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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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거창군의 읍. 남상면, 마리면, 주상면, 가조면과 맞닿아 있다.
2. 역사
거창읍은 신라 초기에는 자야라고 하였고 거타(居陀) 또는 거열(居烈)이라 칭하였고 고려시대에는 협주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제창현, 거창현, 거창군 거창현으로 개칭함.
1658~1660년에는 안음현에 속했으며 다시 거창부, 거창현, 거창군에 속하였고 1957년 10월 29일 월천면이 거창읍에 합병 1984년 1월 21일 로터리에 읍청사가 준공하고 2007년 2월 12일 상동택지지구에 새로이 읍청사를 이전하였다. 그리고 현재 가지리, 김천리, 대동리, 대평리, 동변리, 상림리, 서변리, 송정리, 양평리, 장팔리, 정장리, 중앙리, 학리까지 총 13리의 법정리가 있다.
3. 특징
읍소재지는 상림리이다. 해발 200m 내외로 저평한 한들, 공수들, 월천들이 있으며, 특산물로 사과, 딸기, 복수박, 포도가 유명하고, 거창지역에서 대구, 김천, 광주, 진주 등의 지방중심도시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영남 내륙산간지에 위치하고 대륙적 영향을 많이 받아 기온의 일교차가 심하며, 비교적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속하고 여름철에는 덥고 겨울철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3개군 관할기관인 지청, 지원, 세무서가 있고 금융기관이 많으며 거창대학, 한국승강기대학 등 교육의 중심지로서 서북부 경남의 역점 도시로 발전되어 가고 있으며, 주변 유원지로는 건계정 군립공원과 심소정, 장팔리 덕천서원 등이 있다.
4. 교통
4.1. 도로교통
24번 국도와 1084번 지방도, 1089번 지방도, 광주대구고속도로가 지나간다.
4.2. 버스교통
시내버스
거창발 위천행 29회,가조선 28회, 남하행 03회, 신원선 12회, 남상선 14회, 등등 면지역에서 거창읍으로 나가는 사실상 유일한 경로이다.
이외에도 묘산과 합천버스터미널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17회정도있다.
군지역 읍중엔 거의없는 읍내만 운행하는 시내버스 노선도 존재한다. 기존 1번,3번 버스 외에 2019년 1월1일부로 읍내 강남지역 및 순환형 3개코스의 5번 버스가 추가되었다.
시외버스
(2019년 08월 26일 기준)
거창발 대구행 37회, 부산행 12회, 진주 12회, 인천,수원 8회, 남서울 11회, 동서울 8회, 전주 4회, 대전 10회, 광주 3회 정도로 대구로 가는 버스가 37회로 가장많다.
5. 교육
5.1. 관내 학교 목록
유치원 - 거창유치원(공립), 세종유치원(사립), 아림유치원(사립)
초등학교 - 거창초등학교(공립), 아림초등학교(공립), 월천초등학교(공립), 창남초등학교(공립), 창동초등학교(공립),
샛별초등학교(사립)
중학교 - 거창여자중학교(공립), 거창중학교(공립), 거창대성중학교(사립), 샛별중학교(사립), 혜성여자중학교(사립)
고등학교 - 거창여자고등학교(공립), 아림고등학교(공립), 거창고등학교(사립), 거창대성고등학교(사립), 거창대성일고등학교(사립),거창중앙고등학교(사립),거창연극고등학교(공립)
5.2. 교육환경
거창군 교육환경은 교육도시답게 타군지역과 달리 학생수부터 다르고 학교도 많이 분포되어있다.
6. 환경
환경은 타 시군과 달리 미세먼지수준이 다르고 타지역들과 달리 해발이 높기때문에 여름에도 다른지역보다는 선선한편이다.
그리고 청정지역답게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AI도 걸리지않았다.
7. 주변 시설
거창읍내의 몇몇 번화가에 PC방, 유흥업소가 집중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거창읍에 영화관으로 제일극장,한일극장이 존재했다고 한다. 현재는 롯데시네마로 대체된 상태.
군 지역으로는 드물게 서브웨이, 크리스피 크림 도넛, 공차 푸라닭 등 도시권에 주로 분포하는 프렌차이즈들이 읍내에 존재하고 있고 군 단위에서 보기 힘든 국민은행, 신한은행, 경남은행이 있다.
