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XXXVI

 

'''역대 슈퍼볼'''
2000-2001시즌

2001-2002시즌

2002-2003시즌
슈퍼볼 XXXV
'''슈퍼볼 XXXVI'''
슈퍼볼 XXXVII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탬파)
루이지애나 슈퍼돔
(뉴올리언스)
퀄컴 스타디움
(샌디에이고)
CBS
주관 방송사
FOX
ABC
'''볼티모어 레이븐스 (AFC) 34'''
뉴욕 자이언츠 (NFC) 7
세인트루이스 램스 (NFC) 17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AFC) 20'''
오클랜드 레이더스 (AFC) 21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NFC) 48 '''
[image]
'''Super Bowl XXXVI '''
1. 소개
4. 경기: 톰 브래디 - 빌 벨리칙 콤비의 시작
5. 여담


1. 소개


2002년 2월 3일,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개최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세인트루이스 램스간의 2001-02 시즌 NFL 결승전이자, '''톰 브래디-빌 벨리칙 콤비가 이끄는 패트리어츠 왕조의 서막이 시작 된 경기.'''[1]

2. NFC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램스


  • 정규시즌 14승 2패, NFC 서부지구 우승 (1번 시드)
  • 디비저널 라운드 (vs 그린베이 패커스, NFC 북부지구 와일드카드, 4번 시드) 47 - 15
  • NFC 챔피언십 게임 (vs 필라델피아 이글스, NFC 동부지구 우승, 3번 시드) 29 - 24
제34회 슈퍼볼 우승 이후 세인트루이스 램스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패싱과 러싱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특히 2년 전인 제34회 슈퍼볼에서 커트 워너라는 걸출한 스타를 발견한 이후 램스는 여전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에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이적한 스타 러닝백 마샬 폴크가 가세하면서 팀의 공격력은 그야말로 버프를 맞았다. 거기에 수비보강을 위해 러비 스미스를 수비 코디네이터로 임명하면서 수비까지 강화한다 쿼터백인 커트 워너가 무시무시한 패싱력을, 마샬 포크가 상대 수비를 찢어발기는 러싱력을, 리시버인 토리 홀트가 상대 세컨더리를 외토리로 만드는 능력을 선보이면서 NFC를 평정하고 14승 2패라는 최고의 성적으로 그린베이 패커스와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차례로 정리하고 2년만에 첫 슈퍼볼 진출을 이뤄냈다. 다만 딕 버메일이 은퇴로 헤드코치직을 사퇴하고 공격 코디네이터였던 마이크 마츠가 헤드코치직을 승계했는데... 이게 의외의 복병으로 다가오게 된다[2].

3. AFC 우승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 정규시즌 11승 5패, AFC 동부지구 우승 (2번 시드)
  • 디비저널 라운드 (vs 오클랜드 레이더스. AFC 서부지구 우승, 3번 시드) 16 - 13
  • AFC 챔피언십 게임 (@ 피츠버그 스틸러스, AFC 북부지구 우승, 1번 시드) 24 - 17
(@는 원정경기를 의미)
램스와는 달리 패트리어츠의 슈퍼볼 진출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당장 시즌 시작 전에 쿼터백 전담코치였던 딕 레베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시즌 2주차 경기였던 대 뉴욕 제츠전에서 주전 쿼터백이었던 드류 블렛소가 부상으로 시즌 결장이란 진단을 받게되면서, 1년차 백업이었던 톰 브래디가 주전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 전체순위 199번째 6순위로 패트리어츠에 지명된 이후 과연 NFL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나 브래디는 2001년 주전으로 승격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은 다른 문제였다. 당장 디비저널 라운드에서 레이더스에게 사실상 패했던 것과 같았던 경기를 소위''' '턱 룰(Tuck Rule)' '''이라는 것으로 다시 살려 승리했고[3], AFC의 최강자였던 피츠버그 스틸러스까지 정리하며 팀 사상 3번째 슈퍼볼 진출을 이뤄냈다.

