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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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重夏
1918년 5월 5일 ~ 1991년 11월 23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본관은 거창(居昌)[1], 호는 동원(東園).
1918년 경상남도 거창군 읍내면 동동(현 거창읍 대동리 동동마을)[2]#에서 아버지 신정재(愼正縡)와 어머니 죽산 전씨(竹山全氏) 전병홍(全秉弘)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광복 이후 초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민주당 경상남도당 산업ㆍ재정부장, 민주당 중앙위원, 경상남도곡물협회 회장, 민주당 거창군당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당 소장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38선거구(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서한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민주당 후보로 다시 위 선거구에 출마하여 43.19%(21,123표)의 득표를 받아 민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15지역구(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민병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선거가 끝나고 몇 년간 남한운수(南韓運輸)주식회사 사장으로 재임하였다. 1967년 신민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여 중앙위원, 경상남도 제18지역구당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18지역구(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또 다시 민주공화당 민병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1월 27일 민주통일당이 창당될 때 조직책으로 관여하였고, 창당 후 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민주통일당 후보로 경상남도 제9선거구(산청군·함양군·거창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우식 후보와 신민당 김동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통례공파 34세손 중(重) 항렬[2] 인근의 양평리와 함께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도출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