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

 


[image]
'''이름'''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출생'''
1932년 10월 27일, 미국 [image]
'''사망'''
1963년 2월 11일
'''데뷔'''
1960년 시집 <거대한 조각상>
'''학력'''
스미스 여자대학 영문학
'''수상내역'''
1982년 퓰리처 상
'''가족'''
남편 테드 휴즈
'''작품성향'''
고백시
출처
"Sylvia Plath",『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1. 개요
2. 작가의 생애
2.1. 연보[1]
2.2. 초기 생애[2]
2.3. 대학생활
2.4. 테드 휴즈와의 결혼과 작품 활동
2.5. 자살[3]
2.6. 사후
3. 작품
3.1. 작품 활동
3.2. 작품 경향
3.2.1. 초기 작품 경향 [4]
3.2.2. 중기 작품 경향
3.2.3. 후기 작품 경향
3.2.4. 고백시(confessional poet) 형식
4. 관련 작품
4.1. 영화 <실비아(Syl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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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작가이다.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가였던 아버지 오토 플라스와 어머니 아우렐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늘 자살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죽음은 실비아의 삶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당대 최고의 시인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였지만 휴즈의 여성편력으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휴즈와 이별한 후, 작품에 몰두하다가 결국 31세 나이로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은 채 자살함으로써 그녀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5]

2. 작가의 생애



2.1. 연보[6]


'''1932'''
1932년 10월 27일 보스턴에서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가인 Otto Plath와 Aurelia Schober 사이에서 출생
'''1940'''
아버지 Otto Plath의 사망
'''1953'''
첫 자살시도. 이로 인해 정신병원 입원
'''1955'''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
'''1956'''
테드 휴즈(Ted Hughes)와 결혼
'''1957'''
미국으로 이주. 스미스 여자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활동
'''1960'''
생애 첫 시집 <거대한 석상(The Colossus)>를 출판&딸 프리다(Frieda) 출산
'''1961'''
둘째 아이 유산
'''1961'''
남편의 외도
'''1962'''
아들 니콜라스(Nicholas) 낳음. 자전적 소설<The Bell Jar>를 가명으로 출판
'''1963'''
자살
'''1965'''
유고시집 <Ariel> 출판
'''1982'''
퓰리쳐 상 수상

2.2. 초기 생애[7]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 10월 27일 미국 보스턴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가였던 독일 그나보프(Grabow) 출신의 아버지 오토 플라스(Otto Plath)와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인 어머니 아우렐리아 쇼보 플라스(Aurelia Schober Plath)의 딸로 태어났다. 1934년 그녀의 동생 워렌 플라스(Warren Plath)가 태어난 뒤 메사추세츠 윈스럽(Winthrop)에서 자랐다.
실비아 플라스는 8살 때 처음 Boston Herald에 시를 발표하였고, The Scholastic Art & Writing Awards에서 상을 받으면서 뛰어난 문학·예술적 재능으로 주목 받았다. 1940년에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1942년 보스턴 서쪽 교외의 메사추세츠 웰즐리(Wellesley)로 이사했다. 당시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주었고, 이는 그녀의 삶과 예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플라스는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인 9살 때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2.3. 대학생활


1950년 장학금을 받으며 스미스 여자대학(Smith College)에 입학한 실비아는 이미 400편이 넘는 시를 썼으며, 1952년 8월 마드모아젤(Madmoiselle) 공모전에 단편 「민튼 씨네 집에서 보낸 일요일」이 입상하면서 마드모아젤의 인턴기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녀는 하버드 여름학교의 프랭크 오코너 창작수업을 신청했으나 입교를 거절당하고, 학위 논문에서의 부진은 물론 학업에서의 연이은 실패가 계속된다. 이는 그녀를 극단적인 초조함과 불안으로 몰고가 결국 1953년 8월 대학 3학년 때 지하실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이틀 뒤 의식을 회복한 직후에 가족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1963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The Bell Jar(『종 항아리』)에 묘사되어 있다. 가까스로 살아난 후, 끊임없는 노력으로 다음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된 후 1955년부터 2년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뉴햄 칼리지(Newnham College)에서 공부했다.

