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뚜르가츠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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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이 형 아르까지, 오른쪽이 보리스
Арка́дий Ната́нович Струга́цкий (Arkady Natanovich Strugatsky, 아르까지 나타노비치 스뚜르가츠끼, 1925년 8월 28일, 당시 소련(현 조지아) 바투미 ~ 1991년 10월 12일 모스크바)
Бори́с Ната́нович Струга́цкий (Boris Natanovich Strugatsky, 보리스 나타노비치 스뚜르가츠끼, 1933년 4월 14일 레닌그라드 ~ 2012년 11월 19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Братья Стругацкие (Arkady and Boris Struga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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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SF 소설가.
미술평론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련(현 조지아) 바투미에서 살다가 장남인 아르까지를 낳고, 레닌그라드로 이주했는데, 이주한 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며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휘말려 아르까지는 아버지와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탈출하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1943년 군에 들어가 포병 교육을 받다가 모스크바의 군사언어학교에 들어갔고, 동생인 보리스는 어머니와 함께 레닌그라드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르까지는 그후 1949년 영어/일본어 번역사 자격을 획득하고 일본 문학 몇 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1955년 전역하여 에디터와 기자를 하고 있었다.
이 형제의 같이 소설쓰기는 1958년인데, 처음 같이 소설을 쓸 당시 형인 아르까지는 에디터와 기자를 하고 있었고, 동생인 보리스는 레닌그라드 근처의 풀코보 천문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겸 천체물리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스뚜르가츠끼 형제는 20~30년대 발달했다 사라진 러시아 안티 유토피아 문학, 즉 디스토피아 문학의 맥을 다시 이었다.''' 처음엔 스타니스와프 렘과 더불어 안드로메다 성운을 쓴 이반 예프레모프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그러니까 초반기에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1] 소련 작가협회에도 가입하고 그랬지만, 어느새 성격이 바뀌게 되고, 프라하의 봄을 보면서 자신들의 스타일인 안티 유토피아 문학을 쓰게 된다. 그러니까 초기 작품에서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초래한 도덕성과 인간성의 상실, 역사앞에서의 개인의 책임이라는 주제를 다뤘지만, 후에 가면 소비에트 관료체제라던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넣으며, 통제와 감시로 고통받는 인간의 위기 의식을 넣게 된다.
이들이 속한 시기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보면 소비에트 합리주의 시절인데, 이들은 이 합리주의 시절에 사회비판도 집어넣은 SF 소설을 짓기 시작한다. 즉,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소련체제에 대항하여 안티 유토피아, 즉 디스토피아를 주장하게 된 것.
이 형제가 지은 소설중에는 여러 작품에 영향을 미친 소설이 있는데, 바로 노변의 피크닉(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 Roadside Picnic)이다. 이 노변의 피크닉은 여러 매체에 인용되었고 오마쥬 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러시아 영화)가 있다. 렘과 달리 스투르가츠키 형제는 이 영화화를 인상깊게 봤는지 스토커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또한 메트로 유니버스의 기반 설정, 그리고 스토커 시리즈와 더불어 영화화에 드라마까지 나왔다. 간단하게 Zone 안에는 이상한 현상들이 존재하고 있고, 누군가는 계속 들어간다는 클리셰를 이 형제가 거진 처음 작성한 것[2] 그것말고도 정오 세계관 라는 연작 시리즈도 있다. 이 정오 세계관 작품 중 '신이 되는 건 어렵다'(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 Hard to Be a God)'는 두 번이나 (그 중 한번은 알렉세이 게르만이 영화화했다) 영화화되기도 했다. 소설을 넘어서 영화계 거장들에게 사랑받던 작가였던 셈.
