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의 법칙

 


1. 개요
2. 주요 내용
2.1. 세의 입장 수정
3. 영향
4. 비판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Say's Law[1]
판로설(販路說) 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인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 1767~1832)[2]가 자신의 저서[3]에서 펼친 주장으로, 흔히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4]

2. 주요 내용


다만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말은 세 본인이 아니라 케인즈의 요약이다. 원래 세의 주장은 '제품이 생산되는 것은 시장에서 가치있게 팔릴 수 있게 된 다음'이며 '우리 모두는 본인이 생산한 것을 가지고 남들이 생산한 것을 구매하므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의 값어치는 우리가 생산한 것의 값어치와 같고, 따라서 생산능력이 높을수록 수요도 높다'라는 것이다.[5] 바꿔말하면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생산능력이라는 것이다.
경제 전체를 봤을 때, 새로운 재화/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생산요소들에 가격을 지불하고 이 요소들을 조합 및 가공해야만 한다. 즉 재화/서비스 생산의 가격은 이 요소 가격들의 합과 같다. 그러므로, 어떤 재화/서비스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새로운 재화나 서비스가 공급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를 불러온다. 즉 '공급이 수요를 견인한다.'
이 주장의 함의는 '''경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공급수요에 후행하므로 '''유효수요의 부족에 따른 공급과잉이 발생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시적, 부분적으로는 초과공급, 초과수요 등이 존재할 수 있어도 전체적인 시장은 언제나 균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는 자연재해나 전쟁 등으로 일부 상품의 생산이 줄어들어 다른 상품들이 상대적으로 과잉상태에 놓이는 경우에 대해서는 시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만약 이렇게 과잉상태가 되어 저축이 일어난다 해도 이 저축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된다면[6] 생산, 소득, 소비 중 어느 것도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이런 재투자 과정은 이윤의 차이에 달려 있는데, 넘쳐나는 재화의 가격은 떨어지므로 여기에 대한 재투자가 줄어들고, 반대로 희소한 재화는 가격이 올라 재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화폐를 지나치게 모아둔다 해도[7] 궁극적으로 모아둔 화폐는 무언가를 소비하는데 쓰이게 되므로 소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8]

2.1. 세의 입장 수정


1803년 처음 자신의 저서를 출간할 때만 해도 세는 경제 전체의 과도한 저축(general glut)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1829년 그는 이 생각을 바꿨으며, 1825~1826년 영국 경제에 대해서는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에 빠졌었다고 인정했다.[9] 그는 이 침체의 이유로 금융 패닉에 의한 flight to quality(안전자산으로 대피하는 것) 현상, 그리고 이로 인해 영란은행(the Bank of England)이 부채를 축소하게 된 것을 들고 있다.[10]
세의 주장, 즉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가 우선되기 때문에 공급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에 상당하는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과 같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일어났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같은 해(1829년) 이 모순의 해결책으로 화폐 또한 재화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주장했다. 즉,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초과공급이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초과수요가 있었다는 뜻이며, 이 초과수요는 화폐에 대한 초과수요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학계에 화폐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불러왔으며 화폐는 단순히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가치의 저장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3. 영향


