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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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노해(朴勞解)[1]
생년월일
1957년 11월 20일(66세)
종교
가톨릭(세례명 : 가스파르)
출생지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학력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
1. 개요
2. 생애
3. 작품
4. 논란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시인, 노동운동가, 생명운동가. 본명은 박기평(朴基平)이며, 박노해는 노동운동가 시절 ''''박해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이란 문구에서 앞글자를 따서 지은 필명으로 정식 개명하였다.

2. 생애


1957년 11월 20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보성군 벌교읍에서 지냈고, 16세에 서울특별시로 올라가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여러 업종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한편으로 시도 쓰기 시작했는데 1983년, "시와 경제"지에 "시다의 꿈"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4년에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노동자가 노동자 그 자신의 입장에서 쓴 시집'''으로서는 거의 최초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한국 시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에 끼친 충격파는 만만찮은 것이었다. 당연히 당시 5공 군사독재 정권은 이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서 탄압했지만, 이 시집은 널리 읽혔고 어떤 기록에는 약 1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후로 박노해는 시인이자 노동자라는 이름에 투쟁가를 더하게 되는데 1985년 김문수[2], 심상정[3]과 함께 공개적인 노동자 정치조직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4]을 창립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했고 서노련이 정권의 탄압으로 와해되자 백태웅 前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1989년 비공개 지하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을 결성하였다. <노동의 새벽> 출간 이후 무려 7년 동안이나 수배자로 살던 그는 1991년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무기징역으로 선고되었다. 수감 중에는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지켜 가야 하지만 현실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됐다"관련 기사고 말했으며 이후 준법서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진보 세력 내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7년 6개월 만에 출소했다. 그리고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부터 출소 이후 박노해가 보인 행보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 전반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다. 일부에선 변절이라고, 배신이라고 공격하고, 또 일부에선 진화라고, 성장이라고 옹호하였다. 그러던 중 2000년 5월 17일, 정치인들이 5.18 전야제 이후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사건인 새천년 NHK 사건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도덕성에 큰 타격을 맞았으며 그를 지지하던 진보 진영 인사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후에 그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반전평화운동에 전념하면서 사진 작가도 겸하고 있다. 2010년 중동평화활동을 모은 첫 사진전인 <라 광야>전을 열었고, 같은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을, 2014년에는 27일간 3만 5천 여 관람객이 다녀가 '박노해 현상'을 다시 일으킨 <다른 길>사진전-세종문화회관-을 개최하였다.
부암동 '라 카페 갤러리'(나눔문화 운영)에서 박노해 상설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참조. 2019년 5월 현재는 부암동에서 통의동으로 자리를 옮겨 개점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 계정 <박노해의 걷는 독서>를 통해 매일 아침, 그의 시와 사진을 만날 수 있다.참조.

3. 작품



노동운동에 참여했을 적에는 노동자를 옹호하고 이들의 삶과 고통을 다루는 시를 많이 적었다. 또한 정부자본가를 비판하는 내용의 시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노동의 새벽, 시다의 꿈 등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노동의 새벽은 그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당시 운동권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비롯해 문단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가 일반 노동자 출신의 시인이라는 것도 적잖은 충격이었다.[5]
1993년 이전까지 쓴 시를 모은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발표하였다.
1997년의 옥중에서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는데, 기존의 노동자 계급 혁명을 외치던 사회주의 혁명가의 모습에서 탈피해 확연히 변화된 태도를 보이면서 진보 진영 내에서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2010년 발간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출판-는 베스트셀러 시집으로서 4만 부 넘게 판매되었다.

4. 논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의 일대기를 그린 윤상원 평전을 연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평전이 아니라 박노해 본인의 창작과 사실왜곡이 잔뜩 들어가 사실상 소설이나 다름없다. '''5.18 민주화운동이 폭동으로 왜곡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해 준 불쏘시개다. 자세한 내용은 윤상원 평전#s-2 문서 참조.

5. 기타


  • 이투스한국사 강사인 최태성인강의 인트로에서 이 시인별은 너에게로 라는 작품의 일부를 인용하여 사용한다.
  • YB의 2집 수록곡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는 박노해의 시에 멜로디를 붙였으며, 이 때문에 방송금지를 먹기도 했다. 또한 3집 수록곡인 7년의 그리움은 당시 수감 중이던 박노해가 작사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 화제이기도 하였다. 윤도현과는 현재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이전에 쓰던 본명은 박기평이었으나, 필명으로 개명하였다.[2] 자유한국당 소속의 前 경기도지사 김문수다.[3]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거쳐서 현재 정의당 소속인 정치인 심상정이다.[4] 여담으로 이곳에는 유시민과 만화가 이은홍 화백도 있었다.[5] 당시 박노해를 추적하던 안기부 요원들은 그의 시문이 상당한 수준인 것을 보고 분명히 고학력 엘리트라 여겼는데, 막상 체포하고 보니 야간 상고 출신에 별다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 놀랐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사가 서울대 출신도 아닌데 이렇게 수준 높은 시를 쓰다니 이 사람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다고 한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