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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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新界'''(Sān'gaai[1] / Xīnjiè[2] ) / New Territories
홍콩의 지역구분 중 하나로 홍콩 섬, 구룡반도와 함께 홍콩특별행정구를 구성한다.
위 지도에서 '''1~9번.''' 짧게는 도심과 붙어 있는 샤틴/사틴(沙田,Sha Tin), 마온샨/마온산(馬鞍山, Ma On Shan), 췬완(荃灣, Tsuen Wan)이 해당되고 길게는 도심에서 한참 멀리 있는 윈롱(元朗.Yuen Long)과 튄문(屯門,Tuen Mun), 칭이(青衣, Ching Yi)와 퉁충/둥충(東涌, Tung Chung) 등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위성도시들'''이다.
중국어론 이 新界를 '''산까이'''(광동어)나 '''신지에'''(표준중국어)라고 한다. 영어로는 뉴테리토리(New Territories)라고 하는데 새로 얻은 땅이라는 뜻이다.
2. 상세
지도를 보면 알수 있듯이 홍콩이라는 좋든 싫든 중국에 속해있는 '''작은 지역''' 내에서 '''가장 거대한 토지의 규모'''를 자랑하는 지역이며, 중국 본토와의 연결다리의 역할을 해주는 곳이다.[3]
이들은 홍콩의 급팽창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아파트 천국인데다 관광지는 끽해봐야 '와이(圍)'라는 성곽마냥 둘러싸인 전통 마을뿐이고, 심지어 전원적인 농촌도 여럿 있지만 놀거리는 많지 않다.''' 다만 게임센터 중에서는 큰 곳이 몇 군데 있다. 대표적으로 홍콩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체에 퍼진 화교자본 오락실 체인인 버추어랜드 홍콩점 등이 있다.
2016년까지 '''홍콩 전체에서 유일한 IMAX 영화관도 신계 구석(윈롱역)에 처박혀 있다.(...)''' 아시아에서 홍콩 영화가 발전한 축으로 인정받는데 왜 홍콩 섬이나 구룡반도 남부에는 아이맥스가 못 들어오고 있는지 홍콩에서도 의문이라고 까인다. 땅값이 비싸서 그런 게 큰 듯 하다.
1898년 전탁홍콩계지전조(展拓香港界址專條)[4] 를 체결하여 영국이 99년간 조차[5] 하였으나 기한이 만료된 1997년, 이전에 영구적으로 넘겼던 홍콩 섬, 구룡반도와 함께 반환되었다.
99년이 되어갈 즈음에는 홍콩 시가지가 너무나 확장되어 신계라는 배후지를 제외하고서는 홍콩의 자립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에 다다르기도 했고, 중국과 미국이 핑퐁 외교를 통해 1980년 정식 수교하자 중국과의 친선을 위해 홍콩 전체를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돌려주게 되었고[6] 반환이 완료되고 1국가 2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본격적으로 신계 개발을 하게 된다. 사실 그 전에도 경계선에서 가까운 신계의 신도시인 샤틴/사틴(沙田, Sha Tin), 포탄(火炭, Fo Tan), 췬완(荃灣, Tsuen Wan) 등은 이미 구룡반도 북부로 취급받아, 도심용 빨간 택시가 영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에 돌려줘야 하는 관계로 영국 총독부가 개발을 안 한 북부는 중국으로 넘어간 1998년부터 '''베드타운'''으로 개발, 홍콩 특유의 비싼 집값을 어느 정도 낮춰 주었고 풍부한 농산물도 제공해 주었다.
