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 대신전
1. 개요
이집트 아스완의 남쪽 280 km 지점에 있는 고대 이집트 19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신전이다. 룩소르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과 함께, 람세스 2세의 왕성한 과시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모래에 파묻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1813년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4] 가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전의 입구를 찾지 못해 직접 발굴하진 못했기 때문에 지인이었던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바티스타 벨초니(Giovanni Battista Belzoni)에게 알렸고, 1817년 벨초니가 발굴한 다음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이 위치한 아부심벨은 수단 공화국과의 국경 지대에 있는 마을로, 이집트 최남단에 있다. 이곳의 지명 아부심벨은 부르크하르트가 이곳에 왔을 때 안내단을 이끌었던 이집트인 소년의 이름, 아부 심벨에서 따왔다고 한다.
1979년 '누비아 유적 – 아부 심벨에서 필레까지'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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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조
2.1. 대신전
호루스 신과 하토르 신의 작은 입상들이 줄지어 선 입구에 있는 20 m에 이르는 좌상 4개는 모두 람세스 2세로 각각 상, 하 이집트를 의미하는 의상을 입은 형상이다.[5] 안타깝게도 보는 방향으로 왼쪽 두 번째 좌상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지만 떨어진 몸체가 바로 아래에 보존되었음도 아부심벨의 묘미다. 이 좌상들은 아부심벨 대신전의 간판이라고 해도 좋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의 모습을 한) 람세스 2세의 입상 8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는데, 벽에는 카데시 전투의 장면들을 새겼다. 기둥의 방 안의 방에는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가장 깊숙한 성스러운 공간에는 신(神) 4위의 좌상이 있다. 라 하라크티 신, 신격화된 람세스 2세, 아몬 라 신, 프타 신이다. 1년 중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이 공간에 태양빛이 들어와 신상을 비추지만, 어둠신인 프타의 상에는 이 날에도 빛이 비치지 않는다. 원래는 2월 21일과 10월 21일이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위한 공사를 할 때, 날짜를 정확히 맞추고자 1년이나 시간을 들여 계산을 하였지만 결국 원래 날짜보다 각각 하루 늦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들에는 아부심벨 대신전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전통음악과 춤을 비롯하여, 이슬람교의 수피즘 교도들이 추는 춤 등을 공연하는 큰 축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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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신전을 언덕 지형으로 이전하면서 신전이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언덕과 언덕 내부 사이에 대형 돔을 설치하였다. 신전 오른쪽에 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신전이 콘크리트 돔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와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2.2. 소신전
람세스 2세가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서 세운 신전으로 대신전보다 크기가 작다.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4개와 네페르타리의 입상 2개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의 입상의 크기는 거의 동등하며 그들의 입상 아래에는 왕자와 공주들의 입상이 작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신전 내부에 있는 하토르 여신의 입상이 6개가 세워진 기둥의 방이 있으며 벽면에는 채색된 왕비의 모습이 새겨진 벽화가 있다. 원래 아부심벨 대신전이 있는 지역은 하토르 여신의 영역이었다.
3. 유네스코와 미국의 노력
이 신전은 그 규모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대규모의 공사를 통한 이전 사업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초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하느라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가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신전을 1만 6천여 개 조각으로 분할한 뒤 원래의 위치보다 70 m 정도 높은 지대에 있는 나일 강의 상류 지역에서 재조립하는 대공사를 하였다. 아부심벨을 자세히 보면 공사 당시 신전을 분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을 이전할 당시 미국이 많은 지원을 하였고, 이집트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있었던 덴두르 신전을 미국에 기증하였다. 미국은 이 신전을 분할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부로 이전하여 다시 조립하여 전시 중이다.[6]
4. 가는 길
기차로는 이동할 수 없다. 카이로와 룩소르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주로 관광객들은 인접한 도시 아스완에서 버스로 이동한다.[7] 어느 시간에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지방 버스의 출발 시간은 08시와 17시이며, 이 외에도 새벽 2~3시에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버스들이 출발한다. 아스완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들이 아부심벨 대신전으로 가는 버스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다. 여행객들은 가격 흥정 뿐 아니라 버스의 성능, 그리고 출발할 때 아침 식사를 위한 도시락을 제공하여 주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과거에는 모든 버스들이 무장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해야 했었고 때문에 오전에 출발해 당일치기만 가능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8] , 심지어 탑승객들의 신원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물론 그와 무관하게 여행 중 여권과 신분증은 항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 아부심벨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지방 버스 시간은 07시와 14시에 출발한다. 비행기로 이동할 경우, 창가에서 아부심벨의 공항에 착륙할 때 아스완 하이 댐이 만든 낫세르 호수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00년부터 밤에는 소리와 빛의 쇼를 상영한다. 컴퓨터에 의해 상영되는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추는 각양각색의 레이저와 빛과, 아부심벨 대신전과 람세스 2세를 웅장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쇼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입장료는 55이집트 파운드이며, 아직까지는 한국어로는 상영되지 않는다. 다만 이 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부심벨에서 1박을 해야 하는데, 아부심벨에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수가 적고 가격도 비싸므로, 관광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유적 보호를 위해서 내부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 이집트 유적들이 그렇듯이 300EGP 또는 17달러[9] 를 내고 사진 촬영 가능한 티켓을 구매하면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촬영이 가능하다. 다만 신전 내부가 아주 어둡기 때문에 조리개 값이 아주 낮은 렌즈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좋은 품질의 사진을 촬영하기는 어렵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이 사람은 페트라를 발견하기도 했다.[5] 여담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의외로 신상은 이렇게 거대하게 제작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커다란 상들은 항상 파라오가 대상이었다.[6] 덴두르 신전은 기원전 15년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역사상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해외로 반출된 이집트의 문화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입수한 유물들만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7] 아주 드문 케이스지만 렌터카를 빌려 직접 운전해 가는것도 가능은 하다. 다만 난이도가 상당한 편. 도전하고 싶다면 한상기 기자의 유튜브 여행기를 참고해보자[8] 한상기 기자의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여행기에 의하면 본인도 인터넷에서 투어버스에 경찰이 붙어 호위를 받으며 간다고 봤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못봤다며 꼭 그런것은 아닌거 같다는 얘기를 하였다.참조[9] 2018년 5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