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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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록 밴드. 2억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와 더불어,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성공[2] 하고 음악적으로도 수많은 성취를 이끈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이자 아일랜드의 음악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며, 전 세계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밴드 중 하나'''이다. 특히 1987년 발매한 『The Joshua Tree』 앨범은 대중음악 최고의 명반을 꼽을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역사적인 명반이다. 얼터너티브 록과 디스코, 팝, 컨츄리를 넘나드는 폭넓고 다양한 음악성과, 피의 월요일(피의 일요일 사건), Bloody Sunday, 독일 재통일, 인종차별을 비롯한 여러 사회고발적인 가사와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로 유명한 밴드이다. U2 보컬인 보노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거의 한 국가의 대통령과 맞먹으며, 그렇기에 한국을 비롯한 외국을 방문시 해당 국가의 정상이나 정상급 고위 공직자와 회담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전 세계 인류 역사상 단일 투어로 110회의 공연하여 100% 전석매진에 1회 공연당 평균 82,000명을 운집시켜 총 132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는 가수는 U2만이 유일무이하다.[3]
2. 멤버
3. 활동
3.1. 초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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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래리, 에지, 보노, 애덤. 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의 U2.
1976년 9월 25일, 더블린의 마운트 탬플릿 고등학교[4] 에서 지금의 멤버들은 물론, 기타리스트인 딕 에반스(Dik Evans, 1976–1978)[5] , 이반 맥코믹(Ivan McCormick, 1976-1976), 피티 마틴(Peter Martin, 1976-1976)과 함께 7인조 밴드로 결성되었다.
몇 주 후, 이반과 피티가 탈락한 뒤에 밴드 이름을 피드백(Feedback)으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이름이 U2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1년 뒤인 1977년, 그들은 밴드 이름을 다시 하이프(The Hype)로 변경하고 그 다음해인 1978년에 또 다시 "U2"란 이름으로 재변경하여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CBS의 눈에 띄어 1979년에 데뷔 EP Three를 발매하여 아일랜드 내에서 인기를 얻었다. 1980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아일랜드(Island) 레코드와 계약하고 데뷔 앨범 Boy를 발표했고, 다음 해에는 두 번째 앨범 October를 냈다. 이 시절의 대표곡으로 "I Will Follow"가 있다.
초창기에는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이트하고 둔탁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밴드였다. 이 시절 평론은 그럭저럭 좋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해 비운의 밴드가 될 뻔했다.
1집과 2집은 당시 유행하던 락의 느낌과 아일랜드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반항기 어린 가사들이 섞여 있다.
즉, 전체적으로 반항기 어린 보이밴드의 느낌이 강했다.
3.2. 80년대, 성공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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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래리, 보노, 애덤, 에지. 80년대 전성기의 U2. The Joshua Tree 시절 사진으로[6] 바로 뒤에 해당 음반의 상징과도 같은 여호수아 나무도 있다.
'''본격적인 전성기'''
1983년 낸 앨범 War가 영국차트 1위에 올랐고, 이후 투어에서 매진 공연을 잇따라 만들어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War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반전주의의 메시지를 담은 "Sunday Bloody Sunday"[7] 를 비롯한 여러 명곡들을 수록했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를 만나 작업한 앨범 The Unforgettable Fire로 미국에서 차트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이 앨범은 예전에는 다른 앨범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U2의 다른 명반들에 견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시원시원한 분위기가 특징인 밝은 포스트 펑크 넘버 "Pride (In the Name of Love)[8] ", U2 팬들이 최고로 치는 곡들 중 하나인 "The Unforgettable Fire"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85년에는 '''라이브 에이드'''에 출연해 존재감을 발산했다. 유투는 원래 "Sunday Bloody Sunday" "Bad" "Pride (In the Name of Love)" 세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보노가 Bad를 부르던 중 객석으로 내려가 여러 여성과 춤을 추면서 "Sunday Bloody Sunday" 와 "Bad"만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여자들은 객석에서 뒤의 사람들에게 밀려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보노가 이를 보고 몸짓으로 여성들을 구하려 하였지만 스태프들이 이해하지 못하자 결국 직접 내려가 여성들을 밖으로 데려와, 위로하고 껴안아 주며 음악에 맞춰 좌우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에게 U2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불후의 명반 The Joshua Tree를 내놓았다.''' 전작들에 비해 더 잔잔하고 차분해졌으며,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하면서 세계적인 밴드로 떠오르게 된다. 앨범에 수록된 "With Or Without You"는 세계적인 명곡으로 자리잡았고 그 후로도 널리 불려지는 U2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뿐만 아니라 또다른 빌보드 넘버원 히트곡인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이자 U2 팬들에게는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등의 곡들도 수록되었으며 이 앨범을 통해 U2는 명실공히 80년대 최고의 록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어진 The Joshua Tree 투어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스타디움 공연에 나섰고, 밥 딜런과 같은 다른 뮤지션들과 같이 연주했다. 이 때 미국 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늘 날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라이브 앨범-영화 Rattle And Hum이다.
