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1. 개요
[image]'''Olha que coisa mais linda
Mais cheia de graça
É ela menina
Que vem e que passa
No doce balanço, a caminho do mar'''
브라질 출신의 음악가. '''보사노바의 아버지'''. 나아가 보사노바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주앙 지우베르투, 조니 알프와 더불어 보사노바라는 흐름을 만들고 전세계에 전파한 인물이다. 유명한 곡으로는The Girl from Ipanema[1] (이파네마의 소녀), Wave, Insensatez, Desafinado 등이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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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조빔은 1927년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호르헤 데 올리비에라 조빔은 작가이자 언론인이자 외교관이였으며종조부인 조제 마르틴 다 크루즈 조빔은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의 주치의이자 정치인이였다. 조빔이라는 성은 조제 마르틴이 포르투갈에 의학을 공부하러 갔을 때 자신의 집안이 떠나온 포르투 시의 조빔 교구를 기리기 위해 붙인 것이다.
조빔의 유년기에 그의 어머니인 닐자 브라질리에로 데 알베디아는 그의 아버지와 이혼하여 아이들과 함께 이파네마로 이사하는데, 1935년 호르헤 조빔이 사망한 후 이웃에 살던 작곡가인 셀자 페소와 재혼한다. 셀자 페소는 그의 양아들인 톰 조빔에게 그의 첫 피아노를 선물해준다. 후에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하지만 돈을 벌기위해 어릴 때 배운 피아노 실력을 살려 나이트클럽과 바에서 알바를 뛰다가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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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빙이 브라질에서 이름을 알린 것은, 시인이자 외교관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es)[2] 와 1956년 연극 《Orfeu de Conceição》의 음악을 맡았을때였다. 이후 이 연극을 원작으로 프랑스 제작자인 사샤 고르딘(Sacha Gordine)이 영화 《흑인 오르페우》(Orfeu de Negro)를 만들 때 고르디네은 새로운 곡으로만 영화를 채우고 싶어 했고, 모라이스와 조빙에게 새로운 곡을 써주길 부탁한다. 그러나 모라이스는 제작당시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머물고 있었고, 둘은 전화를 통해서 단지 3개의 곡만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A Felicidade〉, 〈Frevo〉, 〈O Nosso Amor〉이다. 이 둘의 작업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이후에도 모라이스는 조빙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들의 가사를 써 주었다. 또 편곡가이자 지휘자, 작곡가인 클라우스 오거만(Claus Ogerman)도 이 시기에 처음 만나 조빙의 많은 곡들을 편곡해 주었다.
조빙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1963년 《Getz/Gilberto》 앨범[3] 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가장 브라질스러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여가수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가 부른 대히트곡 이파네마의 소녀가 수록되어 있다. 그와 동시에 첫 솔로 앨범인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을 내놓게 된다. 이 앨범은 Getz/Gilberto 앨범과 다르게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인 편곡으로 게츠 지우베르투 앨범과 달리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Wave, Tide, Stone Flower, Jobim, Urubu, Terra Brasil, Passarim 같은 수많은 명반들을 내놓았으며 1994년 죽을때까지도 음악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앨범은 사후 11개월전에 완성한 Antonio Brasil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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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테레자 헤르마니와 결혼하여 건축가이자 작곡가인 파울로 조빙과 화가인 엘리자베싀 조빙을 낳았으나 1978년에 이혼 한 후 1986년 29살의 사진 작가인 아나 론트라와 재혼하여 슬하에 두명의 자식을 두었다. 조빙의 손자이자 파울로의 아들인 다니엘 조빔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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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의 심장 수술 후 두번의 연달은 심장 발작으로 인해 사망했다.
3. 작곡 성향
조빙의 음악적 뿌리는 1930년대 현대 브라질 음악의 시효가 되었던 전설적인 음악가 피싱기냐(Pixinguinha)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조빙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인 클로드 드뷔시와 브라질 작곡가 에이토르 빌라로부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말엔 자신보다 아래 세대의 음악인 MPB과 뜨로삐까이아, 브라질 전통 음악, 전자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원초적인 리듬과 복잡하고 다양한 질감의 퍼쿠션, 일렉트로닉 피아노를 흡수하기도 했으며, 80년대에는 MIDI의 등장과 스튜디오 테크닉을 이용하는 면모와 최소주의적인 면모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죽을때까지 변혁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예인.
또한 자신의 고향 브라질과 환경 문제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여러 활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앨범 Passarim와 Terra Brasilis은 그런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영향
워낙 레전설이였기 때문에 지금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대표적으로 사카모토 류이치와 양방언.), 이파네마의 소녀 같은 곡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이 곡은 보사노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스탠다드 넘버'(표준 연주곡) 중 하나로, 이 곡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파네마 시에서는 조빙이 어린 시절 살던 거리를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거리로 명명했다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은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국제공항' 이다. 원래 이름은 갈레앙 국제공항이었는데 1999년에 그의 이름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너무 길고 원래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관계로 그냥 갈레앙 국제공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IATA와 ICAO 코드도 각각 GIG와 SBGL[4] 로 그의 이름을 이 코드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통'(Tom)이 이 분의 애칭에서 따왔다.
육군 기초군사과정에서는 조빙의 The Red Blouse라는 곡에 여성 아나운서의 더빙을 입혀 기상 스트레칭 곡으로 틀어준다. 정황상 특정 신교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교대 및 논산에서 공통적으로 틀어주는 듯.
[1] 포르투갈어로는 Garota de Ipanema[2]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마스코트인 비니시우스는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후술하겠지만 같은 해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통(Tom)은 조빙의 애칭에서 따왔고.[3] 이 앨범 표지에서 조빙은 피처링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수록곡 8곡 중 6곡을 조빙이 작곡했다. 사실상 조빙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4] 앞글자 SB는 공항의 위치를 나타내며, GL이 공항의 이름 부분이다. 이건 원래 이름 갈레앙 부분에서 따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