이들의 소설은 자유진영의 언어로도 번역되었지만 소련에서 인기를 얻은것 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3] . 여튼 70년대 소련정부는 자기들을 우회적으로 갈구는 작가들에게 아주 신물이 나있었다. SF의 주 목적이 그러했듯 교묘하게 SF라고 우기면서 체제를 비판했기 때문. 여튼 그래서 소련정부는 이런 소설들을 금지하기 시작했고, 이런 운동의 중추격인 형제들에게까지 마수가 닥쳐왔다. 하지만 스뚜르가츠키 형제들은 솔제니친과 다르게 이미 소련작가연맹의 회원이었으며, 또한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4] 거기다가 소련정부엔 환멸을 느끼지만 사상적으론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니.... 그러니까 간단하게 굴라크도 못보내고 그렇다고 턱치니 욱하고 죽이는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련정부는 이런 소설 그만 쓰라는 압력을 주지만 그렇다고 소설은 계속 써댔고... 위와 같은 스타일로 소설을 적었고, 체제 비판이 하나도 없다고 애걸하고 그랬지만... 그러나 이미 당할대로 당한 소련정부는 검열을 자행했고... 그 노변의 피크닉 한 권을 써내기 위해서 소련 전연방저작권협회, 전소연방 레닌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탄원서와 편지를 수없이 보내야 했었다. 그리고 편집부는 겁먹어서 계약파기를 시도했었으나, 결론은 그 소련 체제에서 출판사가 책 내기를 원치 않았으나 출간을 밀어붙였고, 성공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세상이 끝날때까지 앞으로 10억년'과 '노변의 피크닉'이 이럴때 나왔다. 여튼 당이 이들을 조직적으로 까내리고 있었지만 인기는 여전해서 소련시절 발견한 소행성에 이들 형제의 성을 붙이는 등 사람들은 이들을 기억해줬다. 소련정부가 이런거 말고 다른 짓거리를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여튼 그렇게 소련이 붕괴되고, 보리스가 러시아 연방이 형성되고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도, 형제 특유의 갈구는 본능으로 푸짜르를 신나게 긁기 시작했다. 아니, 소련시절에는 우회적으로 까기라도 했지, 소련이 해체되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가 됐다는 이유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옐친과 푸틴을 대놓고 까댔다. 반 푸틴 시위를 벌이던 여성 펑크록 밴드인 푸시 라이엇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나 등등... 물론 푸틴은 자기를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방사능 홍차를 주거나 감옥에 넣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으나 러시아식이니 뭐니 해도 어찌됐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단순비판론자까지 잡아넣는 것은 무리였다. 이거저거 보이지 않게 불이익을 주긴 했지만 애초에 그런 거 신경쓰는 작가가 아니니 그 또한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보리스는 천수를 누리다가 2012년에 작고했으며, 그의 사망은 전세계 언론을 탔다.
이 형제와 관련되어서 여러 일화가 있는데, 아바타 개봉당시 아바타의 설정이 이 형제가 지은 정오 세계관과 유사하단걸 러시아인들이 알게 되었고, 러시아인들이 '그들이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 라는 이유로 폭발했었다. 얼마나 폭발했냐 하면 제 2차 소스를 거쳐 한국까지 뉴스가 전해질 정도로... 물론 소용돌이의 중간에 서있었던 보리스는 '그런거 신경안쓴다' 했지만... 여튼 지금도 저 형제의 책을 '''의무'''로 산다는 사람이 현재도 있는마당에(...)
그리고 이 형제가 죽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이 형제가 오랜기간동안 살았으며 작품으로 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이 형제를 기리는 광장을 만드는데 동의했다.
현재까지 한국에 출판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왼편이 형 아르까지, 오른쪽이 보리스
Арка́дий Ната́нович Струга́цкий (Arkady Natanovich Strugatsky, 아르까지 나타노비치 스뚜르가츠끼, 1925년 8월 28일, 당시 소련(현 조지아) 바투미 ~ 1991년 10월 12일 모스크바)
Бори́с Ната́нович Струга́цкий (Boris Natanovich Strugatsky, 보리스 나타노비치 스뚜르가츠끼, 1933년 4월 14일 레닌그라드 ~ 2012년 11월 19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Братья Стругацкие (Arkady and Boris Struga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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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소련의 SF 소설가.