1988년 The Joshua Tree의 Live 실황과 미국 투어에서 얻은 영감이 담긴 오리지널 곡이 포함된 Rattle And Hum 앨범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 또한 The Joshua Tree에 이어지는 곡조와 분위기등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U2의 인기를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The Joshua Tree 투어 실황과 특설무대에서 공연 모습, 그리고 "Desire", "Angel of Harlem" 등의 연주장면도 포함되었있다. 특히 현악 세션을 도입한 아름다운 발라드곡 "All I Want is You"가 영국 차트에서 4위에 오르면서 히트하게 된다.
라이브 실황은 레파토리로 꼭 들어가고 사랑받는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와 "Pride (In the Name of Love)"등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흑백으로 담긴 카우보이 모습, B.B. King과의 멋진 무대를 보여준 "When Love Comes to Town"은 지금까지도 명 앨범 - 명 실황영상으로 불리우고 있다.
3.3. 90년대, 실험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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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애덤, 에지, 보노, 래리.
그러나 이후 멤버 간 음악적 견해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 보노와 에지는 좀 더 세련된 팝을 원했던 반면 애덤은 본연의 둔탁한 하드 록과 포스트 펑크를 원한 것이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One"을 녹음하며 갈등을 봉합하고 1991년 Achtung Baby를 내놓는다.[9]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는 얼터너티브 록과 일렉트로니카 , 인더스트리얼, 매드체스터 등 다양한 시도를 한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또 이때부터 활발한 사회 활동도 시작했다.[10] 앨범의 대표곡으로는 아름다운 가사와 잔잔한 멜로디로 U2 최대의 명곡으로 자주 꼽히는 "One", 특유의 강렬한 베이스라인이 인상적인 "Mysterious Way", U2의 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등이 있다.
1993년 내놓은 Zooropa 앨범은 평은 괜찮았지만,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적인 성공에도 실패하면서 U2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11] 하지만 이 앨범에 Stay (Faraway, So close!) 라는 명곡이 숨어 있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독했던 빔 벤더스가 작업했는데,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모티브로 작업한 명작이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 없이 작업한 1997년 작 Pop 앨범은 차가운 외면을 받았으며 이때가 U2 최악의 슬럼프라고 볼 수 있다.
3.4. 2000년대,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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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에지, 애덤, 보노, 래리.
이를 의식했는지, U2는 실험을 끝내고 2000년대에는 다시 본래의 록 사운드로 돌아갔다. 브라이언 이노 가 다시 참여한 2000년 작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은 U2 본연의 밝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록을 더 현대적으로 이끌어 낸 개성있는 사운드가 특징으로, 그래미상 주요 부문을 휩쓸었고, 22개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대표곡인 "Beautiful Day"도 크게 히트하며 각종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평단도 호평 일색으로 정상으로의 귀환을 축하했다.
2002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연을 열었다. 2004년에는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발표하였다. 팬들에게는 U2의 현대 앨범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이 앨범은 거친 얼터너티브 트랙 "Vertigo", 조용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발라드곡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U2 본연의 사운드를 들려준 "City of Blinding Lights" 등의 곡들을 수록하며 역시나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건재한 판매량을 보여주며 상업으로도 전작을 성공을 이어갔다.
그 유명한 "Live Aid"의 20주년이기도한 2005년에는 "Live 8"를 진행하는데 주축이 되어 공연을 성공리에 진행하였다. 1985년 당시 갓 주목 받던 밴드에서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된 덕분에(?!) 폴 매카트니경과 함께 시작을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비틀즈의 명곡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듀엣으로 열창하였다.
