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톤먼트
Atonement
속죄, 죗값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소설. 국내에서는 '속죄'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주인공 브라이오니 탈리스[1] 는 소설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소녀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결벽증이 있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질서정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아직 2차 대전이 발발하지 않았고 영국 상류층이 마지막으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1935년,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는 뭔지 모를 답답함과 자립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탈리스가(家)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 터너가 있다. 계급의 거리감과 둘 사이에 막 싹트기 시작한 긴장감 때문에 세실리아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로비와 로비의 태도를 눈치채고 표현하기 힘든 울분을 느끼고 있던 세실리아가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에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마주친다. 그 동안 쌓인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감정이 폭발해 버린 세실리아는 로비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분수대로 뛰어들고, 건물 위층 창가에서는 상상력 풍부한 어린 브라이오니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날 오후, 탈리스 가에는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온다. 저녁 식사 도중 탈리스 가에 와 있던 친척 아이들이 실종되고, 브라이오니의 사촌언니이자 아이들의 친누나인 롤라가 아이들을 찾아나섰다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한다. 한편 로비와 세실리아 사이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까지 덧붙인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사실 브라이오니가 거짓말을 한 동기가 하나 더 있다. 그녀는 내심 로비를 짝사랑해서 관심을 끌어보려고 로비가 보는 앞에서 물가에 뛰어드는 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이오니를 어린애로밖에 보지 않았던 로비는 위험하고 철없는 장난으로 여기고 화를 냈다. 그 후 로비가 쓴 편지에 음담패설이 담겨 있었던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정사를 직접 목격하게 되면서 로비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2]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너도 한 번 뜨거운 맛 좀 봐라'라는 어린아이다운 유치한 의도로 로비를 매도한 것이었지만, 그 경망스러운 행동 때문에 로비는 강간범 누명을 쓰고 좋은 평판과 전도 유망한 의사지망생이라는 사회적 입지를 모두 잃어버린다.
제2부에서는 강간 혐의로 복역하던 로비가 징집되어 2차 대전의 지옥을 겪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언 매큐언의 충실한 역사적 고증과 이를 생생하게 풀어낸 묘사들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연합군이 마지노선에서 퇴각하여 됭케르크까지 철수하는 아비규환의 상황과 폭격의 공포, 본국으로 떠날 배가 없어서 절망에 처한 병사들이 저지르는 집단적 폭력이 그려진다.
제3부에는 브라이오니가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간호사로 자원하여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돌보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한편 롤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강간하여 그 모든 비극을 몰고 온 장본인인 폴 마샬과 행복하게 결혼하고, 롤라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브라이오니는 잘못을 빌고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로비를 사랑하여 처음부터 그의 결백을 믿었던 세실리아는 그 여름밤의 사건 이후 가족을 등지면서까지 집을 나가 브라이오니보다 먼저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세실리아의 하숙집에 들른 브라이오니는 거기에 와 있던 로비를 발견하고 자신이 저지른 그 엄청난 잘못도,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전쟁마저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한편으로 안도하며, 또 한편으로는 쓸쓸해하며 런던으로 돌아온다.
-출판사 서평 中
그러나 이것은 전쟁 후 소설가가 된 브라이오니가 말년에 집필한 마지막 소설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은 완전히 허구이다. 사실 로비는 전쟁 중이던 1940년 6월에 퇴각을 하루 앞두고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으며, 같은 해 9월에 밸엄에 있던 세실리아는 밸엄 역에 가해진 폭격으로 숨지게 된다. 소설에서는 폭격으로 숨졌다고만 나와 있지만, 영화에서는 공습을 피해 밸엄 역에 숨어 있었는데 폭격으로 역 위에 있던 수도관이 망가지며 쏟아진 물에 익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정말 폭격으로 죽었다면 너무 처참하기에 저렇게 묘사한 듯 하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시차를 두고 각자 사망함으로써 생전에 영영 재회하지 못했다. 여기서 세실리아가 자신이 죽기 전에 로비의 사망을 알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몰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로비가 죽은 걸 알았다면 그대로 밸엄에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그리고 자신의 거짓 증언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망가뜨리고 세상을 떠나게하는 계기를 만들어버린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죄에 대해 평생에 걸쳐 처절하게 죄책감을 가지고 후회한다. 그 후 브라이오니는 그 자신이 소망한 대로 소설가가 됐지만 말년에 치명적인 혈관성 치매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소재로 자신의 스물 한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소설을 집필하고 결말 부분은 실제와는 다르게 두 사람이 죽지 않고 재회하여 계속 사랑하는 것으로 창작(invent)한 뒤 이 소설의 제목을 '1999년 런던'[3] 이라고 지으며 소설이 끝난다.
