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연말 차트
1. 개요
'''Billboard Year-End'''
매년 11월 말에 그 해의 히트곡을 결산하는 차트이다.[1] 보통 11월 3주차까지만 집계한다. 1946년부터 존재했던 차트로 1946년부터 Year End XXXX라고 불리고 있다.
2. 상세
차트가 개설된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연말차트 35위까지 발표하다가 1949년부터 1955년까지는 연말차트 30위까지 발표하는 것으로 줄였다. 그러나 1956년 순위를 대폭 늘려 1958년까지는 연말차트 50위까지 발표했고, 1959년부터 연말차트 100위까지 발표하며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Year-end top singles", 1949년부터 1955년까지는 "Year-end top 30 singles", 1956년부터 1958년까지는 "Year-end top 50 singles", 1959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는 "Year-End Hot 100 singles"가 공식 명칭이다.[2]
이 차트 덕분에 짧고 굵게 높은 순위에 있던 곡의 민낯과 가늘지만 길게 유지한 곡들의 진가가 드러나기도 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2004년 American Idol 시즌 3의 우승자 판타지아(Fantasia)의 "'I Believe'"[3] 가 있고 후자를 대표하는 사례는 굉장히 많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세 곡이 있는데, 페이스 힐(Faith Hill)의 컨트리 팝 곡 '''Breathe'''[4] , Sam The Sham & The Pharaohs의 '''Wooly Bully'''[5] , 포스트 그런지 밴드 Lifehouse의 '''Hanging By A Moment'''[6] 를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정말로 1위는 100점, 2위는 99점, 3위는 98점... 100위는 1점을 주는 식으로 집계했지만 2016년 아델의 Hello가 3주 동안만 집계된 성적으로 연말 차트 35위에 오른 것을 보면 최근 음반 시장의 변화로 인해 연말 차트 집계 방식도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역대 연말 차트 1위 곡
- 이 항목에는 연도별 연말 차트 "1위 곡"만을 서술한다. 연도별 연말 차트 탑 100은 아래의 항목 "연도별 빌보드 연말 차트"에 링크되어 있는 연도별 연말 차트 문서들에서 서술하여야 한다.
- 1946년 - 페리 코모 - Prisoner of Love[7]
- 1947년 - Francis Craig - Near You
- 1948년 - Pee Wee Hunt - Twelfth Street Rag
- 1949년 - Vaughn Monroe - Riders in the Sky
- 1950년 - Gordon Jenkins & The Weavers - Goodnight, Irene[8]
- 1951년 - 냇 킹 콜 - Too Young[9][10]
- 1952년 - Leroy Anderson - Blue Tango[11]
- 1953년 - Percy Faith - The Song From Moulin Rouge[12][13]
- 1954년 - Kitty Kallen - Little Things Mean A Lot[14]
- 1955년 - Perez Prado - Cherry Pink and Apple Blossom White[15][16]
- 1956년 - 엘비스 프레슬리 - Heartbreak Hotel[17][18]
- 1957년 - 엘비스 프레슬리 - All Shook Up[19][20]
- 1958년 - Domenico Modugno - Volare (Nel blu dipinto di blu)[21][22]
- 1959년 - Johnny Horton - The Battle Of New Orleans[23]
- 1960년 - Percy Faith - Theme from a Summer Place[24]
- 1961년 - Bobby Lewis - Tossin' and Turnin' [25]
- 1962년: Acker Bilk - Stranger on the Shore[26]
- 1963년 - Jimmy Glimer and The Fireballs - Sugar Shack[27][28]
- 1964년 - 비틀즈 - I Want To Hold Your Hand[29][30]
- 1965년 - Sam The Sham & The Pharaohs - Wooly Bully[31]
- 1966년 - Sgt. Barry Sadler - Ballad Of The Green Berets[32][33][34][35]
- 1967년 - Lulu - To Sir With Love[36]
- 1968년 - 비틀즈 - Hey Jude[37]
- 1969년 - The Archies - Sugar, Sugar[38]
- 1970년 - 사이먼 앤 가펑클 - Bridge Over Troubled Water[39]
- 1971년 - Three Dog Night - Joy to the World[40]
- 1972년 - 로버타 플랙 - The First Time I Saw Your Face[41][42]
- 1973년 - Tony Orlando & Dawn -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43]
- 1974년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The Way We Were'[44]
- 1975년 - Captain & Tennille - Love Will Keep Us Together[45]
- 1976년 - 윙스 - Silly Love Songs[46][47][48]
- 1977년 - 로드 스튜어트 - Tonight's The Night (Gonna Be Alright)[49]
- 1978년 - 앤디 깁 - Shadow Dancing[50]
- 1979년 - The Knack - My Sharona[51]
- 1980년 - 블론디 - Call Me[52]
- 1981년 - Kim Carnes - Bette Davis Eyes[53]
- 1982년 - 올리비아 뉴튼 존 - Physical[54][55]
- 1983년 - The Police - Every Breath You Take[56]
- 1984년 - 프린스 - When Doves Cry[57][58][59]
- 1985년 - Wham! - Careless Whisper[60]
- 1986년 - Dionne & Friends[61] - That's What Friends Are For[62]
- 1987년 - 뱅글스 - Walk Like An Egyptian[63]
- 1988년 - 조지 마이클 - Faith[64][65]
- 1989년 - 시카고 - Look Away[66]
- 1990년 - Wilson Phillips[67] - Hold On[68]
- 1991년 - 브라이언 아담스 -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69]
- 1992년 - 보이즈 투 멘 - End of the Road[70]