8. 하위 법정리
8.1. 상림리
상림리(上林里)
거창군청의 소재지이자 거창읍 행정복지센터의 소재지이다. 1914년부터 제1교(거창교) 서북부를 상동(上洞)이라 하였으며, 1988년 8월 1일 상림리로 개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상림리는 크게 상동(上洞)과 원상동(元上洞)으로 나눌 수 있다.
상동(上洞)
거창군의 관공서가 집중되어 있으며 거창군청, 거창군의회, 거창읍사무소, 거창경찰서, 거창세무서, 거창우체국, KT거창지점, 한국 농어촌공사 거창·함양지사, 거창적십자병원, 아림초등학교, 거창혜성여자중학교, 거창대성고등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 숲골 : 전신전화국 서쪽 부근으로 침류정(枕流亭) 위의 마을을 말하며 쑥골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상림리(桑林리)라 기록했다.
- 탑산골목 : 영천변에서 우체국으로 통하는 탑이 있었던 골목을 말한다. 쌍사자석등(石燈)의 부품인 듯한 석재와 탑석을모아놓고 동제를 지내오다가, 1988년 거창박물관으로 옮겼다.
- 시비당 : 우체국 북쪽 뒤편 세무서와 적십자병원 일대를 말한다. 일제 초기에 수비대가 있었던 곳이다.
- 또랑말 : 옛날의 토랑리(吐郞里)로 석조관음입상이 있는 미륵댕이 남동쪽 도랑 옆 옛날 유씨(劉氏)들이 살던 마을이었는데 정장리(正莊里)로 옮겼다고 한다.
- 광터 : 지금의 혜성여자중학교 앞을 광터밭이라고 하였다. 옛날 아림사에 따른 9개의 암자가 있어 9암터라 이름하였다.
- 앞담뒤 : 군청 북쪽 뒤의 마을을 말하여 옛날 객사의 높은 담이 앞을 가리고 있어서 앞담의 뒤라는 뜻에서 이름되었다.
- 공수(公須)들 : 거창읍의 북동쪽에 있는 들이다. 이 들판 전답은 관청의 비용을 위한 땅이었다 한다.
- 아림사리(娥林寺址) : 상림리와 중앙리 일부에 아림이라는 큰 숲이 있었는데 한가운데에 아림사가 있었다. 고려 우왕 6년(1380)에 침입한 왜구(洪武亂)에 의하여 소실되었으나 "아림"은 오늘까지 거창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거창초등학교, 군청, 경찰서, 우체국, 세무서, 적십자병원 등이 있는 곳이다.
- 원상동(元上洞)
8.2. 중앙리
중앙리(中央里)
거창읍의 중심지로서 하동(下洞)이라 하다가 1988년 8월부터 중앙리라 하였다. 하동(下洞)과 죽전(竹田) 두 마을로 이루어졌다.
- 하동(下洞)
- 뒤삼박골 : 현시장 일대를 말한다. 옛날에는 삼밭이 많았다고 한다.
- 당산걸 : 시장 서쪽 농업협동조합 앞의 남쪽방향 골목으로 몇 년 전까지도 큰 고목이 있었고 거기에서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 물측거리 : 하동 냇가 길거리를 말한다.
- 뒷들 : 거창초등학교 뒤 북쪽 주택지를 말하며 옛날 이 곳은 논들이었다.
- 죽전(竹田) 대밭밑 : 뒷산 줄기가 대나무 마디처럼 생겼고 대밭이 있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풍수설에 암탉이 병아리를 품은 형국이라하여 계산(鷄山)이라 하였다. 마을 북녘을 막아주는 언덕에 창원지방법원거창지원, 창원지방검찰청거창지청 샛별초등학교 샛별중학교, 거창여자중학교, 거창고등학교, 거창여자고등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 석식들 : 죽전과 개봉 사이의 들
- 골닭원 : 현 법원 남쪽 골짜기
- 닭원만당 : 현 충혼탑 일대, 옛날 이곳 당산나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
- 삼화사(三和舍) : 마을 한가운데 남향의 집이 있었는데, 옛날 선비들이 모여서 글 재주를 겨루던 곳으로 지금의 검찰지청관사 자리다.
