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교

 


1. 개요
2. 미디어 믹스


1. 개요


孫皎
(? ~ 219)
후한 말의 인물로 손견의 동생 손정의 삼남이자 손유의 동생으로 손책손권에게는 사촌동생[1]이 된다. 자는 숙랑(叔朗).
형인 손유가 처음으로 군사를 통솔할 때 공의교위일 때 손교는 호군교위로 2천명을 이끌고 시작했으며, 조조가 유수를 칠 때마다 달려가서 전공을 세우니 정예(精銳)라는 호칭을 얻고 도로정호장군이 되어 정보를 대신해 하구를 다스리게 된다. 또한 황개와 형 손유가 죽은 뒤에는 그 둘의 군사도 합쳐서 거느리게 되는데다가 사선, 운두, 남신불, 경릉이 그의 식읍이 되고, 거기에 스스로 장리를 둘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게 된다.
손교는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면서 친구 사귀는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제갈근과 친한 사이였고 부하 유정에게는 일의 득실, 이윤에게는 일반적인 사무, 오석, 장량에게는 군대를 맡기고 친구처럼 대하니 그들이 뼛속까지 충성했다고 한다.
한 번은 척후병들이 정찰을 나갔다가 위나라 땅에서 미녀들을 잡아다 바쳤는데, 손교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돌려보내면서 말하길

지금 우리가 주살하려는 자는 조씨(曹氏)이거늘 그의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지금부터는 그의 노약자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장강과 회수의 많은 자들이 귀순했다. 술자리에서 감녕과 싸워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는데, 손권의 중재로 화해하고 다시 감녕과 친구가 된다. [2]
유비가 촉에 들어간 뒤 익양대치에서 여몽이 편지 두 장과 공갈로 얻은 장사, 계양, 영릉 땅을 여몽의 명령으로 뒷처리를 한다. 후에 관우가 지키는 남군을 습격하려고 할 때 여몽과 함께 좌우도독이 되려고 했으나 여몽이 적벽대전 때 정보와 주유의 예를 들며 설명하자 손교는 후속 부대가 되어 형주를 정벌할 때 큰 공을 세우며, 219년에 세상을 떠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형주를 정벌할 때 보급만 담당했다.

2.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나 능력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최저 60에서 최고 80을 넘지 않는 선에서 모든 능력치가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총합만 높지 어정쩡한 무장이 되어버렸다. 후기 장수라면 이 정도면 쓸 만하겠지만 삼국정립 때쯤 죽는 장수로 이 능력치라면 약소 세력이 아닌 이상 희망이 없다. 삼국지 10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7/무력 60/지력 69/정치력 71/매력 75에 특기가 7개인데(보수, 징병, 진정, 저지, 지리, 역공, 제독) 무력이 60으로 제일 낮은 주제에 무력에 의존하는 특기가 3개나(보수, 저지, 역공)나 되는 등 활용도는 미묘하다. 돌격, 화시, 일제 셋 중 하나는 줄 만한 능력치인데도 하나도 없으니....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7/무력 72/지력 66/정치력 71/매력 73이고 특기는 운반이다. 정확히 운반용으로 대놓고 써라고 할 정도이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창천항로의 영향인지 수고화 되어서 나왔다. 그래도 전법이 매우 좋은 전군원사라서 괜찮은 편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7/72/67/71로 지력이 전작에 비해 올라갔다. 특기는 상업 1, 훈련 3, 순찰 1, 위풍 3, 신속 1, 수영 5. 전수특기는 수영이고 전법은 강궁. 특이하게도 난폭 음성이 들린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7, 무력 67, 지력 65, 정치 71, 매력 72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5, 지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붕벽, 운반, 주란, 주의는 패도, 정책은 운반개발 Lv 3, 진형은 안행, 학익, 정란, 전법은 화시, 경파, 정란, 구축, 친애무장은 감녕, 여몽, 제갈근,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는 곰돌이 푸티거로 나온다. 친한 사이였다는 제갈근이 이요르로 나온 것 때문인 듯 하다. 그리고 왠지 손씨라서 호랑이로 나온걸지도.. 손성콘푸로스트토니로 나온걸 보면.. 유수구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선행 등장했는데, 자를 숙명으로 오타를 냈다.
유수구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조조군이 유수오로 침공해오자 감녕과 더불어 그를 막고자 2군으로 배치되었다고 묘사된다. 본인은 감녕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감녕은 영 못 미더워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창천항로에서는 신체와 무술을 단련한 호남으로 요화를 격투기로 제압하는 강한 임팩트를 자랑하면서 나오나 하필 상대가 관우였는지라 혼자 덤볐다가 검이 박살나 부하인 경적과 협공했지만 일격에 경적은 죽고 자신은 배가 갈려 내장이 튀어나온데다 결국 머리가 날아가 끔살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거기다 머리가 잘려진 몸은 관평이 창에 꿰어 "당장 형주에서 나가지 않으면 손가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며 오군을 협박하는데 썼다. 결국 관우 띄우기용 캐릭터.[3]
[1] 후술할 손권의 편지(212년 경)에서 손교에게 곧 30살 될 것을 운운하는 걸 보아 손권보다 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손교도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의 일원인 셈.[2] 그러나 이미 손교를 성격 급하고 싸움만 하는 인물로 만든 창천항로에서는 이 사건도 손교가 성격이 더러워서 감녕한테 감히 싸움을 건 인물이라면서 나온다. 다만 손교전에 의하면 감녕이 손교와 항렬이 하나 차이(즉 세대 하나 차이; 대략 10~12년 차이로 볼 수 있다.)나는데 예의가 없다고 따지며 여몽 휘하로 가기를 청하니, 이에 손권이 손교를 편지로 꾸짖는 것으로 보아 손교가 감녕에게 시비를 먼저 건 것일지도 모른다. [3] 손교뿐 아니라 관우토벌 직후 사서에서 언급이 없거나 병사한 오의 장수들을 죄다 전사처리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