- 1993년 - 휘트니 휴스턴 - I Will Always Love You[71]
- 1994년 - 에이스 오브 베이스 - The Sign[72]
- 1995년 - 쿨리오 - Gangsta's Paradise[73]
- 1996년 - 로스 델 리오 - Macarena[74]
- 1997년 - 엘튼 존 - Candle In The Wind 1997[75]
- 1998년 - Next - Too Close[76]
- 1999년 - 셰어 - Believe[77][78]
- 2000년 - Faith Hill - Breathe[79]
- 2001년 - Lifehouse - Hanging By A Moment[80][81]
- 2002년 - 니클백 - How You Remind Me[82][83]
- 2003년 - 50 Cent - In Da Club[84]
- 2004년 - 어셔 feat. Lil Jon & Ludacris - Yeah![85][86]
- 2005년 - 머라이어 캐리 - We Belong Together[87]
- 2006년 - 대니얼 파우터 - Bad Day[88]
- 2007년 - 비욘세 - Irreplaceable[89][90]
- 2008년 - 플로 라이다 feat. T-Pain - Low[91]
- 2009년 - 블랙 아이드 피스 - Boom Boom Pow[92]
- 2010년 - 케샤 - TiK ToK[93]
- 2011년 - 아델 - Rolling in the Deep[94]
- 2012년 - Gotye feat. Kimbra - Somebody That I Used To Know[95]
- 2013년 - 맥클모어 feat. Wanz - Thrift Shop[96]
- 2014년 - 퍼렐 윌리엄스 - Happy[97]
- 2015년 - 마크 론슨 feat. 브루노 마스 - Uptown Funk[98]
- 2016년 - 저스틴 비버 - Love Yourself[99][100]
- 2017년 - 에드 시런 - Shape of You[101][102]
- 2018년 - 드레이크 - God's Plan[103][104]
- 2019년 - 릴 나스 엑스 - Old Town Road[105]
- 2020년 - 위켄드 - Blinding Lights[106]
4. 연도별 빌보드 연말 차트 (싱글)
- 이 리스트는 연도별 빌보드 연말 차트를 기록하는 문서이다.
- 연도별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다. 연말 차트 1위 곡들은 바로 위의 항목에 따로 기재한다.
- 연말 차트를 직접 이 문서에 작성하지 않는다. 연말 차트는 여기에 링크해 놓은 연도별 연말 차트 문서에 작성해야 한다.
4.1. 1950년대
- 195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5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2. 1960년대
- 196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6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3. 1970년대
- 197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7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4. 1980년대
- 198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8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5. 1990년대
- 199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199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6. 2000년대
- 200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0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7. 2010년대
- 2010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1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2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3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4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5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6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7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8년 빌보드 연말 차트
- 2019년 빌보드 연말 차트
4.8. 2020년대
5. 빌보드 200 연말 차트
5.1. 역대 연말 차트 1위 앨범
5.2. 연도별 빌보드 연말 차트 (앨범)
[1] 연말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은 그 해를 통틀어 미국 전역에서 제일 히트한 노래이며, 연말차트 100위는 그 해를 통틀어 미국 전역에서 100번째로 크게 히트한 곡이다.[2] 앨범 연말 차트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빌보드 연말 차트"는 이 "싱글 차트/송 차트" 기반이다. 앨범 차트도 이 싱글 기반 연말 차트와 방식은 같다.[3] 1위로 데뷔 후 4주 만에 핫 100 40위 권에서 나갔다. 이 노래가 1위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아메리칸 아이돌 덕분이었지 노래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다.[4] 2000년 산타나의 메가 히트곡 2개("Smooth", "Maria Maria")와 여러 다른 메가 히트곡들에 의해 빌보드 핫 100 최고 순위는 2위에 그쳤지만 2000년 연말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5] 빌보드 역사 최초로 빌보드 핫 100 2위곡이 연말차트 1위를 차지한 케이스이다. 당시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등의 수많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를 누르고 1965년 미국 최고의 히트곡으로 당당히 선정되었다. 이 해 비틀즈의 Yesterday와 롤링 스톤스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나왔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것. 참고로 이들은 미국 밴드이다.[6] 2001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인데, 이 곡 역시 최고 순위가 빌보드 핫 100 2위였지만 꾸준한 인기로 2001년 연말차트의 고지를 점령했다.