세의 법칙은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근 200여년에 걸쳐 경제학계의 주요 논쟁거리이자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
세의 법칙에 따르면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 특히 생산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내가 똥이라는 재화를 생산해서 시장에서 판다 해도, 그 똥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음식이라는 재화를 사용해야 한다. 즉 똥이라는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음식에 대한 수요가 먼저 있어야 한다. 1단위의 똥을 만드는 데 음식이 5천원어치 필요하다 하자. 똥 1단위의 가치가 0원이건 1만원이건에 상관없이 5천원어치의 수요는 이미 확보가 된 것이다. 만약 똥 1 단위가 0원이라면 5천원을 들여서 0원을 얻었으니 경제는 역성장을 하고, 1만원이라면 경제는 5천원어치만큼 성장하게 된다. 그럼 경제가 성장하려면 똥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만약 똥이 아무런 용도가 없다면 0원이겠지만,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0원보다는 가격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똥을 태워서 불이나 전기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거나 다른 가축에게 사료로 먹일 수 있다면, 즉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똥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즉 세의 법칙에 따르면 경제 성장은 공급능력, 바꿔말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원을 필요한 물건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공급을 강조하는 경제정책을 주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케인즈의 말따나마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생산요소의 생산이라는 통찰은 생산과 소비에 한계가 있다 생각함으로서 경제가 일정수준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중상주의자들의 견해를 깨부쉈다. 생산요소를 생산하면 생산능력도 증가하지만 수요도 충분히 증가하는 것이며, 생산과 관계 없는 수요가 증가한다 해도 생산요소 생산을 통해서 생산능력을 충분히 증가시키면 경제는 결국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가 어쩌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지나친 낙관주의로까지 보이는 이 직관은 기존 중상주의[11] 경제인식, 즉 경제가 제로섬이라는 인식을 해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러한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도구가 개인의 이기심으로 돌아가는 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서 당시 중상주의 상업활동의 한계, 즉 왕족, 귀족 등의 기득권층의 부의 축적 내지 약탈의 도구로 상업이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 상업을 통한 국부 상승 및 이를 위한 개개인의 자유 보장이라는, 개인의 자유 증진에 대한 이론적 당위성을 제공했다 할 수 있다.[12]
실제로 세이가 처음 세의 법칙을 주장했던 1803년대 당시는 산업혁명 시기였다. 산업화, 국제무역 등에 따른 고도의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시기에서 이러한 시대의 경제흐름을 잘 설명함으로서 세의 법칙은 고전 경제학의 주요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세이의 법칙은 고전학파신고전학파의 주요 기둥으로 자리잡았으며 현재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은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현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며 경제학의 역사를 다시 쓴 존 메이너드 케인즈도, 사실 자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세이의 법칙에 대한 예외를 지적함으로서 '케인즈 혁명'을 불러온 것이다.
세의 법칙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이나 의미도 조금씩 변해왔다. 물론 세가 적은 말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제지식이 늘어나면서 해석이 조금씩 변형되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문구는 세이가 아닌 케인즈의 말임에도 세의 법칙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인다. 케인즈는 수요 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요약한 것이지만[13] 많은 사람들은 세의 주장을 이 문장으로 기억하고는 한다.

4. 비판


세는 시장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는 과잉공급이나 과소공급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과소/과잉공급이 시장에서의 가격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당 재화/서비스에 대한 재투자 수준이 변함으로서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즉 세의 법칙이 잘 동작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가격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바꿔말해 가격이 신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격통제, 생산에 걸리는 시간, 메뉴비용, 구두창비용 등 여러 문제로 인해 가격이 신축적일 수 없는 경우 즉 '''가격경직성'''이 거의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세의 법칙은 물물교환 경제를[14]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경제는 화폐를 통한 교환이 일어난다.''' 간단히 생각하면 화폐 또한 또 하나의 물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곧바로 세의 법칙을 화폐경제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화폐는 그 총량이 손쉽게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물건이다.[15]화폐가 다시 소비되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으며 그렇게 사라지는 양이 매우 클 수 있다는 것이다.[16]
물론 세가 책을 집필하던 당시에는 이나 을 화폐로 써서 이러한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지적의 중요한 점은 화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가 시장에서 가격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부분에 있다. 예를 들어 매일 9시~3시에 히로뽕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자. 처음 출시되었을 때에는 피로회복제로 잘 팔려나갔다. 그러나 어느날 오후 4시에 심신을 해치는 마약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히로뽕의 수요는 급감했다. 그러면 다음날 9시에는 어떻게 될까? 원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적정 가격은 0원이다. 그러면 히로뽕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은 단숨에 실직자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히로뽕의 원재료를 팔던 사람들도 히로뽕 공급이라는 수요가 줄어들었으므로 수입이 줄어들며, 만약 히로뽕에만 사용되던 원재료라면 그 원재료를 파는 사람들도 실직자가 되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시장가격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 급격하게 충격이 온다면[17]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능력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효용의 감소만으로도 경제가 악화될 수 있다.'''
세의 법칙은 가격조정을 통해 균형이 조절된다는 것이며, 이는 장기적 요소이다. 케인즈의 유명한 말 중 하나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이다. 현대경제학의 관점에서 세이의 법칙은 단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18]
세의 법칙의 역사만큼이나 이 법칙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학자도 많다.
스라피언의 대부 피에로 스라파도 비판을 한 적이 있다.[19]
대체적으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저축과 투자의 관계가 금리를 결정하여, 저축량이 늘어나면 금리가 떨어지고 저축량이 적어지면 금리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인즈는 실제 저축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관찰한 결과 이와는 다르게 저축하는 이들은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유동성 선호 (liquidity preference)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20] 따라서 이 유동성 선호에 대한 추가적 대가를 지불해야만 그들은 은행에 저축을 할 것이므로 금리는 필요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21]
케인즈는 이러한 사실으로 인해 저축이 곧 투자로 직결되지 않아 저축의 일부는 어떤 자원과도 결합되지 않는 무수익 자본이 되기 마련이고, 이것이 시장을 침체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금리 조정을 통해 통화를 시장에 풀어 유량을 확대하고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수요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실업을 줄이자는 주장을 했다.[22]

