서에서 “30여 개 조항 중에서 이미 합의된 것이 18조요, 합의되지 못한 것은 17조일 뿐”이라 하고, 다시 “합의된 것은 모두 대절목들이요 합의되지 않은 것은 조그만 여론餘論이다. 이미 합의된 것에 따라 그 합의되지 않은 것을 궁구해 보면 장차 그 또한 합의될 것이다” 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도리道理란 것은 천지간에 본래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요 성현의 의론은 다 방책이 있다. 오늘 서로 강론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요 도를 밝히고자 함이니, 피차 사의私意가 있는 것이 아닌즉 마침내는 합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 한두 군데 합의되지 못한 것을 아무렇게나 합의할 수 없어 좀더 절차하여 지당한 귀결을 보고자 하는 것뿐이다.
이처럼 그는 변론의 태도를 먼저 밝히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같고 다른 의견을 각자 말할 것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선입지견先入之見을 가지고 남의 말을 외면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면서, 은연중 퇴계의 변론이 선입견에 빠졌음을 경고하는 듯한 표현을 한 것도 있다. 퇴계도 제2서에서 고봉의 변론 태도에 대하여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로 보면 퇴계나 고봉이 변론 도중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열중하여 간혹 냉정을 잃은 일이 있음을 피차 반성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제3서에서 논술된 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사단.칠정을 리발과 기발로 분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은 이러하다. 칠정은 ‘겸리기.유선악’한 것이라고 하는 전현前賢의 정론定論이 이미 있는데 이제 사단과 대거호언하여 사단으로써 리라 하고 칠정으로써 기라 하면, 이것은 칠정의 리 일변은 도리어 사단에게 점유되고 ‘유선악’ 운운한 것은 마치 기에서만 나오는 것 같게 되니, 그림을 그려 상象을 세우는 뜻에 진선盡善치 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2. 소취이언所就而言에 있어서 본래 주리主理.주기主氣의 부동不同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 점은 동의할 수 없다. 맹자가 척발하여 리 일변을 가리킨 것을 ‘주리이언主理而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사가 혼륜해서 리기를 겸하여 말한 것도 ‘주기이언主氣而言’이라고 할 수 있는가?
3. 주자는 “천지지성은 태극본연의 묘妙요 만수萬殊의 일본一本이며, 기질지성은 이기교운二氣交運하여 생生한 일본一本의 만수萬殊이다. 기질지성은 곧 이 리가 기질 속에 타재한 것이요, 따로 또 하나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천지지성은 천지에 취하여 전반적으로 말하는 것이요, 기질지성은 인물人物의 품수稟受에서 말하는 것이다. 천지지성은 비유하면 천상의 월月이요, 기질지성은 비유하면 수중의 월月이다. 그 달은 비록 재천在天.재수在水의 부동不同이 있으나 그 달됨은 하나일 따름이다. 이제 천상의 달을 달이라 하고 수중의 달을 물이라 하면 되겠는가?
4. 리기는 천지.인물로 말할 때는 리와 기를 갈라놓아도 각자 일물一物이 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성에 취하여 논하면 마치 천상월天上月과 수중월水中月 같아서, 하나의 달을 그 소재에 따라서 분별해 말할 뿐이요 별개의 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단칠정이란 리가 기질에 타재한 뒤의 일이니 마치 수중월의 월광月光과 같은 것으로서, 칠정은 명암이 있는 것이고 사단은 특히 그 밝은 것이다. 칠정에 명암이 있는 것은 물의 청탁 때문이고, 사단의 부중절은 비유하자면 광光은 비록 밝지만 파랑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5. ‘칠정기지발’이라 할 때의 기발이 전지기專指氣한 것이 아니라 겸지리兼指理한 것이라면 주자가 ‘리지발理之發’과 대거병첩對擧倂疊해서 말했을 리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주자가 “사단시리지발四端是理之發, 칠정시기지발七情是氣之發”이라 한 것은 대설對說로 말한 것이 아니라 인설因說로 말한 것이다. 대설이란 것은 좌우와 같이 대대對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인설이라 함은 상하와 같이 인잉因仍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6. “각기 소발所發에 취하여 사단칠정의 소종래를 말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하였는데, 나는 사단과 칠정이 다같이 성에서 발한 것이므로 각각의 소발에 취하여 나눔은 불가하다고 한다. 