[7] 페리 코모는 대중적인 가수였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당시에 10대 여자들(bobby soxers)의 끝없는 사랑을 받는 틴 아이돌(Teen idol)이었다면, 페리 코모는 모든 연령층에서 인기를 끄는 진정한 "대중가수"였다.[8]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 13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 '8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1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9] 이 당시 냇 킹 콜의 인기를 보여준다. 냇 킹 콜과 비슷한 인기를 누렸던 프랭크 시나트라 역시 연말 차트 1위는 기록하지 못했다. 참고로 냇 킹 콜은 차트 개설 이후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최초의 미국 흑인 아티스트이다.[10]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11]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다른 두 차트에서는 1위를 기록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로 연말 차트에서 1위에 선정되었다.[12] 1952년 개봉한 영화 "Moulin Rouge"(2001년의 물랑루즈가 아니다.)의 주제곡이다. 이 영화는 영국 영화인데 1952년 당시 기준으로 15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무려 제작비의 6배인 900만 달러를 벌어온 대히트작이다.[13]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14]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비연속 7주 1위'를 했다.[15] 미국에 맘보 열풍을 불러온 곡이다. Perez Prado는 맘보의 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16]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비연속 4주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를 했다. 빌보드 탑 100은 이때 존재하지 않았다. [17] 엘비스 프레슬리 신드롬이 일어난 때로, 그 충격은 브리티시 인베이전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컸다. 락앤롤 음악이 본격적으로 미국의 주류 음악을 차지한 해이며, 엘비스는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연말차트 1, 2위를 모두 석권한 아티스트가 된다.[18]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3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빌보드 탑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했다.[19] 2년 연속 엘비스가 연말 차트 1위를 했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 아무도 깨지 못했다. 이 당시 미국 내에서 엘비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20] 빌보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8주 연속 1위', 빌보드 라디오 DJ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 빌보드 주크박스 차트에서 '9주 연속 1위', 빌보드 탑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했다.[21] 빌보드 핫 100 역사상 두 번째 1위 곡이자 (첫 번째는 리키 넬슨의 "Poor Little Fool".) 빌보드 핫 100 역사상 최초로 외국 노래가 1위를 차지한 케이스이다. 이탈리아 노래이다. [22]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비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노래의 연속 1위를 저지한 노래가 바로 두왑 그룹 The Elegants의 Little Star. [23] 컨트리 곡이다.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24] Percy Faith의 두 번째 연말차트 1위 곡이다. Percy Faith는 영화 음악가이자 밴드의 리더인데, 연주 음악의 대가이자 이지 리스닝의 대가이다. 무려 '연속 9주 1위'를 차지했는데 차트 개편 이후 2번째 기록으로, 최초의 9주 1위는 바비 다린의 Mack the Knife이다.[25] 이 곡은 리듬 앤 블루스 곡으로,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대히트곡이자 냇 킹 콜의 "Too Young" 이후 10년 만에 미국 흑인 아티스트가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경우가 되었다.[26] 영국의 아티스트로, 빌보드 핫 100에서 '1주 1위'를 했지만 1962년 미국의 최고 히트곡으로 선정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영국인 최초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했다.[27] 개러지 락과 락앤롤 장르의 곡이다.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28] 원래는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가 연말 1위였는데 이 노래는 빌보드 1위곡이 아니다! 최고 성적은 3위이다.[29]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된 해였다. 또한 1964년 비틀즈는 빌보드 연말 차트 1,2위 모두를 석권하였다. 8년 전 엘비스 프레슬리도 기록했지만 핫 100 차트로 개편된 이후로는 처음이며, 이후 2004년 어셔 전까지 무려 40년 간 유지된 기록이다.[30]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하였는데, 자신들의 노래인 She Loves You에 의해 1위에서 물러났으며, 그 She Loves You는 2주 연속 1위를 하다가 또 자신들의 노래인 Can't Buy Me Love에 밀려 물러났다. 이 Can't Buy Me Love는 5주 연속 1위를 하다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 "Hello, Dolly!"에 밀려 물러나게 된다. 3개의 곡을 연달아 1위에 올린 것은 아직까지도 이 사례가 유일하다.[31]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 100에서 2위를 차지한 곡이 그 해의 최고 히트곡으로 선정된 케이스이다. 2000년의 "Faith Hill"의 Breathe 전까지 무려 35년 간 유일한 케이스였다. 