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이드 오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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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éad[1] O'Connor.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1. 소개
1987년에 1집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삭발머리와 반골기질의 저항정신으로 유명. 1990년 2집 앨범에 수록한 <Nothing Compares 2 U>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쳐서[2] , 현재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곡을 뛰어넘는 히트곡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그 곡은 프린스의 곡을 커버[3] 해서 부른 것이라는게 아이러니.
오코너의 대표곡인 <Nothing Compares 2 U>의 뮤직비디오.
2. 저항정신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뛰어난 음악가이긴 하지만 저항정신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발언 및 행동들이 그녀의 음악 자체보다 유명하다. 아래는 대표적인 사건들.
-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아름다운 외모는 방해가 되고, 성상품화 또한 반대한다며 삭발.[4]
- 각종 공연이나 방송출연, 시상식 등의 출연을 거부. 이는 걸프전을 용인하는 분위기나, 소수민족에 대한 경시, 반여성적 태도, 또는 극단적인 상업주의 등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많은 음악가들의 꿈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에도 출연을 거부했는데,[5] 때문에 Best Alternative Music Performance 부문에서 수상했음에도 트로피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 IRA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무조건 옹호는 아니라 민간인이 휘말리는 테러는 비판했지만, 무조건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며 영국이 벌이는 북아일랜드 민간인 인권침해에 피의 일요일 사건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 반여성주의 뉘앙스를 풍기는 출연자가 있다는 이유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출연 요청 거절. 그로부터 2년 후인 1992년. 결국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출연한 그녀는 큰 사건 하나를 터뜨리게 되는데...
- 1992년 10월 3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그녀는 밥 말리의
를 부르면서 인종차별(Racism)이라는 가사를 아동학대(Child abuse)로 바꿔 불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어버린 뒤, "진짜 적과 싸우자"라며 퇴장해버렸다. 이는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건 은폐 및 각종 인권문제 은폐[7] 의혹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8] 이는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훗날 본인을 교회를 증오하는 가톨릭 신자라 칭했다. 한술 더 이단교파에 들어가 가톨릭에서 인정하지 않는 여성 사제 서임을 받았다.[9]
- 그로부터 2주 뒤 뉴욕에서 열린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 헌정공연에 참가. 원래 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으나, 관중들로부터 노래를 연주하지 못할 정도로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그녀는 SNL에서 불렀던
를 무반주로 절규하듯 열창한 뒤 퇴장했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링크
- 마일리 사이러스가 Wrecking Ball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오코너의
뮤직비디오에서 일부 모티브를 차용했다고 밝혔고, 이후 MTV VMA 사건을 알게 된 오코너는 사이러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주위 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 성을 상품화하지 말라'는 것. 큰 문제 없이 그저 권유하는 내용이었으나 사이러스는 오코너의 과거[10] 를 들추며 헐뜯었고, 분노한 오코너는 사이러스가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모습들에 대해, 불우했던 유년시절[11] 과 아일랜드 민족 정서가 그 뿌리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있다.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3. 여담
- MBC <놀러와>에 출연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인 김윤아는, 오코너를 여성 뮤지션들의 우상이라 칭하며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아티스트라고 밝혔다. 오코너의 곡인
를 직접 키보드를 치며 부른건 덤.
- 2015년. 48세의 나이로 할머니가 되었다. 본인은 이를 매우 기쁘게 생각하여 페이스북에 손주를 안고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허나 손주를 얻은 기쁨도 잠시. 아들에게 큰 병이 생겨 모든 공연을 취소했다.
- 2017년부터 이름을 Magda Davitt으로 바꿨다.#
- 2018년 현재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을 Shuhada' Davitt으로 변경하였다.
- 과거 90년대에 노엘 갤러거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노엘이 첫부인인 멕 매튜스와 결혼하기 전이었다고 한다.
[1] 아일랜드어 발음은 장음 때문에 "시네드"[2] 1990년 빌보드 핫 100 1위, 1990년 빌보드 연말 차트 3위.[3] 항간에는 시네이드 오코너가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라는 루머가 있는데, 프린스가 이미 몇 년 전에 발표했던 곡이다.[4] 20대 때 머리를 기른 시절도 있었다. 다만 그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5] 신인이던 1989년엔 그래미에서 공연을 한 번 하긴 했다. [6] 이는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비판받았다.[7] 대표적으로, 영화로도 제작된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이 있는데, 오코너 본인도 막달레나 수녀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8]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아동 성범죄 문제와 인권문제는 정교유착 문제까지 얽혀서 특히 악명이 높았다. 이때문에 한때 폴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신실한 나라 취급받던 아일랜드 가톨릭 교단은 동성결혼과 낙태가 합법화되는 와중에도 목소리 하나 못 낼 정도로 영적 권위를 잃은 상황[9] 가톨릭에서는 "세례 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가톨릭교회법 제1024조)."[10] 시네이드 오코너는 양극성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를 들먹인 것. 또한 문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사진 사건도 언급하였다.[11] 빈민촌에서의 생활, 부모의 이혼과 폭력, 수녀원 보호시설에서의 성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