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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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암 서정학(暢巖 徐廷學, 1917.3.26 ~ 2005.7.2)
검선도(劍禪道)의 창립자.
호는 창암. 대한검도회의 창립자 중 한 명이고 검도 9단 시절 한국형 검도를 주장하며 '검선도'를 창립한 사람이다. 호에서 따와 '창암류 검선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꾸준히 검도를 수련했는데, 일본인의 것인 검도로 일본인을 이긴다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으리란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칸사이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하고, 해방 이후 경무대경찰서장을 재임하고 서울특별시청의 경찰국장[1]으로 승진하여 내무부의 치안국장(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으로 근무하다가 강원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대한검도회의 전신인 대한검사회를 창립하고,[2] 검도 9단으로 대한검도회장을 7회 역임했고, 국제검도연맹 부회장도 맡았다. 그러던 중 1996년 12월 현 검도 수련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일본정신이 아닌 한국형 검도를 정립하자고 주장하였으나, 대한검도회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서로 갈등하였다. 결국 서정학은 결국 1998년(81세)에 대한검도회를 탈퇴해 한국검선도원회를 창설하였다. 2005년에 89세(만 88세)로 숨을 거두었다.
한병철 저서 ≪고수를 찾아서≫에도 소개되었는데 세밀한 에피소드들이 읽을 만하다. 그러나 ≪고수를 찾아서≫에 수록된 서정학 관련 에피소드는 실제와 전후맥락이 다르니 걸러 읽도록 하자. #

[1] 지금의 지방경찰청(행정안전부 직할의 광역경찰청)과 전혀 다른 직제로서 XX도청 직할의 XX부국이다. 제1공화국미군정청의 경무부(警務部)와 관구경찰청(管區警察廳)을 내무부의 치안국과 10개 도청의 경찰국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한 경찰관들은 박봉과 격무에 시달렸지만, 내무부가 모든 도청의 고위직(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도지사/국무총리→부지사/내무부 장관국장/내무부 차관과장)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경찰국을 통제했다. [2] 당시 국내 유일이자 최고단인 5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