8.3. 대동리
대동리(大東里)
거창읍 천내 가장 동쪽에 있고 옛날 동부방(東部坊)에 따랐으므로 동동(東洞)이라 하였다가 1988년 8월 1일 대동리로 고쳤으며, 동동(東洞), 강양(江陽), 개봉(開封), 동산(東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동동(東洞) 동부
- 밤숲 : 거창중학교 터에 있던 솔숲을 말하며 이곳은 아월천(阿月川)과 영천(瀯川)이 아우르는 곳이라 항상 수해가 심하여 방수림으로 심었으므로 방숲이 와전되 밤숲이라 전하고 있다. 옛날에는 거창중학교와 창동초등학교터에 거창공설운동장이 있었고 근처에 과수원이 있었다.
- 강양(江陽) 개양
- 영천(瀯川) 강가의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江陽, 溪陽) 개양이라 부른다.
- 비선거리 : 마을 동쪽 길가에 김인순(金麟淳)부사의 불망비와 역대 수령들의 선정비와 김현석(金玄錫)현감의 비 등 많은 비가 서 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 개봉(開封) 묵실
- 소만들 : 마을 북동쪽 모래둑걸 남쪽에서 아월천 서쪽일대까지의 논들을 말하며, 여기 따른 보(洑)를 소마이보라 한다.
- 양혜원(養惠園) : 마을 북쪽으로 700여미터 들어가 국도 서쪽에 1950년대에 새로생긴 마을이다.
- 못안골 : 마을 북쪽 1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야산 골짜기로서 옛날 골짜기 어귀에 못이 있어서 이름되었다.
- 아래못안골 : 양혜원의 서쪽 어귀에 있는 골짜기로 못안골의 아랫 골짜기다.
8.4. 김천리
김천리(金川里)
- 쇠비내
8.5. 대평리
대평리(大坪里)
옛날 천외방 중리라 하였고 중동이라 하다가 1988년 8월부터 대평리라 한다. 거창읍의 동남녘 한들에 자리하므로 대평리라 하고 중동과 들성(坪城)으로 나뉜다.
- 중동(中洞), 아래내박
- 신(申)문골목 : 중동마을 한복판 골목을 신씨가 잘 살았다하여 신문골목이라 하였다.
- 밭들 : 지금의 버스합동주차장 끝에 있는 마을로 옛날 밭이 많아서 이름되었다.
- 뒷내 : 지금의 중동마을 북쪽 뒤편에 있는 가래울 용수로와 영천사이의 마을이다.
- 한들 : 중동의 동쪽에 있는 논들을 말하며 300여 정으로 거창군에서는 가장 넓은 들이다.
서기 645년 김유신장군이 백제군 2천명을 섬멸했던 신라성 매리포성(賣利浦城)으로 추측하고 있다. 왜란 때 명나라 장수 유정·이령·조승훈·갈봉하(劉綎·李寧·祖承訓·葛逢夏) 등이 한때 머물었던 곳이라 한다.
- 가래울들 : 한들 동편의 논들을 말하며 추평(湫坪)이라고 한다.
8.6. 송정리
송정리(松亭里)
"웃내밖(上川外)"이라고 부르고 있다. 송정, 운정, 절부(松亭, 雲亭, 節婦) 3마을이 있다.
- 송정(松亭) 솔지이, 솔뚜백이
- 운정(雲亭) 구름지이
- 절터골 : 마을 서남쪽 골짜기로 옛날 절터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이름되었으며, 절터골이라고도 한다.
- 긴날등 : 망덕산 주봉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를 말한다. 망덕산 모양이 서쪽을 향해 나는 닭 같고 이 줄기는 닭의 등 같다 붙인 이름이다. 능선에 초동길이 있다. 일병 비계장등(飛鷄長嶝) 또는 비계날등이라고 한다.
- 마동(馬洞) : 운정마을 남동쪽으로 200여 미터지점에 있는 마을로 남서 뒷산이 말과 같이 생기고 말의 뒷꿈치 형태에 자리하였다고 일명마적동(馬蹢洞) 이라고도 한다.
- 마적(馬蹢)들 : 마을 남서쪽 뒤편 일대의 야산 평원을 말한다.
- 절부리(節婦里) 제불
- 푸르지오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다.
8.7. 장팔리
장팔리(長八里)
장팔리와 송정리 사이에 바위 8개가 있는데 그 정기를 타고 8장사나 8문장이 난다 하여 장팔리(將八里) 또는 장팔리(長髮里)라고 기록된 일도 있다. 장팔(章八)·중산(中山)·웅곡(熊谷) 등 3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다.