홍콩은 이게 다행인 게, 만일 신계를 중국에 돌려주고 홍콩 섬과 구룡반도만 계속 영국령으로 남았으면 신계는 외국이 되고, 농산물과 식수를 중국에서 비싸게 사 와야 한다. 발전소도 없어서 전기도 사서 끌어와야 한다.[7] 그리고 폭증할 대로 폭증한 홍콩 인구를 분산시킬 베드타운도 만들 자리가 없어진다. 신계는 현재도 '''50% 이상이 미개발지'''인 넓은 곳으로 이 곳이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중국에 반환되는 덕에 외국령으로 갈리지 않고 똑같은 홍콩 특별행정구 소속이 되어 홍콩은 별 다른 문제가 없게 된다.[8]
하지만 영국이 신계지역 개발에 완전히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신계 지역 개발은 영국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영국식 개발 계획이 반영되어 있는 지역이다. 예를 들면 췬완 지역은 1959년에 개발 계획을 세웠을 정도다. 그 이유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전까지 버텨보려고 했어도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홍콩 섬과 구룡반도 지역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돼서 신계 지역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1953년 구룡반도 북부 셱킵메이/섹깁메이(石峽尾, Shek Kip Mei)의 산동네 지역에서 일어난 중국 피난민들에 의한 대화재는 도시의 수용 능력 초과를 드러냈고, 식민지 당국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1973년에는 이미 개발 계획을 세우고 MTR을 끌어올 생각을 하게 된 췬완(荃灣, Tsuen Wan)을 포함하여 샤틴/사틴(沙田, Sha Tin)과 타이포/다이보우(大埔, Tai Po), 췬완(荃灣, Tsuen Wan), 윈롱(元朗. Yuen Long), 튄문(屯門, Tuen Mun), 판링/판렝(粉嶺, Fanling), 셩수이/쇵서이(上水, Sheung Shui), 콰이충(葵涌, Kwai Chung)지역 개발 계획을 세운다. 특히 중국과의 국경지대와 구룡반도 북부를 개발하는게 골자이며 이 계획에 의거, 중국 대륙 광동성까지 가는 구광철도를 복선전철화한 MTR 동철선이 개통되고 췬완과 콰이충을 도심과 잇는 췬완선이 개통되어 센트럴/침사추이 등과 직결, 도심과 신계를 잇게 되었고 1989년 샤틴구에 에드워드 유드 총독에 의해 구상된 예체능 전문 고등학교인 Jockey club Ti-l College(JCTIC)가 개교하는 등 신도심 개발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고, 1990년대 후반 반환 이후 본격적인 개발에는 앞선 신도심 개발 계획이 어느 정도 기반이 되었다.
신계 지역에는 영국식 색채가 눈에 띄지 않는다. 홍콩 섬은 거리 이름들부터 아스널 스트리트(Arsenal Street), 글로스터 로드(Gloucester Road)등 영국색이 강한것과 다르다.[9] 이는 신계 지역을 중국인들이 거주할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과 붙어있는 곳으로 일부러 중국 색체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래서 거리 이름들부터가 청나라 시절에 쓰던 중국식 이름을 그대로 계승했다. 마을들도 대게 최대 중세 시대인 송나라, 원나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개발이 이루어지자 사이쿵 반도나 정관오 등에는 싼 집값을 찾아 영국계 주민들이 대거 이주하기도 한다. 반환 전 계획된 신도심들은 위생, 방역 심지어 인종별 거주지까지 영국의 식민지 개발 계획의 유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각 신도심들은 자족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970년대 중후반 설계된 윈롱과 타이포도 이 시기에 건설된 신도심으로 산업단지를 건설하여 자족 기능을 갖추도록 하였다.[10] 중국 국경과 인접한 판링/판렝(粉嶺, Fanling)-셩수이/쇵서이(上水, Sheng Shui) 지역도 1970년대 말에 개발된 지역이다. 청콴오/죙관오우(將軍澳, Tseng Kwan O)와 마온샨/마온산(馬鞍山, Ma On Shan)도 1980년대 개발된 지역이다. 이미 반환 전부터 갑부였던 리카싱/레이가셍(李嘉誠, Li Ka-shing)의 경우 신도심 사업을 통해 거부가 된 케이스다. 반환 전 영국식민 당국의 신계 지역 신도심 개발 역사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 심지어 신계 튄문-윈롱 지역을 누비고 다니는 전차인 MTR 경철도 중국이 만든게 아니라 영국이 1970년대부터 구상에 들어가 1985년에 착공하여 1988년에 개통한 것으로 영국은 신계지역 개발에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중국 측에 공동관리를 먼저 제안했으며, 오히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 영구 미적용 등을 골자로 하는 일국양제 원리를 들고 나오자 반환에 응했던 것이다.
애초 홍콩의 한계 상 신계라는 넓은 땅을 비워두면 그게 이상한거다. 싱가포르처럼 빼앗겨서 못 쓰는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싱가포르는 조호르바루가 남의 나라 땅이 되는 바람에, 어쩌면 배후지로 삼을 수 있던 광활한 조호르 주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나마 유원지 등을 지을 수 있게 남은 땅이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있는 센토사 섬과 공단이 조성된 주롱 섬 등이며 그나마 요즘엔 센토사도 꽉 차서 레고랜드는 조호르바루에 유치해야 했다. 마카오도 이렇다 할 배후지를 포르투갈이 찾지 못해 확장에 바로 옆 주하이 시 땅인 헝친다오를 일부 영구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헝친다오에 일국양제 적용 원칙을 발표, 땅 일부를 중국 중앙정부가 마카오 정부에 떼어 준것이다.
