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덴바움 왕조

 


'''골덴바움 왕조'''
ゴールデンバウム 王朝 · Goldenbaum Dynasty
'''OVA'''
'''DNT'''
'''국가 개괄'''
'''국명'''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국가 체제'''
입헌군주제[1]전제군주제[2]
'''국가 원수'''
은하제국 황제
'''수도성'''
발할라 성계
제3행성 오딘
'''수도'''
행성 오딘
노이에 상수시
'''국성'''
골덴바움,Goldenbaum,
'''국가'''
골덴바움(DNT)
'''국가 정보'''
'''인구'''
약 250억 명
(+20억 명[3])
'''공용어'''
제국 표준어[4]
'''통화'''
은하제국 마르크
'''군사'''
은하제국군
'''기년법'''
제국력
'''역사 정보'''
'''개조'''
루돌프 폰 골덴바움
'''국가 존속기간'''
서기(A.D.): 3110 ~ 3599. 6. 20
우주력(SE): 310 ~ 799. 6. 20.
제국력(RC): 001 ~ 490. 6. 20
'''주요 사건'''[5]
'''· RC 001''' 은하제국 건국
'''· RC 009''' 열악유전자 배제법 반포
'''· RC 042''' 공화주의자의 반란
'''· RC 124''' 에크하르트 백작의 반란, 공위 140일
'''· RC 144''' 율리우스 암살
'''· RC 160''' 지기스문트 2세 폐위
'''· RC 164''' 장정 1만 광년
'''· RC 253''' 린더호프 후작의 반란
'''· RC 331''' 다곤 성역 회전
'''· RC 359'''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
'''· RC 373''' 페잔 자치령 창건
'''· RC 436''' 제2차 티아마트 회전
'''· RC 459''' 이제르론 요새 완공
'''· RC 487''' 제국령 침공작전
'''· RC 488''' 립슈타트 전역
'''· RC 489 ~ 490''' 황제 납치 사건 -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 RC 490. 6. 20.''' 골덴바움 왕조 멸망
'''건국 이전'''
은하연방
'''멸망 이후'''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1. 개요
2. 역사
2.1. 건국과 초기 역사
2.2. 쇠락과 중흥의 반복
2.3. 자유행성동맹과의 대립의 시작
2.4.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
2.5. 라그나로크를 향해가는 왕조
2.6. 골덴바움 왕조, 라그나로크를 맞이하다.
3. 국가 개괄
3.1. 정치
3.2. 사회
3.2.1. 신분제
3.2.2. 군국주의
3.2.3. 언어
3.2.4. 인종
3.2.5. 종교
3.2.6. 모순된 사회상
3.3. 군사
3.4. 외교
4. 인구 논란
5. 역대 황제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image]
골덴바움 왕조의 수도성 오딘.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은하제국왕조. 루돌프 폰 골덴바움부터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까지 38대에 걸쳐 490년간 존속한 왕조이다.
우리 은하의 오리온 팔에 위치한 국가로 우주력 790년대 말 자유행성동맹과 함께 인류 사회를 양분하고 있었으며, 자유행성동맹과는 160년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건국 당시의 인구는 3천억 명이었고, 작중 배경인 우주력 790년대 시점에는 동맹의 약 2배인 250억 명이다. 제국 소속의 자치령인 페잔의 인구는 총 20억 명.
개조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은하연방군인출신 정치인이었으며,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틀어쥔 이후 종신 임기의 독재자가 되었다가 스스로 '''신성불가침의 은하제국 황제임을 선포'''했다. 당시 타락하고 정체됐던 인류 사회의 분위기와 이를 타파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갈구하던 민중들의 기대 심리가 겹쳐진 결과였다. 다만 루돌프는 강력한 정치 지도자이긴 했으나 민중들이 기대한 모습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루돌프가 죽은 이후에도 루돌프의 피를 이은 자손들이 제위를 계승해 나가면서 왕조가 지속됐다.
'''골덴바움 왕조'''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직계로 이어진 왕조는 아니다. 물론 루돌프는 어떻게든 자신의 친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싶어했으나, 끝내 아들을 얻지 못 해 결국 외손자 지기스문트 1세가 제위를 계승했다. 또한 중간에 직계가 제위 계승을 포기하거나, 대가 끊겨서 방계 혈족이 제위를 이은 사례도 많기 때문에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등과 같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하나의 부계 혈통이 직계로 쭉 이어져 내려가는 왕조는 아니었다.
물론 직계로 이어진 왕조를 주장한다면 2대부터 골덴바움 왕조가 아니라 '''노이에슈타우펜 왕조'''로 이름이 바뀌어야 하고, 중간에 여러번 왕조 이름이 바뀌어야 할 수준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혈통이 조금이라도 섞여 들어가면 '서양자' 형식으로 골덴바움 왕조를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런 골덴바움 왕조 제위 계승 법칙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작중에서도 명확히 언급된다.

"그, 그래, 내 딸을...... 엘리자베트를 놈에게 주겠다. 그러면 놈은 선제의 손자사위가 되지. 황실을 계승할 정당한 권리가 생긴단 말이다. 찬탈자라는 오명을 쓰는 것보다 그 편이 놈에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6]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이 이야기를 하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프리드리히 4세의 딸과 결혼한 사위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프리드리히 4세의 손녀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결혼하는 것만으로 황실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생긴다. 즉 반드시 직계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황실의 핏줄을 간접적으로 잇거나 황실의 핏줄을 이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라면 정당한 제위 계승권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 뒤도 역시 '골덴바움 왕조'의 지속으로 여겨질 수 있다. 다만 자유행성동맹에서는 귀찮아서 그런 진 몰라도 골덴바움 왕조의 일가면 모두 뭉뚱그려 골덴바움이라는 성을 붙여주는 듯 하다. 아니면 황제만 골덴바움 성을 쓰는지도
위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한 이후 벌어진 제위 계승 논란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4세에게는 직계손자인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있었지만 겨우 5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인데다, 정식으로 책봉된 후계자도 아니었다(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비롯한 힘있는 문벌귀족 사위들이 제위 계승에 욕심을 낸 것은 이런 까닭이었다). 그런데 골덴바움 왕조의 역사를 보면 이때까지 여제가 옥좌에 앉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에르빈 요제프 2세가 비록 어리고 배경이 없다 해도 작고한 황태자의 아들이며 선제의 직계손자인데,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 자기들 딸이 여제가 되리라고 기대한 것은 구체제 기준으로 봐도 심히 막장스럽다.
결국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지지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 일파가 문벌귀족과의 내전에서 승리했고, 리히텐라데 마저 라인하르트 일파의 손에 숙청당하면서 제국의 실권은 정권과 군권을 거머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게로 넘어갔다. 이후 문벌귀족 잔당들이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수립하면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해갔고, 이후 폐위된 황제의 뒤를 이은 인물은 고작 '''생후 8개월 젖먹이'''에 불과한 카타린 여제였다. 두 어린 황제가 통치한 기간은 총 2년 남짓에 불과하며, 라인하르트의 허수아비 노릇을 한 까닭에 계보상으로는 계속 왕조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사실상 통치왕조로써의 골덴바움 왕조는 프리드리히 4세에서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후 카타린 여제의 아버지 페크니츠 공작이 양위를 선언하면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황제로 즉위했다. 라인하르트는 골덴바움 왕가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고, 황실의 인물과 혼인관계도 아닌 완전한 제3자였다.[7] 이로 인해 그는 골덴바움 왕조를 이은 것이 아닌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이 되었으며, 이후 라인하르트의 친아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이 제위를 계승하면서 이론의 여지 없이 로엔그람 왕조로 대체되었다.
은하영웅전설 작중에서 이 단어는 왕조 자체만이 아니라 루돌프 폰 골덴바움 황제가 만든 사회 체계와 그 체계에서 연속되는 정권을 대표해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작중 라인하르트는 누나를 뺏어간 황제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귀족들의 부패에 매우 치를 떨며 골덴바움 왕조를 매우 증오하였고,[8] 그래서 자기 세력을 모아 골덴바움 왕조와 문벌귀족들을 쓸어버렸다.
여담으로 골덴바움은 유대인 계통 성이다.

