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카 덴노

 


'''한풍 시호[1]'''
센카 덴노(宣化 天皇, 선화 천황)
'''화풍 시호'''[2]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데노미코토
(建小広国押楯命)[3]
다케오히로쿠니오시타데노스메라미코토
(武小広国押盾天皇)[4]
''''''
히노쿠마노 타카타(檜隈高田)
'''능호'''
후루이치노타카야노오카능(古市高屋丘陵)
'''생몰'''
467년 ~ 539년 3월 15일
'''재위'''
536년 1월 26일 ~ 539년 3월 15일 (4년)
'''황거'''
히노쿠마노이오리노노미야(檜隈廬入野宮)
1. 개요
2. 행적
3. 논란
4.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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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제28대 천황. 휘는 히노쿠마노 타카타(檜隈高田)이다.

2. 행적


안칸 덴노가 자식 없이 죽자 뒤를 이어서 69세가 되던 536년에 제28대 천황으로 즉위했다. 3년 남짓 통치한 그가 539년에 사망하자 이복형제인 긴메이 덴노가 황위를 계승했다. 기록에 따르면 인품은 맑고 깨끗하며 군자다운 용모였다고 한다.
센카 덴노는 고령에 즉위한 데다 재위 기간 또한 짧았던 탓에 특별한 행적은 없다. 즉위 후 히노쿠마노이오리노노미야에 도읍을 정하고, 오오토모노 나카무라와 모노노베노 아라카히[5]를 오오무라지[6]에, 소가노 이나메를 오오오미(大臣)[7]에 임명하여 소가 가문 전성기의 토대를 구축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지쿠시 국 나노츠에 관가를 정비하고 오오토모노에게 명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며, 가야군사를 보냈다고 한다.

3. 논란


【어떤 책에는 덴노가 28년 갑인(甲寅)년에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25년 신해(辛亥)년에 죽었다고 한 것은 『백제본기(百濟本記)』를 취하여 쓴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 신해년(辛亥年) 3월에 군대가 나아가서 안라(安羅)에 이르러 걸탁성(乞乇城)을 쌓았다. 이 달에 고려(高麗)는 그 왕 안(安)을 죽였다. 또한 '''일본의 덴노태자(太子), 황자(皇子)가 함께 죽었다고 들었다.'''라 하였다. 이에 따라 말한다면 신해년(辛亥年)은 25년에 해당한다. 뒤에 교감(校勘)하는 자는 알라】.

《일본서기》 게이타이 덴노 25년(531년) 12월조.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德法王帝說)>를 비롯한 기록에는 불교의 일본 전래 연도가 29대 긴메이 덴노의 무오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때는 538년으로 이는 센카 덴노의 치세 연간에 해당한다. 이러한 차이와 26대 케이타이 덴노의 죽음에 관한 일본서기의 부자연스러운 기록은 케이타이 덴노가 죽고 안칸 덴노, 센카 덴노, 긴메이 덴노 순서로 차례대로 즉위한 것이 아니라, 531년에 안칸 덴노, 센카 덴노와 긴메이 덴노가 동시에 대립해 내란에 이르게 되었거나(신가이의 난) 혹은 케이타이 덴노, 센카 덴노의 조정과 긴메이 덴노 조정의 병립설을 논하는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자식이 없었다고 기록된 안칸 덴노와 달리 센카 덴노는 아들이 있었음에도 긴메이 덴노에게 밀려났고, 긴메이 덴노가 두 번째 왕실의 시조로 대를 이어나간 것을 볼 때 센카계는 긴메이 덴노와 대립이 있었고, 긴메이 덴노에게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긴메이 덴노는 센카계를 포섭하기 위해 센카 덴노의 딸들을 아내로 들였다.
참고로 일본이라는 국호와 천황, 황실이라는 용어는 덴무 덴노 때부터의 일이고 그 이전에는 명칭이 왜국(倭國)과 대왕(大王, 오오키미)이었다.

4. 가족관계


  • 황후: 타치바나노나카쓰 황녀橘仲 皇女[8]
  • 왕비: 오시코우치노와쿠고히메大河内稚子媛
    • 호노오 황자火焔 皇子
[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 고사기(古事記).[4] 일본서기.[5] 혹은 모노노베노 아라카이.[6] 야마토 국가의 최고 집정관.[7] 오오무라지와 함께 율령제 시행 이전에 정무를 담당한 최고 집정관.[8] 닌켄 덴노와 카스가노오이라쓰메 황녀春日大娘 皇女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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