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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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사
江原道知事
Governor of Gangwon Province'''
'''현직'''
최문순 / 제36-38대 (민선 5-7기)
'''취임일'''
2011년 4월 28일
'''정당'''

1. 개요
1.1. 여당의 무덤
1.2. 영서 vs 영동
2. 목록
2.1. 일제강점기
3. 도정 구호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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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의 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강원도 관찰사는 1907년에 부임한 친일인사 이규완(李圭完)으로 1919년 국권침탈 이후에도 계속해서 강원도장관을 맡았다.

1.1. 여당의 무덤


강원도지사직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당 후보가 지는 징크스있었다. 그러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인 최문순이 당선되며 이 징크스는 깨졌다.
민선 1기는 제2야당 자유민주연합의 최각규가, 2기부터 4기까지는 제1야당 한나라당김진선이 당선되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5기에서 제1야당 민주당이광재최문순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징크스가 맞아 들었었다.

1.2. 영서 vs 영동


강원도가 대체적으로 보수정당이 우세한 지역이기는 한데, 막상 도지사 선거만큼은 꽤 치열하게 진행된게 특징이다. 그 이유는 강원도 내에서의 소지역주의가 오랜기간 존재하다보니 후보의 소속 정당도 중요하지만 어느 지역 출신이냐가 선택의 큰 요인으로 자리잡아왔다.
제일 대표적인 사례가 6회 지선이었는데, 이때는 강릉(영동) 출신의 새누리당 최흥집 후보와 춘천(영서) 출신의 새정치민주연합 최문순 후보가 제대로 맞붙어 1.5% 차이로 현직인 최문순 후보가 신승했다. 당시는 박근혜정부 2년차라서 상대적으로 보수정당이 세월호 참사 여파에도 전국적으로 근소 우위를 점했는데도 최문순 후보의 현직 프리미엄에 영서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용해서 춘천, 원주에서의 우세로 강릉, 속초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덧불이자면 강원도가 보수 우세지역에서 경합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영서와 영동의 정치적 성향도 조금씩 차이가 생기고 있는데, 춘천과 원주를 위시로 한 영서 쪽은 민주당의 세가 차츰 강해지면서 표차가 근소한 편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 및 시장, 군수에서도 당선자들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강릉 등 영동에서는 아직까지 보수가 경합우세를 보이는 추세.(물론 이것도 과거보다 차이가 줄어들긴 한 편이다)
묘하게 보수정당과 민주당 출신 도지사들이 각각 영동과 영서가 지역기반이도 하다.[1][2]

2. 목록



2.1.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강원도 장관을 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도장관을 포함했다.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장관
이규완 (李圭完)
1910년 10월 1일 ~ 1918년 9월 23일

초대
원응상 (元應常)
1918년 9월 23일 ~ 1921년 8월 5일
[3]
2대
신석린 (申錫麟)
1918년 9월 23일 ~ 1923년 2월 26일

3대
윤갑병 (尹甲炳)
1923년 2월 26일 ~ 1924년 12월 1일

4대
박영철 (朴榮喆)
1924년 12월 1일 ~ 1926년 8월 14일

5대
박상준 (朴相駿)
1926년 8월 14일 ~ 1927년 5월 18일

6대
유성준 (兪星濬)
1927년 5월 18일 ~ 1929년 11월 28일

7대
이범익 (李範益)
1929년 11월 28일 ~ 1935년 4월 1일

8대
손영목 (孫永穆)
1935년 4월 1일 ~ 1937년 4월 1일

9대
김시권 (金時權)
1937년 4월 1일 ~ 1939년 5월 17일

10대
윤태빈 (尹泰彬)
1939년 5월 17일 ~ 1940년 9월 2일

11대
다카오 진조 (高尾甚造)
1940년 9월 2일 ~ 1941년 11월 19일
일본인
12대
야규 시게오 (柳生繁雄)
1941년 11월 19일 ~ 1943년 12월 1일
일본인
13대
유홍순 (劉鴻洵)[4]
1943년 12월 1일 ~ 1945년 6월 16일