2. 역사



2.1. 건국과 초기 역사


우주력 310년, 은하연방의 종신집정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은하연방을 무너뜨리며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은하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루돌프는 즉위 9년만에 열악유전자 배제법을 시행하여 40억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고, 사회질서유지국이라는 비밀경찰 조직을 만들었으며, 제국 의회를 해체시키며 폭군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골덴바움 왕조의 건국 초기의 진취적인 모습은 진작부터 없어져 버렸고, 루돌프 사후 숨죽여 있던 공화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나 한때는 군무성 앞까지 반군이 들이닥쳤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골덴바움 왕조는 지기스문트 1세의 아버지 요아힘 폰 노이에 슈타우펜 공작의 지휘 아래 결국 진압에 성공해 반란에 가담한 공화주의자 5억 명은 처형, 그 가족을 비롯한 100억 명의[9] 시민들은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농노로 전락했다. 2대 황제 '''지기스문트 1세'''는 이렇게 공화주의자들을 찍어누르는 한편 제국에 충성하는 신민들에게는 선정을 펴 제국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이후 3대 리하르트 1세를 거쳐[10] 4대 오토프리트 때 제국은 에크하르트 자작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는 매일 오로지 루돌프 대제의 전례와 일정에 맞춰 사는 오토프리트 1세의 하루 일과를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황제는 늘 그에게 놀아나는 신세였고, 심지어 황제 본인은 일정을 맞춰 사는 것 외엔 국가를 위한 개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탓에 제국은 에크하르트 자작이 막강한 권력을 틀어쥔 상태로 그냥저냥 굴러갔다.
이러한 자작의 행태는 5대 황제 카스퍼 시기에도 여전했지만, 자신의 권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황제에게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이려던 계획이 실패한 후 황제가 총애하는 카스트라토 프로리안을 살해하려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리스너 남작에게 걸려들어 즉결 처분된다.[11] 간신이 제거되어 이제 제국이 좀 정상으로 돌아오려나 싶던 그 때, 황제 카스퍼가 퇴위 성명서를 남긴 채 프로리안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고 제국은 140일 간 황제 없는 ‘공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율리우스를 6대 황제로 추대함으로서 ‘공위의 시기’는 마침내 끝났다. 사실 다들 율리우스의 능력보다는 그 아들 프란츠 오토의 능력에 주목해서 그를 황제에 앉힌 것으로, 귀족 일파 중 누가 황제가 된들 정통성 문제는 어차피 불거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미 70세가 넘은 노인인 율리우스는 몇 년 안에 하직할 것 같았던 데다, 그리 되면 곧 프란츠 오토가 계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다 늙은 율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한 것이었다. 예상대로 프란츠 오토는 나이 든 황제를 대신해 제국을 잘 다스려[12] 안정기를 가져다 주었지만, 율리우스가 뜻밖에 중신들의 예상을 깨고 장수하여[13] 마침내는 프란츠 오토와 그 아들까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났다.[14] 그런데 얼마 못 가 율리우스는 그만 96세의 나이로[15] '''급사'''하고 만다.

2.2. 쇠락과 중흥의 반복


독살의 범인은 바로 율리우스의 증손자 '''칼 대공'''이었다. 죽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에 황위를 넘겨받을 수 있었지만, 조급함을 견디지 못해 최악의 선택을 한 것. 하지만 칼 대공은 증거를 인멸하고자 자신의 계략에 끌어들였던 선황의 총희를 죽였고, 이 여인은 죽기 전 팔찌에 사건의 전말을 적어 자기 오빠에게 보냈다. 이를 보고 원한을 품은 총희의 오빠는 칼의 사촌인 지기스문트에게 그 내용을 알렸고, 이에 지기스문트는 칼 대공을 협박해 제위에 올라 7대 황제 '''지기스문트 2세'''가 된다.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새 황제 지기스문트 2세는 사치가 심했다.''' 심해도 그냥 심한 게 아니었다. 무려 수백 개의 황금 미녀상을 세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지랄을 해댔고, 급기야 제국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는 거상들을 억울하게 처형해 그 재산을 몰수하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아들 오토프리트에 의해 쿠데타가 발발해 지기스문트 2세는 폐위된다.(그래서인지 별명은 치우제, 무슨 의미냐면 바보 황제란 뜻이다(...)) 그의 패악질이 어찌나 심했던지 문벌귀족의 완성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는 평이 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8대 오토프리트 2세는 고작 6년 만에 과로사했고, 이어 9대 황제 아우구스트 1세가 즉위했다. 후궁들에게는 범군이었지만 정사는 명군이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사생활은 엉망이었으나 정치를 잘 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고 그 이후에도 별 탈은 없었는데... 그의 후대에 '''문제가 생긴다.'''
바로 13대 리하르트 3세를 이어 즉위한 14대 황제 '''아우구스트 2세'''가 문제의 원인으로, 그는 전혀 황제의 자질이 없는 인물이었다.[16] 워낙 잔혹하고 포악하여 즉위하자마자 마치 살인을 하루라도 안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것마냥 밥먹듯이 살인을 행해 선왕의 총희 수백명을 '''살가죽을 벗겨 죽였다.''' 심지어 아우구스트 2세는 자신의 동생 3명을 반역자로 몰아 살해하고는 시체를 토막내어 유각견 무리에 던져주었고, '''자신의 친모인 황태후 일레네마저''' 역적들을 태어나게 했다며 자결을 강요해 죽였다(...) 그뿐이랴, 살인의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시체를 발가벗겨서 거리에 내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여 죽어간 이들이 무려 '''600~2000만명'''에 이르렀다.(그래서 별명은 ‘유혈제’)
이렇게 되니 반란이 일어나거나 당장 나라가 망하는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고,[17] 황제의 사촌동생 에리히 폰 린다호프 후작이 반란을 일으킨다. 본디 에리히는 일찌감치 아우구스트 2세를 피해 오딘을 떠나 영지에 숨어있었지만, 오딘에서 잡아죽일 자들을 다 죽여버린 아우구스트 2세는 영지로 도망친 사촌동생이 생각나 그마저도 잡아들여 죽이려 했고 이에 에리히가 인근 제국군 부대에 격문을 띄우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제위 이후 아우구스트 2세는 늘 미치광이 폭군이었던 지라 평소 황제에게 불만을 가졌던 제국군 부대들이 일제히 이에 응해 에리히에게 가담했고[18] 급조된 반란이었음에도 배신자가 나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진압하러 온 부대들마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 그 세력이 갈수록 늘어났다. 결국 마지막 전장 트라바흐 성계에서 에리히는 아우구스트 2세의 제국군을 무찌르고[19] 마침내 아우구스트 2세의 측근 샴바크 준장이 아우구스트 2세를 죽이고 항복, 마침내 아우구스트 2세의 폭정은 막을 내린다. 이렇게 에리히는 15대 황제 에리히 2세로 즉위했고 이후 아우구스트 2세의 폭정을 수습하는 데 전념했다.(그래서 별명은 ‘지혈제’)

