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그룹
1. 개요
1973~2000년까지 범 삼성가에 '''속했던''' 화학/소재특화 기업집단으로,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30 (공덕동)에 소재했다.
2. 상세
1973년에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가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와 합작해 창업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가 기원이다. 초기에는 카세트 테이프로 시작해 1975년에 '(주)미디어'를 거쳐 1977년 '새한전자'로 사명을 바꾸며 '새한' 사명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미국측 지분을 사서 토종 기업으로 변모시켜 기록매체 중심으로 내실을 다졌으며, 1985년 공기업 한국종합화학으로부터 충주 비료공장을 사들여 옥사이드공장으로 고쳐 화학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그러나 1988년 새한미디어 충주공장 화재로 시련을 겪은 바 있었고, 1991년 이창희 회장이 백혈병으로 급서하자 아내 이영자가 회장을 맡아 이듬해 미국 GMS 사를 인수했고, 새한이동통신을 세워 무선호출 사업에 진출한 뒤 1994년에 황성통운도 인수해 물류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고[1] 1997년에 노사화합 및 새 영문 CI 선포 후 그룹 출범을 대외적으로 천명하여 1998년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재계서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무리한 차입을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주력인 비디오테이프와 섬유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상태에서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직후인데도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감행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으며, 경험이 부족한 오너 2세[2][3] 의 독단적이고 비상식적인 경영행태, 보신주의에 젖은 일부 전문경영인들도 그룹 몰락에 일조했다. 2000년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이창희 일가는 경영권을 내놓았고, 계열사들은 채권단 관리 하에 전부 제3자에 매각되었다.
2010년 이창희의 차남 이재찬이 투신자살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도 했다. #
3. 기업정신
- 경영이념
'''창조하는 경영으로 신뢰받는 기업을 이룩한다.'''
- 새한인의 사원정신
'''열정과 자부심으로 최고의 프로가 된다.'''
'''팀워크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니셔티브를 갖는 자만이 성공한다.'''
- 슬로건
'''Global Initiative 21 / 기술특급 새한'''
- 사가: <새한의 노래> - 작사는 그룹 임직원들이, 작곡은 김희갑이 맡았다.
4. 역대 그룹임원
1997년 그룹 출범 후를 기준으로 작성한다.
- 회장
- 이영자 (1997~2000)
- 부회장
- 이재관(미디어), 한형수(화섬) (1997~2000)
- 종합기획실장
- 김성재 (1997~1999)
5. 계열사 목록
아래 내역은 그룹 출범 당시 광고 및 매경 기사에 기재되었던 8개 계열사와 위키백과 문서에 적혀있는 옛 계열사들, 그리고 NICE기업정보 및 취업사이트 기업정보, 다트공시 등을 중심으로 근황을 정리한다.
- 새한미디어(현 코스모신소재): 구 새한전자. 2000년 워크아웃 후 2010년 코스모화학컨소시엄으로 매각됐다가, 2015년 공정거래법상 GS그룹에서 분리됐다.
- 새한미디어 아일랜드: 약칭 SMIL. 아일랜드 현지법인으로 2007년 해산됨.
- 새한미디어 아메리카: 약칭 SMA. 미국 현지법인으로 이하 동일함.
- 미디어: 구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 그룹의 모체로 1979년 (구)새한전자에 합병됨.
- 홍은상사: 새한미디어의 카세트테이프 판매자회사로, 1982년 새한미디어에 합병됨.
- 새한: 구 제일합섬. 2000년 워크아웃 후 2008년 웅진그룹에 매각돼 '웅진케미칼'이 됐고, 2011년 일본 도레이로 매각돼 '도레이케미칼'이 됐다가 2019년 도레이첨단소재에 합병됨.
- 의류사업부문: 교복 브랜드 엘리트 등을 보유했으며, 2000년 워크아웃 뒤 2002년에 에리트베이직이라는 법인명으로 독립하여 이듬해에 의류사업 전반을 양수했다. 다시 2013년 의류업계의 새로운 괴물로 떠오르고 있는 패션그룹형지 소속으로 편입돼 2015년 사명이 형지엘리트로 변경되었다. 일반 대중에게는 아무래도 교복이 제일 유명하지만 작업복, 서비스, 특수복 등 대상 업종군별 특성에 적합한 옷을 만드는 유니폼 사업도 영위하고 있다.