이들은 미국 락 밴드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수많은 영국 밴드들을 누르고 당당히 1965년 최고 히트곡으로 선정되었다.[32]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Barry Sadler는 현직 군인이었다. 군인 겸 가수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빌보드 핫 100 진입', '빌보드 핫 100 1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까지 유일무이한 기록을 달성했다. 이 곡의 제목을 해석하면 그린 베레의 발라드이다. 1966년 역시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초기 락 음악, 모타운 음악의 전성기였는데 이들을 누르고 1966년 최고 히트곡으로 선정되었다.[33]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34] 존 웨인이 주연, 감독을 맡은 영화 그린 베레 #s-3의 OST였으나 가사가 전사하는 그린베레 대원의 유언인지라.. 당시 그린베레 대원들에게 큰 환영은 못 받았다고 한다. 정작 배리 새들러 본인은 자신이 겪은 전우의 전사를 보고 가사를 쓴 것이라고 한다. 슬프게도 배리 새들러는 1988년 머리에 총을 맞아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고 결국 1년 뒤인 1989년 11월 사망하게 된다.[35] 원래 1위곡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인데 이 노래는 최고 순위가 4위(!)이다.[36] Lulu는 영국의.여가수로, 싸이키델릭 락과 히피 문화의 최전성기였던 1967년 쟁쟁한 락 노래들을 누르고 당당히 연말 차트 1위에 올랐다.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37] 이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함으로써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Percy Faith 다음으로 2개의 연말 차트 1위 곡을 기록한 아티스트가 되었다. 빌보드 핫 100에서 9주간 1위를 기록하였다. 9주 1위는 이 당시 공동 최장기 기록이었다. 1959년 연말차트 1위를 기록한 바비 다린의 "Mack The Knife"가 처음으로 기록했다.[38] TV 애니메이션 아치 코믹스의 OST로 발표된 명곡. 버블검 팝 장르의 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 1969년 역시 락 음악과 흑인 음악의 전성기였지만 이 노래가 1969년의 제일 큰 히트곡으로 선정되었다.[39]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로 알려진 발라드 명곡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대표곡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이다.[40] 1971년 4월 셋째 주 부터 5월 넷째 주까지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한 곡이다.[41] 1961년 Bobby Lewis의 "Tossin' and Turnin" 이후 11년 만에 미국 흑인 아티스트가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경우가 되었다.[42] 빌보드 핫 100에서는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43]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44] 동명의 영화 "The Way We Were"의 주제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3주 연속 1위'를 했다.[45]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46] 디스코 장르의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케이스이며, 이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하면서,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시절과 윙스 시절을 포함해 총 3개의 연말 차트 1위 곡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아무도 깨지 못했다.[47]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비연속 1위'를 했다. 중간에 다이애나 로스의 "Love Hangover"가 2주 동안 1위를 하여 연속 1위가 저지되었다.[48] 이 노래는 당시 말랑말랑한 사랑노래나 한다며 평론가들 이 폴을 까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디스코풍 말랑말랑한 사랑노래이다. 제목 또한 '어리석은 사랑노래'로, 평론가들을 제대로 저격하는 노래.[49] 1976년 말부터 1977년 1월 첫째 주까지 빌보드 핫 100에서 '8주 연속 1위'를 했는데, 로드 스튜어트의 히트곡들 중 가장 성공한 곡이다.[50] 디스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노래로, 앤디 깁의 대표곡이기도 하며, 빌보드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한 대히트곡이었다.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가 빌보드 10주 1위를 하고, 토요일 밤의 열기 OST로 대박을 터뜨리던 비 지스가 당시 차트를 휩쓸고 있었다지만, 정작 빌보드 연말 1위는 비 지스의 동생 앤디가 차지했다.[51] 파워 팝을 대표하는 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 디스코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79년 이들은 수많은 디스코 히트곡을 누르고 1979년 미국에서 제일 성공한 곡이 되었다. 빌보드의 라이벌이었던 캐시 박스가 발표한 연말 차트에서는 Chic의 Le Freak이 1위에 올랐다.[52] 블론디를 대표하는 곡이자 뉴웨이브 음악 최초로 연말 차트 1위에 오른 곡이다. 1980년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American Gigolo"의 주제곡이었으며, 빌보드 핫 100에서는 무려 '6주 연속 1위'를 했다.[53] 전설적인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의 눈을 예찬하는 노래로, 빌보드 핫 100 비연속 9주 1위를 기록한 대히트곡이었다. 중간에 "Stars on 45"의 "Stars on 45"가 1주 동안 1위를 하여 연속 1위는 저지되었다.[54] 올리비아 뉴튼 존의 최고 히트곡이었으며 빌보드 핫 1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77년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Debby Boone의 You Light Up My Life과 함께 최장 기간 1위 공동 기록에 올랐다. 1980년대 최장 기간 1위곡이었으며, Debby Boone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준 노래이다.