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캐나다 143편 불시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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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기의 평상시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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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 공군기지에 비상착륙을 한 모습
'''The Gimli Glider''', Air Canada Flight 143
'''Le Planeur de Gimli''', Vol 143 Air Canada / Vol 143 d'Air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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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3년 7월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오타와를 거쳐 에드먼턴으로 향하던 에어 캐나다 143편 보잉 767-233,[2] C-GAUN기가 고도 41,000피트에서 비행 중 연료 부족으로 김리 공군기지에 불시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NASA의 화성 기후 궤도선 실패와 함께, 영미식 야드파운드 단위와 SI 단위를 혼동해 생긴 사고의 예로 유명하다.
기장과 부기장이 엔진이 멈춘 비행기를 글라이더처럼 활공시키는 기지를 발휘했기에 '김리 글라이더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와 비슷한 케이스로, 글라이더 방식의 활공을 사용하여 비상착륙한 사례이며, US에어웨이즈 사고와 더불어 조종사들의 순간대처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알려졌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비행기가 완전히 대파된 게 아니라 약간 파손됐기에 '사고'가 아니라 '준사고'다.
2. 사고경위
2.1. 급유실수
보잉 767기는 연료탑재정보시스템을 통해 급유받는데, 당시 해당 기체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연료계측봉으로 직접 측정하여 급유를 마쳤는데 이게 문제였다. 지상작업요원이 몬트리올에서 에드먼턴으로 가는 연료량을 계산하던 중 파운드 단위와 SI 단위를 헷갈린 것이다. 당시 에어 캐나다는 파운드법에서 SI 단위로 전환하는 중이었고, 해당 기체는 에어 캐나다 최초의 SI 단위 사용 기체였다.
당시 비행에 필요한 총 연료량은 22,300 kg이었는데, 몬트리올에서 급유하는 시점에서 비행기에 남은 연료량은 7682리터였다. 만약 연료가 순수한 물이라면 1리터가 1 kg이지만, 물이 아니라 기름이므로 리터와 kg 단위를 환산할 필요가 있었다. 기름 1리터의 무게가 0.803 kg(0.803 kg/L)이므로, 필요한 추가급유량을 올바로 계산하면 아래와 같았다.
그러나 당시 직원은 습관적으로 기름 1 리터가 1.77 파운드(1.77 lb/L)라는 것으로 계산해버렸다.
즉, SI 단위로 올바르게 계산했다면 20,088리터를 급유받아야 했지만, 머리로는 킬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파운드 기준으로 계산한 탓에 4,916리터만 급유되었다. 비행기에는 7,682리터가 있었으므로, 새로 급유된 연료를 합치면 12,598리터(약 10,116 kg)였다. 자동으로 연료량을 산출해주는 연료탑재정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체 컴퓨터에 연료량 22,300 kg을 수동으로 입력하였으나, 실제 연료량은 입력된 수치의 45%에 불과했다. 지상작업요원은 숫자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3번이나 다시 계산했지만''' 결국 잘못을 눈치채지 못했고,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이 사람은 나중에 조사팀과 인터뷰했을 때야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중간 경유지 오타와에서 다시 연료량을 측정했지만, 이번에도 남은 연료량을 20,400 kg으로 잘못 측정하고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목적지를 향해 이륙했다.
2.2. 이상발생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를 지나며 41,000피트(12,496.8 m) 상공을 비행하던 중, 기체경보장치가 경고음을 4번 내며 왼쪽 엔진의 연료공급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보를 내보냈다. 기장은 연료펌프가 고장 났다고 판단하고 연료펌프의 스위치를 내렸다. 기체 컴퓨터는 연료량이 충분하다고 표시했지만 잘못된 값이었다. 다시 한번 4회 경고음이 발생한 후 기장은 긴급착륙을 결정했다. 그 후, 왼쪽 엔진이 정지하고 오른쪽 엔진만 가동하는 상태로 기체가 하강했다.
조종사들은 엔진 재시동을 시도하며 긴급착륙지인 위니펙 공항의 관제관과 긴급착륙 연락을 취했고, 한창 강하 중 기내 경보장치가 경보음을 내며 엔진이 모두 정지되고 조종실에 전력공급이 끊겼다. 당시 고도는 2만 8천 피트(8,534.4 m). 그야말로 하늘 한복판에서 엔진이 뚝 멈춰버린 것이다!
비행기는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큰 사고가 날 지경이었으나, 다행히도 램 에어 터빈[3] 이 가동하여 전력과 유압을 공급하였고, 일부 아날로그 계기는 사용가능한 상태로 착륙에 필요한 최소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파일럿들은 긴급대응 매뉴얼(Quick Reference Handbook)을 펼쳐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했을 때의 대응책을 찾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 와중에 기체가 계속 220노트(407.4 km/h)의 속도로 활공하자, 부기장은 고도계를 통해 긴급착륙지 위니펙까지 착륙할 수 있을지 계산했지만, 10해리(약 18.52 km)당 5천 피트(1524 m)를 강하[4] 중이었기에 불가능했다.
