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다 마사미

 

1. 개요
2. 생애
3. 특징
4. 참여작
4.1. 감독


1. 개요


下田正美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962년 생. (61 ~ 62세) 홋카이도 후라노시 출신.

2. 생애


청소년기에는 각종 애니메이션특촬물을 즐겼다. 그의 고향인 후라노시는 1980년 드라마 북쪽 고향에서가 인기를 끌어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전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 거기서 나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가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도쿄라면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 있겠지"하는 마음으로 도쿄로 상경했다. 그곳에서 도쿄 디자이너 학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기숙사 동기로는 훗날 만화가가 되는 이토 타케히코(伊東岳彦)와 타카하시 카즈키, 유명 애니메이터인 키타즈메 히로유키와 애니메이션 감독 신보 아키유키, 와타나베 준이치(わたなべぢゅんいち)[1] 등이 있었다고 한다. 전문학교를 다니며 한밤중에 방에 모여서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다같이 보며 "이 작화가 좋다"라든지 "이 연출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고 한다.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본 작품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하철도 999가 있다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데자키 오사무가 가장 인기있는 감독이었다고 하며 작화 쪽으로 본인의 인상에 남는 것으로는 터무니없는 전사 무테킹나카무라 타카시가 맡은 화인 17화와 27화가 있다고 한다. "TV 애니메이션의 리미티드 기법으로 이렇게 매끄러운 움직임을 실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가 있다"며 관심을 가졌다고. 데자키 오사무 같은 경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본인의 마음의 스승이라고 할 정도로 존경한다.
1983년부터 애니메이션 업계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으로, 초공속 갈비온, 게게게의 키타로 3기, 더티페어 시리즈 등 굵직한 작품에 작화감독으로 참여했다. 1990년대부터는 연출 활동도 시작했는데 유유백서, 닌쿠 등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에 힘입어 1996년 세이버 마리오넷 J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감독작으로 유명한 작품은 상술한 세이버 마리오넷 시리즈와 쪽빛보다 푸르게, 제가페인. 특히 쪽빛보다 푸르게는 작화도 좋았고 원작에 충실하게 애니화되어 당시로서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가페인은 2006년 첫 방영 당시에는 비주얼이 시대를 감안해도 너무 낡았고 작화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혹평을 받았지만 후에 뛰어난 스토리가 재조명을 받았고 컬트 팬들이 열심히 입소문으로 홍보를 이어가서 재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2007년 신곡주계 폴리포니카와 2009년 11eyes 감독을 담당하면서 완전히 평판이 추락했다. 신곡주계 폴리포니카는 각 에피소드별 각본가에 유명 작가들을 다수 배치하는 등 야심작이었으나 작화가 너무 좋지 않았고 스토리 개연성까지 떨어져 흑역사화되었으며 11eyes는 반대로 영상미는 좋았으나 원작을 잘못 해석해버려 전개와 설정을 해괴하게 꼬아놓았고,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스토리 전개를 이어나가 완전히 '''괴작''' 수준으로까지 굴러떨어지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결국 이 여파로 2010년대부터는 제가페인 극장판만 감독하고 객원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2000년대부터는 실사무대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3. 특징


일반적인 연출력은 기복이 좀 있어도 전반적으로 좋은 편에 속하는 실력있는 연출가다. 전반적으로 작품 전체에 푸르고 맑은 하늘이 등장하는 연출을 즐겨 사용하며, 이야기의 끝마무리가 깔끔하지 않고 무언가 불길한 복선과 암시를 집어놓고 끝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후속작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떡밥을 이어나갈 수 있으나 후속작이 없고 스토리에서 비판을 받는 작품에서는 무언가 뒷마무리가 찝찝한 채로 시리즈가 끝나기 때문에 평이 좋지 않다.

4. 참여작



4.1. 감독



[1] 2007년 스튜디오에서 전화를 받다 급성 뇌출혈으로 사망했다. 향년 4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