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토레 보케티

 

'''델피노 페스카라 1936 No. 16'''
'''이름'''
'''살바로테 보케티
Salvatore Bocchetti'''
'''출생'''
1986년 11월 30일 (37세)
캄파니아나폴리
'''국적'''
[image] 이탈리아
'''신체'''
186cm / 81kg
'''포지션'''
센터백
'''소속'''
'''선수'''
피시놀라 (1996~1999 / 유스)
인테르나폴리 FC (1999~2001 / 유스)
아스콜리 칼초 (2001~2005 / 유스)
아스콜리 칼초 (2005~2007)
비르투스 란치아노 (2005~2006 / 임대)
프로시노네 칼초 (2007~2008)
제노아 CFC (2008~2010)
FC 루빈 카잔 (2010~2013)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13~2019)
AC 밀란 (2015 / 임대)
엘라스 베로나 FC (2019~ )
델피노 페스카라 1936 (2020~ / 임대)
'''국가대표
(2009~2010)
'''
5경기 / 0골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3.1. 세리에 시절
3.2. FC 루빈 카잔
3.3.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3.4. AC 밀란
4. 국가대표
5. 여담


1. 개요


이탈리아 국적의 축구선수. 현 소속팀은 엘라스 베로나 FC이다.

2. 플레이 스타일


이태리산 수비수 아니랄까봐 위치선정과 판단력을 비롯한 수비지능이 높은 편. 맨마킹 상황에서의 강점은 물론이고 역습 상황에서 불안함없이 안정적으로 볼을 끊어내는데 능하며, 잡다한 실수도 거의 없는 수준. 거기가 루빈 카잔에 막 입성할 시절부터 리그 내에 남미 용병들이 득실거리는 이후부터 쭉 이대로이니 흠좀무... 다만 본인보다 체격적으로 우위에 있는 선수들한테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나이가 들어감에따라 스피드가 노쇠해지는 대신 몸이 탄탄해지긴 했지만 고질적인 면인건지 문제점은 여전하다. 또한 종종 전술적 요건에 따라 왼쪽 풀백을 맡기도 하는데 현역 전문 센터백들을 측면으로 돌렸을 때 으레 그렇듯 수비 시의 단단함은 있지만 공격 상황에서 큰 장점은 없다.

3. 클럽 경력



3.1. 세리에 시절


어린 나이부터 피에디몬테달피레 피시놀라 축구 학교에서 축구 생활을 시작했고, 13세에 자신의 고향을 연고로한 팀인 인테르나폴리를 거쳐 15세에는 당시 세리에 B 소속이었던 아스콜리 피키오과 유스계약을 맺는다. 그가 18세가 되는 05/06 시즌부턴 소속팀과 프로계약을 맺고 하부리그인 세리에 C의 비르투스 란차노에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이때에만 하부리그라곤 하지만 대부분 경기들을 주전으로 뛰었을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임대 생활이 끝나고 1부리그로 승격한 원소속팀으로 복귀하지만, 어린 나이에서도 있고, 기존의 주전들과의 경쟁력에서 밀려 1부리그에서는 단 두 경기만 뛰었다. 겨울이적 시장에 세리에 B 소속이었던 프로시노네 칼치오에서 그의 소유권 50%을 40만 유로에 사들이고 잔여 시즌을 프로시노네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듬해 시즌에는 프로시노네가 선수 소유권을 150만 유로에 사들였다. 팀은 중위권에서 맴돌았지만, 사실상 팀의 핵심선수로 자기매김에 성공한다. 이후 한동안 선수 협상력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제노아 CFC의 영입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제노아는 220만 유로로 그의 소유권을 프로시노네에서 사들임으로써 단 두 경기 뿐이었던 세리에 A 경력을 제대로 이어가게 되었고, 이번 시즌에서도 노쇠한 수비진들을 벤치로 밀어버리고 같은 시기에 영입된 도메니코 크리시토,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와 더불어 자신의 주가를 올린다. 이때의 활약으로 연령별 대표단을 착실히 거친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팀에 발탁되기도 한다. 2년간의 활약에 힘입어 2010년 여름 그에게 오퍼를 넣은 팀은 당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클럽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1200만 유로라는 거금이었지만, 구단 측에서 공식적으로 거절한다. 이후 같은 리그의 클럽, 신흥 강호로 거듭나고 있었던 FC 루빈 카잔에 1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6개월.

3.2. FC 루빈 카잔


시즌 중반부터 영입되었으나 당시 노쇠해가고 있던 팀의 맏형이었던 로만 샤로노프의 장기적 대체는 물론이고, 정리가 시급했던 잉여 자원들을 모조리 이적시킬 만큼의 임팩트가 있었을지 기대가 모이는 상황이었다.
그가 팀에 합류하고 나서 두번째 경기였던 암카르 페름과의 경기에서 세자르 나바스의 후보로 출전하며 리그 데뷔를 치루었고 투입당시 우세했던 경기를 굳히는데 성공한다. 뒤로는 하위권 팀 상대로 당시 팀의 주전 센터백이었던 세자르 나바스와 호흡을 맞추며 다음 선발 출장 경기였던 알라니아 블라디캅카스와의 경기에선 헤딩골로 팀의 1:0 승리를 돕고,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와의 경기에서도 2호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2 무승부를 도우는 것은 물론이고 수비력 측면에서도 상당한 합격점을 드러냈고, 시즌 막바지 팀의 챔피언스리그 행을 굳히는데 일조하는데 성공한다.
차기 시즌에서는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리그와 유럽 무대를 가리지 않고 당당히 핵심 멤버로 자리매김한다. 챔피언스 리그는 조별 리그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인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홈에서 1:1 무승부를 만들기도 하며, 로테이션의 일환으로 몇몇 경기를 휴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기를 출장한다.
그러다 12/13 시즌엔 비야레알에서 그와 경쟁 차원에서 수비수 이반 마르카노를 영입함에 따라 대동소이하거나 그 이상을 보여주었던 그에게 잠시 밀려나기도 했지만, 이후 보케티를 기용하는 경기의 승률이 더 좋아서(...) 어렵지않게 다시금 주전으로 복귀한다.