2.3. 자유행성동맹과의 대립의 시작


이후 20대 '''프리드리히 3세''' 시절에 은하제국은 생전 처음 보는 세력과 조우하게 된다. 자유행성동맹을 참칭하는 세력을 감지한 제국은 2차례에 걸쳐 토벌대를 보냈으나 패배했고, 이들이 결코 작지 않은 세력임을 알게 되자 곧 대대적인 원정군을 조직한다. 건국 초기부터 공화주의자나 반 제국 세력이 일으킨 반란 때문에 이미 제국군은 강인해져 있었기에 군무상서 팔켄호른은 "이것은 대규모 수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고 할 만큼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원정군 지휘부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프리드리히 3세가 장남 구스타프 대신 새로 책봉한 황태자 헤르베르트를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었다.[20]
원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반대파 중 한 명이었던 황제의 이복동생, 즉 황족인 바르트바펠 후작이 헤르베르트의 총사령관 선임을 막고자 꺼냈던 말 몇 마디에 황제의 진노를 사 처참하게 몰락하자[21] 찍소리도 못하게 되었고 마침내 제국군은 자유행성동맹과의 첫번째 대규모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제국력 331년에 벌어진 다곤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은 크게 패하여 90%가 넘는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고, 헤르베르트를 황제로 만들려던 황제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그래서 별명도 ‘패군제’) 이후 반 제국 세력들이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들은 하나둘씩 자유행성동맹으로의 망명을 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제국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리라 추정할 수 있는데, 근 1세기동안 황제가 교체될 때 마다 궁중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제국이 제대로 썩어들어가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성군의 등장으로 골덴바움 왕조는 극적으로 그 수명을 늘리게 된다.
프리드리히 3세 사후 황제의 이복 형 막시밀리안이 21대 황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1세로 즉위했고, 그 이후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 구스타프가 22대 황제가 되었지만 선천적으로 허약했던 체질이 늘 문젯거리였으며, 급기야 그가 헤르베르트의 부하에게 독살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하도 재위기간이 짧아 별명이 ‘백일제’) 하지만 그는 죽기 직전 이복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주었으니, 그가 바로 골덴바움 왕조의 23대 황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다.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받는 황제로(그래서 별명이 청안제) 본디 어머니가 하급 귀족이었던 지라 강한 신체, 뛰어난 머리, 능력, 인격 등을 갖춘 완벽한 황제감이었으나 신분때문에 제위 계승에 관심이 없었다가 자기보다 상위 계승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자 결국 황제가 되었다. 즉위 후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곤 성역 회전의 패장 고틀리프 폰 잉골슈타트를 열렬히 변호했다는 이유로 그간 높으신 분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던 오스발트 폰 뮌처를 사법상서로 발탁해 여러 개혁정책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도 늘 있는 법.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반대파의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렸고, 마침내 독살의 위기까지 갔으나 천우신조로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실명하였고 결국 황후인 지클린데[22]와 뮌처의 보좌를 받아 제국을 다스렸다.
그의 최대 업적이라 할 만한 건 열악유전자 배제법의 사문화. 은하제국 초대 황제 루돌프가 시행한 법이라는 이유로 그가 죽자마자 사문화만 시킨 채 폐지하지 못 한 상태였는데,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법의 조항만 남기고 시행 자체를 막아버려 사실상 완전히 없애버렸다. 또 하나는 뮌처의 조언을 받아들여 약 20년의 재위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자유행성동맹과 싸우지 않았던 것.
훗날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이 역대 황제들 중 사생아 논란이 없던 분이라고 평가한 데서 보이듯 사생활도 깨끗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황후 지클린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얻진 못했고, 사후 황위는 그의 사촌동생이었다가 양자로 입적된 '''코르넬리우스 1세'''에게 넘어간다. 코르넬리우스 1세도 나름 명군으로, 원수계급을 남발하는 취미(그래서 별명이 ‘원수양산제’) 때문에 뽑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선대 황제가 중용한 이들을 계속 기용해 제국의 안정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선황을 뛰어넘고 싶어했기에[23] 마침내 선황이 하지 않은 자유행성동맹 정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뮌처와의 갈등 끝에(황제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뮌처가 사표를 썼지만 결국 원정은 막을 수 없었고, 마침내 제국력 359년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이 벌어진다. 이때는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했고[24] 동맹이 방심한 덕분에 다곤 성역 회전보다는 성공적이어서 동맹 정복에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궁중에서 일어난 반란 때문에 철군하여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때 ‘원수양산제’ 답게 원수 계급 인원들의 피해가 커 친정 기간 동안 58명의 원수 중 35명이 전사했다.
원정 실패 후, 코르넬리우스 1세는 자유행성동맹 정복은 불가능하다 여겼는지 다시는 그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전쟁으로 인해 망가진 것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정치도 꽤 잘 했다. 그리고 제국력 373년, 지구 출신의 거상 레오폴드 라프의 로비 끝에 페잔 회랑의 제2행성 페잔페잔 자치령이 탄생한다.
이후 25대 만프레트 1세와 26대 헬무트를 지나 27대 '''만프레트 2세'''가 즉위한다. 그는 서자였지만 그래도 왕자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고,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자유행성동맹에서 자란 덕에 열린 사고를 지닌 황제였다. 그래서 자유행성동맹과 수교하고 제국을 개혁하기 위해 나섰다가 그만 즉위한지 1년도 안 돼 지구교의 계략에 휘말려 암살당하고 만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한때 해빙기를 맞을 뻔했던 양국 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된다.