[image]
조 라이트 감독, 시얼샤 로넌(13세 브라이오니 역), 로몰라 가레이(18세 브라이오니 역)[4] , 제임스 매커보이(로비 역)[5] , 키이라 나이틀리(세실리아 역) 주연의 2007년작 영국 영화. 줄거리는 동일하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부터 먼저 보면, 내용이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64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고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시얼샤 로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상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수의 평론가들이 그 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로 뽑는 등 평단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 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별 4개(만점)을 매기며 크게 호평하였다. OST도 인상적인데 음악감독인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극중 자주 등장하는 타자기 소리에 착안해 긴장감 있는 사운드 트랙들[6] 을 작곡했고,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image]
서정적인 파스텔 톤의 색감과 마치 살짝 빛이 번진 듯한 느낌을 주는 화면의 영상미 역시 이 영화의 볼거리로 꼽힌다. 영화 속의 모든 30년대 장면들은 카메라 렌즈 전면에 스타킹을 덧씌워 촬영되었다고 한다.
서정적인 화면과 세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볼만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끝에 충격적인 큰 반전을 동반한지라 원작을 읽지 않고 주연 배우에 낚여서, 혹은 예고편에 낚여 흔한 전쟁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다가 멘탈붕괴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낚여서 갓 제임스 맥어보이의 팬이 된 사람들이 이 영화 골랐다가 뒷목 잡는 일이 많았다고. 마음껏 울라고 부추기는 최루영화도 아니고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절제하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반전의 충격으로 기분이 더욱 우울하고 먹먹해진다는 것이 중평이다.
영국 드라마 갤러리에서 멘붕 영화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이 영화가 언급된다. 또한 로비에게 누명을 씌운 브라이오니는 영드갤 공식 악녀의 대명사로 통한다. 순전히 자신의 상상력과 짝사랑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하여 로비와 세실리아 두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결국 영영 둘을 헤어지게 한 브라이오니의 죄질도 무척 나쁘지만, 원작과 영화 말미에 '''"그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라고 말한 이 마지막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받고 있다. 브라이오니가 진정으로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결말을 담은 소설을 집필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원작 결말에서 브라이오니는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서술하면 독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결말이 될 것이고, 로비와 세실리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히 비극적인 한 쌍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나마 두 명이 행복하길 바랐다."'''는 독백을 남겼다.
로비를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 역시 인터뷰를 통해 브라이오니를 우회적으로 불평하며 저주의 한 마디를 남겼다.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해피엔딩으로 쓰면서 자신의 잘못과 진실을 밝히기는 했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 늙은 나이에 기억을 잃어가는 시점에서야 소설을 남긴 것을 속죄를 위한 최선의 노력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죄에 대한 대가를 전선에 나가 간호사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갚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정작 자신의 위증 때문에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은 피해자 로비와 세실리아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생전의 둘에게 용기있게 사과하지도 못했으면서 두 연인이 죽은 뒤에야 소설을 써서 속죄했다는, 이기적이고 뻔뻔해보이는 말에 여러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이오니 역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는 묘사가 간간이 나왔고, 사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로비와 세실리아는 이 세상에 없어[7] 브라이오니 나름대로 속죄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이 노력의 방식이 과연 적절했는 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국내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자신의 저서 '잘 있지 말아요'에서 '브라이오니는 평생 불가능한 속죄를 글쓰기로 해냈으며, 그녀의 글쓰기가 지은 영혼의 집에서 죽은 연인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됐다.'며 브라이오니의 소설 집필 역시 속죄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까지 공개하는 용기를 보였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브라이오니의 속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이는 보기 드문 긍정적으로 본 견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조 라이트 감독, 피터 로버트슨 촬영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롱테이크 샷으로 연출한 5:20초의 덩케르크 해변씬. 자세한 설명은 항목참조. 2천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고 엄청난 시간의 리허설이 필요했다고 한다. 장면 도중 많은 사람들이 인상깊다 평하는 영국파견군(BEF)패잔병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씬의 찬송가 곡명은 Dear Lord and Father of Mankind이다. 또한 마지막에 노년의 브라이오니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포함한 모든 진실을 밝히는 인터뷰를 한 뒤에 바닷가에서 로비와 세실리아가 약속한 대로 즐겁게 재회하여 바닷가를 거닐다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씬[8] 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이 장면 역시 많은 관객들을 먹먹하게 한 명장면이다.