- PET부문: 1998년 대경인더스트리로부터 양수받았으며, PET 용기을 주로 만들었다. 2003년 새한에서 분리되어 '새한프라텍'으로 출범하여 독자생존에 성공했다. 14년 370억의 매출과 13억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작은 회사이다. 대표이사가 50%의 지분을 갖고 있고 도레이케미칼도 과거의 인연 때문인지 20% 가까운 지분을 소유 중.
- 성형사업부: 2003년 새한프라텍으로 양수됨.
- 음악 및 홈비디오사업부: 'DMV' 브랜드로 알려져 있으며, 2000년 디지탈임팩트로 매각됨.
- 필터 및 수처리사업부문: 1999년 새한건설 합병 후 딸려 나왔으며, 2008년 웅진코웨이로 양수됨.
- 반도체소재부문: 2001년 새한에서 분리해 '새한마이크로닉스'로 독립하였다.# 2005년 다시 사명을 '이녹스'로 변경, 독자생존에 성공한 상태다. 반도체 소재, 연성회로기판(FPCB) 소재 등을 영위하고 있다. 경영 현황을 보면 비록 매출은 1,400억 남짓으로 크지 않지만 10%가 넘는 영업이익률에 부채비율도 50%가 채 되지 않는 강소기업이다.
- 이차전지부문: 2001년 새한에서 분리되어 '새한에너테크'로 출범했고, 2002년 미국 이머징파워를 인수하고 다시 사명을 '에너테크인터내셔널'로 바꿨다가, 2008년 미국 에너원에 매각되었다. 이차 전지 패키지, 리튬이온 셀, 전극 제조 등을 생산한다. 14년 390억의 매출에 90억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적자에 부채비율도 매우 높은 등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듯.
- 대경인더스트리: 1998년 청원공장 운영권 등을 (주)새한으로 넘긴 후 이듬해 지분매각했고, 2001년 폐업됨.
- 도레이새한(현 도레이첨단소재): 1999년 10월 (주)새한과 일본의 도레이가 4:6 비율로 합작 설립했는데, 2000년 워크아웃 후 새한 측 지분은 채권단이 들고 있다가 2008년 합작선인 도레이가 이를 전량 인수하여 완전한 일본계 기업이 되었다. 필름, 부직포, 원사, CHIP, IT 등을 생산한다. 상술했듯 새한의 주력사업 부문을 인수한 웅진케미칼을 다시 인수하여 종속회사로 뒀고,도레이케미칼까지 포함하여 2014년 매출액 2조 2천억원, 영업이익 1,300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도레이케미칼을 합병했다.
- 새한마텍: 구 새한콘크리트. 콘크리트 파일 생산 업체였다. 2005년 대림그룹에 매각되어 이듬해에 대림콩크리트[4] 로 흡수합병되었다.#
- 새한전자(현 새한(주)): 구 충주정밀. 2000년 워크아웃 뒤에도 새한미디어의 자회사였다가 2010년 계열제외됨. (구)대우인터내셔널이나 쌍용양회의 사례처럼 새한그룹을 계승하는 유일한 회사이다.
- 새한정밀: 1996년 새한전자에 합병됨.
- 새한로직스: 구 황성통운. 물류/운송업체이며 2008년 웅진그룹에 매각된 후 '웅진로지스틱스'가 됐다가 2010년 북센에 합병됨.
- 한국케이블TV새로넷방송: 1997년에 설립된 케이블 TV 회사. 2008년 기준으로 구미시와 김천시, 상주시, 군위군, 성주군, 칠곡군, 고령군 등을 방송권역으로, 30만 케이블TV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룹 워크아웃 뒤 유홍무-인무 형제에게 매각됐다가 2008년 현대HCN에 또 매각되어 '현대HCN새로넷방송'이 되어 2016년 법인이 그 회사에 합병했다.