[55] 1980년대 헬스, 에어로빅, 레오타드 열풍을 이 곡 하나로만 불러일으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56] 빌보드 핫 100 '8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1980년대는 사실상 마이클 잭슨의 시대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평생 연말 차트 1위는 기록하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 신드롬을 대표하는 두 노래 중 Billie Jean이 같은 해 연말 차트 2위에 올랐고 Beat It이 연말 차트 5위에 올랐다.[57]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중 하나로 프린스의 해였던 1984년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프린스는 1983년부터 탑 가수 반열에 올랐지만 진정한 슈퍼스타 자리에 오른 것은 바로 이 노래와 이 노래가 포함된 앨범 Purple Rain이 대히트를 친 1984년이었다.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으며, 1972년의 로버타 플랙 이후 12년 만에 미국 흑인 아티스트가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사례가 되었다.[58] 프린스와 자주 비견되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보다 프린스는 극도로 난해한 퍼포먼스로 인해 음악성 대비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작 연말 1위는 프린스만 차지했다. 80년대에 가장 연말차트 1위곡을 많이 가진 가수는 조지 마이클(Wham!과 본인 싱글명의로 1번, 솔로로 1번)이었다.[59] 실험적 음악을 좋아하는 프린스답게 여기서도 실험을 했는데, 1984년 당대로썬 극도로 충격적인 베이스가 없는 특유의 진행으로 80년대 가장 위대한 노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60] 왬은 마돈나와 함께 1985년을 지배한 신인 아티스트였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서 '3주 연속 1위'를 했다. 이 노래로 인해서 마이클 잭슨에 이어 80년대 최고 인기 가수 2위였던 마돈나는 마이클 잭슨과 똑같이 연말 1위를 평생 해보지 못한다. 대신 80년대 최고 인기 가수 중 하나였던 조지 마이클은 80년대에 유일하게 연말 차트 1위를 두 번이나 해본다.[61] 미국의 R&B 탑 가수인 디온 워윅과 그녀의 친구들인 글래디스 나이트, 엘튼 존, 스티비 원더가 결성한 프로젝트성 슈퍼그룹.[62] 에이즈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자선 싱글이며,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였다.[63] 1986년 12월과 1987년 1월 사이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였다. 최초로 연말 차트 1위를 한 걸즈 락 밴드이며, 블론디 이후 7년 만에 여성이 이끄는 락 밴드가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64] 왬으로 이미 1985년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바 있는 조지 마이클은 솔로 데뷔 앨범 "Faith"의 리드 싱글 "Faith"로 빌보드 핫 100 '4주 연속 1위', 1988년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며 2개의 연말 차트 1위 곡을 보유하게 되었다.[65] 1988년 당시는 조지 마이클의 최전성기로 빌보드 핫 100 1위만 4개("Faith", "One More Try", "Father Figure", "Monkey")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 100위 권 안에 무려 5곡(위의 빌보드 핫 100 1위곡 4개와 "Kissing A Fool")이나 들어가는 등 1988년 미국 음악계를 사실상 지배했다. 흑의 마이클과 백의 마이클이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었다.[66] 1988년 12월 둘째 주부터 셋째 주까지 '2주 연속 1위'를 했는데, 집계상으로 1988년 11월 중순부터 집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2주가 짧은 게 아니고 음악 시장이 아주 치열했던 1980년대 말은 2주를 유지하면 대히트곡인 상황이었다. 아티스트끼리 서로 치고 받느라 1주 1위가 아주 흔했던, 3주 이상 1위가 드물었던 시기이다.[67] 비치 보이스의 멤버 브라이언 윌슨과 마마스 앤 파파스의 멤버인 존 필립스와 미셸 필립스의 딸들이 모여 결성한 그룹이다.[68] 빌보드 핫 100에선 '1주 1위'를 기록했다. 1990년은 머라이어 캐리, 폴라 압둘, 마이클 볼튼, 마돈나, 바비 브라운, 휘트니 휴스턴 등 걸출한 가수들이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꾸준한 인기로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69] 1991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게 흥행한 영화였던 "로빈 후드 #s-6.1.6"의 주제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7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 당시 미국은 컨템퍼러리 R&B의 세가 점점 강해지고 뉴 잭 스윙을 기반으로 한 댄스 음악, 랩 음악 등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지만 기성 락 가수인 브라이언 아담스는 이 곡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70] 1992년 미국에서 크게 흥행한 에디 머피와 할리 베리 주연의 영화 "부메랑"의 주제곡이었다. 컨템퍼러리 R&B 장르로는 최초의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컨템퍼러리 R&B의 시대의 시작을 알린 노래이며, 종전에 Debby Boone과 올리비아 뉴튼 존이 가지고 있던 10주 기록을 깨고 빌보드 핫 100에서 13주 연속 1위를 하며 기존의 기록을 3주 차로 깨버린 노래이다.[71] 1992년 미국에서 크게 흥행한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이었다. 