2005년에는 로큰롤 명에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9년에는 No Line on the Horizon을 내놓았다. 앨범의 "No Line on the Horizon"은 파격적인 얼터너티브 트랙으로 평가되었고 전체적인 작품성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전과 같은 상업적 성공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는 360°투어를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큰 공연무대'''를 만들어 엄청난 조명놀이를 벌였다.
3.5. 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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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애덤, 에지, 보노, 래리.
2013년 말에는 1978년부터 35년간 함께한 매니저 폴 맥기네스가 떠났다. 그리고 마돈나의 매니저로 유명한 가이 오시리가 새 매니저가 되었다. 그의 영향인지, 유투는 공식 SNS 계정을 활성화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트위터 공식 계정을 U2.com에서 U2로 바꾸어 팬들의 의견을 물은 뒤 반응을 리트윗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텀블러 계정을 만들고 움짤을 올리기도 했다.
한동안 새 앨범 발매 소식이 없었는데, 새 앨범이 정말 뜬금없이 발표되었다. 2014년 9월 9일에 itunes 독점으로 새 앨범 Songs of Innocence를 무료로 뿌렸다! 정식 앨범 발매 예정일은 2014년 10월 13일. 앨범의 평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편이고, U2의 이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련되고 모던한 트랙 "Sleep Like a Baby Tonight"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Songs Of Experience라는 새 앨범을 준비중이였는데 U2가 싫어하는 그 미국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바람에 연기가 되었다고..
2017년에는 The Joshua Tree의 30주년을 맞아 투어를 돈다. 51개 공연을 3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전석매진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새 앨범과 새 투어 일정을 공개했다... 새 앨범인 Songs Of Experience는 2017년 12월 1일 발매하고, 투어는 2018년 5월부터 시작한다.
3.6. 그 외
- 애덤 클레이튼(Adam Clayton)은 한때 유투에서 제일 사고를 많이 치기로 유명한 멤버였었다. 음주운전에,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으며, 슈퍼모델인 나오미 켐벨(Naomi Campbell)과 짧은 약혼을 하기도 했으나 얼마 못가 파혼하였다.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사고 안 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 초기의 진보적 성향이 많이 퇴색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2009년 초에는 조세 회피 혐의에 연루되어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으나, 3월 발매한 No Line on the Horizon이 빌보드 1위에 랭크되면서 많이 묻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조세회피 혐의는 본인이 직접 연루된 것이 아니라 그가 투자한 회사가 연루된 것이다. 그가 투자한 회사가 몰타의 기업들을 거쳐 조세회피를 했다는 것. 다만 나무위키의 조세회피 문서에도 나오듯이, 합법적인 절세 수단이므로 법적으로는 아무 잘못이 없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조세회피와 탈세를 동일 개념으로 잘못 인식하여 빚어진 오해로, 영어 기사에 나온 Tax avoid는 본래 조세회피로 번역되어야 옳은데, 탈세로 흔히들 오역하여 빚어진 오해다. 그의 공식적인 입장은, 자신은 기업에 투자만 했을 뿐,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렇게 밝혀진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뭐, 판단은 각자 알아서.
- 앨범이 나왔다 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쓸어가는 밴드이다. 2006년에는 최우수 록 앨범상, 록 부문 최우수 보컬상, 올해의 노래상 등 5관왕을 석권했다.
- 미션 임파서블 영화 1편에서 시리즈의 테마를 멤버인 래리와 애덤이 연주했다.
- 의외로 글래스톤베리에는 딱 한번만 섰다. 이것저것 잘 안 맞아서[13] 출연을 안하고 있다가 2011년에 헤드라이너로 섰는데 그 당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전세계 록팬들은 흥분했고,[14] U2도 굉장히 흥분하여 굉장한 무대를 선보였다.