2.3. 착륙시도
결국 부기장은 캐나다 공군 시절 복무했었던 김리 공군기지가 근처에 있음을 떠올려 김리 공군기지에 비상착륙하자고 기장에게 말했다. 그곳의 비상활주로로 착륙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리 공군기지는 이미 폐쇄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활주로는 이미 인근 자동차 동호회의 '''드래그 레이스 대회장'''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이 날은 대회가 막 끝났을 때였다.
조종사들은 랜딩 기어의 잠금을 해제하여 자체 무게로 랜딩기어가 내려오도록 시도했다. 랜딩 기어가 내려오고 공기 저항이 증가하여 속도가 줄어들자, 램 에어 터빈의 효율이 떨어져 기체 조작이 더욱 어려워졌다. 기체가 김리 공군기지에 가까워지자 기장은 김리 공군기지에 착륙하기엔 고도가 너무 높음을 알아차리고, 포워드 슬립[5] 이라는, 에일러론과 러더를 반대로 조작해 공기저항을 늘려 속도 증가 없이 고도를 빨리 떨어뜨리는 글라이더 조작법을 응용하여 기체의 고도를 낮추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기장은 글라이더 비행이 취미였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 활공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6]
2.4.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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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의도대로 비행기는 활공하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 기체 고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강하 중 골프 코스 위를 비행했는데 승객이 인터뷰에서, '''"골퍼가 몇 번 클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거의 땅바닥에 닿기 직전이었다.''' 결국 김리 공군기지에 내려앉은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모든 힘을 다해 속도를 줄였다. 착륙이라기보다 터치다운에 가까운 거친 충돌로 랜딩기어 타이어 2개가 터졌고, 아직 고정되지 않았던 노즈 기어가 도로 꺾이면서 랜딩 기어가 아니라 항공기의 머리로 제동한 끝에 활주로 끝 수백 피트 거리에서 겨우 정지했다.
항공사고 수사대를 보면 기장이 활주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겨우 1천 피트(304.8m) 앞에서 시속 200 마일(321.9 km/h)로 달려오는 비행기를 피하려고 죽도록 달리는 모습과 공포에 질린 얼굴까지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7]
랜딩 기어보다 월등히 마찰력이 컸을 기체가 제동을 도와쥤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만약 노즈 기어가 제대로 펼쳐져 착륙 시에 접히지 않았더라면 기체가 활주로 바깥까지 질주하는 와중에 활주로 위에 있던 사람들이 제때 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일례로 그래도 다행히 자전거 타던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승객 61명 중 부상하거나 사망한 사람 또한 없었다. 단, 착륙 후 바닥을 있는대로 긁어댄 기체 앞부분의 내장재가 마찰열로 불이 붙으면서 비상탈출을 하는 소동은 있었다.
기체 결함이 아닌 단순한 연료 부족이 원인이었고 착륙 시 기체에 가해진 충격도 크지 않았기에, 김리 공군기지로 파견된 에어 캐나다의 정비반이 단 2일 만에 기체 수리를 완료하고 해당 기체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까지 24년이 넘는 세월을 멀쩡히 날아다녔다.
3. 세월이 지나고
- 큰 인명사고도, 기체손상도 없었기에 이 해프닝 이후 해당 여객기는 스크랩 처리 없이 계속 운행을 이어가다 은퇴비행을 한 후 비행일정을 마감했다. 2008년 1월 24일, 해당기체는 몬트리올에서 애리조나까지 페리 비행을 마치고 퇴역한 후 모하비 공항에 보존되어 있다가 2017년 9월 고철로 분해되었다. 한 회사가 이 고철을 일부 사들여 수하물 꼬리표로 만든 뒤 팔고 있다. 사고에서 살아남았으니 행운의 상징이라고 해야할지, 일반적인 여객기라면 발생하지 않을 사고가 났으니 불행의 상징이라고 해야할지는 의문이다. 이날의 마지막 비행에는 사건 당시 기장이었던 밥 피어슨(Robert "Bob" Pearson)과 모리스 켄텔(Maurice Quintal) 부기장, 그리고 당시 승무원 3명이 함께 탑승했다고 한다.
- 이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기념식을 가지곤 하는 모양. 위 영상은 30주년 관련 영상이다.
- 전술했듯 이 사건은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와 비견되는 기적의 항공사고로 손꼽히고 있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US 에어웨이즈 불시착 사건은 상공에서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 추락을 앞둔 비행기를, 기장과 부기장이 글라이더처럼 활공시켜 허드슨 강에 착륙시키는 기지(奇智)와 용기를 발휘해 승객들을 전원 구했다. 재미있는 점은 에어 캐나다 사건의 밥 피어슨 기장과 US에어웨이즈 사건의 설렌버거 기장 둘 다 글라이더 활공의 능력자라는 점이다.