1. 영어 단어
속죄, 죗값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2. 소설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소설. 국내에서는 '속죄'라는 제목으로 2003년에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2.1. 줄거리
주인공 브라이오니 탈리스[1] 는 소설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소녀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결벽증이 있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질서정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다. 아직 2차 대전이 발발하지 않았고 영국 상류층이 마지막으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1935년,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는 뭔지 모를 답답함과 자립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탈리스가(家) 가정부의 아들인 로비 터너가 있다. 계급의 거리감과 둘 사이에 막 싹트기 시작한 긴장감 때문에 세실리아와 일부러 거리를 두는 로비와 로비의 태도를 눈치채고 표현하기 힘든 울분을 느끼고 있던 세실리아가 어느 뜨거운 여름 오후에 정원의 분수대 앞에서 마주친다. 그 동안 쌓인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감정이 폭발해 버린 세실리아는 로비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분수대로 뛰어들고, 건물 위층 창가에서는 상상력 풍부한 어린 브라이오니가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그날 오후, 탈리스 가에는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온다. 저녁 식사 도중 탈리스 가에 와 있던 친척 아이들이 실종되고, 브라이오니의 사촌언니이자 아이들의 친누나인 롤라가 아이들을 찾아나섰다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한다. 한편 로비와 세실리아 사이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하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까지 덧붙인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사실 브라이오니가 거짓말을 한 동기가 하나 더 있다. 그녀는 내심 로비를 짝사랑해서 관심을 끌어보려고 로비가 보는 앞에서 물가에 뛰어드는 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이오니를 어린애로밖에 보지 않았던 로비는 위험하고 철없는 장난으로 여기고 화를 냈다. 그 후 로비가 쓴 편지에 음담패설이 담겨 있었던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정사를 직접 목격하게 되면서 로비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2]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 너도 한 번 뜨거운 맛 좀 봐라'라는 어린아이다운 유치한 의도로 로비를 매도한 것이었지만, 그 경망스러운 행동 때문에 로비는 강간범 누명을 쓰고 좋은 평판과 전도 유망한 의사지망생이라는 사회적 입지를 모두 잃어버린다.
제2부에서는 강간 혐의로 복역하던 로비가 징집되어 2차 대전의 지옥을 겪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언 매큐언의 충실한 역사적 고증과 이를 생생하게 풀어낸 묘사들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연합군이 마지노선에서 퇴각하여 됭케르크까지 철수하는 아비규환의 상황과 폭격의 공포, 본국으로 떠날 배가 없어서 절망에 처한 병사들이 저지르는 집단적 폭력이 그려진다.
제3부에는 브라이오니가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간호사로 자원하여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돌보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한편 롤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강간하여 그 모든 비극을 몰고 온 장본인인 폴 마샬과 행복하게 결혼하고, 롤라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브라이오니는 잘못을 빌고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로비를 사랑하여 처음부터 그의 결백을 믿었던 세실리아는 그 여름밤의 사건 이후 가족을 등지면서까지 집을 나가 브라이오니보다 먼저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세실리아의 하숙집에 들른 브라이오니는 거기에 와 있던 로비를 발견하고 자신이 저지른 그 엄청난 잘못도,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전쟁마저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한편으로 안도하며, 또 한편으로는 쓸쓸해하며 런던으로 돌아온다.