2.4. 테드 휴즈와의 결혼과 작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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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시인 테드 휴즈(Ted Hughes)를 만나게 되는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해 6월에 결혼했다. 플라스가 유학과정을 마친 뒤 두 사람은 미국으로 갔으며, 모교인 스미스 여대에서 1957년 9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강의를 하였다. 남편 휴즈는 인근 매사추세츠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교수직업이 창작 생활에 부담이 된다 느끼고 보스톤으로 옮겨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플라스는 보스톤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었고, 이 시기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시인 로버트 로월(Robert Lowell)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의 기간은 플라스가 가장 활성하게 시를 썼던 시기이며, 두 자녀도 이때 낳았다. 1960년 영국으로 돌아가, 첫딸 프리다(Frieda)를 출산하였으며, 임신 중 출판계약을 체결하고 1960년 10월 자신의 첫 번째 시집 <거상(The Colossus and other poems)>를 출판한다. 1962년 아들 니콜라스(Nicholas)가 출생하지만, 그 해 7월 휴즈가 애시어 웨빌(Assia Wevill)[8]과 내연의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실비아와 휴즈는 이혼하게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에 돌아온 플라스는 그해 말까지 잘 알려진 시 <아빠(Daddy)>와 <레이디 라자러스(Lady Lazarus)>등 많은 시를 썼다. 1963년 1월 14일,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 <벨 자(The Bell Jar)>는 호평을 받았다.

2.5. 자살[9]


1963년 2월에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날씨가 닥쳐왔다. 별거로 인한 스트레스에 추위, 독감과 생계 문제까지 겹쳐 실비아 플라스는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혼의 후유증과 사랑의 실패에 대한 좌절로 끊임없는 괴로움에 1963년 2월 11일 자살을 결심하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고 자살했다. 이 때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는 가스가 스며들지 않도록 테이프로 치밀하게 막아두었고, 집주인에겐 의사를 불러달라는 노트를 남겨두었으며, 자살 시각을 오 페어(Au Pair)가 오기로 한 시각에 맞춘 것으로 보아 정말로 목숨을 끊을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가스가 새어나가는 바람에 아래층의 집주인은 의식을 잃어버렸고, 집 밖에서 기다리던 오 페어가 뒤늦게야 집으로 들어갔을 때 실비아 플라스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녀는 영국 웨스트 요크셔에 묻혔다.

2.6. 사후


실비아 플라스의 사후, 그녀의 글을 모아 출판하는 일은 테드 휴스에게 맡겨졌다. 테드 휴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실비아 플라스가 결혼생활 마지막 몇달동안 쓴 일기를 없앴다. 시집 《아리엘(Ariel)》를 편집하면서, 순서를 밝고 경쾌한 내용의 시로 시작하여 점차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의 시로 가도록 고의적으로 배열해 비판을 받았다. 실비아와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누이 올윈 휴스(Olwyn Hughes)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 테드 휴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글의 출판을 결사적으로 막기도 했다. 테드 휴스에 대한 반감이 늘어갔고, 밤 사이 사람들이 실비아 플라스의 묘비에 새겨진 정식 이름, “실비아 플라스 휴스”에서 “휴스”를 지워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69년, 테드 휴스는 다시 외도를 시작했다. 이에 애시어 웨빌은 테드 휴스와 자신 사이에 태어난 알렉산드라 웨빌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자신 또한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동반자살했다. 6년 전 실비아 플라스가 자살했을 때 썼던 방법이었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니콜라스 휴스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테드 휴스가 사망한 지 11년 뒤인 2009년에 자살로 47살 생을 마감하였다.

3. 작품



3.1. 작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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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The Colossus)>
생애 첫 시집
<벨 자(The Bell Jar)>
플라스가 남긴 유일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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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리엘(Ariel)>
유고시집이 담긴 책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Journals of Sylvia Plath)

3.2. 작품 경향



3.2.1. 초기 작품 경향 [10]


<거상(The colosuus)>,<아빠(Daddy)>등의 시편들을 통하여 당대의 여성 시인이 직면해야만 했던 자아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 시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아버지로 나타나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소외와 억압을 느끼고 분노하면서도 그 힘에 대해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하는 여성들이다. 플라스는 이 화자들을 통해 남성 중심의 문화에 갇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의 상실, 자기 분열적인 분로를 표현했다.

3.2.2. 중기 작품 경향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한편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가로서 성을 초월하여 창조력을 표출해야 하는 여성 시인의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한 시인의 이중적 태도는 그녀에게 혼란을 안겨 주었고, 이러한 혼란과 갈등의 양상은 <세 여인(Three Women)>,<교란시키는 뮤즈들(The Disquieting Muses)>,<아침의 노래(Morning Song)>등을 통해 여성적 특성을 드러낸 여성적 글쓰기로 나타나고 있다.예술가로서의 이상과 전형적인 여성 역할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곡예를 벌이던 팔라스의 내부는 마침내 자기 분열 상태에 이르게 된다.

