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 이탈리아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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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었던 이탈리아 왕국의 옛 공사관이다.
2. 역사
1884년(고종 21년) 6월에 조이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조선과 이탈리아는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한성에 상주할 외교관을 파견하지 않았고 외교공관도 곧바로 짓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외교 및 통상 업무를 영국공사관에게 대신 맡겼다.#
그러다 대한제국 수립 후인 1901년(광무 5년) 12월에 영사로 프란체세티 디 말그라 백작[1] 을 파견했고 영사관도 개설했다. 처음에는 곤당골에 있는 미국인 목사 사무엘 무어[2] 가 살던 집(지금의 을지로 1가 롯데호텔 자리)을 영사관으로 사용하다 나중에 서소문동 41번지(지금의 대한항공 빌딩 자리)[3] 로 옮겼다.# 말그라 영사는 1902년(광무 6년)에 장티푸스로 요절했고, 후임으로 그의 친구이자 현역 해군 중위였던 카를로 로제티[4] 가 부임했다. 로제티 영사는 1903년(광무 7년) 5월에 이탈리아 정부의 명으로 영사관을 공사관으로 승격시켰다.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한국과 이탈리아의 국교는 끊겼다. 이탈리아공사관은 다시 영사관이 되었다. 〈황성신문〉에 따르면 1908년(융희 2년) 5월에 돈의문 밖[5] 미국 선교사 쓰레왓도의 옛 집터로 영사관을 이전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1910년(융희 4년) 1월에 이탈리아영사관은 문을 닫았고, 기능은 영국영사관이 위임했다. 경술국치 이후인 1919년 9월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주 경성[6] 이탈리아 영사로 체자레 티리오로를 부임시키면서 이탈리아영사관은 부활했다.# 그러나 1년 뒤에 티리오로 영사가 이탈리아로 가면서 영국영사관에 다시 업무를 넘겨주었다. 이후 이탈리아 영사와 영사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3. 건물
4. 여담
- 이돈수와 이순우가 공동 집필하고 출판사 하늘재에서 펴낸 책 《꼬레아 에 꼬레아니 : 사진해설판》에서 이탈리아공사관 및 190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표지에 보이는 서양식 건물이 바로 이탈리아공사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