-출판사 서평 中
그러나 이것은 전쟁 후 소설가가 된 브라이오니가 말년에 집필한 마지막 소설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은 완전히 허구이다. 사실 로비는 전쟁 중이던 1940년 6월에 퇴각을 하루 앞두고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했으며, 같은 해 9월에 밸엄에 있던 세실리아는 밸엄 역에 가해진 폭격으로 숨지게 된다. 소설에서는 폭격으로 숨졌다고만 나와 있지만, 영화에서는 공습을 피해 밸엄 역에 숨어 있었는데 폭격으로 역 위에 있던 수도관이 망가지며 쏟아진 물에 익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정말 폭격으로 죽었다면 너무 처참하기에 저렇게 묘사한 듯 하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그토록 그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시차를 두고 각자 사망함으로써 생전에 영영 재회하지 못했다. 여기서 세실리아가 자신이 죽기 전에 로비의 사망을 알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몰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로비가 죽은 걸 알았다면 그대로 밸엄에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그리고 자신의 거짓 증언으로 두 사람을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망가뜨리고 세상을 떠나게하는 계기를 만들어버린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죄에 대해 평생에 걸쳐 처절하게 죄책감을 가지고 후회한다. 그 후 브라이오니는 그 자신이 소망한 대로 소설가가 됐지만 말년에 치명적인 혈관성 치매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소재로 자신의 스물 한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소설을 집필하고 결말 부분은 실제와는 다르게 두 사람이 죽지 않고 재회하여 계속 사랑하는 것으로 창작(invent)한 뒤 이 소설의 제목을 '1999년 런던'[3] 이라고 지으며 소설이 끝난다.
3. 2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image]
조 라이트 감독, 시얼샤 로넌(13세 브라이오니 역), 로몰라 가레이(18세 브라이오니 역)[4] , 제임스 매커보이(로비 역)[5] , 키이라 나이틀리(세실리아 역) 주연의 2007년작 영국 영화. 줄거리는 동일하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부터 먼저 보면, 내용이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64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고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색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시얼샤 로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상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수의 평론가들이 그 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로 뽑는 등 평단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영화 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에 별 4개(만점)을 매기며 크게 호평하였다. OST도 인상적인데 음악감독인 다리오 마리아넬리는 극중 자주 등장하는 타자기 소리에 착안해 긴장감 있는 사운드 트랙들[6] 을 작곡했고,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image]
서정적인 파스텔 톤의 색감과 마치 살짝 빛이 번진 듯한 느낌을 주는 화면의 영상미 역시 이 영화의 볼거리로 꼽힌다. 영화 속의 모든 30년대 장면들은 카메라 렌즈 전면에 스타킹을 덧씌워 촬영되었다고 한다.
서정적인 화면과 세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볼만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끝에 충격적인 큰 반전을 동반한지라 원작을 읽지 않고 주연 배우에 낚여서, 혹은 예고편에 낚여 흔한 전쟁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다가 멘탈붕괴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낚여서 갓 제임스 맥어보이의 팬이 된 사람들이 이 영화 골랐다가 뒷목 잡는 일이 많았다고. 마음껏 울라고 부추기는 최루영화도 아니고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절제하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반전의 충격으로 기분이 더욱 우울하고 먹먹해진다는 것이 중평이다.
영국 드라마 갤러리에서 멘붕 영화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이 영화가 언급된다. 또한 로비에게 누명을 씌운 브라이오니는 영드갤 공식 악녀의 대명사로 통한다. 순전히 자신의 상상력과 짝사랑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하여 로비와 세실리아 두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결국 영영 둘을 헤어지게 한 브라이오니의 죄질도 무척 나쁘지만, 원작과 영화 말미에 '''"그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라고 말한 이 마지막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받고 있다. 브라이오니가 진정으로 속죄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결말을 담은 소설을 집필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원작 결말에서 브라이오니는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서술하면 독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결말이 될 것이고, 로비와 세실리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히 비극적인 한 쌍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나마 두 명이 행복하길 바랐다."'''는 독백을 남겼다.