14대
손영목 (孫永穆)
1945년 6월 16일 ~ 1945년 8월 15일
도지사 재취임

2.2. 미 군정


대수
이름
임기
비고
초대
손영목 (孫永穆)
1945년 8월 16일 ~ 1945년 10월 17일
미 군정에 의해 파면[5]
2대
지울만 (池亐萬)
1945년 10월 18일 ~ 1945년 12월 1일
현역 미 육군 중령

(공석)[6]
1945년 12월 2일 ~ 1946년

3대
박건원 (朴建遠)
1947년 ~ 1947년 7월 9일

4대
서민호 (徐敏鎬)
1947년 7월 9일 ~ 1947년 8월 20일

권한대행
이재학 (李在鶴)
1947년 8월 21일 ~ 1947년 9월

5대
조문영 (趙文泳)
1947년 9월 ~ 1947년 9월 11일

서리
이재학 (李在鶴)
1947년 9월 12일 ~ 1947년 12월 1일

6대
이정규 (李晶珪)
1947년 12월 2일 ~ 1948년 7월 26일

7대
1948년 7월 27일 ~ 1948년 10월 18일


2.3. 대한민국


대수
이름
임기
당적[7]
비고
'''관선 (임명직)'''
초대
이종현 (李鍾賢)
1948년 10월 18일 ~ 1949년 02월 23일


권한대행
강치봉 (姜致奉)
1949년 02월 23일 ~ 1949년 06월 17일


2대
양성봉 (梁性奉)
1949년 06월 17일 ~ 1949년 11월 15일


3대
최규옥 (崔圭鈺)
1949년 11월 17일 ~ 1954년 07월 16일


4대
최헌길 (崔獻吉)
1954년 07월 16일 ~ 1956년 05월 25일


5대
김장흥 (金將興)
1956년 05월 26일 ~ 1958년 07월 26일


권한대행
김동선 (金東善)
1958년 07월 26일 ~ 1958년 09월 02일


6대
서정학 (徐正學)
1958년 09월 02일 ~ 1959년 05월 13일


7대
홍창섭 (洪昌燮)
1959년 05월 13일 ~ 1960년 04월 30일


8대
심상대 (沈相大)
1960년 05월 01일 ~ 1960년 06월 30일


9대
유기준 (兪棋濬)
1960년 07월 01일 ~ 1960년 10월 07일


10대
이창근 (李昌根)
1960년 10월 07일 ~ 1960년 12월 28일


'''민선 (선출직)'''
11대
박영록 (朴永綠)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05월 24일