4. 음악적 성향
벡 한센이나 라디오헤드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U2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많이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데뷔 이후부터 The Joshua Tree까지는 비슷한 음을 반복하는 단순한 기타 연주와 보노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특징이었고 포스트 펑크에 기반을 두었으며 이 시기의 대표곡으로는 '''I Will Follow''', '''Pride (In the Name of Love)''', '''Sunday Bloody Sunday''',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등의 곡들을 들 수 있다. 이때까지는 흔히 조슈아 트리로 대표되는 U2스타일을 큰 변화없이 좀 더 성숙하게 다듬어가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Rattle and Hum 앨범부터는 차츰 곡들의 사운드나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90년대에 발표한 세 앨범들인 Achtung Baby, Zooropa, Pop에서는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들을 융합하여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다. 시원하게 내지르던 보노의 보컬은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였고 기타 역시 기존에 비해 더 어둡고 탁한 소리로 변했으며, 이 시기 대표곡들인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Mysterious Ways''', '''Stay (Faraway, So Close!)''' 등의 곡들을 들어보면 기존의 U2가 보여주던 것과는 다른 독특한 색깔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Pop 앨범이 대중적으로 실패하고 많은 골수팬들이 등을 돌리자 이를 인식한 U2는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80년대 앨범들처럼 밝은 분위기와 대중적인 스타일을 띠고 있지만, 초기 U2의 아이덴티티인 쟁글거리는 일렉 기타 사운드와 특유의 둔탁함에서 벗어나 얼터너티브 록, 모던 팝 등을 접목시켰고 더 넓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다. 그 후에는 90년대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앨범마다 장르를 조금씩 바꿔가며 크고 작은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다. '''Beautiful Day''', '''Walk On''' 같이 대중적인 곡들도 있고, '''Vertigo''' 같은 하드한 얼터너티브 곡도 있으며, '''Ordinary Love''' 같은 몽환적인 모던 록 트랙이나 '''Moment of Surrender''' 같은 가스펠 분위기의 대곡들도 존재한다. 이 시기 U2의 장르를 보통 얼터너티브 록, 팝 록으로 분류하지만 하지만 많은 장르들을 포용하고 있는 만큼 뚜렷하게 어느 장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이처럼 시대마다 계속해서 음악 스타일의 변화를 겪었지만 그 속에서도 U2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고, 실험적인 밴드와 대중적인 밴드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것이 U2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가사 역시 U2 음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인데, '''One''' 같이 아름다운 내용을 담은 곡도 있고, '''Sunday Bloody Sunday''' 같이 사회적인 아픔을 거칠게 토로하는 곡도 있다. 음악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15] 가사 면에서는 록 밴드들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곡들 하나하나의 내용적 의미가 깊은 밴드이다.
5. 평가와 영향력
좀 과장하자면 소위 모던 록을 구사하고 있는 밴드들 중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밴드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특히나 각국의 인디 씬에서 주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모던록 밴드들 중에서는 U2와 거의 똑같은 스타일을 구사하는 밴드가 많다. 이는 U2가 기본적인 포스트 펑크로 발현된 로큰롤 부터 일렉트로니카를 기조로 다양한 장르를 분해하고 결합해 다양한 결과물의 모던 록을 성공적으로 창조했다는데서 도출된 결과다.
미국 출신인 더 킬러스와 라이브가 이들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존경의 표시를 하기도 했으며, 최근 밴드들 중에서는 콜드플레이의 음악적 성향이 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6]
전 오아시스의 멤버였던 노엘 갤러거는 U2의 사회활동을 비꼬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U2의 음악은 넘사벽이며 비틀즈의 음악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뮤즈도 2010년 글라스톤베리에서 U2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를 초청해서[17]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불렀다. 30 Seconds to Mars의 경우에도 정규앨범 This Is War로 U2의 영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으며, MTV Unplugged 라이브에서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을 커버했다.
멤버들이 음악활동 외에도 인권 및 반전운동,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가이다. 대표곡들 중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 많이 있으며, 보노는 매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약했지만 록 뮤지션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 강산에와 이승열 등이 U2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강산에는 80년대 초반에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대학을 자퇴하고 라이브 카페 통기타 가수로 전전하다가 8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었는데 1989년 가을 U2의 일본 투어(Lovetown tour)를 직관하고 큰 충격을 받고서 한국으로 돌아와 1992년에 정식 데뷔한다. 강산에의 초기 앨범(1~3집)이 사회 참여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고 몇몇 곡(강산에는 기본적으로 포크록 뮤지션이다)의 보컬과 사운드가 U2를 연상케 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가족사(실향민, 기독교)와는 별개로 U2의 영향이라고 한다.