- 퍼시픽에폭시: 1988년 제일합섬이 스위스 시바가이기(현 시바스페셜티케미컬) 사와 합작해 '제일시바가이기'로 설립되었으며, 1995년 삼성그룹 분리 후 2000년 '퍼시픽에폭시'로 바꿨으나, 그해 모기업의 워크아웃으로 2001년 한국다우케미칼에 인수돼 2006년 합병됨.
- 디지탈미디어: 1994년에 이창희 창업주의 차남 이재찬 주도로 설립한 홈비디오/음반 공급업체로, '디지탈미디어비디오(DMV)' 브랜드로 알려져 있으나 1998년에 관련 사업을 (주)새한으로 넘기고 이듬해 청산됨.
- 새한건설: 구 새한종합개발. 1999년 (주)새한에 합병됨.
- 새한텔레콤: 1992년 9월 설립된 충청북도 지역 무선호출기 사업자. 설립 당시의 이름은 우주이동통신(...)이었으나 얼마 후 '새한이동통신'이 됐다가, 새한그룹 출범 이후 새한텔레콤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2001년 통신환경 변화+새한그룹 부도로 인해 사업권을 반납했고, 2002년 폐업됐다.
- 새한정보시스템(현 TAK정보시스템): 1997년 제일합섬 및 새한미디어 전산실을 통합해 세운 전산업체로, 약칭은 SIS였다. 그룹 부도 후 2008년부터 1년 간 웅진그룹 계열이었으나 2010년 GS그룹을 거쳐 이듬해 일본 도레이로 매각됨.
- MP3사업부문: 1998년 디지탈캐스트와 함께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 '엠피맨'을 만든 부서로, 2000년 벤처기업 형태로 독립하여 '엠피맨', '엠피맨닷컴' 등이 됐으나 특허분쟁 등으로 힘들어하다가 2004년 레인콤에 매각된 후 2014년 그 회사로 합병됨.
- 새한디엔시: 1987년에 설립되어 부동산 매매 및 임대업, 건설업, 스포츠레저사업 등을 영위했다고는 하나... 2000년에 매출 3억의 쩌리 회사였다. 같은 시기 완전자본잠식 상태였고 결국 2005년 폐업됐다.
- 새한에이켐: 구 KPF-디지콤-에이켐. 그룹 워크아운 후 한국기술투자에 매각돼 '에이스디지텍'으로 바뀌어 2002년 오성LST를 거쳐 2007년 삼성그룹으로 매각된 후 2011년 제일모직으로 합병됨.
- 신영인더스트리: 조경업체. 그룹 워크아웃 후 이창희 창업주의 외동딸 이혜진이 경영권을 장악해 2008년 '래딕스플래닝'으로 바꿨으나, 2017년 폐업됨.
6. 관계없는 기업
- 새한상사
1981년 설립. 이곳에서 게임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발매시 사용했던 브랜드가 바로 재미나. 1992년에 게임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폐쇄. 새한그룹과는 관계가 없으며, 역시 '새한상사'라는 이름을 썼던 다른 회사가 이전에 있었다가 도산했다.
7. 출처
[1] 그러나 인수 당시 2대 주주였던 일본 도레이가 삼성그룹 계열 분리를 반대했고, 삼성석유화학도 넘겨받을 뻔했으나 2대 주주인 미국 아모코 사가 저지했다.[2] 원래 이런 경우는 1세가 50~60대의 나이로 요절하고 20대 후반 ~ 30대 초중반의 2세들이 물려받을 때 회사를 말아먹는 경향이 크다. 대표적으로 쌍용그룹의 김석원(기업 승계 당시 만 29세). 하지만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처럼 반대사례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해서는 안된다.[3] 추가적으로 경영을 자문하고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반면 사촌인 CJ의 이재현 회장의 경우는 외삼촌이자 후견인, 멘토인 손경식 회장이 있었고, CJ그룹은 성공적으로 성장했다.[4] 현 대림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