3.3.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그렇게 다시 입지를 확고히 하는가 싶더니, 재계약도 하지않은 채로 이듬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21세기 아래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있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그를 450만 유로에 그를 영입했다. 당시엔 계약기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2016년 그의 에이전트에 의하면 4년 6개월이란 긴 계약기간을 맺은 것. 당시 챔피언스리그와 리그를 병행하다 챔스 광탈에 리그도 중위권으로 추락시킨 우나이 에메리가 경질되고 이전 감독이었던 발레리 카르핀이 해임되었다 막장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영입되었다.
그리고 당시 방패없는 스파르타인(...) 취급이었던 만큼 수비라인의 외국인 선수 포화가 심했는데 그렇다고 클래스의 순도가 높지는 않았던 탓에 기존의 수비수인 로드리는 라요 바예카노로 보내버렸고, 파레하는 부상을 달고 사는데다 폼 저하 문제로 벤치행이었다. 그나마 정상 컨디션인 마렉 수키가 밥값을 하는데 피지컬 측면에서 부족한 탓에 고전하고 있던 상황에서 노답 수비진에서 1인자로 등극하는데 성공하고 팀도 유로파 리그 조별 단계리그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음 13/14 시즌에는 마렉 수키가 FC 바젤로 이적했고, 본인은 시즌 초반에 반월판 열상을 당해 5개월 부상을 끊었다. 사실상 시즌 아웃. 같은 시기에 영입된 인사우랄데는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었던데다, 타스키는 부상 중에 이적한 탓에 수비진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상위권 도약의 실패와 잇따른 감독 교체등의 불상사가 이어진건 덤.
이후 14/15 시즌에 부임한 무라트 야킨 체제에서는 완전히 없는 선수 취급(...)을 받으며 후보 선수로 전락했다가 리그 휴지기때 마찬가지로 선수단 전체가 컨디션 난조였던 AC 밀란으로 임대이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추가적인 협상은 없었고 반 시즌만에 다시 원 소속팀으로 복귀.
팀 복귀 이후 감독인 무라트 야킨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고, 구단주 페둔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내외적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새로이 부임한 알레니체프 이래로 실시한 선수단 물갈이에선 살아남아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초에는 동료인 세르다르 타스키와 함께 최고의 수비력을 뽐내며 근 몇년간의 팀의 수비력 부진을 털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시즌 중반 타스키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임대 이적함에 따라 그 잠시동안 쌓아온 금자탑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다행히 시즌 말기에 긴급 투입된 구원투수 자노 아나니제 덕분에 몇년간 구경도 못했던 유로파 리그 조별 단계 진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유로파리그 광탈로 인해 구단주가 시즌 초 감독 경질이라는 쇼킹한 행보 이후 로또나 다름없던 수석코치였던 카레라가 감독 대행 체제를 이어갔는데, 시즌 초에 만개한 일리야 쿠테포프의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21세기 이후 팀 내 최고 승점을 달성에 기여한다. 그러나 11라운드 우랄과의 매치 이후 부상을 입어버렸다...

3.4. AC 밀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입은 큰 부상 이후 전력 외로 분류되었던 보케티는 시즌 휴지기에 꾸준히 하락세를 타던 밀란에 6개월 단기간 임대를 떠났다. 본업인 센터백이 아닌 왼쪽 풀백에서 뛰었는데, 그럭저럭 밥값은 했다는 평. 그러나 그를 영입했던 인자기가 경질됨에 따라 더 이상의 추가 계약없이 원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4. 국가대표


[image]
어려서부터 하부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며 괜찮은 성적을 보였기에 여러 연령별 대표를 거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었는데, 팀이 광탈하는 바람에 뭍혔다. 성인 국가대표에선 제노아 시절의 활약상으로 2009년 10월 10일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에서 파비오 그로소의 서브로 76분에 투입되어 데뷔했다.
2010년 러시아로 이적했음에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명단에 소집되었으나 마찬가지로 팀이 폭망한 탓에 벤치만 내내 달구고 끝(...) 이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가 있던 뒤로는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소집되지 않았다.

5. 여담


가족 중 사촌인 안토니오 보케티또한 축구선수이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인지도는 없는 편.
제노아 시절부터, 자신이 러시아리그 2년차에 접어들고 제니트로 이적한 동료 도메니코 크리시토와는 오랜 외지 생활로 인해 거의 형제나 다름 없을 정도로 가깝다고 한다. 매일매일 못해도 한 번 이상은 연락할 정도로 돈독하다고.
2014년 5월 예카테리나라는 러시아 여성과 결혼했고, 15년 3월에는 마리오라는 아들을 낳았다. 인스타그램이나 여러 인터뷰들만 슥 보더라도 영락없는 아들바보에 애처가이다.
러시아 방송 컬트 투어에서 U-21 시절 마리오 발로텔리의 기행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했는데... 번역 기사 원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