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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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팔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네팔 현지인. 티베트어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 "쌰르 빠(Shar Pa)"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 종교는 주로 티베트 불교다.
2. 설명
구르카와 함께 네팔의 양대 초인 민족… 더불어 네팔 말고도 중국(8,046미터인 시샤팡마 산)이나 인도와 파키스탄에도 K2나 낭가파르바트 같은 산이 있다보니까 여기서도 사는 산악민족들이 짐꾼으로 일하면서 셰르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셰르파가 티베트 불교를 믿는 부족으로 상징한다고 하여 그냥 영어로 포터(짐꾼)라고 불러달라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로 파키스탄에선 이슬람 믿는 현지인이 포터로도 일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에베레스트 등산은 21세기에나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셰르파 출신의 텐징 노르게이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들인데 힐러리조차도 "노르게이가 없더라면 난 오르지도 못했다."고 인정했고 더불어 노르게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실제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중에 힐러리가 크레바스에 빠진 적이 있는데 같이 자일로 연결되어 있던 노르게이가 끌어내어 살려주었으며[1] 이후 노르게이가 쭉 앞서 가다가 정상을 몇 걸음 앞두고 힐러리를 30분 가량 기다려 주기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함께 최초로 정상 등정에 성공했을 때 노르게이가 카메라 조작법을 몰라서 힐러리는 노르게이가 정상에 UN기를 꽂는 사진만 남겼는데 이 때문에 힐러리의 정상 등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다.
태어나는 곳이 고산지대인 탓에 고산에 상대적으로 잘 적응한다.[2] 그러나 압도적인 수준의 차이는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산소통 메고 다녀야할 때 뛰어다닌 다고도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생리적 차이가 존재하긴 하나 그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는 없으며 생리적 차이도 고소순화 높이인 5,200m 정도까지 의미가 있는 수준이고 그 이상 부터는 큰 차이가 없다. 또한 등반 능력이라는 것이 심폐지구력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첨예한 등반은 주로 서구, 소수의 중앙, 동북아시아 산악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텐징을 제외하면 산악사에 유의미한 업적을 남긴 셰르파는 없다고 봐야할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가 꼭 필요한 이유는 현지인 길잡이로서의 역할과 산악인들 스스로도 지고 가기가 꽤나 부담되는 많은 양의 짐을 나눠들 용역들의 필요성이 있다. 특히 여러번 히말라야 산맥을 제 집 드나들듯 다녔던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서야, 이 지역은 여전히 제대로 된 등산로가 많이 부족한 관계로 현지의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셰르파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셰르파들은 산악인들의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적절한 보수를 받고 길 안내와 짐 나르기 등을 맡아준다. 너무 도움을 잘 주다보니 셰르파에게 너무 지원을 많이 받으면 '''업혀서 올라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이러자면 엄청난 돈(셰르파에겐 더더욱 거액이라 이 일을 하면 몇 년을 먹고 살 돈)을 내야 하는데 약 5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눈사태나 거대한 바람으로 사람이 날려가는 건 누구라도 짐작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셰르파로 일하는 이들은 텐징 노르게이와 다른 부족이라고 한다.[3] 예전 셰르파들은 워낙에 돈을 많이 벌어서 이 힘든 일을 죄다 때려치고 현지 여행사가 셰르파 업체를 운영하기 일쑤라고...
법적으로 한 사람당 20킬로그램으로 들고 가는 무게를 제한하지만 실제로 그 3, 4배까지 들고 가야 한단다. 그마저도 실업률이 높은 네팔에선 경쟁이 심하며 셰르파 고용업체 및 셰르파 대장의 마음에 따라 셰르파로 고용되는 경우가 걸려있다고 한다. 물론 등정을 다하기 전까지 돈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며 등산가들이나 외국인이 헬리콥터로 구조받는 거와 달리 그럴 돈이 없어서 도중에 사망하는 사람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나마 요즘은 셰르파 고용 보호법칙을 강화하여 등산을 도중 포기해도 부분적으로 돈을 지급해야 하며, 셰르파 장비를 고용한 외국인이 일부 사주거나 도와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해외 구조대가 셰르파는 놔두고 백인 등산가들만 구조하며 서둘러 내려가는 일도 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텐징 노르게이나 앙체링[4] 같은 전설적인 셰르파들이 나서서 셰르파 권익 보호에 노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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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낭가파르바트 2차 독일 원정대(10명이 사망했다. 이 중 6명이 셰르파로 그중에는 앙체링의 불알친구인 니마노르부와 다그시 2명이 있었기에 앙체링은 평생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의 실패 와중에 홀로 살아 내려온 앙체링(가운데 사진)의 모습이다. 이 사진이 증명하는 것처럼 그 당시 셰르파는 더더욱 목숨을 걸어야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첨단 장비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셰르파들이 돈을 제법 벌고 경영 요령을 익히면서, 마냥 고객에게 굽신대기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 등반 희망자가 한 셰르파 마을에서 진상으로 찍히고 퇴짜 맞으면, 위성전화 등을 통해 다른 셰르파 마을에까지 전파되어 웬만큼 큰 돈을 얹어주지 않는 이상 집단 보이콧을 당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진상질로 악명 높은 이스라엘인들마저 이들의 집단 다굴(?)에는 두 손 다 들기도 했다.
2021년 1월에는 네팔 셰르파만으로 구성된 산악팀이 K2 등반에 성공하기도 했다. 겨울철 히말라야 등반은 다른 계절들보다도 위험도가 높은데 그것을 성공한 것이다. # 다만 코로나-19로 네팔에 들어오는 관광객의 길이 뚝 끊겼던 탓에, 일도 없는데 심심해서 등반했다는 웃픈 소리도 나오곤 한다.
[1] 끌어올리는 대신 자일을 끊을 수도 있었고 사실 이게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러다 자칫하면 둘 다 추락사할 수도 있었으므로. 그러나 힐러리가 당시의 여느 다른 백인 산악인들처럼 셰르파인 노르게이를 하인으로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하고 대했기에 살려줬다고.[2]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해주는 예로 혈액 속 적혈구가 품을 수 있는 산소함량이 일반인보다 많고 비장의 크기가 약간 커서 보다 많은 혈액을 저장해둘 수 있으며, 맥박수가 60 ~ 50 전후로 심장 자체의 피를 짜주는 힘이 좋지만 혈액의 점성도가 높고 끈적해서 고지혈증 등의 심혈관계 질환도 덩달아 높은 게 흠... 또 다른 예시로 겸상 적혈구 증후군은 적혈구가 원형이 아닌 낫 모양이라 운반할 수 있는 산소량이 현저히 적지만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는다.[3] 노르게이의 출생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으며, 사실 노르게이는 티베트에서 태어나 네팔로 입양됐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4] 1902 ?~2003. 태어난 연도를 모르기에 추정함. 파키스탄 쪽의 셰르파로 네팔에는 텐징 노르게이가 있다면 파키스탄 셰르파 영웅으로 알아주는 사람이다. 1934년 독일의 낭가파르바트 1, 2차 등정원정대 셰르파로 참여하여 대장인 한스 메르클이 사망한 2차 원정대 실패 당시, 홀로 살아돌아온 사람이다. 오랫동안 셰르파로 활동하면서 발가락 5개 절단 및 늘그막에는 두 눈을 보지 못하는 부상까지 당했음에도 약 100살 이상까지 살았다. 1920년대부터도 이미 셰르파로 한창 일했고 그때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노르게이처럼 높은 산에 오른 기록은 없어도 무려 60대에 가까운 시절까지 셰르파로 활동하였으며 늘그막에는 셰르파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면서 셰르파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