그리고 1년 전인 1992년에 이어 2년 연속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실질적인 컨템퍼러리 R&B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노래이며, 보이즈 투 멘이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깬지 불과 4개월도 안 되어서 빌보드 핫 100 1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최장기 1위 기록을 단 몇 개월 만에 깨버린 노래이다.[72] 1994년은 컨템퍼러리 R&B 아티스트들이 미국 음악 시장을 점령하고 차트에서 장기집권하던 해였지만 에이스 오브 베이스는 연말 차트 10위권 안에만 3개의 히트곡을 진입시켰으며, "The Sign"은 빌보드 핫 100에서 '비연속 6주 1위'를 했는데, 처음에 4주 연속 1위를 했지만 알 켈리의 첫 번째 메이저 히트곡이자 대표곡이라 불리는 'Bump 'N' Grind'가 4주 연속 1위를 하며 1위에서 밀렸다. 그럼에도 이후 2주 연속 1위를 더 차지하며 끈질긴 인기를 보여준 노래이다. 이러한 인기로 All-4-One의 I Swear과 Boyz II Men의 I'll Make Love to You를 누르고 연말 차트 1위에 올랐다.[73] 최초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갱스터 랩 곡이며, 힙합 역사상 최대 히트곡 중 하나로 최초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힙합 곡이다. 빌보드 핫 100에선 '3주 연속 1위'를 했는데, 같은 해 머라이어 캐리의 "Fantasy"가 '8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다른 경쟁곡들에 비하면 불리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며 연말 차트 1위에 오를 수 있었다.[74] 마카레나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컨템퍼러리 R&B 음악의 전성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핫 100에서 1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대히트를 거둔다. 하지만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의 듀엣곡 One Sweet Day가 빌보드 핫 100 1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14주 기록이 생긴 지 단 3년 만에 3주 차이로 최장기 1위 신기록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ne Sweet Day는 연말 차트 2위를 기록했고 마카레나가 1996년 미국 최고 히트곡 지위를 가져갔다.[75] 1997년 교통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한 존의 친구 다이애나 비를 추도하는 노래이다. 빌보드 핫 100에선 '1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 1997년은 다른 해보다 장기 집권이 많은 해였는데,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래퍼 Notorious B.I.G가 같은 해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비기의 사장이자 친한 친구였던 래퍼 퍼프 대디가 비기의 아내 Faith Evans, 자신의 레코드사에 소속된 인기 R&B 그룹 112와 함께 추모곡 I'll Be Missing You를 발표해 핫 100에서 '11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연말 차트에서도 3위에 올랐다. 인기 여가수 토니 브랙스턴은 "Un-Break My Heart"로 빌보드 핫 100에서 '11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탑 가수가 되고 컨템퍼러리 R&B의 전성기를 이끌었다.[76] Next는 미국의 컨템퍼러리 R&B 그룹이다. 1998년은 전 년도와 마찬가지로 컨템퍼러리 R&B가 미국 음악 시장을 지배하던 해였는데,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5주 비연속 1위'를 기록했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My All"의 1위로 연속 1위는 기록하지 못하였지만 1998년 미국에서 제일 성공한 곡으로 선정되었다. 이 곡을 밀어내고 1위를 기록한 곡이 바로 1990년대 말 컨템퍼러리 R&B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인 'The Boy Is Mine'인데, 당대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두 R&B 가수 브랜디와 모니카의 듀엣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무려 '13주 연속 1위'를 하는 초대형 성공을 거두지만 한 해의 전체적인 인기에서 "Too Close"에 밀려 연말 차트 2위를 기록하였다.[77]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는데, 1999년은 원래부터 인기 있던 컨템퍼러리 R&B의 전성기이자 틴 팝과 라틴 팝 열풍이 분 해였으며 그에 따라 많은 대형 히트곡이 있었지만 셰어는 이 곡으로 당당히 연말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곡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셰어는 53세라는 나이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이게 빌보드 핫 100 역사상 여성 최연장자 1위 기록이다. 이는 락 밴드 스타쉽의 리드 보컬 "Grace Slick"이 47세에 기록한 종전의 기록을 깬 것이었다. 현재 머라이어 캐리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로 차트 1위를 차지했다지만 그녀는 아직 51세이다. 따라서 아직 아무도 못 깬 기록이며, Grace Slick 전에는 티나 터너가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78] 오토튠을 대중화시킨 건 T-Pain이지만, 이 오토튠이 처음으로 쓰인 건 바로 이 노래여서 오토튠은 "Cher Effect", 즉 "셰어 효과"로 불리기도 했다.[79] 1965년 "Sam The Sham & The Pharaohs"의 "Wooly Bully" 이후 35년 만에 빌보드 핫 100 2위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경우이다. 참고로 2000년은 산타나가 Smooth(99년 말부터)와 Maria Maria로 돌풍을 일으켰던 해이며 라틴 팝 붐의 절정기, 컨템퍼러리 R&B, 힙합의 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컨트리 팝 장르의 곡인 "Breathe"가 꾸준한 인기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게 된다.