- 장팔(長八)
- 중산(中山) 중뫼
- 웅곡(熊谷) 곰실
덕천서원이 소재하고 있으며, 거창군민들에게 사랑받는 벚꽃명소이다.
- 굴골 : 마을에서 북서쪽 골짜기로서 절터가 있고 굴이 있다.
- 서당골 : 마을 남쪽에 있으며 큰 서당, 작은 서당터가 있어 이름되었다.
8.8. 정장리
정장리(正莊里)
조선초에 장원(莊園)을 두고 농소(農所)를 설치하여 나라에서 관리함으로서 생긴 이름이라하며 정장(正莊) 국농소(國農所) 2개 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정장, 정쟁이
동사무소가 있는 정장마을과 남쪽 500여 미터에 소래실, 서쪽 800여 미터에 상살미 등 3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 소래실(率禮谷) : 마을 앞에 소라설이라는 묘가 있어 이름되었다고 한다.
- 국농소(國農所)
8.9. 서변리
서변리(西邊里)
원서변 마을과 원동변 마을 사이의 냇물인 모곡천(毛谷川)은 본시 원동변 마을서쪽 끝에서 남동쪽 사지마을을 거쳐 양평마을 앞에서 아월천에 합류해다. 이 모곡천이 범람하면 수해가 심하므로 직강공사를 하여 지금과 같이 동쪽으로 바로 흐르게 하였다고 하며, 옛날에는 모곡천의 동쪽에 원동변 마을이, 서쪽에는 원서변 마을이 자리했으므로 동변리·서변리로 나누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강물이 남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하여 그 상류를 북으로 삼아서 동, 서를 나누었다고도 한다. 원서변(元西邊), 사지(沙旨), 사동(沙洞), 원동(院洞)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모찔·모곡(毛谷)
- 사동(沙洞) 사기막골
- 사마, 사마리
- 새보들 : 마을 서쪽의 논들을 말한다.
- 찬물내기들 : 마을 남쪽에 있는 논들이다. 땅이 낮아서 찬물이 많이 생겨서 이름되었다.
- 아월천(阿月川) : 마을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내이다. 이 내는 사방이 트여 달빛을 잘 받아 땅거위가 노는 것을 밤에도 볼 수 있어 아월천(鵝月川), 아드내라고도 하며"아달내""아드내" 라고도 부른다.
- 원동(院洞) 서원마
8.10. 동변리
동변리(東邊里)
건흥산에서 내려와 원동변과 원서변 두 마을 사이를 남동남으로 사지마을을 향해 흘러서 양평 앞에서 아월천에 합류하던 모곡천(毛谷川)의 동쪽에 자리하므로 동변리라 했다. 원동변·죽동(竹洞)·구산(九山)등 3개 마을로 이루어 졌다.
- 모곡(茅谷), 큰마
- 죽동(竹洞) 죽마
- 취우령(驟雨嶺) : 마을 북서쪽으로 마리(馬利)와 경계하고 있는 높이 795미터의 산이다. 멀쩡한 날씨에도 소나기가 잦아 소나기취, 비우, 취우령으로 이름지었다.
- 구산(九山) 독죽골
- 구산(龜山) : 마을 남쪽에 있다. 거북이가 앉아있는 형태라 이름되었다. 거창 신씨(愼氏) 종산이며 우리나라 8명산 중 하나라고 하여, 잘 다듬어진 신씨들의 많은 묘와 묘비가 있다.
8.11. 학리
학리(鶴里)
조선 때는 음석방(陰石坊)에 속했으며 학동, 의동, 구례 (鶴洞, 薏洞, 九禮) 등 3개 마을을 이루고 있다.
- 학동(학동) 원학골
- 내학(內鶴) : 마을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하여 안원학골이라 한다.
- 외학(外鶴) : 마을이 안원학골 밖에 있으므로 바깥원학골 또는 새마라고도 한다.
- 장승골(長城洞) : 내학마을에서 남쪽으로 600여 미터에 있으며 장승이 있었으므로 장승골이라고도 한다.
- 유가밭골 : 내학마을 북동쪽으로 400여 미터의 산골이다. 옛날 문화 류씨(文化 柳氏)가 살았던 곳이다.
