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유드

 



'''
Edward Youde'''

'''본명'''
에드워드 유드 (Edward Youde)
'''이름'''
에드워드 유드 (Edward Youde)
'''중국명'''
尤德
'''국적'''
[image] 영국 (1924년 6월 19일 - 1986년 12월 5일)
'''출생'''
1924년 6월 19일
[image] 영국 웨일스 페나스
'''사망'''
1986년 12월 5일
[image] 중국 베이징 주중영국대사관
'''학력'''
런던 대학교

'''가족'''
아내: 파멜라 피트
슬하: 2녀
'''정당'''
'''무소속''']]'''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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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주재 영국 사절단 (1965년 - 1969년)
주중 영국 대사 (1974년 - 1978년)
[image] 제26대 영국령 홍콩 총독 (1982년 5월 20일 - 1986년 12월 5일)



1. 개요


에드워드 유드는 영국의 전 외교관, 중국학자이자 제26대 영국령 홍콩 총독이다.
재임중 사망한 총독이기도 하다.

2. 생애


1924년 6월 19일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 런던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해군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1947년 영국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그는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 주재 주중영국대사관에 발령받아 중화권과의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국공내전 이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수도가 베이징으로 이전했고, 당시 영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1]함에 따라 주중영국대사관도 베이징으로 이전했고, 이후 그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주중 영국대사를 지낸다. 한편 그는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유엔 주재 영국 사절단도 역임한 바 있다.

2.1. 영국령 홍콩 총독


취임식 영상[2]
1982년 에드워드 유드는 역대 총독 중 가장 길게 총독을 지낸 머레이 맥클레호스의 후임으로 영국령 홍콩 총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신계 조차 기한 문제에서 시작된 홍콩 반환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총독으로 부임했으며 그가 총독을 지내던 1985년 영중공동선언의 비준으로 홍콩 반환이 확정되었고, 이 때부터 홍콩 총독부 내에서 친중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전임자인 머레이 맥클레호스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홍콩에 이런저런 업적을 남겼는데, 한 예로 스포츠 및 예술 분야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 JCTIC를 설립했다.
그 외에도 그의 사후 입법국의 권고에 따라 조성되어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에드워드 유드 메모리얼 펀드 장학금 제도''', 홍콩공원[3] 내 '''에드워드 유드 조류관''' 등 지금도 홍콩엔 그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홍콩의 정부병원 중 하나인 '''파멜라 유드 네더솔 이스트 병원'''[4]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따 지었다.

3. 사망


1986년 12월 5일 베이징 방문 중 주중영국대사관에서 자다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재임중 사믕했기에, 그의 장례식은 홍콩 최초로 국장으로 진행되었다.
[1] 홍콩의 안전 문제 때문에 영국은 타 서방 국가와 달리 일찌감치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다.[2] 영상에 등장하는 장소는 2007년 항구 기능이 사라져 흔적만 남은 퀸스피어로, 홍콩 총독의 취임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홍콩 방문, 홍콩 반환식 종료 후 찰스 왕세자크리스토퍼 프랜시스 패튼 총독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갈 때 사용되었다.[3] 피크트램 케네디 로드 정거장에서 멀지 않다.[4] 홍콩 섬 동부 차이완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