이외에 한국의 보노라고 불리는 이승열이 있으며 윤도현도 가끔 With or Without You 등을 어쿠스틱 연주하는 U2의 팬이다. 박정현은 R&B 요정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락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좋아하는 록밴드로 항상 U2를 꼽는다. 나는 가수다에서 편곡해서 부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 U2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6. 콘서트
'''현재까지도''' 역사상 최강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18]
U2를 최고의 밴드로 올려놓은 데에는 물론 노래도 있었지만, 공연이 엄청난 공을 세웠다. 공연에 있어서 대단한 혁신을 가져왔는데, 특히나 공연용 조명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일으켰다. 각 투어를 간단히 읊어보자면
Zoo TV Tour - U2가 본격적으로 스타디움을 돌기 시작한 첫 투어. 36대의 대형 LCD 스크린을 설치했다.
Popmart Tour - 초대형 곡면 LED 스크린을 설치했다.
Elevation Tour - 무대 바닥에 조명을 설치한 하트모양 무대에 위에는 각 멤버들은 띄워주는 4대의 스크린을 설치했다. 슈퍼볼을 출전한 것도 이 투어.
Vertigo Tour - 북미 투어에서는 LED 발광 커튼을 설치한 타원형 무대를 사용했다. 유럽 투어에서는 평범한 스테이지를 사용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U2 360° Tour - 360도 회전하는 다리를 갖춘 초대형 원형 무대 위에 가변형 디스플레이가 달린 거대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콘서트 투어로, 매출액이 7억 달러가 넘는다.
iNNOCENCE + eXPERIENCE Tour - 비교적 좁은 아레나 급의 공연장에서 초대형 반투명 스크린을 설치했다. 360도 투어에서 선보인 뮤지컬적 요소를 활용했고 규모는 줄여 실용성을 높였다.
The Joshua Tree Tour 2017 - 여호수아 나무 실루엣이 그려진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위의 iNNOCENCE + eXPERIENCE Tour가 스타디움 버전으로 초대형화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등이 있다. 이러한 무대는 전부 윌리 윌리엄스라는 무대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그는 War Tour 이후로 U2의 모든 투어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으며, 멤버들도 그에게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360° Tour 이후로는 비주얼 아트와 무대장치를 적극 활용하여 단순한 노래부르고 즐기는 콘서트가 아니라 사회참여적 요소를 지닌 뮤지컬 같은 종합예술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6.1. 내한
U2/내한 문서 참조.
7. 디스코그래피
7.1. 수상
그래미 어워드 46회 후보지명 중 22회 수상.
'''2006 - 48TH ANNUAL GRAMMY AWARDS'''
'''Album Of The Year'''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Song Of The Year'''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Sometimes You Can't Make It On Your Own
Best Rock Song
City Of Blinding Lights
Best Rock Album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2005 - 47TH ANNUAL GRAMMY AWARDS'''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Vertigo
Best Rock Song
Vertigo
Best Short Form Music Video
Vertigo
'''2002 - 44TH ANNUAL GRAMMY AWARDS'''
'''Record Of The Year'''
'''Walk On'''
Best Pop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Stuck In A Moment You Can't Get Out Of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Elevation
Best Rock Album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2001 - 43RD ANNUAL GRAMMY AWARDS'''
'''Record Of The Year'''
'''Beautiful Day'''
'''Song Of The Year'''
'''Beautiful Day'''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Beautiful Day
'''1995 - 37TH ANNUAL GRAMMY AWARDS'''
Best Music Video, Long Form
Zoo TV - Live From Sydney
'''1994 - 36TH ANNUAL GRAMMY AWARDS'''
Best Alternative Music Album
Zooropa
'''1993 - 35TH ANNUAL GRAMMY AWARDS'''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Achtung Baby
'''1989 - 31ST ANNUAL GRAMMY AWARDS'''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Desire
