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
1. 개요
초한쟁패기 때 전한의 장군
2. 생애
원래는 유방의 부하가 아니었고 고향도 패현 출신이 아니다. 독자적인 세력 2500명 정도를 이끌고 설(薛) 땅에서 거병하여 진나라에 맞섰고 유방에게 찾아가 부하가 된 것은 한왕 2년(기원전 205년)이었다.
그 후 초한쟁패기에는 한신의 지휘하에서 관영, 장오 등과 함께 부장으로 활약하여 제나라 정복에 큰 활약을 했고 특히 역하[2] 에 주둔한 제나라 군을 크게 무찔러서 극포후(棘蒲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이후에는 한신과 같이 제나라에 주둔하다가 해하전투에 한신이 나서면서 중군을 맡은 유방의 뒤에서 주발과 함께 후군으로 참여했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장군으로서 다양한 활약을 보였는데 그 중 하나는 흉노에게 붙어서 역으로 한나라를 침공한 한왕 신을 무찌르고 죽인것이다.[3]
영포와의 싸움에서 후유증을 입고 죽은 유방, 숙청당한 한신, 팽월 등이 죽은후에도 오래 살아서 한문제를 옹립하고 제북왕 유흥거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4] 이후 기원전 163년에 사망. 가문은 한선제 시절인 기원전 61년에 증손자인 시가(柴嘉)가 조서를 받아서 재건했다.
3. 여담
유방의 수하들 중에서 진비(陳濞)[5] 를 빼고 가장 오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