그리고 신계지역이 광활한 미개지로 남은건 군사적 사유도 있었다. 영국군의 홍콩 주둔군은 구룡반도와 신계 등 본토 부분은 육군, 홍콩 섬과 부속도서들은 해군과 해병대 등이 주둔하였고 카이탁 공항과 셱콩/섹공(石崗, Shek Kong) 비행장에 해리어 전투기로 구성된 공군을 주둔시켰는데, 냉전 시기 중국과의 전쟁, 혹은 중국을 통한 소련군의 공격을 대비해 영국 육군이 이 지역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만들었고, 때로는 미군까지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중소관계가 파탄나고, 문화대혁명이라는 희대의 삽질로 중국 국력이 터무니없이 약해진데다 1980년대 홍콩 반환 협정 체결로 중국과 우호관계가 되자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었고 현재 인민해방군은 기지 중 일부만 인수받아 사용 중이다. 그래서 신계 북부 중국과의 국경에는 쾅테이/관데이(軍地, 군지, Kwan Tei)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 이름의 유래가 영국 육군의 대규모 군사기지였다. 현재는 인민해방군 주둔군 중 육군 보병/포병연대와 기갑대대 일부가 기지를 인수받아 사용중이며 대부분 병영들은 냉전 종식과 홍콩 반환협정 체결 등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려지거나 홍콩 측에 반환되었다. 현재도 이지역에 가면 영국군이 만든 서양식 석조건물을 대거 볼 수 있는데 과거 병영(Barrack)들이다.
한편 이 지역은 중국 중세시대인 원나라 때 몽골족을 피해 내려온 북방인들인 객가 사람들의 거주지 와이(圍)라는 성벽마을이 대거 있었으나 췬완이나 샤틴 등 도심과 가까운 지역들의 와이는 1970년대 말 아파트 개발과 지하철 공사로 대거 헐렸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다. 와이가 잘 보존된 곳은 중국 국경과 가까운 판링/판렝(粉嶺, Fanling) 및 윈롱(元朗, Yuen Long) 일대이다.
교통으로는 홍콩 지하철 동철선이 샤틴으로 들어온다. 췬완은 췬완선이 들어오며 종점. 본격적인 신계를 가는 노선은 서철선이다. 물론 좀 돌아가는 건 감안해야 할 듯. 그리고 동철선은 샤틴 및 홍콩중문대학을 지나 중국 광동성과의 국경까지 이어진다. 국경에 오면 1국가 2체제의 원칙 상 별도 정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출입국 심사를 하게 되어 홍콩인은 내륙여행 허가, 외국 국적자는 비자를 받아야 중국 본토에 입국 가능하다.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선전만 한정해 3일 정도 체류 가능한 당일치기 비자 및 내륙여행허가를 끊어준다. 이 비자 내진 선전 전용 내륙여행 허가증은 선전밖에 못 가며 광저우 등 내륙으로 여행은 금지된다. 이 선전용 비자를 발급받는 데 168위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예산규모가 작은 배낭여행자 기준으로는 선전 물가가 홍콩보다 조금 싸다고 해도 당일치기로 잠깐 갔다오기엔 오히려 홍콩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선전에 갔다오는 게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이런고로 선전은 그냥 홍콩 여행 온 김에 본토도 조금 구경해본다는 마음으로 가면 나쁘지 않지만, 선전도 워낙 경제특구로 집중개발된 도시라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국다움'''이 생각보다 적기는 하다. 오히려 신계 곳곳에 위치한 원나라 때부터 이어져 온 성벽마을(圍, Wai)이 더 중국다움이 강한 곳이다. 이 성벽마을은 칭기즈 칸 이후 몽골족의 말발굽을 피해 내려온 황하 유역에 살던 객가인들이 외부인을 피해 세운 곳으로 호랑이, 표범 등 맹수는 물론 원나라 때는 몽골족, 청나라 때는 팔기군, 그리고 영국령 홍콩 초기에는 영국군에 심지어 홍콩 경찰의 출입까지도 막던 곳이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외지인에 동화되었다. 중국본토의 토루 거주민들이 아직도 외지인에 적대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
별 4개 이상의 꽤 훌륭하고 숙박비가 싼 호텔들이 튄문(屯門, Tuen Mun)이나 샤틴/사틴(沙田, Sha Tin) 등에 있다. 리갈 리버사이드 호텔(Regal Riverside hotel)이 대표적인 곳이다. 샤틴 정도면 구룡반도 북부 지역 취급을 받는 곳일 정도로 카우룬/가우롱(九龍, 구룡, Kowloon)이랑 가깝고 홍콩 섬도 그렇게 멀진 않아 호텔에 짐 던져놓고 잘만 다닌다. 10분 정도면 몽콕/웡곡(旺角, Mong Kok)으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고 센트럴/중완(中環, Central)도 20분 정도면 간다.
