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1. 소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청에서 출발하여 한양공업고등학교 앞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서울특별시의 도로. 한양공고 앞 삼거리에서 퇴계로와 만난다. 길이는 약 3.5km, 왕복 6차선 도로이다. 충무로, 창경궁로, 수표로, 삼일대로, 남대문로, 무교로, 소공로, 동호로, 장충단로 등과 교차한다.
을지로는 법정동으로써의 기능도 하는데, 을지로1가부터 을지로7가까지이며, 을지로3, 4, 5가는 을지로동이라는 행정동으로 관리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을지로 지하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며, 2호선 순환선 본선을 '''을지로'''순환선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도로의 영향이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공식 기점인 시청역[3] 서울특별시청의 이름을 따 왔는데 서울특별시청을 기점으로 을지로가 출발하니깐.
을지로입구역, 을지로3가역, 을지로4가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 을지로에 있다.
시청역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을지로 하부에 계속 연결된 지하상가가 있다. 시청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지하로만 쭉 걸어갈 수 있다는 뜻. 편도 50분 정도 걸린다.
을지로2가부터 국립중앙의료원까지 양방향 모든 교차로에서 유턴과 좌회전이 불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내 진보그룹인 을지로위원회가 을지로에서 한글만 따왔다. 한자로는 乙之路.
2. 역사
- 조선 시대에는 이 곳을 구리개라고 불렀으며, 일제강점기가 되어서 조선총독부가 黃金町(황금정. 독음으로는 고가네마치)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8.15 광복을 맞고 1946년 을지문덕 장군의 성씨인 을지를 따다가 을지로로 개명하였다. 구한말부터 중국인(화교)들이 밀집해 차이나타운 상권을 형성했던 곳이라, 중국인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을지문덕 장군에서 따와 도로명을 바꾼 것이다. 역시 일본인 상권이 형성됐던 '혼마찌(本町, 본정)'를 해방 이후 일본인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이순신 장군에서 따와 도로명을 바꾼 '충무로'와 같은 케이스.
- 나석주 의사가 1926년 조선식산은행(현 한국산업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습격한 의거를 일으킨 곳도 이 일대다.
- 기록상 남아있는 한국야구사 최초로 야구경기가 펼쳐진 곳인 훈련원 공원이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1906년 3월 15일에 황성 YMCA 야구단과 덕어학교간의 경기로 이날 경기의 자세한 내용은 남아있지 않으나 YMCA 야구단이 3점차이로 패배를 기록했다는 것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 훈련원 공원 터위에 1921년 4월 1일 개교하여, 1946년 3월31일 폐교된 경성사범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 가 있었고, 해방후 빈 터가 되었다가, 부지 1/2에 주한미군 극동지구 공병단(FED)이 1957년 6월 10일부터 2018년 11월 3일까지 있었고,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에 이전을 완료하였다. 이전 완료 후, 2018년 12월 31일 폐쇄되었고, 2019년 여름부터 철거작업 이후, 공원이나 업무단지로 활용할 예정.
- 한국사 최고의 성웅인 이순신 장군이 1545년 현재의 이 을지로 일대(당시 한성부 건천동)에서 출생했다.
나머지 부지 1/2은 여러시설이 들어서고 이전을 반복하다가, 1988년 9월 1일부터 1993년 3월 31일까지 헌법재판소가 있었다가 이전하였고, 이후 훈련원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길 건너편에 있다.
3. 주요 시설
- 서울특별시청 / 서울광장
- 주한과테말라대사관
- 롯데호텔 서울
- 롯데백화점 본점
- SK텔레콤
- 미래에셋대우
- 을지로입구역
- 하나생명 / KEB하나카드
- IBK기업은행
- 서울고용노동청 - 과거 그 건물에 쁘렝땅 백화점이 있었다.
- 주한그리스대사관
- 명동성당
- 신한생명
- 신한카드
- 남대문세무서
-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
- 을지로3가역
- 세운상가
- 을지로4가역
- 훈련원공원
- 국립중앙의료원
- CGV 동대문
- 메가박스 동대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서울교통공사 동대문별관
- 한양중학교 / 한양공업고등학교 / 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