[80] 포스트 그런지 곡으로는 최초의 연말 차트 1위 곡로, 포스트 그런지 전성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다. 그리고 바로 1년 전에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했던 "Faith Hill"의 "Breathe"와 마찬가지로 빌보드 핫 100 2위를 한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경우이다. 지금까지 역사상 단 세 번 있었다. 1965년, 2000년, 그리고 2001년.[81] 2001년도 컨템퍼러리 R&B와 힙합이 미국 음악 시장을 지배하긴 했지만 이 포스트 그런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상 2000년대 초중반은 미국 흑인 음악(컨템퍼러리 R&B/힙합)의 최전성기로, 포스트 그런지의 대성공은 이례적이었다.[82] 니클백은 포스트 그런지를 대표하는 밴드이자 2000년대를 대표하는 락 밴드인데, 이들이 2000년대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 노래의 이러한 대히트 때문이었다. 포스트 그런지 장르로서는 두 번째로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이며 2년 연속 포스트 그런지 장르의 곡이 연말 차트 1위를 하며 포스트 그런지의 전성 시대를 알렸다.[83] 이 곡은 2001년 말부터 2002년 1월 둘째 주까지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했는데 같은 해 넬리의 "Hot in Herre"가 '7주 연속 1위', "Dilemma"가 '10주 비연속 1위', 아샨티의 "Foolish"가 '10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대히트곡이 많았고 2002년 전체 52주 중 무려 48주 동안 컨템퍼러리 R&B 또는 힙합 장르의 곡이 1위를 할 만큼 미국 흑인 음악의 최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꾸준한 히트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했다.[84] 힙합 음악으로서는 두 번째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곡이다. 2003년 50 Cent는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2개나 기록하고, (In Da Club, 21 Questions) 50 Cent의 히트곡 3개 다 연말 차트 30위 권 안에 들었다. ("In Da Club" 1위, "21 Questions" 14위, "P.I.M.P." 21위) 물론 비욘세가 2003년 제일 성공적인 아티스트이긴 했지만, 50 Cent의 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2003년의 50 Cent는 최전성기를 누렸다.[85] Crunk 전성 시대의 시작을 대표하는 노래이며 Crunk 곡으로는 최초로 연말 차트 1위에 올랐다. Crunk는 2000년대를 지배했던 장르 중 하나였다. 릴 존이 개발했는데, 1년 전인 2003년부터 릴 존의 노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2004년에는 릴 존이 프로듀싱한 이 곡이 '빌보드 핫 100 12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초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이 Crunk가 명실공히 미국의 메이저 장르가 되었다. 심지어 2000년대 전체 노래들 중 세번째로 히트친 노래로 선정되었다! 2000년대가 남부 힙합의 전성 시대라고 하는데 루다크리스, T.I, 구찌 메인, Young Jeezy, 릴 웨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 Crunk 음악이었다. 이후 2008년부터 릴 웨인이 남부힙합과 일렉트로니카를 결합시킨 트랩을 전파하고 동시에 일렉트로팝의 시대가 오며 크렁크는 서서히 쇠퇴한다. 그러나 크렁크의 영향은 트랩에 크게 미쳐 있으며 현재 트랩은 가장 주류 음악 장르 중 하나로 꼽힌다.[86] 이 곡의 대히트로 어셔는 1964년 비틀즈 이후 무려 40년 만에 연말차트 1,2위를 석권하며 2004년은 어셔의 해라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한 해가 52주인데, 그 중 절반이 넘는 28주 동안은 어셔의 노래가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이 당시의 어셔는 확실하게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미국의 최고 가수였다. 오죽하면 그 다음해인 2005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카녜 웨스트의 Gold Digger에서 '내 여친은 어셔랑 잤대'라는 가사가 나올까(...). 이 노래도 여담으로 빌보드 10주 1위를 달성하며 연말 차트 순위는 6위, 이듬해의 연말 차트에서는 34위를 차지하며 2000년대 최고 히트곡 9위에 선정되었다.[87] 머라이어 캐리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곡으로, '빌보드 핫 100 14주 연속 1위'라는 초장기 집권을 한 곡이다. 머라이어는 1990년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제일 인기 있는 가수였지만 연말 차트 1위는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는데(이는 마이클 잭슨도 같다.) 2005년 이 노래의 대히트로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머라이어의 위력을 보여줬다. 이 노래가 얼마나 큰 히트를 했냐면 2000년대 총결산차트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즉 2000년대 미국에서 2번째로 제일 크게 히트한 곡이란 말.[88] 이 곡은 팝 장르의 곡인데, 남부 힙합과 컨템퍼러리 R&B의 최전성기였던 2006년 당시 팝 장르로서는 이례적인 연말 차트 1위 곡이었다.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였다. Daniel Powter는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데 원 히트 원더이다.[89] 비욘세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2000년대 컨템퍼러리 R&B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빌보드 핫 100에서 '무려 10주 연속 1위'를 한 곡이다.[90] 참고로 2007년 연말 차트 2위는 리아나의 "Umbrella", 연말 차트 3위는 그웬 스테파니의 "The Sweet Escape", 연말 차트 4위는 퍼기의 "Big Girls Don't Cry", 연말 차트 6위가 캐리 언더우드의 "Before He Cheats", 연말 차트 9위가 넬리 퍼타도의 "Say It Right", 연말 차트 10위가 퍼기의 "Glamorous"로, 2007년은 다른 해에 비해서 여성 아티스트들이 돋보인 해이기도 했다.