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타니 가즈히코
1. 개요
前 한신 타이거즈, 오릭스 블루웨이브, SK 와이번스 소속의 내야수로 KBO 리그 최초의 일본 출신 외국인 타자다.[1]
2. 선수 경력
2.1. 일본 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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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시절.
1992년, 신코가쿠엔 신코 고등학교 시절에 포수로서 고시엔에 출전(제74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같은 해 가을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6순위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당시에는 “계약금으로 어머니의 무덤을 짓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한신의 포수에는 야마다 가쓰히코, 기도 가쓰히코, 세키카와 고이치 등이 활약하고 있어 시오타니는 포수로서의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는 등 2군에서의 선수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1996년 10월 9일의 시즌 최종전이 되는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 1회말에 나카니시 기요오키의 대타로 기용되어[2] 프로 첫 홈런이 되는 만루 홈런을 때려내 한신은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가 되는 ‘1이닝 만루 홈런 2개’를 기록했다.
시오타니가 입단한 이후에도 같은 포수인 야노 아키히로나 요시모토 료가 한신에 이적해 왔기 때문에 1998년에 출전 기회를 늘리기 위해 내야수(주로 3루수)로 전향하는 등 타격이 안정되면서 가끔 정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당시 노무라 카츠야 감독에 의한 아들 노무라 가쓰노리의 기용이나 하마나카 오사무를 시작으로 하는 젊은 야수들의 활약에 의해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적었다. 2001년 시즌 종료 후 사이토 히데미쓰와의 맞트레이드로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이적했고 오릭스에 이적할 당시의 기자 회견에서는 “(한신에서)방출되어서 아까웠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 “되돌아보고 싶다” 등의 발언을 했다.
오릭스에서는 2003년에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는 것과 동시에 올스타전에 출전을 하는 등 홈런 8개, 타점 46, 도루 7개, 타율 3할 7리의 성적을 남겼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홈런 9개, 타점 48, 도루 2개, 타율 2할 6푼 9리의 성적을 남긴다. 2004년 시즌 종료 후 분배 드래프트에 의해 계속 오릭스의 선수가 되었지만 2005년에 16경기에만 출전하면서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2006년에는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계약금 500만엔, 연봉 3,000만 엔에 계약을 맺으면서 KBO에서는 이리키 사토시와 모리 가즈마에 이은 세 번째이며 야수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인 선수(한국명으로의 등록명이 아닌 선수)가 되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시즌 개막 이후 SK 와이번스의 주전 3루수를 차지하며 성공한 외국인 선수로서의 길을 밟아가는 듯 했으나 서서히 부진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야구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구단에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5월 9일 KIA전에서 장문석이 던진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골절로 전치 8주의 진단을 받고 5월 14일 귀국과 함께 방출당했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0.297 27안타 3홈런 19타점 1도루. 교체된 선수는 투수 제임스 세라노.
3. 이후
그 후 2012년, 음식점 매출을 받을 권한을 양도해주겠다고 지인을 속여 현금 550만 엔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최초의 일본국적 외국인 선수는 1983년 삼미의 장명부이고, 최초의 일본 출신 일본혈통 외국인 선수는 2003년 두산 베어스의 이리키 사토시.[2] 이 경기는 나카니시와 기도 가쓰히코의 은퇴 경기였기 때문에 나카니시는 원래 1이닝만 등판할 예정이었다.[3]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