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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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樂絃
1924년 2월 22일 ~ (100세)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유진산의 조카사위이다.
1924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녕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신영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9년 3선 개헌을 앞두고 같은 당의 조흥만, 연주흠 등과 함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 매수되어 3선 개헌 찬성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신민당은 이들 세 변절자의 국회의원직을 상실시키기 위해 이들 3명을 제외한 나머지 44명 의원을 당에서 제명시키고 나서는 당을 해산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제명 이외의 사유로 자진 탈당하거나 정당이 해산되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나서 잠시 신민회라는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하였다. 결국 국회의원직이 상실된 채로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고, 그 해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재당선되었다. 그러나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 김이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녕군-밀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박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가난한 여고생을 간음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1년간이나.''' 이로 인하여 같은 해 7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당시 친고죄였던 미성년자 간음죄를 적용할 수 없어서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5년 3월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이후, 그는 당시 여고생 스캔들이 정치적 경쟁상대였던 김재규 중정부장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정치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