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디 나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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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2.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투톱에서의 공격수이다. 신장이 작아서 체급에 한계가 있기에 원톱 스트라이커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1] , 이외에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로 출전해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호마리우가 연상될 정도로 슈팅 테크닉이 매우 뛰어났으며, 박스 안쪽으로 침투하여 좋은 공간을 선점한 다음에 패스를 받아 골로 연결시키는 플레이에 능했다. 신장이 작은 공격수에게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스피드도 평균 이상이었으며, 아주 화려한 발재간을 선보인 적은 별로 없었지만 좋은 기본기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다만 스피드를 이용한 치달을 자주 시도하는 편은 아니었고, 동료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한 득점에 능했는데, 축구 지능이 좋은 편이었다. 주로 이탈리아 세리에 A, 그것도 빅클럽과는 거리가 먼 팀에서 주로 선수생활을 한 탓인지 국제적으로 알려진 편은 아니며, 국가대표팀에서 빛을 본 것도 30줄이 넘어서인지라[2] 재능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9-2010, 2010-2011 시즌 득점왕도 차지하는 등 세리에 A의 정상급 공격수였음은 분명하다.
3. 클럽 경력
3.1. 엠폴리 FC
8세에 축구를 시작하여 14세 때 엠폴리 FC에 입단하였다. 1996-97 시즌에 세리에 B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는데, 이 클럽에는 고향이며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빈첸초 몬텔라, 루카 토니도 소속하고 있었다. 그 이후 세리에 A로 승격한 엠폴리를 나와 세리에 C1이나 세리에 C2에 소속된 팀에 임대되었다. 1998-99 시즌 세리에 C2의 AC 비아레지오로 임대 이적해 12골을 넣으며 활약하였다. 1999-2000 시즌에 세리에 B로 강등한 엠폴리에 복귀하면서 주전 자리를 얻었다. 2001-02 시즌에는 38경기 16득점의 활약으로 세리에 A 승격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2-03 시즌 레지나 전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통산 27경기 13득점을 기록하였다.
3.2. 우디네세 칼초
03-04 시즌 엠폴리가 강등되어 우디네세 칼초로 이적하였다. 04-05 시즌 팀의 4위 약진에 기여하였고, 05-0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하였다. 2007-08 시즌은 자신 최다 인 17득점을 기록하였다. 2009-10 시즌 2010년 5월 9일 AS 바리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 후 29골으로 첫 득점왕에 올랐다. 이 활약으로 오스카르 델 칼치오 이탈리아인 축구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2010-11 시즌 11월 14일 레체 전에서 해트 트릭을 달성하였고, 우디네세가 13 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15골을 기록하였다.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통산 28골로 2년 연속 득점왕을 수상하며 우디네세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에 공헌하였다.
2014년 1월 6일 2013-14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표명하였으나 번복할 가능성이 있다. 4골밖에 못 넣은 상당히 부진한 상황에서 은퇴를 표명하였으나 후반기에 13골을 넣었고, 마지막 라운드엔 해트 트릭까지 했다. 결국 은퇴를 번복하고 더 뛰기로 하였다. 셀링 클럽으로 유명한 우디네세에서 10년 가까이 현역으로 뛸 정도면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선수이며 활약은 팀의 전설로 남을 수준이다.
'''그리고 은퇴를 번복하고 치른 개막전에서 혼자 팀의 두 골을 모두 넣으며 D 나탈레는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또 이번시즌이 마지막이건만 전반기 현재 8골을 넣어 득점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14/15시즌을 마지막으로 우디네세를 떠난다고 한다. 11시즌 동안 우디네세에서 뛰면서 351경기 185골[3] 을 기록한 우디네세의 레전드. 보드진이 단물 다 빼먹고 버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즌이 끝나면 세리에 A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떠난다는 듯.
5월 12일, 우디네세에서 한 시즌 더 뛸 의사가 있음을 선언했으며, 2016년 여름까지 재계약했다.
15/16시즌 22경기 1골 4 어시스트로 상당히 부진중이다.
4월 30일(한국시간) 우디네세 공식 트위터를 통해 팀을 떠나는것이 확정되었다.
5월 16일(한국시간)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은퇴를 했다.
15/16시즌 23경기 2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우디네세에서 기록한 골의 총합은 227골로, 우디네세뿐만 아니라 세리에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4. 국가대표
이탈리아 대표팀은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 시절 2002년 11월 20일 친선 경기 터키 전에서 데뷔하였다. 2004년 2월 11일 체코와의 친선 경기에서 A 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유로 2012에서도 국가 대표팀에 합류. 여담으로 이 당시 조수미가 뜬금없이 화제가 되었는데, 유로 2012 스페인과의 조별 예선 경기 때 선발로 나온 마리오 발로텔리가 득점을 내지 못하자, 조수미는 "내가 프란델리라면 디 나탈레를 투입시키겠다"는 말을 트위터에 적었다.[4] 그리고 프란델리는 후반에 발로텔리를 빼고 디 나탈레를 투입시켰는데 정말로 '''디 나탈레가 선제골을 넣었다.''' 아쉽게도 3분 뒤,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골을 넣으면서 동점으로 끝이 났지만.
A매치 총 기록은 43경기 11골이다.
프란델리에게 전술 지시하는 디 나탈레 덕후 조수미
5. 기록
5.1. 대회 기록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002~2012)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준우승: 2012
5.2. 개인 수상
- 세리에 A 득점왕: 2009-10, 2010-11
-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2010
- 세리에 A 페어 플레이어: 2010
- 팔로네 디 아르젠토: 2011
- 프레미오 인테르나치오날레 지아친토 파케티: 2011
- 세리에 A 올해의 최고 득점자: 2011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0-11, 2011-12, 2012-13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14-15
6. 기타
2002년 6월에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우디네세 칼초의 친한 팀 동료였던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가 2012년에 리보르노로 임대를 갔을 때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에게 홀로 남겨진 장애인 누나를 지금까지 돌보고 있다고 한다.
[1] 물론 키가 170센티미터 이하로 작은 편이었기에 원톱 롤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많이 따랐다는 뜻이지, 피지컬이 딱히 약점인 선수는 아니었다. 키가 작은 대신 몸의 균형이 좋아서 키가 큰 수비수가 달라붙는다고 해서 피식 쓰러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2] 처음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건 2002년 월드컵 이후였고,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 선발되지는 않았다.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것도 2010년이 처음이었으며, 2012년 유로 준우승에 일조하면서 늦게나마 빛을 보았다.[3] 세리에 A 7위의 득점 기록이다![4] 조수미는 로마에 살 동안 AS 로마와 프란체스코 토티의 팬으로 지낸 적이 있어 이탈리아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