2.4. 가짜 알베르트 대공 사건


만프레트 2세 사후 28대, 29대로 각각 빌헬름 1,2세가 재위한다. 그런데 그 이후 즉위한 30대 코르넬리우스 2세 때 은하제국을 뒤흔든 최대의 사건이 터진다. 본디 빌헬름 2세는 '''황후 콘스탄체에게서 아들 코르넬리우스를, 총희 도로테아에게서는 서자 알베르트를 얻었다.''' 하지만 황후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황제를 갈궜고, 그러던 도중 황제가 병으로 쓰러진다. 그런데 얼마 뒤 알베르트 대공이 황궁 지하를 탐사하겠답시고 내려갔다가 영영 실종되고 말았다.[25] 이에 대해 평소 황후 콘스탄체가 총희인 도로테아와 그 아들 알베르트 대공에게 악의를 지녔다는 점이 원인이 되어 두가지 소문이 돌았다.
하나는 도로테아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 황궁 지하 통로로 알베르트를 대피시켰다는 것이며, 이후 장성한 알베르트 대공을 페잔 등에서 봤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하나는 콘스탄체가 알베르트 대공을 꼬드겨 황궁 지하로 보낸 뒤 죽게 내버려뒀다는 것이며, 황후를 저주하는 알베르트 대공의 목소리를 지하에서 들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황제는 죽었고 이후 황후의 아들 코르넬리우스가 즉위한다. 그런데 얼마 뒤 총희 도로테아가 독살의 징후를 보이며 죽었고, 황후 콘스탄체는 정신질환과 열병을 앓다 죽어 여러 뒷소문이 돌았다.
어쨌든 사건은 그렇게 끝난 듯 싶었고 코르넬리우스 2세는 무난하게 제국을 다스렸다. 하지만 자식이 없어 근심하고 설상가상으로 병으로 드러눕게 되자 제국은 근심에 빠졌는데, 그때 놀랍게도 '''자신이 알베르트 대공임을 주장하는 자가 나타났다.''' 말재간이 뛰어나고 증언과 증거도 그럴듯해 확신을 심어줬다. 여기에 황제 본인도 모후에 의해서 알베르트가 실종된것이라 여겨 마침내 두 형제는 눈물의 대면식을 가졌다. 이렇게 되자 이 알베르트임을 칭하는 자는 모두가 알베르트 대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곧 황제로 즉위하리라 여겨 귀족들이 온갖 아첨을 떨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한다.'''
갑자기 알베르트 대공이 5천만 제국마르크에 해당하는 보석과 자신을 모시던 시녀와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되자 귀족들은 혼란에 빠졌고 미래의 황후를 꿈꾸며 그에게 몸을 바쳤던 10여명의 귀족 영애들 중 절반은 졸지에 불명예스러운 사생아를 출산했고[26] 알베르트가 사기꾼의 이름이라 하여 개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어리석은 귀족들을 씹기 위한 술안줏거리 사건으로 끝났다.
하지만 의문점도 있다. 알베르트 대공을 칭한 이는 그가 진짜든 가짜든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황제에게 인정까지 받았으니 황위에 오르는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짜 알베르트 대공이 맞는데 제국에 환멸감을 느껴 복수하기 위해 일을 벌인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27] 그 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귀족 영애들은 모두 농락한 반면 자신을 모시던 시녀와는 같이 도망쳤고, 상당량의 보석까지 챙긴 사실이 근거가 되었다.

2.5. 라그나로크를 향해가는 왕조


아무튼 코르넬리우스 2세 사후 황태자 오토프리트가 31대 '''오토프리트 3세'''로 즉위했다. 그는 황태자 시절 제국군 3대 장관과 제국재상을 모두 겸임했고 이후 제국재상직이 영구 봉인당하는 단초가 되었다. 아무튼 그걸 다 맡을 만큼 능력이 있던 그는 황제가 되자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 아무도 못 믿는 성격이 되었다. 이는 끊임 없는 궁중 암투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황후를 4번, 황태자를 5번 교체했으며 결국 40세에 식사를 거부하다 신경쇠약으로 사망했다.
이후 32대 에르빈 요제프 1세, 그 뒤에 33대 오토프리트 4세가 즉위했는데 이쪽은 엄청나게 여색을 밝혔고(그래서 별명이 ‘강정제’) 최후 또한 어느 후궁과의 잠자리에서 기력이 쇠해 복상사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자식이 수백에 달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이들을 대귀족과 결혼시키려 하며 이를 빌미로 막대한 지참금을 요구해 결국 가문이 망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34대 오토하인츠 2세를 거쳐 35대 '''오토프리트 5세'''가 즉위한다. 그는 검약을 내세워 쓸데없는 지출을 줄였으며, 그가 죽던 시기에는 거의 항상 적자이던 은하제국의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을 정도로 뛰어난 국정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외정은 좋지 않아 하필 자유행성동맹군의 730년 마피아, 특히 브루스 애쉬비가 활약하던 시기에 벌어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제국군 장성들이 무려 60명이나 전사하고 말았다(이른바 ‘군무성이 눈물을 흘린 40분’). 또한 동맹군의 무덤 이제르론 요새가 건설되고 완공된 게 바로 이 시점으로, 워낙에 절약을 외치는 황제 시기에 엄청난 돈이 쓰인지라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심지어 건설 책임자인 제바스타인 폰 뤼데릭 백작은 황제와 중진들에게 힐난과 비난을 당해 횡령 누명까지 뒤집어썼지만 결국 백작은 요새를 완공했으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불행했으니, 그에게는 리하르트, 프리드리히, 클레멘츠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제국력 452년, 그만 장남 리하르트의 반역이 드러나 리하르트와 그의 측근 60여 명이 처형되었고 후계자 자리는 클레멘츠에게 넘어왔다.[28] 하지만 불과 3년 뒤 그것이 황제 자리를 노린 클레멘츠의 자작극임이 밝혀졌고, 그 즉시 클레멘츠의 측근 170여 명이 처형당했으며 클레멘츠는 자유행성동맹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우주선 사고로 죽었다. 결국 그로 인해 충격에 빠진 오토프리트 5세는 쓰러졌고, 결국 황위는 프리드리히에게 넘어가 그가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로 즉위한다. 치세는 프리드리히 4세 참조.
말년으로 접어들면서 은하제국은 더욱 막장으로 굴러갔다. 궁중암투, 반란, 지나친 재정 확대, 귀족세력의 강화 등등의 혼란이 프리드리히 4세 시기로 넘어오면서 더욱 심해졌고, 여기에 황제에게 업적을 달아드리기 위해! 라는 목적으로 대규모 원정군이 조직되기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자유행성동맹과의 전쟁 중 함대를 거하게 날려먹는 일도 생겼지만 이제르론 요새의 존재 덕분에 간신히 이를 어느 정도 메꾸는 게 가능했다. 이 기조가 이어졌다면 그저 소강상태의 유지가 전부였겠지만, 역사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2.6. 골덴바움 왕조, 라그나로크를 맞이하다.