3.2.3. 후기 작품 경향


<에어리얼(Ariel)>,<끝 모서리(Edge)> 등의 작품들을 통해 남성 중심적 사회 속에서 생성된 거짓된 자아를 버리고 새롭게 정화된 여성 시인으로서의 창조력을 되찾기 위해 능동적 죽음을 선택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자로 부인(Lady Lazarus)>에서 플라스는 반복되는 자살의 시도와 부활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에 저하하는 한편 스스로 정화되어 새롭게 탄생된 자아와 자신만의 언어를 찾고자하는 갈망을 표출한다.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아 시작된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시적 과정이다.

3.2.4. 고백시(confessional poet) 형식


고백시는 시인 자신의 내밀한 사적 경험을 소재로 하는 서술적인 서정시로,시인이 자기 자신에 관한 충격적이거나 임상적인 세부사항들을 부끄러움 없이 솔직 담백하게 드러내보인다는 점에서 낭만시와 구분된다.[11]
고백시는 로벗 로웰의 시에서 나온 용어임에 틀림 없지만 플라스의 시와 그의 시는 차이를 보인다. 로웰은 역사와 사회속에서 시적 자아를 보이지만 플라스의 자아는 역사적, 사회적이기 보다는 개인적 성향을 보이면서 자신의 삶과 정서에 더 많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플라스의 고백시는 개인적인 경험을 다룸과 동시에 위협받는 한 자아가 자신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탐색하면서 스스로를 재현하는 극적 접근 때문에 의의를 갖게 된다.[12]

4. 관련 작품



4.1. 영화 <실비아(Syl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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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
2005.04.15
  • 감독
크리스틴 제프스
  • 출연
기네스 펠트로(실비아), 대니얼 크레이그(테드)
  • 줄거리
사랑, 그 하나만 간직했던 찬란한 생애 | 불꽃 같은 시(詩)를 닮은 그녀
1956년 이른 봄 영국. 한 파티장에서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온 미국 학생 실비아는 장래가 촉망되는 문인이자 평론가로 활동 중이던 테드 휴즈를 만나게 되고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테드 역시 실비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끌림을 느끼고 결국 둘은 결혼까지 이르게 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행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비아의 병적일 정도로 집요한 사랑에 대한 집착과 테드의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 때문에 점점 어긋난다.
결국 둘은 자꾸만 빗나가는 사랑으로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관계를 유지해 간다. 실비아는 대학 강의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역량 있는 여류 시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고, 테드 또한 시인으로서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만큼 불안하기만 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은 테드의 외도로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된다.
이혼 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이별의 아픔으로 힘겨워 하던 실비아는 마치 광기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 더욱 창작 활동에 매진하여 다작의 시와 소설을 완성하지만 결국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데...[13]

[1] 김선형,『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문예출판사, 2004, p707-709[2] "실비아 플래스",『위키백과,우리 모두의 백과사전』,"Sylvia Plath",『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3] 권태기,"실비아…’ ‘치사한 욕망’과 ‘불멸의 문학’ 사이",『동아일보,2004.03.20[4] 송순임,「실비아 플라스: 여성 정체성 추구의 시 = Sylvia Plath: Poetry for the Pursuit of Female Identity」,전남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사학위 논문,2010.2,PP.1-2[5] "실비아 플라스",『해외저자사전』[6] 김선형,『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문예출판사, 2004, p707-709[7] "실비아 플래스",『위키백과,우리 모두의 백과사전』,"Sylvia Plath",『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8] 유대계 독일인으로 원래 발음은 '아시아 베필'[9] 권태기,"실비아…’ ‘치사한 욕망’과 ‘불멸의 문학’ 사이",『동아일보,2004.03.20[10] 송순임,「실비아 플라스: 여성 정체성 추구의 시 = Sylvia Plath: Poetry for the Pursuit of Female Identity」,전남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사학위 논문,2010.2,PP.1-2[11] "고백시",『두산백과』[12] 곽미경,「실비아 플라스의 시에 나타난 가족과 자아」>,동아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석사학위 논문,2005,p1[13] "실비아",『네이버 영화매거진』,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