로비를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 역시 인터뷰를 통해 브라이오니를 우회적으로 불평하며 저주의 한 마디를 남겼다.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해피엔딩으로 쓰면서 자신의 잘못과 진실을 밝히기는 했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 늙은 나이에 기억을 잃어가는 시점에서야 소설을 남긴 것을 속죄를 위한 최선의 노력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죄에 대한 대가를 전선에 나가 간호사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갚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정작 자신의 위증 때문에 비극적인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은 피해자 로비와 세실리아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생전의 둘에게 용기있게 사과하지도 못했으면서 두 연인이 죽은 뒤에야 소설을 써서 속죄했다는, 이기적이고 뻔뻔해보이는 말에 여러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이오니 역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는 묘사가 간간이 나왔고, 사죄를 하고 싶어도 이미 로비와 세실리아는 이 세상에 없어[7] 브라이오니 나름대로 속죄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이 노력의 방식이 과연 적절했는 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국내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자신의 저서 '잘 있지 말아요'에서 '브라이오니는 평생 불가능한 속죄를 글쓰기로 해냈으며, 그녀의 글쓰기가 지은 영혼의 집에서 죽은 연인은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됐다.'며 브라이오니의 소설 집필 역시 속죄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까지 공개하는 용기를 보였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브라이오니의 속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이는 보기 드문 긍정적으로 본 견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조 라이트 감독, 피터 로버트슨 촬영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롱테이크 샷으로 연출한 5:20초의 덩케르크 해변씬. 자세한 설명은 항목참조. 2천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고 엄청난 시간의 리허설이 필요했다고 한다. 장면 도중 많은 사람들이 인상깊다 평하는 영국파견군(BEF)패잔병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씬의 찬송가 곡명은 Dear Lord and Father of Mankind이다. 또한 마지막에 노년의 브라이오니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포함한 모든 진실을 밝히는 인터뷰를 한 뒤에 바닷가에서 로비와 세실리아가 약속한 대로 즐겁게 재회하여 바닷가를 거닐다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는 상상씬[8] 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이 장면 역시 많은 관객들을 먹먹하게 한 명장면이다.
3.1. 기타
- 드라마 셜록의 셜록 홈즈 역으로 유명세를 얻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어톤먼트 실사 영화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뒤늦게 화제가 됐다. 그가 맡은 배역은 다름 아닌 위의 헤베필리아 강간범 폴 마샬. 셜록을 보고 컴버배치의 팬이 된 사람이라면 또다른 종류의 멘붕을 겪을 수 있다(...). 컴버배치 본인도 문제의 강간 장면을 촬영할 때 매우 힘들어 했다는 비화가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셜록 감독은 저 강간씬을 보고 ‘셜록은 저래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점찍었다고.
- 2016년부터 인터넷에 등장한 사투리 자막판 유머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3.2. 관련 문서
[1] 한국어 공식 번역본에는 '브리오니'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발음을 들어보면 분명 '브라이오니'로 발음된다. 비록 주인공 이름 표기에는 오류가 있지만 공식 번역판의 번역은 훌륭하다고 생각해도 좋을만큼 무난하다.[2] 실제로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잠자리를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서 남녀간의 성관계에 혐오감을 느끼는 사례가 적잖이 있다.[3] 원래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18살에 이미 한번 쓴 적 있다. "분수대 옆의 두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신생 잡지 '호라이즌'에 기고하며, 1999년 런던과 달리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장면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한 소설인 듯 하다. [4] 영국 BBC 드라마 디 아워 에서 벨 로울리 역을 맡은 배우이다. 언니로 나온 키이라 나이틀리보다 나이가 더 많다.[5] 참고로 원작의 로비는 키도 크고 남자다운 이미지여서 체구가 작고 곱상한 매커보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그러나 라이트 감독은 로비 역에 매커보이가 적격이라고 주장하며 캐스팅했다고 한다. 라이트 감독은 어톤먼트를 연출하기 이전부터 매커보이를 자기 작품에 몹시 캐스팅하고 싶어했다는 비화가 있다. 전작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고.[6] 브라이오니의 소설 이야기가 끝나면서, 극 중에 타자기 소리 역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일종의 복선.[7] 만약 그들이 전쟁을 딛고 둘 다 생존하여 사랑을 이루었다면 용서받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나마 있었을 것이다.[8] 또는 사후 세계에서 재회하여 행복하게 지내는 로비와 세실리아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