- 또한 오래전, 비슷한 사고로 엔진이 멈췄을 때, 글라이더 활공식으로 강에 안착하여 사고를 막은 사례가 있긴 있었다. 아에로플로트 네바 강 불시착 사건이 그것인데, 과거 서방세계와 적대관계였었던 공산권의 일화이기도 하고 워낙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조용히 묻혔지만, US 에어웨이즈 사건 이후 에어캐나다 비상착륙 사건과 함께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졌다.
-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른 기장들에게 같은 상황을 수차례 재현시켜 보았으나, 착륙에 성공한 사례는 없고 모두 추락했다고 한다. 원체 가벼운 글라이더도 아니고 무게가 적잖게 나가는 여객기로 활공을 하는 것 자체가 보통 글라이더로 활공하기보다 쉽지 않다.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이때 모두가 무사했던 것이 그야말로 천우신조였음을 알 수 있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서 활공을 시도한 기장과 부기장의 수고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 이 사건은 1985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2만 6천 피트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져(Out of fuel at 26,000 feet)"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후 한국어판으로 나온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9년 7월호에도 '8000미터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삽화와 함께 실렸는데, 그 기사를 보고 이 사건을 처음 안 사람들도 있었다.
- 밥 피어슨은 58세에 에어 캐나다에서 퇴직한 후, 아시아나 항공에서 보잉747-400의 기장으로 60세까지 비행한 후 은퇴했다. 이후 2019년 7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 해당 사건이 발생한 매니토바주 김리(Gimli) 마을에는 이 사건을 기리는 조그만 기념관이 있다. 본 사건의 배경과 경과, 사후처리 등을 설명하고, 불시착하는 비행기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그 자전거를 전시했다. 그 외에도 각종 사진들과 (Ram air turbine, Vertical Stabilizer 등) 실제 항공기의 부품들을 볼 수 있다. 대형 상업용 제트 여객기를 최초로 활강 Forced Landing을 성공시킨 사례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양.
4. 관련 유사 사고
[1] 뒤쪽에는 동사의 L-1011과 B747이 보인다.[2] 당시 보잉 767은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신기종이었다. 해당 기체도 첫 비행을 한 후 불과 4개월 밖에 안 됐다.[3] 비행기 동체 하부에 붙어서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비상 시에 튀어나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생긴 것은 프로펠러와 유사하지만, 동력을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반대로 운동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시키는 장치이기 때문에 원리와 기능 상 프로펠러의 정 반대이다. 비행기가 엔진동력을 잃고 활강하더라도 높은 고도에서부터 하강을 통해 퍼텐셜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해가면서 실속속도 이상, 가능한 한 이상적인 활강속도를 유지하므로 최소 100~150노트(185.2~277.8 km/h) 이상 속도를 유지할 수 있기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풍압을 이용한다. 제법 전기를 공급해주지만 속도와 여유고도를 잃어버린 상태인 추락 최후의 순간에는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기본적으로는 정상적일 때의 엔진, 비상시는 배터리와 APU(APU는 비상시 바로 사용하기는 불가능)가 우선적인 대비책이고, 램 에어 터빈은 이러한 백업 시스템이 모두 사용 불가능할 때 계기 및 유압조종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안전장치이다.[4] 대략 분당 2000피트(609.6 m) 즉, 말이 좋아서 '강하'지 1초당 10 m씩 '''추락'''하는 상황이었다.[5] 보통 항공기가 착륙할 때 지면과 수평을 유지하며 고도를 급격히 낮추는 방식은, 엔진의 출력을 늘려 비행속도를 올리면서 이뤄진다. 하지만 엔진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이런 방법이 불가능하다. 스포일러를 이용해서 항력을 매우 크게 늘리는 것으로 어느정도 고도를 낮추는 게 가능하지만 소형 항공기의 경우는 스포일러가 없을 수도 있고, 만약 스포일러가 있어도 충분한 항력을 얻어내지 못 할 경우 기체를 살짝 틀어 대각선으로 비행해 기체의 측면부를 스포일러처럼 이용하여 항력을 크게 늘리고 고도를 떨어뜨리게 되는데, 이를 포워드 슬립이라고 한다. 만약 진행방향과 정측면의 대각선에서 바람이 유의미할 정도로 세게 불어오면 진행방향과 동체를 동일선상에 놓고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사이드 슬립이라고 한다. 뒤에 나오는 영상에서 비행기 기체가 대각선으로 비행하는 장면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6]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에서의 기장도 글라이더 비행이 취미로 무동력 상태에서의 조종에 능숙했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글라이더 비행 자체는 할 줄 알지만 해당 기동은 이론만 들었고 처음 실행하는 것, 그것도 '''대형 여객기'''로 실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7] 이때 자전거를 타고 죽도록 도망쳤던 소년들은 이렇게 변했다. 이제는 한 점 추억거리가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