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1. 요르단의 거대 도시 유적
1.1. 페트라 여행 팁
1.2. 홍수 문제
2. 인명
2.1. 실존 인물
2.2. 가상 인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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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페트라
영어
Petra
프랑스어
Petra
국가·위치
요르단 마안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5년
등재기준
(i)[1], (iii)[2], (vi)[3]
지정번호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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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이 유적 이름은 알 카즈네. 페트라는 이것만을 칭하는 말이 아니다.


1. 요르단의 거대 도시 유적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불로장생할 것이니[4]

사람들이 나를 네가 있는 성스러운 산으로 인도하도록 할지어다. 사막을 가로지르고 산을 넘으면 초승달 계곡이 나오는데..."'''

인디아나 존스

البتراء(''Al-Batrā'')
요르단 왕국 남부에 있는 거대한 도시, 혹은 그 도시 유적으로 '알카즈네(الخزنة‎, 보물)'가 보통 페트라 하나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페트라는 이거 말고도 주변에 여러 유적을 통칭하는 여기 도시 명칭이다. 알 카즈네 말고도 주변에 있는 여타 유적도 장난 아니게 정교하고 더 거대하게 남은 귀중한 유적이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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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즈네 다음으로 유명한 앗데이르(الدير, 수도원). 높이만 해도 대도시 빌딩 10층짜리만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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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렇게 야외 신전 유적이라든지 바위 곳곳을 깎아 만든 다른 건물들도 가득한데 모두 800여 개가 넘는다.
아랍계 유목민이던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 도시로서 붉은 사암(沙岩) 산을 깎고 내부를 파서 그대로 건물을 만들었기에 구조가 아주 특이하다. 대략 건물 모양이 바위산에서 부조로 조각된 듯하다. 페트라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5] 원래 나바테아인들이 불렀던 도시 이름은 레켐(Rekem)이었지만, 로마의 정복 이후 그리스인들이 붙인 페트라라는 이름이 쓰이면서 오늘날까지 페트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가 번영했고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있어서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 등으로 번영을 누렸다.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까지 갖춘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도시였고 기독교 성경에는 구약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에서 모세가 여길 통과해 가나안으로 나갔다는 기록도 있다. 그 후 좁은 협곡(السيق)을 무기삼아 로마 군에게 몇 번이나 저항하였으나 우주방어에 빡친 로마 측이 수도관을 부수는 필살기를 시전해 기원전 63년에 항복해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트라야누스때 속주로 편입된다. 그리고 6세기경에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존하는 페트라의 유적은 로마의 영향권에 있을 때의 것으로서 건축 양식이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에 아람 지방에 고유한 스타일이 들어가 독특하다.
그대로 잊혔다가 19세기에 스위스 출신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6]카이로로 가는 도중 페트라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면서 여길 찾아 떠났다. 하지만 여기 살던 베두인들이 비무슬림 이방인을 별로 환영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슬람교도로 위장하고 그들과 친해진 끝에 1812년 발견에 성공했고 유럽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며 이 도시를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르크하르트는 풍토병을 얻어서 1817년 33살에 죽는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이 모습에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존 상태가 엄청나게 좋기 때문이라서, 이게 2천 년이 넘는 것이라고 못 믿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보존 상태가 좋은 건 주변에 험난한 산들이 바람과 온갖 기후를 막아준 것도 컸고 여길 차지한 이슬람인들도 정작 사람 얼굴 같은 것만 우상화를 막는다고 부수고 다른 건 건드리지 않았기에 상태가 엄청 좋은 채로 남았다. 더불어 사람이 살기에는 꽤 불편한 곳이라서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기 어려운 점도 한몫을 했다.
