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
1. 개요
최소 청동기 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여기는 한국의 목재/석재 종교 건축물. 새가 횃대에 앉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솟대는 목제가 대부분이지만 석제나 청동제 유물도 현존한다.
솟대라는 이름은 솟다 + 막대, 즉 하늘 높이 솟은 막대라는 뜻이다. 영동지역 방언으로는 진또배기라고 한다. 그 외에도 짐대나 소줏대 등등 솟대를 가리키는 단어가 여러 방언에 많다.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다르지만 대개 나무 막대기 위에 새를 얹은 듯한 형상이다. 솟대를 돌로 조각해 만들기도 한다. 새의 목에 볍씨가 든 주머니 등을 매달아 풍요를 기원하기도 하며, 부리에 물을 상징하는 갈대를 물리거나,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물려서 화재를 막길 기원하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솟대를 장승 옆에 세워둔 경우가 경우가 매우 흔하다. 솟대는 마을 초입에 잡귀나 잡병을 막는 용도로서 세우기도 하여, 장승과 같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솟대와 장승이 함께 있는 지역에서는 장승을 상위신격, 솟대를 하위신격 정도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솟대를 상위신격으로 받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드물다고...
솟대 위에 얹는 새를 보통은 오리라고 인식한다. 오리는 하늘을 날면서 또한 물 안팍을 자유롭게 다닌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은 오리를 하늘과 땅과 물속(용궁)까지 모두 오간다고 여겼다. 게다가 오리는 철새라서 겨울이면 대이동을 하여 사라지는데, 고대인들은 오리가 저승의 세계로 떠났다고 여겼다. 그래서 오리는 이승의 온갖 영역은 물론 저승까지 못 다닐 데가 없는 영험한 전령으로 간주되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오리를 봉황으로 보는 관념도 있다고 한다.) 오리가 물새이므로 마을에 물이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불이 나지 않게 막아준다고 해석하는 민속도 있다. 그 외에 지역에 따라서 솟대의 새를 까마귀나 기러기, 맹금류라고 인식하는 사례도 있다.
솟대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유물은 보물 제1823호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이다. 국사교과서에도 실려서 인지도가 높다.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1]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보통은 기원전 5-4세기쯤에 만들었다고 본다. 농경문 청동기의 한쪽 면에 솟대가 있다.
새가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자라고 보는 인식은 솟대 외에도 일본의 토리이, 중동의 괴베클리 테페에서도 볼 수 있다. 아마도 고대의 조장 풍습에서 사람이 죽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사람을 먹어 그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토리이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솟대 2개를 마주보도록 연결했다는 설도 있다.
2. 세계적 분포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나무와 새는 둘 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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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솟대 복원품. 야요이 시대 유물로 발견된 나무 새와 관련유적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기둥 위에 새를 올려놓는 풍습은 전형적인 북방계 문화로 알타이의 조상(鳥像)을 비롯해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발달하였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차차 자취를 감추고 사실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가 되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흔적은 남아 있어서 태국의 소수민족 중에는 마을 입구에 새의 문이라는 나무문을 만들어 새 모양 나무인형을 올려놓거나, 솟대와 매우 유사한 조형물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절이나 신사 입구에 설치하는 토리이(鳥居)도 명칭이나 용도면에서 솟대와 유사한 점이 많아서 둘 사이에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학설도 있다.
중동의 괴베클리 테페에서도 솟대와 비슷한 유적을 볼 수 있다.
3. 현대 이전의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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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 청동기 뒷면에 새겨진 솟대.(왼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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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출토 조식간두(鳥飾竿頭).출처 과거 무당이 의례시 지팡이나 장대 끝에 꽂아놓는 장식품이다.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나 삼한 시대 때 종교적인, 즉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로 생각되었으므로 장승보다도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주로 소도 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사실 소도와 솟대가 어원이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매년 마을의 솟대를 새로 세워서 고사를 지내는 곳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학계에도 역사민속학 논문집 등을 통해 솟대의 등장시기가 고대 후기라고 늦춰 주장하는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한다'''.이미 그 이전 시기에 솟대 관련 유물이 나오는 데다, 이런 사람은 솟대의 별칭인 짐대[2] 와 배(船) 모양 형국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에 설치된 솟대/당간지주와 풍수지리 설화[3] , 그리고 특정 고승(원효, 도선 등)의 사찰창건설화를 근거로 들기 때문. 당연하지만 사찰창건설화도 엄연히 설화인지라, 실제 해당 승려의 일대기와 맞지 않거나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사찰창건설화들을 그대로 믿으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전국의 고찰의 90% 이상이 원효, 자장 등 유명한 스님들이 세운 절이다. 솔대ㆍ소줏대ㆍ솟댁ㆍ설대ㆍ새대ㆍ추악대ㆍ거릿대 등 솟대의 다른 별칭들과 고고학적 자료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심지어 사찰창건설화에서 고승들이 나무를 손으로 가공해서 나무새를 만들었다는 내용과 현대에 사람들이 손으로 나무를 깎아 솟대를 만드는 것까지 결부하는 억지를 부리는데, 공작기계가 없는 시대에 당연히 '''사람이 손으로 나무를 깎지 그럼 뭘로 깎겠는가?'''
현재 학계의 정설은 솟대 신앙이 후대에 풍수지리와 결합하면서 비보풍수의 한 형태로 풍수적 솟대관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솟대가 전부 배 모양 지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거릿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낭당이나 장승과 마찬가지로 마을신앙에서 하당신에 해당되에 마을 입구에 같이 배치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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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와 관련있다고 보이는 초기 철기 시대 새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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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청동제 솟대용 새. 가운대에 아예 끼우는 구멍이 있다. 백제에서도 솟대에 끼우는 나무새가 발견된 적이 있다.[4]
4. 현대의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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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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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바다 위에다 설치하기도 한다. 위 사진에서는 새 모양 조각품을 '''진짜 갈매기'''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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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금속, 주로 H빔으로 만든 삐죽한 T 모양 장식품을 볼 수 있는데, 솟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내구도는 몰라도 목질 특유의 질감과 구부러진 것들이 없어서 목제에 비하면 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실.
5. 이성우의 노래 진또배기
이걸 다룬 노래로는 이성우의 진또배기가 있다. 네이버 웹툰 달수 이야기와 연애의 정령을 통해 알려졌다. 근데 노래에는 무슨 포톤 캐논 수준으로 마을을 지켜 주는 존재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