제국력 487년, 자유행성동맹군의 명장 양 웬리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아군의 피해 없이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한다. 이로 인해 처음으로 전쟁의 주도권이 자유행성동맹으로 넘어가고, 동맹의 정치인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제국령 침공을 계획한다. 동맹군은 처음에는 승승장구했으나, 은하제국군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의 청야전술에 휘말려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점령지 폭동 등 여러 문제에 휘말린다. 보급이 끊긴 동맹군은 제국군의 공세에 큰 피해를 입고 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암릿처 성계로 후퇴하지만 암릿처 회전에서 크게 패하여 무려 2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채로 이제르론 요새로 도망쳤다.
한편 프리드리히 4세제국령 침공작전 도중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붕어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은하제국은 이미 크게 3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자 제국원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을 위시한 군부,[29]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위시한 관료집단, 그리고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세력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의 세력으로 이루어진 문벌귀족이었다. 그런데 세 집단은 성향이 많이 달랐다. 라인하르트와 그 부하들은 골덴바움 왕조를 멸망시키고 귀족들의 특권을 박탈하려 했지만 대다수 귀족들은 이에 극렬히 반대했고, 리히텐라데를 비롯한 관료집단은 귀족을 제어하는 건 동의했지만 골덴바움 왕조를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한편 대다수 관료들은 제국의 개혁은 생각했으나 골덴바움 왕조엔 별 관심이 없었고, 여타 귀족들도 립슈타트 전역에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이 세 파벌은 프리드리히 4세 사후 골덴바움 왕조의 다음 황제가 누가 되느냐는 문제로 정면충돌하게 된다. 프리드리히는 여러 자식을 봤으나 대다수는 유산되거나 어릴 때 죽었고, 고작 세 명이 좀 자랐지만 아들이자 황태자인 루트비히는 아들 에르빈 요제프만 남긴채 아내와 함께 요절했고, 그의 아들은 너무 어려 황태손이 되지 못 한 채였다. 이렇게 되자 아말리에 폰 브라운슈바이크크리스티네 폰 리텐하임의 딸들이 후보가 되었고(제국 굴지의 대귀족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빌헬름 폰 리텐하임의 아내로, 둘 다 제국 굴지의 대귀족이 된것도 황제의 사위가 된 덕이 컸다), 때문에 제국 귀족들의 상당수가 브라운슈바이크VS리텐하임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프리드리히 4세가 세상을 떠난 것이 상황을 극한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이미 이전부터 브라운슈바이크 세력은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를, 리텐하임 세력은 자비네 폰 리텐하임을 지지하며 제위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암투를 행했다. 하지만 리히텐라데는 귀족 세력의 제어를 위해 선제의 사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하지 않고 라인하르트와 야합하여 아직 어린아이였던 선제의 손자 에르빈 요제프를 37대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로 즉위시켰다.
이렇게 되자 '연합파' 귀족들은 리히텐라데-라인하르트 추축파의 결정에 반발해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맺었고 국정을 농단한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립슈타트 귀족연합군 수뇌부의 귀족들 대부분은 군재가 없어 라인하르트에게 끊임없이 패배했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독단 때문에 발생한 베스터란트 핵폭격으로 민심마저 잃어버렸다. 결국 궁지에 몰린 립슈타트 귀족연합군은 함대 전력을 끌어모아 최후의 공세에 나섰지만 라인하르트의 계략에 패배했고, 생존한 문벌귀족들은 모조리 숙청당했다. 최대 경쟁자인 문벌귀족을 제거한 라인하르트 일파는 즉각 수도성 오딘으로 달려가 재국재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과 그 일족을 한 명도 남김없이 숙청하고, 라인하르트 본인은 제국재상에 올라 국정을 장악한다.
한편 페잔으로 망명한 문벌귀족 잔당들은 페잔 자치령의 협조를 얻어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여 동맹으로 망명해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수립하고 동맹과 협력하여 라인하르트를 타도하려 한다. 하지만 황제가 납치된 것 자체가 페잔 자치령과 라인하르트간의 거래 때문에 라인하르트가 묵인한 거였고 황제가 납치되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타린 케트헨 폰 페크니츠를 골덴바움 왕조의 새 황제로 옹립하고 동맹에 선전포고한다.
제국은 처음에는 이제르론 회랑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했지만 방향을 바꿔 전격적으로 페잔 자치령을 점령하여 제국에 합병했다. 그리고 페잔 회랑으로 동맹을 침공,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재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전사할 뻔했으나 동맹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감금하고 제국에 항복해버리는 바람에 동맹을 정복할 수 있었다.
동맹의 항복을 받은 라인하르트는 곧바로 바라트 화약을 맺어 동맹을 사실상 제국의 속국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수도 오딘으로 귀환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마침내 제국력 490년 6월 20일 여제의 섭정이자 아버지인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으로부터 양위를 받아내었고, 동년 6월 22일 로엔그람 왕조의 초대 황제 라인하르트 1세로 선양받아 즉위함으로서 골덴바움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멸망 이후 골덴바움 가문의 운명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우선 프리드리히 4세의 직계인 에르빈 요제프 2세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여 은하제국 정통정부에 참여했지만 제국군의 침공으로 정통정부가 해산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고, 황제를 보좌하던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이 우주력 801년 3월 체포되면서 황제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레오폴트 슈마허의 증언으로 그 시신이 가짜임이 밝혀졌다. 황제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공식 기록에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었다.
프리드리히 4세의 방계인 자비네 폰 리텐하임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는 처음 언급된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측컨대 립슈타트 전역으로 두 대귀족 가문이 망했기 때문에 이들도 몰락했으리라 추정된다.[30]
마지막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와 그 아버지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는 순순히 선양하는 대가로 신변과 재산의 안전 보장, 150만 제국마르크에 달하는 연금을 카타린 여제가 죽을 때까지 지급함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몰락을 면할 수 있었다.

