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네세 칼초
1. 개요
1896년도에 창단된 유벤투스, AC 밀란보다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으로 세리에 클럽들 가운데 우디네세보다 긴 역사를 가진 클럽은 1893년에 창단된 제노아가 유일하다.
2. 역사
전술했듯 1896년에 창단되었고, 최초 창단될 시기에는 우디네세 체조 & 펜싱 클럽(La Societa Udinese di Ginnastica e Scherma)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축구는 우디네세의 주종목이 아니었고, 체조와 펜싱 선수들의 번외 활동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우디네세가 본격적인 축구클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23년에 이름을 우디네세 AC(Udinese Associazione Calcio)로 바꾸고서부터였다.
11-12 시즌 맹활약을 했던 12-13시즌 시작전에 마우리시오 이슬라, 콰드오 아사모아를 같은 리그의 유벤투스로 이적시키고, 주전 골키퍼였던 사미르 한다노비치를 역시 같은 리그의 인터밀란으로 팔아버렸다. 12-13 겨울이적시장에서는 콜롬비아 국가대표 풀백 파블로 아르메로를 나폴리로 임대[2] 시켰다. 위에서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주전선수들이다. 이렇게 매 시즌 이적시장에서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서 그런지 시즌 초에는 고전한다. 특히 이는 시즌 초반에 있는 유럽대항전 예선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 11-12(물론 이때는 아스날을 만났지만), 12-13시즌 챔피언스리그 모두 조별리그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으며, 유로파에서도 변변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세리에의 리그 포인트를 깎아먹는 주범이라고 대차게 까고 있다.13-14 유로파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조별리그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10/11시즌부터 12/13시즌까지 세 시즌동안 주장이자 우디네세의 거의 유일한 프랜차이즈 선수 안토니오 디 나탈레는 계속 자신 주변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바뀌는 사이에서도 활약해서 많은 축구팬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런 그도 결국 13/14시즌 이후 퍼지고 말았으나, 전반기에 퍼진 것은 후반기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전반기에 꼴랑 4골밖에 못 넣었으나 후반기에 13골을 넣으면서 되살아났고, 은퇴하기로 했던 것도 번복하였다.
그가 퍼지자 우디네세는 끝내 중위권으로 추락하였고 마지막 희망이던 코파 이탈리아마저도 4강에서 탈락하였다. 끝내 디 나탈레가 시즌이 끝나면 은퇴를 하기로 하였기에 우디네세의 미래는 매우 암담하다. 셀링 클럽 정책을 펼치면서도 챔스권을 유지하였던 것은 정말 디 나탈레의 능력이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13/14시즌엔 선수들을 대부분 지켰음에도 디 나탈레 한 사람의 부진이 이런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하던 공격수 유망주 무리엘이 생각보다 부진한 것도 있긴 하다. 팀 순위를 끌어올리긴 이미 늦었지만 디 나탈레가 살아났고 은퇴를 번복한 것이 우디네세에겐 다행이다.
14-15 시즌 귀돌린 감독이 기술 고문으로 이동하고 안드레아 스트라마키오니 감독이 왔다. 디 나탈레는 14골을 득점했고 은퇴를 다시 한 번 번복했다. 우디네세는 전반기에 많이 벌어놓은 승점 덕분에 16위를 기록했다.
15-16시즌은 그야말로 1점 차로 가까스로 17위를 기록, 강등을 모면했다. 개막전 유벤투스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켰지만 하위권에서 시즌의 대부분을 보냈다. 디 나탈레는 2골 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결국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3. 현재 스쿼드
4. 기타
- 여담으로 한때 희대의 낚시선수 네나드 스렉코비치(...) 짤방의 실제 주인공 두샨 바스타 선수가 소속되어 있었다. 또한 브라질의 축구스타이자 역대급 공격형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라 불리는 지쿠가 잠깐 소속했었던 클럽이기도 하다. 참고로 지쿠는 우디네세 소속 당시 세리에 득점랭킹 2위에 오른적이 있다.
- 홈구장인 스타디오 프리울리를 우디네 시로부터 사들여 종합구장이던 것을 축구전용구장으로 개축하였다. 이름도 메인스폰서에서 따온 다치아 아레나로 개칭. 이전 구장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아치형지붕을 가진 메인스탠드만 남기고 삼면을 완전 철거후 전용구장화 하였는데 개축된 삼면의 디자인이 유벤투스의 홈구장과 매우 비슷하다. 유니폼도 비슷하고 홈구장까지 비슷해 졌다.
- 세리에A의 대표적 셀링클럽이다. 전세계의 유망주들을 싼값에 영입해 해외각지에 임대를 보내 성장시켜서 클럽에서 주축선수로 쓰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시 빅클럽에 팔아 버린다. 연고지인 우디네의 인구는 10만에 불과[3] 하고, 세리에A의 중계권료 분배가 차등이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에A의 중소클럽은 높은 주급을 감당하기 힘들다. 매년 시즌이 시작되면 지난 시즌에 활약했던 주전 선수들을 찾아 보기 어려운 이유가 이런 클럽 운영스타일 때문이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포르투, 벤피카등과 함께 방대한 스카우터진을 자랑한다.
- 구단주인 포초 가문은 잉글랜드의 왓포드 FC와 스페인의 그라나다 CF 또한 소유하고 있어 해당 구단들을 우디네세의 위성구단으로 거느려 임대정책을 펼치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프리미어 리그의 중계권료가 엄청난 관계로 왓포드가 강등만 당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디네세가 왓포드의 선수공급 기지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을듯.[4][5]
[1] 이 별명은 아무래도 같은 나라의 모 유명 구단이 자주 쓰는지라 잘 안쓰인다.[2] 완전이적 조항삽입[3] 홈구장인 프리올리 경기장의 수용인원은 41705명[4] 실제로 15/16시즌을 앞두고 왓포드의 잔류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으며, 그와는 반대로 우디네세와 그라나다의 전력은 약해졌다. 결국 세리에 하위권과 라 리가 강등권으로 쳐졌다. 이러한 결정의 이유는 EPL의 어마어마한 중계권료 수익 때문이다. 세리에와 달리 여긴 1부리그 중하위팀에게도 중계권비를 꽤 많이 나눠주기에 1부리그에 잔류만해도 엄청난 이익이 생긴다. [5] 그라나다 CF는 2017년부로 가문의 마수에서 벗어나 중국 자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결국 왓포드는 2019-2020 시즌에 강등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