[91] 2003~2004년부터 시작된 Crunk 전성 시대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곡으로, 2008년부터 시작된 일렉트로팝 시대 이전의 마지막 빌보드 1위 곡이다. 2008년 1월 첫째 주부터 무려 '10주 연속 1위'를 한 대히트곡이었으며, 슈퍼스타 플로 라이다의 첫 번째 히트곡이자 지금의 플로 라이다를 있게 해준 초대형 히트곡이다. 오토튠의 대중화를 이끈 T-Pain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2000년대 말에는 힙합 히트곡들의 피쳐링의 거의 대부분이 바로 이 T-Pain이었을 만큼 T-Pain의 최전성기였다.[92] 일렉트로팝 시대의 시작을 대표하는 노래이며, 원래부터 댄스 음악과 힙합 음악을 결합해 왔던 블랙 아이드 피스는 2009년 완전한 일렉트로 합으로 대히트를 쳤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서 무려 '12주 연속 1위'를 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그 바로 다음 "I Gotta Feeling"이라는 댄스 팝 곡을 내놓아 '14주 연속 1위'를 했다. 블랙 아이드 피스는 두 개의 노래로 2009년 4월 셋째 주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2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1년이 52주인데 그 중에 절반이라는 기간동안 쭉 왕좌에 앉은 것이다. 2009년은 일렉트로팝의 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블랙 아이드 피스의 해라고도 할 수 있다.[93] 일렉트로팝 시대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자 케샤를 대표하는 곡, 그리고 최전성기와 화려한 데뷔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케샤는 2년 전인 2008년에 케이티 페리의 I Kissed a Girl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 있고, 1년 전인 2009년에 슈퍼스타 플로 라이다의 대히트곡 "Right Round"에 피쳐링한 바 있으나 그 당시는 케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았기에 사실상 미국 대중들에게 케샤의 데뷔는 바로 이 노래다.[94] 아델의 전성기를 연 초메가히트곡. LMFAO의 EDM 셔플댄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Party Rock Anthem을 이기고 연말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빌보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95] 빌보드 8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초메가 히트곡이다. 비록 원 히트 원더이지만 이 노래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특히 뮤직비디오의 색감이 특이해서 나온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96] 12주 연속 1위를 한 로빈 시크, 퍼렐, T.I.의 대히트곡 Blurred Lines를 연말 2위로 밀어내고 연말 1위를 차지했다. 2013년은 레드오션이었는데, 거기서 6주 연속 1위를 하며 연말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연초 곡이라 차트 집계에 유리한 감이 있긴 하다.[97] 빌보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초메가히트곡. 퍼렐 윌리엄스는 이전까지 프로듀서로 유명했는데 드디어 본인 명의로 초메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2014년 압도적 연말 1위를 차지했다.[98] 절대 부정할 수 없는 2010년대 최대 히트곡. 빌보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전설적 초메가히트곡으로 펑크 음악(Funk)을 현대 음악과 접목시킨 명곡이다. 이 노래로 인해 에드 시런은 빌보드 1위에 실패한다.[99] 빌보드 겨우 2주 1위 차지했지만 연초에 나왔고, 롱런의 저력을 보여주며 1위를 차지했다. 위의 Uptown Funk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송으로 꼽힌다.[100] 비틀즈, 어셔 이후로 최초로 연말 1,2위를 동시석권한다. 이 해의 연말 3,4위는 모두 드레이크였는데 리아나&드레이크의 Work가 연말 4위, 드레이크의 One Dance가 연말 3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드레이크의 이러한 불운은 2018년에 와서 완전히 해결되는데... 밑의 2018년의 각주를 참조하자.[101] 2010년대 최대 히트곡 중 하나. 에드 시런은 2015년의 설움을 이 곡으로 죄다 풀어버렸으며 이 곡 이후로 이 정도의 임팩트를 남긴 히트곡은 Old Town Road 말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02] 이 해 Despacito가 16주 연속 1위로 당시 최장 1위 타이 기록을 세웠지만, Shape of You의 발매 시기가 앞서기도 했고, 1위에서 내려온 뒤로도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며 연말 차트 1위는 에드 시런의 품에 돌아갔다.[103] 드레이크의 최대 히트곡. 2004년이 어셔의 해, 2009년이 블랙 아이드 피스의 해였다면, 2018년은 말 그대로 드레이크의 해였는데, 무려 혼자서 29주나 1위를 해먹는다. 역대 최장기 기록으로, 아무도 못 깰 것 같았던 2004년 어셔의 28주 1위 기록을 14년 만에 깨버렸다.[104] 여담으로 이 해 연말 2위곡은 에드 시런의 Perfect인데, 에드 시런은 2번이나 빌보드 연말 차트 2위를 달성하게 된다(...) 그나마 에드 시런이 2017년 연말 1위를 달성해서 다행이라는 평이 많으나 이렇게 되면 에드 시런의 앨범 Divide는 비록 각기 다른 해기는 하지만 연말 1위와 2위곡을 동시에 보유하게 된다.[105] 빌보드 핫 100 19주 연속 1위. One Sweet Day의 기록을 23년만에 깼다. 역사상 가장 스트리밍 화력이 강했던 노래로 컨트리와 힙합의 결합이라는 참신성까지 자랑하는 명곡이다.[106] 37주간 Top 5, 46주 간 Top 10에 머무른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롱런곡. 30주 이상 탑 텐 안에 머물렀던 곡도 손에 꼽히지만, 특히 5위 권 안에서 30주 이상을 계속 머무른 곡은 현재 이 곡 밖에 없다. 신스웨이브, 얼터너터브 R&B 장르의 곡으로 1985년작 Take On Me를 연상시키는 노래이다. 빌보드는 비연속 4주 1위였지만, 꾸준한 롱런으로 연말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