그리고 막상 가 보면 화려한 외양과 달리 속은 텅텅 비어서 안에도 뭔가 있을까하고 들어오다간 실망하기 일쑤이다.[7] 그러나 '''저 외양만으로도 와서 볼 만한 매력이 충분하다.''' 무엇보다 밤에는, 유적을 보호하고자 전기 시설이 별로 없기에, 촛불이나 횃불을 켜서 관람하게 하는데 정말 환상스럽다. 인공 불빛이 거의 없어서 밤하늘에 엄청난 별이 가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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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2007년 세계 신7대 불가사의에도 올랐는데 아랍 여러 국가와 이슬람 국가가 많이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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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가 진짜 유명한 이유는 1989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제3편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쓰였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는 성배가 보관된 성전으로 등장해서 마지막 장면의 무대가 되었다. 여기서 존스 부자와 마커스 교수가 말을 타고 협곡에 빠져나와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매우 인상 깊은 라스트 신을 연출했다.[8]
감독 스필버그는 당시 국왕인 후세인 1세가 촬영에 엄청나게 협조했다고 회고한다. 스필버그가 유대인인지라 행여나 이슬람 과격파가 테러할까 봐 군대를 동원하여 호위까지 해 주었고 심지어 베두인 출신으로 기마술이 뛰어난 군인들을 스턴트맨으로 지원까지 해 주었을 정도다. 그렇게 촬영된 알 카즈네 장면을 보고 왕이 부탁하기를...'''"알 카즈네 부분을 재촬영해 줄 순 없겠소?"'''
워낙 크게 도움받았던 터라 스필버그는 이 부분을 여러 버전으로 재촬영하였고 결국 왕이 개봉판 라스트 신을 보고 매우 만족해 하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자 왕이 제작진들에게 최고급 만찬까지 크게 베풀었다고 한다.
주변 기념품 가게에선 인디아나 존스 관련 기념품들도 판다. 더불어 지금까지도 요르단 티브이로 이 영화가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영된다. 영화덕에 관광객들이 넘처나게 됐으니 요르단 입장에선 정말 고마울듯 하다.
더불어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나 낙타나 마차를 모는 사람들은 대대로 여기 주변에서 살던 유목민들 즉 베두인들이다. 영화 개봉 이후 유명해지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자, 요르단 정부는 여길 국영화하는 대신 그곳에서 대대로 살던 유목민들에게 장사할 권리를 주었다.
이렇듯 요르단의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기실 요르단은 다른 고대 유적지도 꽤 많은 국가라서 페트라만 보고 가면 아쉽다. 터키, 이스라엘과 더불어 기독교 유적지들이 엄청나게 넘치는 곳이라 성지 여행하는 전 세계 기독교도 관광객이 많다.
몬타나 존스 24화에서도 등장.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도 등장하였다. 여기에서는 고대 프라임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매트릭스를 감춰둔 곳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매트릭스의 힘으로 샘 윗위키옵티머스 프라임을 되살리게 되니 완전히 인디아나 존스패러디다. [9]여기서도 나온 탓에 이젠 인디아나 존스 3말고도 여기 지역 티브이에선 이 영화도 자주 방영해 준다.
미생(드라마)의 마지막회에서도 등장한다. 오상식(이성민)과 장그래(임시완)가 페트라의 알 카즈네 앞에서 재회했다. 원작인 미생(웹툰) 후기2를 보면 윤태호 작가고증하고자 방문했었다.
웹소설 도시야월기담 Chapter. 4의 주요 무대로도 나온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도 나오는데, 게임 상에서 딱 하나만 지을 수 있는 세계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특히 문명 5의 페트라는 사막 조건만 맞으면 수많은 불가사의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불가사의로 꼽힌다.
게임 오버워치의 데스매치 전용 전장으로 추가되었다.
방패 용사 성공담에서는 필로가 인간으로 둔갑이 가능해지자, 나오후미가 필로에게 입히기 위해 "변신 시에도 문제없는 옷"을 만들기 위한 마법섬유의 원료를 구하려 한다. 마침내 원료를 구할 수 있는 폐신전을 찾아내는데, 그 신전의 입구가 페트라와 흡사하다.

