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프리트 3세
1. 개요
'''Kaiser Otfried von Goldenbaum III'''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31대 황제.
2. 생애와 통치
황태자 시절에 제국재상,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겸임한 인물이었다. [1] 이는 제국 역사상 최초로 한 사람이 모든 요직을 거머쥔 것으로, 황태자란 배경도 어느정도 작용했겠지만 유능하고 인망있었다는 인물평을 고려하면 제국의 사실상 모든 직무를 겸임할 수 있을 정도의 먼치킨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
황태자 씩이나 되는 양반이 제국재상을 역임했고, 결국 나중에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는 바람에 예우 차원에서 '''제국재상이란 직함이 영구봉인'''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3] 이로 인해 이후 국무상서로 임명된 신하가 '''제국재상 대리'''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사실상 제국재상이나 다름없는 업무를 맡게됐다.[4]
하지만 제위에 오른 후에는 황태자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끊이지 않는 궁정 음모 때문이었는데[5] 이를 빌미로 황후를 4번, 황태자를 5번 교체했고, 나중에는 아예 '''독살을 우려하며 식사마저 거부'''하다가 40대 초반에 심신쇠약으로 숨을 거두는 영 좋지 못한 말로를 보여줬다.
[1] 코르넬리우스 2세 재위 말에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기에 제위 계승이 다급했던 코르넬리우스 2세가 능력 좋은 종친을 양자삼아 정통성을 몰아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꼭 황태자가 직계자손이 되어야 할것도 없으려니와 이미 골덴바움 왕조엔 사촌을 양자삼아 즉위시킨 전례가 있다. 무엇보다 몸이 좋지 않았던 코르넬리우스 2세가 아들 하나 만들수나 있었을지...[2] 그 막장에 진입한 프리드리히 4세 치하의 골덴바움 왕조에서도 적어도 군에서는 비교적 공정성을 유지했다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제국재상은 모를까 제국군 3대 장관은 그걸 맡을 능력이 있었기에 앉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3]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기 전 상서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 당나라에서 상서령은 공석이었다. 북한 김일성가 죽고 김정일이 뒤를 이으며 사실상의 주석이지만 주석이 아닌 국방위원장으로 살다 죽었고, 그도 죽은 뒤에 김정은이 국방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만들고 자신은 국무위원장이 된 걸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4] 그러나 이는 리히텐라데, 라인하르트가 제국 재상에 임명됨에 따라 깨진다.[5] 이미 전대에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이 있었던 데다가 또 그 전대에는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이 벌어지는 계기가 된 알베르트 대공 실종사건이 벌어지는 등 골덴바움 왕조는 말기로 갈수록 궁정 음모가 판을 쳤다. 심지어 사실상 최후의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인 프리트리히 4세의 경우는 자식이 28명이나 되었지만 이 중에 무사히 성인으로 자란 자식은 단 세 명 뿐이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