5. 기타


짤방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 당시 트위터 유저들이 독자들에게 던진 망언들을 조롱하기 위한 짤방에 기반하고 있는데 저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위에 법칙과 흡사하다. [23]
일부 K리그 팬들과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시민구단 창단 논리도 이와 비슷하다. 흥행을 위해 승강제를 실시하고 이를 위해 팀을 늘리면 그만큼 흥행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무분별한 창단으로 질이 떨어지는 팀들을 양산했고 그 여파로 리그의 흥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24]
세이의 법칙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분석은 예를 들어 'Say's Law: An Historical Analysis' (Thomas Sowell)을 참고할 것. 그 외에도 여기 그리고 여기 참고. 경제학자들이 만든 경제학 용어 사전인 New Palgrave Dictionay of Economics도 참고해볼만 하다.

6. 관련 문서


[1] 보통 '세이의 법칙'으로 부르는데 이는 프랑스어 발음이 아닌 영어 발음을 사용해서 그런 것.[2] 영어 발음인 '세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3] A Treatise on Political Economy: Or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Wealth (1834)[4] 본래 대륙유럽권은 당시 자유방임 체제였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주류였던 것과 달리 영국의 케인즈주의라고 불리우는 체제의 구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분위기였으며, 이는 100년후 냉전기간에도 증명 한 바가 있다. 그래서 일본의 수정자본주의케인즈주의, 심지어 포괄적인 이론만 보면 사회민주주의(!!) 등등 세이의 법칙과 이론만 봤을땐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이 된다.[5] 영문 중역임. 영문번역판 링크 여기에서 'It is worth while ~'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보면 된다.[6] productive employment[7] hoarding[8]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세의 의견이 어느 정도 수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9] "every type of merchandise had sunk below its costs of production, a multitude of workers were without work. Many bankruptcies were declared..." (출처. 세이의 법칙에 관한 역사를 짧게 다루고 있으니 읽어볼 것.)[10] "The Bank \[of England\], legally obliged to redeem its banknotes in specie... \[t\]o limit its losses... forced the return of its banknotes, and ceased to put new notes into circulation. It was then obliged to cease to discount commercial bills. Provincial banks were in consequence obliged to follow the same course, and commerce found itself deprived at a stroke of the advances on which it had counted, be it to create new businesses, or to give a lease of life to the old. As the bills that businessmen had discounted came to maturity, they were obliged to meet them, and finding no more advances from the bankers, each was forced to use up all the resources at his disposal. They sold goods for half what they had cost. Business assets could not be sold at any price. As every type of merchandise had sunk below its costs of production, a multitude of workers were without work. Many bankruptcies were declared among merchants and among bankers, who having placed more bills in circulation than their personal wealth could cover, could no longer find guarantees to cover their issues beyond the undertakings of individuals, many of whom had themselves become bankrupt..."