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궁

 


[image]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31호

'''32호'''

33호
석 비로자나불좌상
'''선희궁터'''
홍지문 및 탕춘대성
1. 개요
2. 상세
3. 위치 및 용도
4. 변천 및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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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희궁 터에 위치한 본래의 선희궁

1. 개요


宣禧宮.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暎嬪李氏)의 제향을 위해 건립된 제사궁(祭祀宮)으로, 본래 순화방[1]에 있었으나 이후 칠궁[2]으로 옮겨갔다. 선희궁이 칠궁으로 옮겨가기 전에 위치하던 자리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2호 '선희궁 터'로 지정되어 있다.

2. 상세


영빈이씨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로, 선희궁은 본래 경복궁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에 의열궁(義烈宮)이라고 하다가 1788년에 선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8년(융희 2) 황실 제사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육상궁(毓祥宮)으로 합사했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칠궁 내에 공식적으로 있다.

3. 위치 및 용도


선희궁의 위치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新橋洞)에 해당하는 한성(漢城)북부 순화방(順化坊)이다. 이후 옮겨간 육상궁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선희궁은 영빈이씨의 제향을 설행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영빈방(暎賓房)에 속해 있는 궁장토와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도 했다.

4. 변천 및 현황


선희궁은 영빈이씨가 졸서한 1764년(영조 40)에 건립되었다(『영조실록』 40년 11월 5일). 원래 의열궁이라고 하다가 1788년에 선희궁으로 고쳤다. 1896년(고종 33)에는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제사궁인 육상궁으로 위패를 옮겨 모셨다가 1897년(광무 1) 선희궁으로 되돌렸다.
1907년(융희 1)에 궁내부령으로 내수사(內需司)와 궁장토의 도장(導掌)을 폐하면서 선희궁 소속 토지도 제실 재산 관리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08년에는 왕실의 제사 및 의례를 축소한다는 명목하에 선희궁의 위패를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 봉안하고 1년에 2번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육상궁에는 영조의 후궁이자 효장세자의 친어머니인 정빈 이씨(靖嬪李氏)의 연호궁(延祜宮), 조선 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친어머니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저경궁(儲慶宮), 숙종후궁이자 경종의 친어머니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대빈궁(大賓宮),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의 경우궁(景祐宮)이 함께 옮겨 왔다.
1929년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친어머니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의 덕안궁(德安宮)까지 들어오면서 7명의 신위를 모시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곳을 칠궁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 청와대 옆의 칠궁이 이곳이다.

[1]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이다.[2]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