그리고 홍콩에 해외취업한 한국인 젊은이들도 대개 신계에 집을 얻는다. 패키지 여행에서 숙소로 묵는 홍콩 섬이나 구룡반도 같은 시내는 집값이 비싸서이다. 통근시간은 홍콩 섬 센트럴 기준으로 한국 수도권내 통근시간과 똑같이 걸린다.
한편 이 지역에는 광동성 선전시와의 경계지역에 민통선이 설정되어 있다. 중국어로는 禁區 내지는 邊界禁區, 영어로는 Closed Area라고 하며 동철선 로우(羅湖, Lo Wu), 록마차우(落馬洲, Lok Ma Chau)역이 여기 포함된다. 이 지역은 중국으로 가는 사람은 중국 비자 및 여권(외국인), 홍콩 신분증(홍콩시민)을 지참해야 하며 이 지역 내 마을에 거주하는 거주민은 한국에서와 같이 민통선 거주 증명서를 지참해 경찰에 제시해야 하고, 이런 것이 없이 들어갈 경우 밀입국자로 간주되어 체포되어도 할 말 없다. 당연히 위의 두 역은 중국본토로 입경하는 사람 외에는 해당 마을에 거주증명이 있는 사람만 밖에 내릴 수 있으며, 출구 자체를 잠궈 놓았다 개방 시간에만 경찰이 열어 준다. 만일 실수로 이 역까지 오게 되면 차 안에 대기하다 되돌아가야 한다.
3. 구획
3.1. 레이더우구
아일랜드/레이'''도'''우 구(Island District, 離島區, Lei4 Dou2 Keoi1)
- 란타우 섬(Lantau Island, 大嶼山)
홍콩 전체에서 제일 큰 섬. 광동어로는 다이위 산(大嶼山)이라고 하며, 란타우(爛頭)라는 이름은 원래 섬에 있는 봉황산의 옛 이름이다. 대여산이라는 이름 답게 해발 934미터의 봉황산이 있어서 비행기를 내릴 때 뷰가 좋다.[12] 홍콩 국제공항이 이 섬 앞바다에 떠 있는 첵랍콕 암초에 있고, 홍콩 디즈니랜드도 이곳에 있다. 노란색의 뚱충선과 MTR 공항선이라는 공항철도가 구룡반도 및 홍콩 섬을 연결해준다. 동양 최대의 불상이 있으며 역시 동양 유일의 가톨릭 봉쇄 수도회인 트래피스트 수도회의 수도원이 있다. 이웃한 마완 섬에는 구세군에서 만든 개신교 종교시설인 솔라 타워가 있다. 홍콩 섬 남부 리펄스 베이 및 스탠리와 동쪽의 타이쿠 및 사이완호, 구룡반도 카우룽통과 여기에 가장 백인들이 많다. 특히 구룡반도 부두, (선박 이용시) 센트럴 선착장 등 에서 건널 수 있는 디스커버리 베이(약칭 D'bay)는 가장 외국인이 많은 동네. 아시아인을 찾기가 더 힘든 곳이다.
란타우섬 바로 위에 있는 첵랍콕/첵랍곡 섬(赤鱲角島, 한국 한자음: 적렵각, Chek Lap Kok)에 자리잡고 있는데, 첵랍콕섬은 간척을 통해 이웃 람차우 섬과 합체하였고 란타우 섬과도 이어져 있다. 홍콩 국제공항은 첵랍콕 공항이라고도 불린다.
- 퉁충/둥충(Tung Chung 東涌, Dung1 cung1)
홍콩 국제공항 개항에 따라 생긴 신도시. 여기 주민들 대부분이 홍콩 국제공항에 가서 일하는 경우가 꽤 있는 듯. 애초에 여기서 시내 나가려면 교통비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MTR로 간다고 해도 HK$20(한국 돈으로 약 3천원)은 각오해야...