- 굴밭골 : 내학마을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이 곳에 길이 5미터 가량의 굴이 있는데 곰이 살았다고 한다.
- 사기(沙器)막골 : 내학마을에서 동쪽으로 500여미터의 산골짜기이다. 이곳에는 조선 중엽에 사기를 만들던 곳이라고 하며, 지금도 깨어진 사기조각이 많이 발견된다.
- 구례(九禮)
- 골구례 : 원래는 원구례(元九禮)라 한 것이 구례 남쪽 어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지금은 골구례라고 한다.
- 밑담 : 논들 가운데 있으며 마을의 서쪽 밑에 있다 하여 이름되었고 여흥민씨(驪興 閔氏)들이 많이 살고 있어 민담이 라고도 한다.
- 점담 : 최근까지 옹기를 굽던 곳이라 옹기점에 연유하여 이름되었다.
- 법치이(法川)골 : 마을에서 北東쪽 2킬로미터 지점의 금귀산 서편 기슭의 넓은 골짜기 법천서(法川寺)가 있었다 하며, 지금도 기와 조각과 축대 등의 흔적이 있다. 흐르는 개울도 법천(法天)이라 부른다.
- 의동(意洞) 여의골
8.12. 양평리
양평리(陽坪里)
조선시대에는 음석방(陰石坊)이였으며 양평, 당동, 노혜, 김용(陽坪, 堂洞, 老惠, 金龍) 등 4개 마을이 있다.
- 양평, 가네들
- 강선골(降仙洞) : 마을 북동쪽 100여 미터로 신언(愼言)이 조상의 신주를 모시던 곳이다.
- 문릉골(陳畓谷) : 마을 동쪽으로 1.2킬로미터에 있는 골짜기이다.
- 달박골(月明谷) : 마을 1킬로미터 정도의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사방이 잘 트여 달이 잘 보인다.
- 당동(堂洞), 땅골, 봉우땅골
- 장군(將軍)골 : 웃땅골 북쪽에 있으며 옛날의 토기굴 흔적이 있다.
- 삼막(三幕)골 : 웃땅골 북동에 있으며 세 갈래로 되어 있는 산골이다.
- 노혜(老惠), 홈거리
- 갈매재 : 마을 동쪽으로 남하면과 경계점인 도로 위에 있다. 재의 생김새가 소의 갈매(질마)같아서 이름되었다. 풍수설에 갈마음수설(渴馬飮水說)이라 하여 갈마재라고도 한다.
- 김용(金龍)
- 성재(城峴) : 마을 북서쪽으로 1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작은 재다. 옛날 성터가 있어서 이름되었다 한다.
- 수양골(水陽谷) : 마을 북쪽으로 마을과 붙어 있는 골짜기다. 물과 햇빛이 가득하다고 이름되었다.
8.13. 가지리
가지리(加旨里), 갈마리
뒷산이 칡덩쿨 같이 생겼다 하여 "갈(葛)마을", 일설에는 거열성에서 신라와 백제가 싸울 때 싸움터에서 달리던 말이 목이 말라 죽은 곳이라 하여 "갈마리(渴馬里)"가 되었다고도 한다. 고려 충열왕(忠烈王 1270~1300) 때 동정 신원간(同正 愼元幹)이 개성으로부터 외가인 유씨(劉氏)를 찾아와 갈지에서 개척하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갈지방(加乙旨坊)이었고 개화, 중촌, 갈지, 교촌(開花, 中村, 葛旨, 校村) 등 4개 마을이었다.
- 개화(開花), 개화리
- 중촌(中村)
- 갈지(葛旨), 웃갈마리
- 교촌(校村), 향교
- 오리골 : 대성학교 북서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교촌에 따른 마을이다. 오리가 구릉논에 많이 놀았다 하여 이름되었으며 오류동(五柳洞)이라고도 한다.
[1] 중앙리, 대동리, 대평리, 김천리, 송정리, 정장리, 장팔리, 서변리, 동변리, 학리, 양평리, 가지리, 상림리(원상동)[2] 상림리(상동)[3] 중앙리, 대동리, 대평리, 김천리, 송정리, 정장리, 장팔리, 서변리, 동변리, 학리, 양평리, 가지리, 상림리(원상동)[4] 상림리(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