Best Performance Music Video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1988 - 30TH ANNUAL GRAMMY AWARDS'''
'''Album Of The Year'''
The Joshua Tree
Best Rock Performance By A Duo Or Group With Vocal
The Joshua Tree
8. 투어
- U2-3 Tour (1979 ~ 1980)
- 11 O'Clock Tick Tock Tour (1980)
- Boy Tour (1980 ~ 1981)
- October Tour (1981 ~ 1982)
- War Tour (1982 ~ 1983)
- The Unforgettable Fire Tour (1984 ~ 1985)
- The Joshua Tree Tour (1987)
- Lovetown Tour (1989 ~ 1990)
- Zoo TV Tour (1992 ~ 1993)
- PopMart Tour (1997 ~ 1998)
- Elevation Tour (2001)
- Vertigo Tour (2005 ~ 2006)
- U2 360° Tour (2009 ~ 2011)
- Innocence + Experience Tour (2015)
- The Joshua Tree Tour 2017 (2017)
- Experience + Innocence Tour (2018)
- The Joshua Tree Tour 2019 (2019)[19]
[1] 왼쪽부터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보노, 디 에지[2] 어마어마하게 롱런하고 있는 밴드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한 유일한 밴드다.[3] 당장 이 밴드의 오프닝으로 서는 밴드가 스노우 패트롤, 뮤즈, 인터폴(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노엘 갤러거 등... 신인 때 오프닝으로 섰었다는 게 아니라 전부 성공한 후인 2009년 이후의 이야기다. 현재에 들어서는 U2보다 음반이 많이 팔리는 가수도 있고, U2보다 평론이 좋은 가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U2만큼의 관중 동원력을 가진 가수는 굉장히 드물다. U2와 함께 롤링 스톤스, 마이클 잭슨 등이 있다.[4] 정확히는 세컨더리 스쿨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섞인 것이라 보면 된다. 당시 U2 멤버들의 학년은 한국으로 치자면 고등학교 2-3학년 정도.[5] 디 에지의 형이다.[6] 앨범 부클릿에 위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7] 피의 일요일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 해당 문서 참조.[8] 뮤직비디오를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이던 스코틀랜드 출신인 도널드 카멜(1934~1996)이 맡았다. 이 사람은 25년동안 딱 4편 영화를 감독하면서 제작자랑 다투고 1996년 마지막 영화 와일드 사이드(한국 개봉제목은 와일드 게임) 편집 일로 충돌한 끝에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이 사람 영화로 한국에 좀 알려졌던 게 바로 딘 쿤츠 원작인 Demon seed / 악령의 종자(대우비디오판 제목) 프로테우스 4 -토요명화 제목- (1977)로 1991년 4월 17일 토요명화로 일부 삭제하고 더빙 방영했는데. 기계가 여자를 강간하여 반인반기계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상미적인 분위기로 뮤직비디오 연출도 여럿 맡았었다.[9] 갈등은 봉합하고 불화는 벗어나지만 음악적 주도권은 전반적으로 보노와 에지에게 넘어갔다. 그전까지 간단하지만 개성있던 베이스와 드럼 라인은 이후 근음/비트 셔틀로 상당히 간소해지게 된다. 초기 U2를 좋아하던 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분.[10] 이 시기의 사회 활동으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작업한, 보스니아 내전을 비판한 "Miss Sarajevo" 싱글 발매가 있다. 1997년 Popmart 투어 때는 직접 사라예보로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11] 실제로 이 당시 앨범은 실패했지만 투어는 돌아야겠는데 Zoo Tv Tour는 당대 최신 기술의 집합이라 당시 밴드가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12] 애덤, 디 에지는 잉글랜드 출신.[13] 1982년에 나오기로 했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공연 직전 취소. 2010년엔 원래 헤드라이너로 확정이 되어 있었지만 보노의 허리 통증으로 취소되고 고릴라즈로 대체됐었다.[14] 글래스톤베리 측에서도 U2를 위해 특별히 캣워크를 설치했다.[15] 특히나 골수 메탈 팬들 중에 U2의 노래가 재미가 없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물론 메탈헤드라도 취향은 제각각이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16] 주로 조니의 기타가 디 에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17] 원래 U2가 첫째날 헤드라이너 였지만 보노의 허리 통증으로 인해 캔슬되고, 고릴라즈로 대체됐다. 뮤즈는 둘째날 헤드라이너였다.[18] 2018년 최고의 수익을 올린 음악가 1위가 U2였으며 2위는 콜드플레이, 3위는 에드 시런이었다.#[19] 최초의 대한민국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