3. 국가 개괄


골덴바움 왕조의 정치체계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앙시앵 레짐)가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이며 프로이센이나 독일 제국에서 보이는 군국주의도 많이 섞여 있다.

3.1. 정치


정치체체는 전제군주제. 건국 초기에는 제국 의회가 존재하는 등 입헌체제였지만 제국력 9년 개조 루돌프 대제가 폐지함으로써 전제군주제로 나아간다. '신성불가침의 은하제국 황제'로 대표되는 전제주의 정치는 골덴바움 왕조의 기본으로서 개조 루돌프 대제가 지향한 정치체계이다. 은하제국 황제는 '전 인류의 지배자, 전 우주의 통치자, 천계를 다스리는 질서와 법칙의 보호자'로 불리며, '신성하고도 불가침'한 존재기 때문에 이론상 그 어떠한 견제를 받지 않고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외전의 한 장면에서는 칙령을 발표하는 사람이 황제의 명은 모든 법보다 우선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황권 자체는 강하다. 아우구스트 2세의 폭정도 따지고 보면 황권을 견제할 견제세력의 부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그러나 문벌귀족들의 발흥으로 건국 초기에 비해서 황제권은 크게 축소된다. 물론 절대황권을 휘두른 황제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특권을 등에 업고 갈수록 세력을 불린 문벌귀족들에 의해 지방에는 반란이 빈번했고, 중앙에서는 황제 암살 등의 궁정암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결국 프리드리히 4세 이후 즉위한 황제는 너무 어려 권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렸고, 결국 허무하게 멸망한다.
귀족과 군에 비하여 관료제에 대한 작중묘사는 상당히 부실하다. 다만 제국기사 작위만 있어도 있는 것만으로도 각종 조직에서 승진 및 임용 특혜를 인정받고, 능력없는 명문귀족가 자제들이 적당한 자리를 꿰차서 월급도둑질이나 하는 사례가 종종 언급되는 점이나 그 모진 파란을 겪고 말기에는 분권화 또는 할거 상태에 이른 제국을 이끈 것을 보면 은하제국의 관료제는 이런 놈들을 감당하고도 별 묘사없이 넘어갈 정도의 고도의 정교한 체계인 듯 하다.
부실함의 한 예로 국무성과 내무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미국을 참조로 한 듯 한데, 제대로 된 외교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제국의 상황에서 국무성과 내무성의 역할 구분은 불명확하다. 국무상서가 제국재상 대리 취급을 받은 것이나 내무성 사회질서유지국 등 단편적인 정보만이 언급된다.
또한 OVA이긴 하지만 85화에서 하이드리히 랑이 포상금을 기부금으로 내는 일화를 본다면 사무실에 여성도 있는 것으로 보아[31] 여성 관료도 선발하는 듯 싶다.[32]

3.2. 사회



3.2.1. 신분제


황족-귀족-평민-농노의 신분제가 존재한다. 황족은 물론 골덴바움 가문이고,[33] 귀족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황제가 된 후 자신의 부하들에게 게르만식 성명과 귀족 작위를 하사하면서 탄생했다. 귀족들 중에서는 몇 개의 행성과 위성을 영지로 거느리고 사병까지 보유한 자들도 있었지만, 평민들과 다를 바 없이 살 정도로 몰락한 자들도 있었다. 농노는 말 그대로 노예. 루돌프 사후 반란을 일으킨 반란분자들은 죽거나 농노로 전락했다.
귀족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우생학에 바탕한 인종주의의 한 단면으로, 그가 열등하다 여기는 사람은 '열악유전자 배제법'으로 말살한 반면 그가 인종적으로 우월한 아리아계라고 여기는 측근들에게는 게르만 성씨와 함께 작위를 하사한 것이 시발점이다. 작위 체계는 황제의 직계에게만 수여되는 대공과 보편적인 귀족들의 오등작, 그리고 귀족반열에는 못 끼지만 그럭저럭 칭호는 사용할 수 있는 라이히스리터(제국기사)로 구성된다. 제국기사 칭호는 남발되어서 가치가 떨어졌다지만 이 제국기사 칭호라도 있으면 공무원 임용에 혜택을 주는 등 없는 것보단 나름 편하게 살 수 있다. 물론 라인하르트나 파렌하이트를 보면 그나마도 누리지 못하는 극빈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지만.[34]
루돌프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와 이를 보좌하는 귀족의 구도를 추구한 것으로 묘사되나, 작중 시점에는 제국의 정국을 주무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문벌귀족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몇 개 행성계에 달하는 영지와 대규모 사병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맞서 지방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귀족들도 있었으며, 실제로 문벌귀족들이 뭉친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그 규모가 제국 중앙군의 규모를 상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부는 평민들을 착취한 결과물이었고, 결국 5세기에 달한 분노가 립슈타트 전역 말기에 터져 문벌귀족이 몰락하는 원인이 된다.
농노는 존재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만, 본편에서 농노의 비중은 0이다. 계급 갈등도 귀족VS평민이고 농노는 아주 가~끔 지나가듯 언급되며 농노 출신 캐릭터는 은영전이 끝날 때까지 엑스트라조차 나오지 못했다.
이런 4단계 신분제는 립슈타트 전역을 계기로 재편된다. 라인하르트의 편을 들거나 중립을 지키지 않은 귀족 계급은 내전의 패배로 몰락했으며, 개혁의 일환으로 농노가 해방되었다.

3.2.2. 군국주의


전제주의, 귀족주의 이외에 군국주의 성향도 상당히 강한데, 이는 군인출신이었던 초대황제 루돌프의 유산이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기본적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각료들은 물론 명망높은 문벌귀족들과 그 일가의 인물들은 대부분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군 계급을 달고 있다.
출세를 위해서는 전선에 나가 무훈을 세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라는 이야기가 작중에 종종 언급되며, 이는 신분적으로 차별받는 하급귀족이나 평민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물론 뒤를 봐주는 인물, 소위 빽이 없는 하급귀족이나 평민들은 공로를 세웠어도 무시당하거나 다른 문벌귀족 상급자에게 뺏기는 일도 빈번하다고 서술되지만 '군공'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제 아무리 신분이 낮아도 장군계급에 각 부처의 차관급 지위에 오를 수 있는 확실한 출세 루트라 언급된다. 오프레서의 경우 하급 귀족임에도 인간흉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 상급대장이 되었고 미터마이어의 경우 그보다 더 낮은 평민임에도 장성급이었다. 신분이 낮은 귀족일지라도 비교적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은하제국이지만 군대만은 예외라 문벌귀족이라해도 정규 군사교육과정을 밟지 않으면 장교가 될 수가 없고 실력이 없으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나 리텐하임 후작급이 되지 않는 이상 대장 이상의 고위 장관급 장교로 진급 할 수도 없다. 그 라인하르트도 황제에 대한 누나의 청원이 없었으면 유년학교 졸업자라 소위가 아닌 준위로 군 생활을 시작했어야 했다.
사실 문벌귀족에 비하면 관료들은 상당히 유능한것으로 보이는데 호프만 총경처럼 자기 업무에 충실한 인물, 마인호프, 질버베르히처럼 촉망받는 인재 등등 대부분 무능하거나 유능하더라도 군재쪽으로만 몰려있는 문벌귀족들 보다는 훨씬 유능하다.[35] 그 때문인지 골덴바움 왕조의 관료들은 상당수가 로엔그람 왕조의 관료로 흡수된 듯하다. 문벌귀족이 몰락한 것과는 대조적.