1.1. 페트라 여행 팁


페트라까지 가는 교통은 편하진 않다. 페트라까지 차로 10분 거리이고 페트라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인 와디 무사(وادي موسى, 모세의 계곡)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했을 때 한국인이 입국하게 되는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부터는 JETT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Desert Highway를 이용해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집트의 타바에서 배를 이용하거나 극히 드물겠지만 사우디에서 입국한다면, 아카바에서 이동해야 하는데 아카바에서 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간대가 좋지 않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이츠하크 라빈/와디 아라바 국경을 넘는다면, 현지인이 차로 픽업해 오는 때를 제외하면 유일한 교통수단은 국경 바로 앞에서 죽치고 있는 택시로 두 시간가량 이동하는 것뿐이고 이들의 바가지 행각은 Aqaba Border Taxi Mafia로 불리며 악명이 자자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출발하는 패키지나 투어에 끼는 게 아니라면 다른 선택지는 없으며, 후술하겠지만 이 방법은 다른 쪽에서 추가 지출이 강요된다는 문제가 있다.
페트라 매표소와 관광 안내소가 있는 곳 주변에 모벤픽 리조트를 비롯한 호텔들과 식당이 있으며, 페트라 내부에도 레스토랑과 간단한 식료품을 파는 곳들이 있으나 차로 10분 거리 정도에 있는 와디 무사의 호텔과 식당들보다 너무 비싸거나 평가가 좋지 못해서 일반으로 여행객들은 와디 무사에서 묵으면서 물이나 간단한 간식거리 같은 여행 준비물을 사 간다. 요르단 국가 차원에서 열성을 다하는 관광산업에서 정점을 찍는 곳이 페트라이며 여행객들도 그만큼 몰려오는 곳이므로 와디무사의 숙소는 풍부하고 은행이나 웨스턴 유니온 같은 편의 시설도 그럭저럭 갖춰져 있다.
와디 무사에서 페트라 입구까지는 1디나르 내외의 돈을 내고 택시를 타거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페트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므로 걸어서 갈 수도 있으나 도로 상태가 걷기에 썩 좋지 않으며 페트라는 체력이 많이 요구되는 여행지란 점에서 비추천이다.
페트라는 세계에서도 입장료가 비싼 여행지 중 하나이다. 2016년 1월 현재 1일권이 50 요르단 디나르로 약 85000 원이고 숙박업과 같은 여행 산업을 진흥하게 하고자 2일권 55JD=약 95000원, 3일권 60JD=100500원으로 오래 있을수록 싸지긴 하나 3일권을 산다고 해도 하루치 입장료가 30000원이 넘는다. 유적 보호라는 명분은 좋지만 일반 관광객에게는 그야말로 폭리. 학생 할인 따위는 없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이스라엘 여행사들이 페트라만 당일치기로 방문하고 다시 출국하는 투어를 제공하고 관광객들이 이를 절찬리에 이용해버린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관광지로 페트라가 소개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이때마다 요르단 행정부와 사람들은 불같이 화냈다. 당시에는 훨씬 싼 값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묶어서 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론리 플래닛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자치 행정부 편에서는 엄연한 요르단 여행지인 페트라를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자국 관광산업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요르단 당국은 당일치기 관광객들에게는 입장료로 90JD, 한화 약 15만 원, 즉 요르단을 통해 머무는 사흘치보다도 훨씬 더 비싸게 팍팍 올려 받게되면서 이스라엘 여행사들은 이제 요르단으로 이득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래서 당일치기로 가면 더 엄청나게 비싸지면서 당일치기 여행은 정말 돈많은 부유층이나 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이스라엘 여행 책자에서도 페트라 소개는 그리 소개하지않는다. 소개해봐야 값이 당일치기로 훨씬 비싸니 그걸로 가볼 사람도 줄었다.
이것은 입국사증에 찍힌 날짜와 페트라 방문 날짜가 같은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여부를 판단하므로 페트라 방문 시 여권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한데, 그러려면 요르단 국적을 따거나 현지 대학교를 다녀야 한다. 현지인들은 5000원도 안 되는 돈을 내고 입장한다.
페트라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서 페트라를 본격으로 관광하려면 알 카즈네까지 연결되는 협곡 길인 시크(السيق‎)의 입구까지 가야하는데 이 거리가 꽤 멀다. 중간에 기대치를 높여 주는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길은 비포장 돌투성이이라 험하고 그늘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 문제다.
유적을 보호하고자 차량 진입이 금지됐으므로 걸어서 가거나 티켓에 포함된 마차를 타거나 말이나 당나귀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페트라의 모든 동물 교통수단은 기본으로 바가지가 심하고 승차감은 매우 좋지 않다. 마차는 그 자체의 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강제인 팁의 액수가 상당하다. 걸어서 간다면 넉넉잡아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엄청나게 거대한 바위로 둘러싸인 시크를 한참 지나다보면 나올 듯 나올 듯 하던 페트라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이미지인 알 카즈네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다. 여기서부터가 이제 페트라 여행의 시작이라 할수 있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추천되는 루트로는 희생 제단까지 등정하는 루트, 그림자로 인해 정오 이전에 가야하는 알 카즈네를 위에서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루트, 수도원까지 쭉 길을 따라 올라가는 루트 등이 있다. 어떤 루트는 전문 가이드가 필요할 정도로 난도가 높으나 상기한 루트는 길이 조금 험하고 힘들고 목마르고 다리 아프고 지나다니는 당나귀와 분변 때문에 짜증이 돋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하면 특별한 장비 없이도 전부 완주할 수 있다.
페트라는 기본으로 사막 지형에 바위산이 더해진 형태라서 덥고 건조하며 그늘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꽤나 큰 규모의 이곳을 돌아보려면 상대적으로 햇살이 덜한 아침에 일정을 시작해야 이롭고 편안한 복장과 햇빛을 가릴 모자와 선크림과 충분한 물 지참은 필수다.
알 카즈네에서 수도원 입구까지, 혹은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길 등에는 낙타나 말이나 당나귀를 타기를 권유하는 마부들이 꽤 있다. 혼자 걷고 있으면 백프로 다가와서 말이나 당나귀를 가깝게 몰고 와서 강요에 가깝게 압박해대는 때도 있을 정도다. 물론 바가지는 기본이고 흥정도 아주 어려운 데다가 생각보다 몸이 그렇게 편하지도 않고 동물 복지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때가 잦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 당나귀들은 맞아 가면서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운명이기 때문에, 최소 탈 때 만큼은 괴롭히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주자. 가격은 현지인 시세로는 2~4(5~6천 원)디나르 정도인데 관광객들에겐 10 디나르+ 팁 까지 달라고 한다. 5 디나르 정도면 흥정에 성공한 거니까 타협하자.