'''관선 (임명직)'''
12대
이규삼 (李圭三)
1961년 05월 24일 ~ 1961년 08월 25일


13대
이용 (李龍)
1961년 08월 25일 ~ 1963년 12월 16일


14대
박경원 (朴敬遠)
1963년 12월 19일 ~ 1969년 02월 17일


15대
엄병길 (嚴炳吉)
1969년 02월 17일 ~ 1971년 06월 12일


16대
정상천 (鄭相天)
1971년 06월 12일 ~ 1971년 12월 12일


17대
최종완 (崔鍾完)
1971년 12월 13일 ~ 1973년 01월 15일


18대
정석모 (鄭石模)
1973년 01월 16일 ~ 1973년 10월 20일


19대
박종성 (朴鍾盛)
1973년 10월 20일 ~ 1978년 02월 15일


20대
김무연 (金武然)
1978년 02월 15일 ~ 1978년 12월 15일


21대
김성배 (金城培)
1978년 12월 26일 ~ 1981년 04월 07일


22대
박종문 (朴鍾汶)
1981년 04월 08일 ~ 1982년 05월 20일


권한대행
한석용 (韓錫龍)
1982년 05월 20일 ~ 1982년 05월 25일


23대
김형배 (金亨培)
1982년 05월 25일 ~ 1984년 10월 10일


24대
김주호 (金周浩)
1984년 10월 10일 ~ 1985년 02월 21일


25대
김영진 (金榮珍)
1985년 02월 21일 ~ 1988년 05월 19일


26대
이상룡 (李相龍)
1988년 05월 20일 ~ 1990년 12월 27일


27대
한석용 (韓錫龍)
1990년 12월 28일 ~ 1993년 03월 03일


28대
함종한 (咸鍾漢)
1993년 03월 04일 ~ 1993년 12월 27일


29대
이상룡 (李相龍)
1993년 12월 28일 ~ 1995년 03월 29일


30대
안경진 (安慶鎭)
1995년 03월 30일 ~ 1995년 06월 30일


'''민선 (선출직)'''
31대
최각규 (崔珏圭)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06월 30일


32대
김진선 (金振兟)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33대
2002년 07월 01일 ~ 2006년 06월 30일

34대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35대
이광재 (李光宰)
2010년 07월 01일 ~ 2011년 01월 27일

[8]
권한대행
강기창 (姜基昌)
2010년 07월 01일 ~ 2010년 09월 02일
''행정부지사''
[9]
권한대행
2011년 01월 28일 ~ 2011년 04월 27일
[10]
36대
최문순 (崔文洵)
2011년 04월 28일 ~ 2014년 06월 30일


37대
2014년 07월 01일 ~ 2018년 06월 30일

[11]
38대
2018년 07월 01일 ~ 현재



3. 도정 구호


김장흥
오로지 공심으로
홍창섭
붉은 땅을 없애자
이용
희망의 마을 건설
박경원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엄병길
알찬 새 강원 건설
정상천
참신하고 건설한 강원건설
최종완
새마음과 슬기로 푸른강원 이룩하자
정석모
200만의 전진이다, 대강원 건설하자
박종성
80년대 앞당기는 우리강원 건설하자
김성배
총화강원 풍요한 전진
박종문
200만의 화합전진 복지 새강원 건설
김주호
200만의 힘찬전진, 강원도약 앞당기자
김영진
2000년대는 강원의 시대
이상룡
200만 힘모아 2000년대 앞당기자
한석용
2000년대 제1강원건설
함종한
희망의 터전 다시 찾는 강원도
이상룡
2000년대 제1강원
최각규
살맛나는 강원건설
김진선
변화의 새바람 강원도 세상
강원도 중심 강원도 세상
이광재
행복한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시작합니다
최문순
소득 2배 행복 2배 하나된 강원도
평화와 번영 강원시대

4. 관련 문서



[1] 보수정당 출신 - 최각규(강릉), 김진선(동해) / 민주당 출신 - 이광재(원주), 최문순(춘천)[2] 다만 이광재는 고향이 평창이고 처음 두 번 국회의원을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로 당선되어서 무조건 영서쪽으로 보기 힘든 측면 또한 존재한다.[3] 2대 도장관이자 초대 도지사[4] 창씨개명에 따라 나카하라 고준(中原鴻洵)이란 이름으로 직무수행.[5] 이후에도 도지사 고문을 지냈다(...).[6] 당시 신문기사 근거[7] 선거당시 당적[8] 2010년 7월 1일 취임 직후 곧바로 직무정지가 되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2010년 9월 3일 업무를 시작하였으나,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에서 원심의 징역형을 확정판결을 내면서 도지사직을 최종 상실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광재 항목 참조.[9] 형의 선고를 받고 (상급심 등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받는 지자체장의 직무수행을 금한다는 지방자치법 조항에 따라 이광재의 취임 이후 헌법재판소의 위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전까지의 직무정지기간 동안 권한대행을 맡았다.[10] 이광재의 도지사직 상실'''확정''' 이후에 다시 권한대행을 맡았다.[11]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