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프리트 3세

 

[image] '''골덴바움 왕조 역대 황제''' [image]
코르넬리우스 2세

오토프리트 3세

에르빈 요제프 1세
''' 오토프리트 3세
Otfried III · オトフリート3世'''
'''OVA'''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 ??. ??. ~ SE ???. ??. ??. (40대 중반)
'''재위'''
SE ???. ??. ??. ~ SE ???. ??. ??.(??년)
'''가족 관계'''
불명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최종 직위'''
은하제국 황제
'''별칭'''
없음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없음
1. 개요
2. 생애와 통치


1. 개요


'''Kaiser Otfried von Goldenbaum III'''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골덴바움 왕조의 31대 황제.

2. 생애와 통치


황태자 시절에 제국재상,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겸임한 인물이었다. [1] 이는 제국 역사상 최초로 한 사람이 모든 요직을 거머쥔 것으로, 황태자란 배경도 어느정도 작용했겠지만 유능하고 인망있었다는 인물평을 고려하면 제국의 사실상 모든 직무를 겸임할 수 있을 정도의 먼치킨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
황태자 씩이나 되는 양반이 제국재상을 역임했고, 결국 나중에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는 바람에 예우 차원에서 '''제국재상이란 직함이 영구봉인'''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3] 이로 인해 이후 국무상서로 임명된 신하가 '''제국재상 대리'''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사실상 제국재상이나 다름없는 업무를 맡게됐다.[4]
하지만 제위에 오른 후에는 황태자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끊이지 않는 궁정 음모 때문이었는데[5] 이를 빌미로 황후를 4번, 황태자를 5번 교체했고, 나중에는 아예 '''독살을 우려하며 식사마저 거부'''하다가 40대 초반에 심신쇠약으로 숨을 거두는 영 좋지 못한 말로를 보여줬다.


[1] 코르넬리우스 2세 재위 말에 후계자 문제가 불거졌기에 제위 계승이 다급했던 코르넬리우스 2세가 능력 좋은 종친을 양자삼아 정통성을 몰아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꼭 황태자가 직계자손이 되어야 할것도 없으려니와 이미 골덴바움 왕조엔 사촌을 양자삼아 즉위시킨 전례가 있다. 무엇보다 몸이 좋지 않았던 코르넬리우스 2세가 아들 하나 만들수나 있었을지...[2] 그 막장에 진입한 프리드리히 4세 치하의 골덴바움 왕조에서도 적어도 군에서는 비교적 공정성을 유지했다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제국재상은 모를까 제국군 3대 장관은 그걸 맡을 능력이 있었기에 앉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3]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기 전 상서령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 당나라에서 상서령은 공석이었다. 북한 김일성가 죽고 김정일이 뒤를 이으며 사실상의 주석이지만 주석이 아닌 국방위원장으로 살다 죽었고, 그도 죽은 뒤에 김정은이 국방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만들고 자신은 국무위원장이 된 걸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4] 그러나 이는 리히텐라데, 라인하르트가 제국 재상에 임명됨에 따라 깨진다.[5] 이미 전대에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이 있었던 데다가 또 그 전대에는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이 벌어지는 계기가 된 알베르트 대공 실종사건이 벌어지는 등 골덴바움 왕조는 말기로 갈수록 궁정 음모가 판을 쳤다. 심지어 사실상 최후의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인 프리트리히 4세의 경우는 자식이 28명이나 되었지만 이 중에 무사히 성인으로 자란 자식은 단 세 명 뿐이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