- 옹핑 360
- 청차우/죙자우 섬(Cheung Chau, 長洲)
홍콩 센트럴에서 뱃길로 1시간(쾌속선 30분) 거리에 있는 섬. 영국령이 되기 이전 가장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다. 현지인들의 주말 여행지로 인기가 있으며 최근 들어 한국인들도 색다른 홍콩의 매력을 찾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없다는 것. 대신 자전거와 수레를 이용한다. 진짜다. 그래도 소방차, 구급차는 당연히 다닌다.
3.2. 콰이청구
3.3. 북구
3.4. 사이쿵구
사이쿵/사이공 구(Sai Kung District, 西貢區, Sai1 Gung3 Keoi1)
MTR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정관오선이 개통되어 있으며, 홍콩과기대학이 청수만 해안가에 위치해있다. 지하철이 가로지르는 중부의 일부 마을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그냥 깡촌이다. 타이포 구를 향해 북동쪽으로 갈수록 빌딩 볼 일이 없어진다.
3.5. 샤틴구
3.6. 타이포구
3.7. 췬완구
3.8. 튄문구
3.9. 윈롱구
[1] 광동어[2] 표준중국어[3]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홍콩-주하이-마카오 대교(강주아오 대교)가 있다. 명칭 그대로 홍콩과 주하이, 그리고 중국에 또다른 특별행정구인 마카오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대교이며, 세계의 모든 대교들중 가장 엄청난 장거리를 자랑하는 대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중국에서부터 홍콩을 가는 목적으로 관광을 하는 입장이라면 서부 광동성을 갈 게 아니면 차라리 강주아오 대교를 통해서 삥삥 돌아서 가느니 "광둥성(중국 본토) - 홍콩 국경"을 통해 가는걸 추천한다. 자세한건 강주아오 대교 문서 참조.[4] 중국어/영어 원본[5] Whereas it has for many years past been recognized that an extension of Hong Kong territory is necessary for the proper defence and protection of the colony (...) The term of this lease shall be ninety-nine years.[6] 이 선언에 의해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 체제는 영구히 적용되지 않고, 홍콩 특별행정구를 설치했다.[7] 홍콩 섬 남부 등에는 미개발지가 있고 저수지와 발전소가 있긴 하지만, 홍콩 인구 대부분을 이걸로 부양하기는 부족하다.[8] 반면 말레이시아로부터 연방에서 쫓겨나 급조된 싱가포르는 독립 당시 위성도시인 조호르바루를 잃어버렸고, 이 때문에 베드타운을 지을 공간도 없고, 농산물이나 식수 등도 비싼 돈을 주고 사와야 했으며, 전기도 심지어 말레이시아 조호르 바루 발전소에서 비싼 돈을 주고 끌어와야 했다. 물 문제는 지금도 계속 문제가 되다보니 조금만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면 말레이시아에서 물 끊어라고 외칠 지경.# 리콴유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등장과 영국의 독립 후 꾸준한 원조가 없었다면 싱가포르는 발전할 수 없었다. 나라 구실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 그나마 간척을 꾸준히 해서 면적이 710㎢가 된 싱가포르와는 달리 홍콩 섬의 면적은 싱가포르의 1/10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계 지역을 제외한 구룡반도까지 포함한다 쳐도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싱가포르가 저 꼴인 판국에 도저히 자력 생존이 불가능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9] 반면 구룡반도는 중국으로의 현관으로 인식해 창사 스트리트나 상하이 스트리트, 저장 스트리트, 페킹(베이징)스트리트 등 중국 지명들과 심지어 하이퐁 스트리트, 사이공 스트리트 등 인도차이나의 지명까지 붙인다. 구룡을 통해 중국으로 가고 다시 프랑스 땅 인도차이나와 교통로를 연결 후 현 태국인 시암을 거쳐 말레이 반도를 연결하고자 하는 영국의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10] 이 자족 계획들은 1979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산업 기반들이 죄다 선전시 및 둥관으로 올라가 버려 결론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이는 신계 지역 건설 계획이 이러한 요소를 반영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계획된 것임을 반증하기도 한다.[11] 이 섬들은 너무 외진데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도 모두 피했다. 도심에 난리가 나던 2019년에도 섬 지방 마을들은 너무 조용했으며 코로나19 유행사태에도 섬에선 확진자가 1명도 안 나왔다.[12] 당연히 활주로는 산을 피해간다. 산이랑 공항이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사이에 바다를 두고 좀 멀리 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