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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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Newman'''
(1900년 3월 17일 ~ 1970년 2월 17일)
1900년, 코네티컷 출생.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 에게 사사하여 피아니스트로 출발했으나, 이후엔 관현악을 전문으로 하였다. 1931년 〈거리의 풍경〉을 통해 영화음악에 데뷔하였다.
'''20세기 폭스 팡파레'''[2] 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3] 그 때문인지, 1939년엔 20세기 폭스 음악부장을 맡기도 했다. 사실 이 팡파레에 숨겨진 비화가 있는데 뉴먼은 원래 이 곡을 MGM을 위해 만들었지만, MGM에서 이걸 거부하는 바람에 20세기 폭스사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그의 가족들도 대부분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토머스 뉴먼[4] 이 앨프리드 뉴먼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량도 수상량도 어마어마해서, 앨프리드 뉴먼을 소개하는 주된 표현이 "'''120편 이상 작곡, 아카데미 9관왕'''"이다.
유작은 에어포트.
'''Alfred Newman'''
(1900년 3월 17일 ~ 1970년 2월 17일)
1. 소개
1900년, 코네티컷 출생.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 에게 사사하여 피아니스트로 출발했으나, 이후엔 관현악을 전문으로 하였다. 1931년 〈거리의 풍경〉을 통해 영화음악에 데뷔하였다.
'''20세기 폭스 팡파레'''[2] 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3] 그 때문인지, 1939년엔 20세기 폭스 음악부장을 맡기도 했다. 사실 이 팡파레에 숨겨진 비화가 있는데 뉴먼은 원래 이 곡을 MGM을 위해 만들었지만, MGM에서 이걸 거부하는 바람에 20세기 폭스사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그의 가족들도 대부분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토머스 뉴먼[4] 이 앨프리드 뉴먼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량도 수상량도 어마어마해서, 앨프리드 뉴먼을 소개하는 주된 표현이 "'''120편 이상 작곡, 아카데미 9관왕'''"이다.
유작은 에어포트.
2. 대표작 목록
- 1931년 〈시티 라이트〉 - 찰리 채플린 감독
- 1939년 〈젊은 날의 링컨〉 - 존 포드 감독
- 1939년 〈노틀담의 꼽추〉
- 1939년 〈폭풍의 언덕〉 - 윌리엄 와일러 감독[5]
- 1940년 〈분노의 포도〉 - 존 포드 감독
- 1940년 〈해외 특파원〉 -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 1941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존 포드 감독
- 1950년 〈이브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