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후한)

 



'''徐防
서방
'''
'''작위'''
용향후(龍鄕侯)
'''최종직위'''
태위(太尉)
'''성씨'''
(徐)
''''''
(防)
''''''
알경(謁卿)
'''조부'''
서선(徐宣)[1]
'''아버지'''
서헌(徐憲)[2]
'''생몰 기간'''
?년 ~ ?년
'''고향'''
예주(豫州) 패국(沛國) 즐현(銍縣) 
'''재임기간'''
'''사공 재임기간'''
102년 11월 6일 ~ 104년 10월 5일
'''사도 재임기간'''
104년 10월 5일 ~ 106년 1월 13일
'''태위 재임기간'''
106년 1월 13일 ~ 107년 9월 1일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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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의 명신. 자는 백달(謁卿). 패국 즐현 출신. 조부인 서선(徐宣) 때부터 역경(易經)을 가르치는 집안이였다.

2. 생애


조부와 아버지를 이어 역경을 배웠다.
영평 중(58년 ~ 75년) 효렴으로 천거되어 곧 낭(郎)으로 임명되었다.
한명제는 서방의 체모가 엄정하다면서 상서랑(尙書郎)으로 임명시켜 중요한 문서들을 관리하게 한다.
한화제 당시에는 사례교위(司隸校尉)를 지내었다. 그후로는 위군태수(魏郡太守)를 지내었다.[3]
98년에는 시 태위였던 장포(張酺)가 위군태수였던 서방을 추천하였다.]
98년에는 소부(少府)를 거쳐 100년에 대사농(大司農)이 되었다.
102년 11월 6일 소감(巢堪)의 뒤를 이어 사공(司空)이 되었다. 등태후가 집권하던 이 당시 학자들이 공부를 태만히하자 서방은 학습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도 시험을 만들어서 공부를 게을리 못하게 하였고, 서방은 명성을 얻는다.
104년 10월 5일 장포(張酺)의 뒤를이어서 사도가 되었다.
106년 1월 신묘(辛卯)일 태위였던 장우(張禹)가 태부가 되면서 태위가 되었다.
107년 한안제가 즉위하면서 용향후(龍鄕侯)로 봉해졌다. 그러나 9월 1일에 재해로 인해 태위에서 해임되고, 장우가 다시 태위로 임명되었다.
삼공을 모두 지내었음에도 태위에서 해임된 후에 기록은 거의 없다. 그래서 죽은 년도조차 알 수가 없다.

[1] 왕망 강학대부(講學大夫)를 지내었고, 역경(易經)을 가르쳤다. 왕망이 집권할 때는 좨주(祭酒)를 지내었다.[2] 아버지를 이어역경을 가르쳤다..[3] 이 당시 태위였던 장포(張酺)가 위군태수였던 서방을 추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