미술평론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련(현 조지아) 바투미에서 살다가 장남인 아르까지를 낳고, 레닌그라드로 이주했는데, 이주한 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며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휘말려 아르까지는 아버지와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탈출하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1943년 군에 들어가 포병 교육을 받다가 모스크바의 군사언어학교에 들어갔고, 동생인 보리스는 어머니와 함께 레닌그라드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르까지는 그후 1949년 영어/일본어 번역사 자격을 획득하고 일본 문학 몇 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1955년 전역하여 에디터와 기자를 하고 있었다.
이 형제의 같이 소설쓰기는 1958년인데, 처음 같이 소설을 쓸 당시 형인 아르까지는 에디터와 기자를 하고 있었고, 동생인 보리스는 레닌그라드 근처의 풀코보 천문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겸 천체물리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2. 러시아 문학사에 끼친 영향
'''스뚜르가츠끼 형제는 20~30년대 발달했다 사라진 러시아 안티 유토피아 문학, 즉 디스토피아 문학의 맥을 다시 이었다.''' 처음엔 스타니스와프 렘과 더불어 안드로메다 성운을 쓴 이반 예프레모프의 영향을 받았지만 곧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찾게 된다. 그러니까 초반기에는 열렬한 공산주의자로[1] 소련 작가협회에도 가입하고 그랬지만, 어느새 성격이 바뀌게 되고, 프라하의 봄을 보면서 자신들의 스타일인 안티 유토피아 문학을 쓰게 된다. 그러니까 초기 작품에서는 기술과 문명의 진보가 초래한 도덕성과 인간성의 상실, 역사앞에서의 개인의 책임이라는 주제를 다뤘지만, 후에 가면 소비에트 관료체제라던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넣으며, 통제와 감시로 고통받는 인간의 위기 의식을 넣게 된다.
이들이 속한 시기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보면 소비에트 합리주의 시절인데, 이들은 이 합리주의 시절에 사회비판도 집어넣은 SF 소설을 짓기 시작한다. 즉,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소련체제에 대항하여 안티 유토피아, 즉 디스토피아를 주장하게 된 것.
이 형제가 지은 소설중에는 여러 작품에 영향을 미친 소설이 있는데, 바로 노변의 피크닉(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 Roadside Picnic)이다. 이 노변의 피크닉은 여러 매체에 인용되었고 오마쥬 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러시아 영화)가 있다. 렘과 달리 스투르가츠키 형제는 이 영화화를 인상깊게 봤는지 스토커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또한 메트로 유니버스의 기반 설정, 그리고 스토커 시리즈와 더불어 영화화에 드라마까지 나왔다. 간단하게 Zone 안에는 이상한 현상들이 존재하고 있고, 누군가는 계속 들어간다는 클리셰를 이 형제가 거진 처음 작성한 것[2] 그것말고도 정오 세계관 라는 연작 시리즈도 있다. 이 정오 세계관 작품 중 '신이 되는 건 어렵다'(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 Hard to Be a God)'는 두 번이나 (그 중 한번은 알렉세이 게르만이 영화화했다) 영화화되기도 했다. 소설을 넘어서 영화계 거장들에게 사랑받던 작가였던 셈.