선생은 천지지성과 기질지성을 상대시킨 그림과 사단의 정과 칠정의 정을 상대시킨 그림을 각각 그려서 양쪽을 비교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7. 사단이란 것이 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발현함에는 기가 용사하지 아니하여 천리의 수연粹然한 본체가 드러나 조금도 흠결欠缺이 없으므로, 기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달이 담수潭水에 바치니 더욱 명랑明朗하고 표리가 통투通透하여 물이 없는 것처럼 보임과 같다. 그러므로 “리에서 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8. 선생은 제5조에서 “그 발이 각각 혈맥이 있고 그 이름이 각각 가리킴이 다르다” 하였고, 제7조에서 “그 향상근원을 추구하면 실로 리기의 분分이 있다” 하였으며, 제9조에서 “실제로 리발.기발의 분이 있으므로 각기 다른 이름(四端과 七情)으로 불렀다” 하였다. 제12조에서는 “사단의 소종래가 리인 이상 칠정의 소종래가 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였고, 제14조에서는 “맹자의 희, 순의 노, 공자의 애와 락은 기의 리를 순하여 발한 것이다”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분별을 주장하는 설이다. 감히 묻노니 희로애락이 발하여 중절한 것은 리에서 발한 것인가, 기에서 발한 것인가? 발이중절하여 순무불선純無不善한 선이 사단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발이중절한 것이 리에서 발한 것으로서 그 선이 부동不同이 없다고 한다면, 무릇 위에 열거한 다섯 조목에서 한 말들이 모두 적확한 논이 못되는 것이다. 만약 발이중절한 것이 기에서 발한 것이라고 하고 그 선이 부동이 있다고 한다면, 무릇 [중용장구], [혹문] 및 기타 설한 바가 모두 칠정의 겸리기를 말하는 것인데 그런 말들이 어떻게 낙찰된 것인가? 이와 같다면 내회來誨에 번번이 칠정으로써 겸리기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빈말이 되는 것이다.
9. 사단을 ‘리발이기수理發而氣隨’라 하고 칠정을 ‘기발이리승氣發而理乘’이라 한 것은 매우 정밀하기는 하나, 칠정에서는 이 두 개의 의사를 겸해서 가지게 되지만 사단에서는 다만 리발 일변의 뜻만 가지게 된다. 고쳐서 “정이 발할 때는 혹은 ‘리동이기구理動而氣俱’하기도 하고 혹은 ‘기감이리승氣感而理乘’하기도 한다”고 하면 어떠할까 한다.
10. 자사가 그 전체를 말할 때 소종래의 설을 쓰지 않았는데, 맹자가 리발 일변을 척출하여 사단을 말했다 해서 리기를 겸언兼言한 자사의 칠정을 갑자기 기 일변으로 고쳐 놓아서야 어찌 정론이 될 수 있겠는가?
11. 결국 ‘리지발’이란 기의 순리이발順理而發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리가 기 중에 발현하는 곳이 어떤 것인가” 물었을 때 주자가 “음양오행이 착종해도 그 조서를 잃지 않는 것이 곧 리이다” 한 말도 따를 수 없게 된다.
12. 내가 일반적으로 말할(泛論) 때는 리지발.기지발 해도 무방하다 한 것은 인설로 말한 것이요, 그림에 그렇게 갈라 붙여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대설로 말한 것이다. 만약 반드시 대설로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 비록 주자가 말했다 해도 잘못이다.
13.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나의 비유로 말하면, 맹자가 척출해서 말한 성지본性之本이란 것은 수중에 취하여 그 (天上의) 달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요, 이천이 겸기질로 성을 말한 것은 수중에 취하여 그 (水中의) 달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까닭에 주자는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한 것이다. (朱子가) ‘기자시기氣自是氣, 성자시성性自是性’이라고 한 것은 “물은 물이요 달은 달이다” 하는 것과 같다.
14. [대학]의 ‘심유소분치心有所忿懥’장의 본뜻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그 바름을 얻어서 거울의 빈 것과 같고 저울의 평함과 같이 되어 물物에 감할 때마다 다 절節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측은해서 안 될 때 미리 측은한 마음을 가지거나 수오해서 안 될 때 미리 수오한 마음을 가지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할 염려가 있다. [정성서]에서 말한 “노를 잊으라”는 것은 부중절한 노를 가리킨 것이다. [주자어류]에 “기뻐할 일이 있을 때 노한 일 때문에 마땅히 기뻐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노할 일이 있을 때 기쁜 일 때문에 마땅히 노할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정성서]의 말과 같은 것이다.