3.2.3. 언어


은하제국은 개조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취향에 따라 독일-게르만식 문화권이다. 이로 인해 제국공용어는 독일어지만 반대로 자유행성동맹의 공용어는 영어이다.[36] 실제 작중에서도 양편이 제국공용어로, 동맹공용어로 대화한다는 설명이 나오지만 드문 편이고 거의 모든 장면에서 통역이 없어도 서로 아무런 불편함 없이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첫째, 등장인물들이 양국어를 구사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에서는 율리안 민츠가 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나오며, 이제르론 요새에 잡혀 있던 제국군 포로가 율리안의 제국공용어 실력에 감탄하자 율리안이 "학교에서 배웠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는 "정보의 적극적 습득을 위해 적국의 언어를 아는 것은 당연하므로" 동맹군 사관학교의 수학 과목 중 제국어가 있다는 언급이 있으며, 양 웬리도 서툴지만 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다만 제국군에서 동맹어 교육을 하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어 있지 않으나, 우르바시 사건 당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읽기 시작한 책이 <자유행성동맹 건국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라인하르트 개인은 동맹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7].[38] 아직 동맹을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 시점에서 제국 정부가 동맹의 역사에 대한 책을 제국어로 출판하도록 허용했을 리가 없으므로 라인하르트가 읽은 책은 동맹 시절 출간된 책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나라의 언어가 비슷하다고 원작에서 나온다.

"오, 제국어를 읽을 줄 아니?"

"학교에서 배우거든요."

사실 원래 그리 차이가 큰 언어도 아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 김완, 이타카(2011), p.156

실제로 영어와 독일어는 그 뿌리가 같기에 언어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된 언어이며 많은 독일인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영국인들이 독일어를 그만큼 하는지는 미지수지만. 그렇기에 대부분의 회견은 제국어로 이루어졌고 단지 이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의 경우 망명 초기에는 제국어를 사용했더라도 본래 동맹어를 구사할 수 있었거나 후에 배웠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혹은 어차피 당대 인류가 쓰는 언어는 영어 아니면 독일어 밖에 없었을 테니 둘 다 익혔을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언어들이 정말로 없어졌는지는 불명이다.최소한 장정 1만광년 때까지는 제국에도 다른언어 사용자가 있었을 것이다.
극중 제국인과 동맹인이 대화하는 장면은 특별한 언급[39]이 없는 한 동맹인이 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이건 제국 쪽이 엄연한 강대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일일 것이다 자치령인 페잔의 언어도 당연히 제국 공용어. 이러니 동맹인들은 제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장교나 정치가, 상인 등의 직종에 종사한다면 더더욱.

3.2.4. 인종


동맹, 그리고 제국의 신하격인 페잔 자치령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국가별로 매우 다양한 반면, 제국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은 독일식에, 그것도 전부 백인 천지이다. 물론 혼혈이 진전된 시대이기는 하나, 루돌프는 자기가 총애하는 이들, 그것도 백인에게만 게르만 식의 이름을 주고 귀족 직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비게르만계는 자연스럽게 하층민 대우를 받게 되었다. 21세기 초인 현재의 저출산 현상을 생각해보자.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유, 즉 열악 유전자 배제법의 시행 및 오랜 압제와 폭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끌려가거나 떠나거나 하여 줄어들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은 제국 내부에 위치한 지구교의 근거지 지구에서는 거리에 영어로 써진 간판도 있고, 지구인들이 독일식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국의 신하국을 자처하던 페잔인들의 이름도 모두 독일식이 아니다. 심지어 코믹스판에서는 란데스헤르인 아드리안 루빈스키를 흑인으로 묘사하기까지 했다. 물론 지구의 경우는 '''루돌프마저도 개무시한''' 변경 행성이었기에 제국 정부가 죽을 쑤든 밥을 하든 상관도 안 했기 때문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또 동맹인들의 이주로 페잔 자치령의 인종이나 이름 풀이 다양해졌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물론 정확한 추측은 아니나 오랜 전쟁에 지친 동맹인들이 이민 갈 수 있는 타국은 페잔 자치령뿐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동맹으로 망명했다가 생각외로 민주주의가 맘에 들지 않았거나, 제국과의 긴 전쟁 때문에 자유행성동맹군에 끌려가기 싫은 사람들이 페잔으로 다시 이주한 수가 의외로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물론 제국에서 직접 페잔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의 수도 상당했을 것이고.
단, 위의 질문들에 대해 의외로 쉬운 대답들이 있는데, 첫 번째, 은하영웅전설에 관련된 다른 항목에서 이미 설명된 바와 같이 이 소설(또는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엘리트 특권계층이라는 점이다. 군인의 경우라면 장군, 그것도 대장급은 되어야 주요 등장인물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이다. 장군들이 대거 등장하는 장면 같은 경우에도 원수나 상급대장급은 되어야 이름이 나오고, 대장급은 '''"대장급은 뒷줄에 나란히 섰다"'''는 걸로 묘사가 끝날 정도인데... 따라서 은하제국에 정말로 게르만계 성을 쓰는 백인들만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인종차별 때문에 게르만계 성을 쓰는 백인이 아니면 소설의 주된 무대에 등장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제국의 최하위 계급인 농노출신은 등장하지 않는데 장정 1만 광년의 주역인 알레 하이네센응웬 킴 호아]를 보면 확실히 제국 최하위 계급의 경우에는 독일계 성씨가 아닌 다른 이들도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설의 제국측 배경은 수도, 그것도 황궁 등 권력의 중심지이고, 장관급이 아니면 주요 등장인물도 못 되니까. 차별받는 유색인종은 장교가 되기도 어렵고, 장군은 더욱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렇게 차별받는 입장의 사람들이 대거 망명해서 동맹이나 페잔의 주류가 된 것 역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즉, 제국의 모든 사람이 독일식 이름을 쓰는 게 아니라, 제국에서는 독일식 이름을 쓰지 않는 사람은 주역이 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격. 뭐, 지구에 영어 간판이 있는 것은 지구교 신자 중에 동맹인도 많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작가 자신이 인터뷰에서 내놓은 대답은 '''"그런 건 설정 안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는 각 국가의 인종구성 같은 부분을 일일히 설정하고 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각 국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제국 측 등장인물은 독일계 이름만 사용하고, 동맹 측 등장인물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이름을 등장시켰다고 한다. 작가는 앵글로색슨 풍의 이름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일본인에게 거리감이 있는 이름으로 지으려다가 한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여성에게 인기를 끌려면 프랑스나 이탈리아계 이름을 써야지, 독일계나 러시아계 이름은 절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말해서 그럼 내가 해주겠다고 결심해서 지었다고 한다. 요컨대 위의 논쟁은 그냥 독자들의 덕후놀이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셈이다.
굳이 은하제국에 독일 분위기를 섞기 위한 '''억지 설정'''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는데, 아무리 루돌프가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애초에 미래 시대인 만큼 처음부터 지지자들도 대부분 비백인이었을 것이며 측근들도 비백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본인도 비백인의 피가 많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해서 정상적으로 유지되는지는 불명이다. 무엇보다도 '''인종 문제는 작중에서 거의 언급 안된다.''' 애초에 작중에서 은하제국이 자유행성동맹을 깔보는 레파토리는 중우정치지 열등인종같은게 아니다.