[11] 국가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최대한 많이 하고 수입을 최대한 적게 해야 한다는 관점.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12] 스미스의 시대에는 상인이 왕권을 끼고 재화를 국내로 들여오고 그 대신 왕권으로 보장되는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대표적인 경제정책이었는데, 이러한 자유를 강조하는 흐름으로 인해 이런 중상주의적 정책은 바뀌게 되고 추후에는 '라세페'(lasseiz-faire)로 대표되는 자유방임주의를 낳게 된다. 물론 지나친 방임 또한 문제를 낳는지라 현재는 수정자본주의적인 체제를 취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13] 완전히 틀린 요약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간략화된 요약일 수 있다. 케인즈의 말만 들으면 '아무거나 만들면 다 팔린다' 식으로 들리지만, 세의 말은 사실 '생산요소에 대한 수요가 먼저다'라는 쪽에 더 가깝다.[14] barter economy[15] 이해가 안 된다면 신용창출 메커니즘에 대해 공부할 것.[16] 물론 생산요소로 사용될 수 있는 재화가 아닌 일반 소비재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러나 쌀이나 비누같은 일반적인 소비재와 화폐는 성격이 꽤 다르다. 경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갑자기 쌀이나 비누같은 재화가 전부 가치를 잃고 증발해버리는 일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화폐의 경우에는 뱅크런, 초인플레이션 등 순식간에 화폐 혹은 화폐가치의 총량을 줄여버리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17]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문제로 인한 파생상품(CDO)시장의 급격한 가격변화였다.[18] 이 단기라는게 경제학 기준으로는 며칠, 몇 주 수준이 아니라 1~10년까지도 간다. 즉 단기 문제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뭉개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단기, 혹은 경기변동에 대한 연구는 IS-LM모형으로 케인즈의 직관을 수리화한 네오케인지언, 메뉴비용 등의 경직성을 주장한 뉴케인지언, 실물경기충격으로 경기변동을 설명하려 했던 뉴클래시컬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주요 연구분야 중 하나이다. 최근 들어서는 마이크로데이터 증가에 힘입어 경제주체들의 다양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 주요 트렌드이다.[19] 기존 서술에는 "스라파는 케인즈의 가장 총애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케인즈의 통찰을 수량통계적으로 증명하여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라는 주장을 하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근거를 첨부하기 바람.[20] 현금은 다른 자산보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쉽기 때문이다.[21] 이러한 유동성 선호는 자본의 공급이 곧 자본재의 수요를 이끌어내어 균형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당시 주류에 속하던 오스트리아 학파의 관념적 확신을 부정하는 증거였다. 또, 화폐가 교환 수단인 동시에 가치의 저장 수단이라고 보았던 마셜의 관점이, 화폐가 상대적 교환 수단일 뿐 가치중립적이라고 보았던 하이에크의 관점보다 옳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화폐의 가치중립성을 전제로 미시적 접근을 꾀하던 하이에크의 이론은 여기서 암초를 만나게 된다.[22] 이러한 수정자본주의적 대안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유방임주의를 뿌리째 뒤흔드는 것으로 여겨져 보수적인 당시 사회에서 큰 비판을 받았으며, 그 비판의 첨병에 오스트리아에서 런던정경대 교수로 위촉받은 하이에크가 자리하게 된다. 하이에크는 케인즈가 케임브리지의 전통에 젖어 마셜의 자본 개념만을 가진 탓에 저축과 투자가 연결되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오스트리아 학파의 정립자인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의 자본 개념과 우회생산 개념을 통해 저축은 장기적으로 투자로 전환되며, 인위적인 금리조정 또는 정부의 수요공급을 통한 저축량 교란은 강제저축을 불러와 자본재의 초과생산을 유도하고 결국 장기적으로 더 큰 경기하강 국면을 초래할 뿐이라고 보았다.[23] 농담삼아 이야기 했지만 사실 세의 법칙보다는 케인즈의 요약을 오해한 이론(공급이 선행되면 수요가 뒤따라온다는)에 가깝다.[24] 위 사례와 마찬가지로 세의 법칙을 오해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수요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공급이 선행되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