15. 허虛로써 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를 ‘진실무망眞實無妄.중정정수中正精粹’로 설명하는 것이 폐단이 없을 것 같다. 만약 반드시 ‘허’자를 써야 한다면 “리의 체體됨은 지허至虛하면서 실하고 지무至無하면서 유有이다. 그러므로 인물에 있어서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무불선無不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6. 사단에 부중절이 있다는 말은 갑자기 보면 놀랄 일이지만 상인常人의 정으로 보면 이렇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또 [주자어류]에는 맹자의 사단을 논하면서 “측은.수오도 중절.부중절이 있다. 만약 측은해 하지 않아야 할 때 측은해 한다든가 수오하지 않아야 할 때 수오한다면 이것은 부중절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맹자가 이미 말한 것에 취하며 그 미비한 것을 발명한 것으로서 극히 의의가 있는 말이다. 대개 맹자는 성선의 리를 발명하여 사단으로써 설명하였으나 대체적으로 말해서 무불선이라고 한 것이지 세밀한 곳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예로부터 어진 자가 적고 우愚.불초不肖한 자가 많으며,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적고 학이지지學而知之.곤이지지困而知之하는 자가 많다. 진실로 생지生知의 성인이 아니면 그 소발所發의 사단이 어찌 반드시 다 수연한 천리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기품과 물욕의 가림이 없을 수 없다. 이제 이것을 살피지 않고 한갓 사단을 무불선이라 하여 확이충지擴以充之를 하려고 한다면, 그 선을 앎이 미진하고 역행함에 혹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한다.
17. ‘천명도설(天命圖說)'이 비록 성현의 본지에 근거했다고 하나 자세히 보면 그 속에 지리파쇄支離破碎한 병통이 없지 않고 성현의 뜻에 대질해 보아도 틀리는 점이 많다.
18. 대저 리기지제理氣之際는 알기 어렵고 말하기 어렵지만 비견鄙見을 말하자면 하나의 비유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가 공중에 있는데 그 광경은 만고상신萬古常新이니, 비록 운무가 가리어도 그 청晴.음陰을 일제一齊하기 어렵다. 그 운雲이 개고 무霧가 걷히면 곧 하토下土를 편조徧照하는데, 그 광경이 더한 바 있는 것이 아니요 역시 자약自若하다. 리가 기 속에 있는 것도 이와 같다. 희로애락.측은수오의 리가 혼연히 중中에 있는 것은 그 본체의 진眞이다. 혹 기품.물욕에 구폐拘蔽되면 리의 본체는 자약하지만 그 발현한 것이 곧 혼명진망昏明眞妄의 분分이 있게 된다. 만약 기품.물욕의 누累를 다 버린다면 그 본체의 유행은 어찌 해가 하토下土를 편조徧照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19. 주자는 말하기를 “기는 능히 응결조작하지만 리는 정의情意도 없고 계탁計度도 없고 조작造作도 없다. 다만 이 기의 응취凝聚하는 곳이면 리가 곧 그 속에 있다”고 하였다. 이제 리기가 호유발용互有發用이라 하고 그 발이 또 상수相須한다고 하니, 그러면 리에 정의가 있고 계탁이 있고 조작이 있는 것이 된다. 이는 마치 두 몸과 같은 리가 이자二者가 한 마음 속에 분거分據하여 번갈아 가며 용사用事하고 서로 수종首從이 되는 것과 같다. 도리의 가장 기초되는 이론은 호리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국의 사상가 10人 퇴계 이황> 290 페이지 ~ 295 페이지

[출처] 한국유학 삼대논쟁자료 수집. 정리 및 역주단, "한국유학원전자료총서1 퇴계.고봉, 율곡.우계 사단칠정논변", 한국학술정보(주)[1] 논어, 공자 저, 김영찬 옮김, 홍익출판사, 2002, 78p, 제6편 옹야 중에서 발췌[2] 조선시대 당시 경상도 출신의 영의정의 숫자는 1위 서울45%에 이어 2위인 13%이다.참조 https://t1.daumcdn.net/cfile/blog/171ED00F4B05493984[3] 한문 문구의 해석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기호발설 문서에서 인용[4] 이전에는 7~9급에 해당한다 써 있었고, 현대 한국과 조선시대의 직급비교표에 따르면 '일단은' 그게 맞으나, 과거 제도가 현대 한국의 7급, 9급 공채보다는 고등고시와 훨씬 가까운 점, 또한 사기업 임직원, 자영업, 심지어 아프리카 BJ 등 민간분야에 다양한 일자리가 많고 그게 공공분야의 공무원 및 공공기관 근무와 서로 취존인 현대와 달리, 산업발달이 미비해 민간분야의 직종은 매우 제한적이었던데다가, 관존민비가 매우 분명하여, 선호체계에 상관없이 공직(정식 관료는 물론, 아전 등 관속이라도!)이 여타 민간영역에 비해 우월하다고 받아들여졌거나 혹은 그렇게 의제되었다는 점을 볼 때, 고시 출신 신임 공무원에 상응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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