1.2. 홍수 문제


페트라가 위험하다는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바로 홍수 문제다. 1963년에는 홍수로 22명이나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 평균 강수량은 고작 10밀리미터 수준이지만 종종 홍수로 비가 엄청 오면 곳곳이 물에 잠긴다.
그렇다면 이렇게 홍수가 나는데도 어찌하여 2천 년 가까이나 페트라는 무사했나? 연구도 거듭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건축학자들은 과 저수지를 만들어 나바테아인들이 홍수를 대비했으리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건축학자들은 댐과 저수지, 수도관 흔적을 찾기도 했고 이에 따라 요르단 정부와 국제 고고학계도 페트라의 무수한 귀중한 건축유적들을 지키고자 과거 나바테아인들이 지은 댐이나 저수지 시절을 복원하고 나서고 있다.

2. 인명


성 베드로를 기원으로 하는 페트로의 여성형 이름이다. 남자 이름과 달리 변형이 거의 없이 전래되었다.

2.1. 실존 인물



2.2. 가상 인물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4] 이 말의 원문은 성경 요한의 복음서 4장 14절이다. 풀 버전은, '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5] 어원이 같은 단어로 페트롤륨(석유), 피터-베드로 등이 있다.[6] 이 사람은 아부심벨 대신전을 발견하기도 했다.[7] 전설로는 아득한 옛날에도 이 안에 보물이 가득하다고 소문이 나서 고생 끝에 온 이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꼼꼼하게 다 파보고 찾아봐도 보물은커녕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겉을 우상숭배라고 하여 얼굴 빼고는 안 건드렸다는 것도 참 대단하다. 참고로 카즈네란 말 자체가 베두인 말로 '''보물'''이라는 뜻이다.[8] 인디아나 존스 레고 게임에서는 헨리 존스가 말을 이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9] 심지어 윗윗키 역의 샤이아 라보프는 1년 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4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