4. 경기: 톰 브래디 - 빌 벨리칙 콤비의 시작



'''1Q'''
'''2Q'''
'''3Q'''
'''4Q'''
'''TOTAL'''
'''STL'''
3
0
0
14
'''17'''
'''NE'''
0
14
3
3
'''20'''
램스는 1쿼터 공격권을 가져가면서 커트 워너가 7회의 패스시도 중 6개를 성공시키고 10회의 공격, 소요거리 43야드를 기록, 제프 윌킨스의 48야드 필드골로 3: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2쿼터에서는 52야드 필드골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고 다음 램스 공격에서는 패트리어츠의 마크 브레이벨이 워너에 블리츠를 시도 워너의 패스가 코너백 타이 로에게 인터셉트 되어 로가 47야드 리턴 터치다운으로 7:3의 리드를 패트리어츠가 가져가게 된다. 램스는 이에 워너가 리시버인 리키 프롤에게 패스를 성공시켰으나, 패트리어츠의 앤트완 해리스가 펌블을 일으켜 패트리어츠가 공격권을 가져갔고, 패트리어츠는 이를 8야드 패스를 데이빗 패튼에게 성공시켜 14:3으로 점수차를 벌려놓았다. 그리고 전반전이 종료된다.
3쿼터에서 램스는 연속적인 패스성공으로 득점으로 귀결되는가 했으나 쌕으로 더이상의 진전은 이루지 못하고 펀트로 패트리어츠에게 공격권을 내주게되었다. 그리고 패트리어츠는 득점에 실패하고 다시 램스가 공격권을 가져와 득점을 이루려 했으나 패트리어츠의 오티스 스미스가 인터셉션으로 공격권을 다시 뉴잉글랜드에게 가져오고, 패트리어츠는 이에 화답 37야드 필드골로 17:3으로 점수차를 벌려놓게 된다.
4쿼터에서 램스는 워너가 스크램블 플레이를 통해 터치다운을 이루기 직전 뉴잉글랜드의 라인배커 로만 파이퍼가 태클로 저지해 떨어진 공을 테버키 존스가 램스진영으로 돌진 터치다운을 기록 점수차를 벌이는가 했으나 그 이전 뉴잉글랜드의 디펜시브 라인맨인 윌리 맥기니스트의 수비반칙으로 무효가 되었고 이 기회를 램스가 살려 터치다운으로 마무리 17:10으로 점수차를 좁혔다. 다시 공격권을 돌려받은 램스는 다시 한번 득점을 통해 동점을 만들려 했으나 패트리어츠의 억척같은 수비로 패배가 짙었던 경기를 램스의 수비가 다시 살려놓아 다시 찾아온 공격권을 기어이 득점으로 연결시켜 17:17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러나 4쿼터 남은 시간이 1분 30초였다는 것이 함정[4]. 공격권을 넘겨받은 패트리어츠는 브래디가 침착하게 3연속 패스를 성공시켜 41야드 진영으로 진출시키고 한번의 실패이후 두번의 패스 성공으로 램스 진영 30야드로 진출한 후 7초를 남긴 상황에서 브래디가 스파이크[5]를 해 애덤 비네티어리의 48야드 필드골 기회를 만들어 준 후, 비네티어리는 이를 성공시켜 20:17로 패트리어츠에 팀 사상 첫 슈퍼볼 우승을 선사하게 된다.
[image]

5. 여담


  • 9.11 테러로 인해 국내의 상황이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경기였다. 특히 미국내 유명가수들이 모여 'Let Freedom Ring'이라는 노래를 통해 절대로 굴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금 다짐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 하프타임 쇼로 U2가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공연당시 테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배경으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관중들과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고 리드보컬이었던 보노는 자켓을 열어젖혀 성조기 무늬로 관중들을 클라이맥스로 이끌었다.
  • 뉴올리언스와 패트리어츠는 슈퍼볼과 상당한 악연이 있던 곳이었는데 이 대회 전의 기록이 2패였기 때문. 제20회 슈퍼볼에서 처녀출전으로 시카고 베어스에 46:10으로 대패했고, 제31회 대회에서는 브렛 파브가 이끄는 그린베이 패커스에 35:21로 또다시 패했기 때문. 그리고 이 대회에서 승리함으로서 악연을 씻게 된다.
  • 1쿼터에서 램스의 제프 윌킨스의 50야드 필드골은 역대 슈퍼볼 역사상 3번째로 장거리 필드골로 기록되었다.
  • 보스턴및 메사추세츠 지역으로서는 셀틱스의 1986년 NBA우승 이후 15년만의 프로리그 우승이었다.[6]
  • 당시 램스의 와이드 리시버였던 릭키 프롤{Ricky Prohl}은 이듬해 캐롤라이나 팬서스로 이적, 다시 한번 슈퍼볼에 진출, 같은 팀을 대상으로 2개 대회 연속 터치다운 패스를 잡아내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1]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슈퍼볼 우승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트리어츠는 '''지금의 넘사벽 + 먼치킨 + 최종보스의 팀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슈퍼볼은 고사하고 지구 우승 후보로도 꼽히는 일이 드물었고 이 슈퍼볼 역시 패트리어츠가 우승하리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들은 없었다. 지금의 명장의 면모를 보이는 빌 벨리칙은 당시엔 그야말로 그런저런 평범한 감독에 불과했으며 당시 주전 쿼터백이었던 드루 블렛소를 대신해 주전을 맡은 톰 브래디 역시 '어쩌다 운이 좋게 팀을 슈퍼볼로 이끈 행운의 백업'정도로 밖에는 안보는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패트리어츠로서는 격세지감인셈.[2] 마이크 마츠는 웨스트코스트 오펜스 신봉자라서 패싱위주의 공격이 많았다. 문제는 패트리어츠가 이것을 간파하고 램스의 리시버들을 괴롭히는 작전을 썼다는 것이었다. 일부 마츠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마샬 포크는 뒀다가 국끓여 먹을려 그려냐!?"는 식으로 마츠를 깠다.[3] 지금도 일부 팬들 가운데는 패트리어츠의 이 승리가 오심덕이라고 믿는 경향이 크다.[4] 당시 패트리어츠의 키커였던 애덤 비네티어리는 이를 두고 램스가 자신들에게 너무나 시간을 남겨줬다고 깠다. 패트리어츠의 공격력으로 볼때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였던 것.[5] 땅에 공을 던지는 행위, 패스 실패로 간주되어 시간을 멈출 수 있다.[6] 이때는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레드삭스는 이 대회 3년 후인 2004년 86년의 저주를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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