3. 그들은 정부를 욕했지만 정부는 절대로 막을 수 없었다
이들의 소설은 자유진영의 언어로도 번역되었지만 소련에서 인기를 얻은것 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3] . 여튼 70년대 소련정부는 자기들을 우회적으로 갈구는 작가들에게 아주 신물이 나있었다. SF의 주 목적이 그러했듯 교묘하게 SF라고 우기면서 체제를 비판했기 때문. 여튼 그래서 소련정부는 이런 소설들을 금지하기 시작했고, 이런 운동의 중추격인 형제들에게까지 마수가 닥쳐왔다. 하지만 스뚜르가츠키 형제들은 솔제니친과 다르게 이미 소련작가연맹의 회원이었으며, 또한 다른 나라로 망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4] 거기다가 소련정부엔 환멸을 느끼지만 사상적으론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니.... 그러니까 간단하게 굴라크도 못보내고 그렇다고 턱치니 욱하고 죽이는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련정부는 이런 소설 그만 쓰라는 압력을 주지만 그렇다고 소설은 계속 써댔고... 위와 같은 스타일로 소설을 적었고, 체제 비판이 하나도 없다고 애걸하고 그랬지만... 그러나 이미 당할대로 당한 소련정부는 검열을 자행했고... 그 노변의 피크닉 한 권을 써내기 위해서 소련 전연방저작권협회, 전소연방 레닌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탄원서와 편지를 수없이 보내야 했었다. 그리고 편집부는 겁먹어서 계약파기를 시도했었으나, 결론은 그 소련 체제에서 출판사가 책 내기를 원치 않았으나 출간을 밀어붙였고, 성공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세상이 끝날때까지 앞으로 10억년'과 '노변의 피크닉'이 이럴때 나왔다. 여튼 당이 이들을 조직적으로 까내리고 있었지만 인기는 여전해서 소련시절 발견한 소행성에 이들 형제의 성을 붙이는 등 사람들은 이들을 기억해줬다. 소련정부가 이런거 말고 다른 짓거리를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여튼 그렇게 소련이 붕괴되고, 보리스가 러시아 연방이 형성되고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도, 형제 특유의 갈구는 본능으로 푸짜르를 신나게 긁기 시작했다. 아니, 소련시절에는 우회적으로 까기라도 했지, 소련이 해체되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가 됐다는 이유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옐친과 푸틴을 대놓고 까댔다. 반 푸틴 시위를 벌이던 여성 펑크록 밴드인 푸시 라이엇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나 등등... 물론 푸틴은 자기를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방사능 홍차를 주거나 감옥에 넣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으나 러시아식이니 뭐니 해도 어찌됐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단순비판론자까지 잡아넣는 것은 무리였다. 이거저거 보이지 않게 불이익을 주긴 했지만 애초에 그런 거 신경쓰는 작가가 아니니 그 또한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보리스는 천수를 누리다가 2012년에 작고했으며, 그의 사망은 전세계 언론을 탔다.
이 형제와 관련되어서 여러 일화가 있는데, 아바타 개봉당시 아바타의 설정이 이 형제가 지은 정오 세계관과 유사하단걸 러시아인들이 알게 되었고, 러시아인들이 '그들이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 라는 이유로 폭발했었다. 얼마나 폭발했냐 하면 제 2차 소스를 거쳐 한국까지 뉴스가 전해질 정도로... 물론 소용돌이의 중간에 서있었던 보리스는 '그런거 신경안쓴다' 했지만... 여튼 지금도 저 형제의 책을 '''의무'''로 산다는 사람이 현재도 있는마당에(...)
그리고 이 형제가 죽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이 형제가 오랜기간동안 살았으며 작품으로 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이 형제를 기리는 광장을 만드는데 동의했다.
4. 작품 목록
현재까지 한국에 출판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세상이 끝날때까지 아직 10억년 За миллиард лет до конца света (1977)[5] 열린책들에서 1988년 종말전 10억년이란 제목으로 처음 한국에 출판했었다. 그 뒤에, 세계문학전집에서 지금 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 노변의 피크닉 Пикник на обочине (1972)[6]
- 신이 되기는 어렵다 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 (1964)[7]
[1] 일단 형인 아르까지는 1955년까지 군에 있으면서 번역과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 열렬한 공산주의는 1985년 정오 세계관(Мир Полудня, Noon Universe)이 끝날때까지 이어진다.[2] 물론 노변의 피크닉의 '구역'은 외계인들이 만들고 간다지만 [3] 이건 어슐러 르 귄이 새로 쓴 노변의 피크닉의 추천사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도 이념 경쟁이 있어서, 둘 다 돌려까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애초에 자유진영에서도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자본주의 세계로 가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번에는 서방을 우회적으로 갈구는 소설을 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4] 형제의 처음 서방 외출은 1987년도이다. [5] 1988년, 알렉산드르 소쿠로프가 일식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6] 1979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스토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7] 2013년, 알렉세이 게르만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