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수
1. 소개
전 야구 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
2. 선수 시절
사이드암 투수로, 경북고 시절에는 팀의 에이스로 1975년 팀의 청룡기,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고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에 한국실업야구팀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1981년 14승으로 다승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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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성에는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 같은 당대의 에이스가 3명이나 있었지만 반면에 대학 진학 후 포항제철에 있던 1년을 제외하면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성낙수는 이 3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았다.[1] 1986년 신생 팀 빙그레 이글스의 전력보강 선수로 지명받아 이적했고, 그 해 은퇴했다.
2.1.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영남대학교에서 코치를, 1993년부터 대구 성광중학교에서 감독을 맡았고, 성광중 야구부가 해체하자 2005년 3월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현 제주고) 야구부의 감독을 맡았다. 대구고 투수 과 김해고 투수 김수완, 용마고 투수 임지섭 등을 데려와 키우는 등 야구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야구 전파에 힘쓰고 있다.
4.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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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에서 코치를 하던 1991년 5월, 선수 시절 필로폰을 상습적으로 투여한 것이 발각되어 박찬, 장명부 등과 함께 구속되었다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출소한 흑역사가 있다. 영남대 코치 시절 이태일 등을 키우며 잘 나가다가 갑자기 해임된 것도 이 사건 때문.
- 제주고등학교 감독을 맡고 있던 2014년 7월 7일, 오라구장에서 열린 제주고와 포철고 경기에서 경기 조작 논란이 일었다. 7월 6일 태풍 너구리의 북상으로 인해 제주고-포철고 경기가 하루 미뤄졌고, 그 때문에 두 팀은 다른 팀들의 득·실점을 알 수 있는 상태에서 경기가 열렸다. 때마침 포철고가 제주고를 1대0으로 이기면 두 팀 모두 청룡기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정말로 포철고가 1대0으로 이기면서 제주고와 포철고 모두 청룡기에 진출하게 됐다. 문제는 이 경기가 겨우 1시간 26분만에 끝났는데, 전날 마산고와 경북고 경기는 강우콜드로 5회만에 끝났음에도 1시간 12분이나 걸렸단 거다. 결국 이를 두고 경기 조작 의혹이 나오면서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렸다. 포철고 감독인 백운섭에게는 엄중 경고로 끝났지만, 불성실한 플레이로 고의 패배란 물의를 일으킨 성낙수에게는 3개월의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낙수는 대한야구협회 이사직과 고교감독자협의회 회장직에서도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