3.2.5. 종교


북유럽 신화가 실질적인 국교로 기능하고 있는 듯 하며, 사회문화적으로 깊숙히 침투해 있다.
은하제국의 수도성계는 북유럽 신화의 천국인 발할라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수도성 오딘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에서 따 왔다. 단좌식 전투정 발퀴레도 북유럽 신화의 발키리에서 따온 이름이고, 이외에도 요툰헤임 성계, 브륀힐트 등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지명 또는 함명이 자주 보인다. 심지어 작전명에도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에서 따 왔다.
은하제국 측 등장인물들은 툭하면 대신,大神, 오딘을 찾고, 전장에서 죽는 것을 발할라로 간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북유럽 신화는 은하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묘사를 봤을때 진짜로 믿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쓰는 묘사도 많이 강하다.
그 외에도 오랜 전쟁으로 사회가 피폐해져 있다 보니 지구교가 광범위하게 퍼져서 제도 오딘에 지부가 있었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은 본래 기독교의 축일이지만 은영전 세계관에선 기독교가 오래 전에 사라져서 날씨 좋을 때 축제를 벌이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십자가가 달린 교회도 보이는 걸 보아 아예 사라지진 않고 소수나마 명맥을 유지했을 가능성도 있다.

3.2.6. 모순된 사회상


자유행성동맹이 현대 미국을 비롯한 서구와 비슷한 인상을 주고, 원작 및 여타 미티어믹스에서 몇몇 부분(ex:하이네센폴리스에 있는 궤도 엘리베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등)은 미래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은하제국은 19세기 유럽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게르만 문화와 우생학에 심취한 개조 루돌프 대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우주를 지배할 사람이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루돌프의 뜻에 따라 노이에 상수시의 모든 경비체계와 이동수단을 모조리 인력으로 때운 것과, 제도 오딘에 노이에 상수시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 제국인들의 복식과 건축 양식이 죄다 근대 유럽풍으로 통일된 것이 이 영향이다. 그러니까 국가 규모의 덕질(...)
그 때문에 은하제국은 설정상 자유행성동맹보다 50년이나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는데도 불구, 그 뛰어난 기술력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사회상을 가지게 되었다. 우주공간에 거대 요새를 건축한 나라에서 지상에는 마천루 하나 없고, 사람이 살지 못하는 행성도 테라포밍하는 서기 36세기에 농노가 존재하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의 1화 도입부 장면. 지상에는 마차가 굴러다니는데 하늘에는 우주전함이 돌아다니고 있다. 라인하르트도 마차가 웬말이냐고 투덜거렸을 정도.

3.3. 군사




3.4. 외교


골덴바움 왕조는 건국 이래로 160년간 인류 역사상 유일 정치체제로 기능했다. 제국력 164년 알타이르 성계의 공화주의자들이 탈출하여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했지만 은하제국은 이 사실을 몰랐고 따라서 외교관계 따윈 없었다.
그러나 제국력 331년 다곤 성역 회전을 통해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또렷히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행성동맹은 과거 반제국 활동을 벌이다 노예로 전락한 공화주의자, 다시 말해 불순분자들의 후예라는 점에서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을 자신과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제국이 붙인 자유행성동맹의 이름은 '''반란군.''' 동맹령은 모두 제국 영토이며 동맹의 수장 최고평의회 의장은 반란군의 수괴라는 게 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유행성동맹과는 외교공관 개설은 커녕 최소한의 외교 라인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전쟁에서 생포한 동맹군 포로들은 포로가 아니라 악질적인 사상범으로 간주하여 변경성구에 위치한 '교정구' 라는 교정시설에 집단수용하였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자유행성동맹의 존재가 은하제국 내에 알려지자 공화주의자나 불만분자 등 반제국 세력, 권력다툼에서 패한 귀족이나 왕족들이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했고, 심지어 동맹에 망명했다가 돌아와 황제로 즉위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망명제 만프레트 2세는 자유행성동맹과의 강화를 추진했으나 내부의 반발로 암살되었다.
사실 나중에 밝혀지기를 양국이 계속 대치 상태였던 이유는 양국간의 평화를 바라는 분위기가 생길 때마다 만프레트 2세의 암살을 포함해 지구교가 이를 방해하는 사보타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양국은 끊임없이 대림하다가 립슈타트 전역 이후 제국재상에 오른 로엔그람 공작에 의해 은하제국은 비공식적으로 자유행성동맹의 존재를 인정하는 등 변화가 생겼고, 바라트 화약에 따라 자유행성동맹의 수도성 하이네센에 제국의 고등판무부가 개설되었다. 그러나 바라트 화약 체결 이후 골덴바움 왕조가 무너지고 로엔그람 왕조가 건국되기 때문에 양국의 외교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페잔 자치령지구 출신 거상 레오폴드 라프가 제국정부에 로비해서 페잔 회랑 페잔 성계의 행성 페잔에 내정자치권을 얻어내어 탄생하였다. 페잔은 명목상 제국의 자치령이었으므로 역시 국가는 아니었지만, 페잔과 제국정부는 서로 판무관 사무소를 개설하고, 페잔은 제국의 사업에 투자하는 등 활발히 교류하였다. 자유행성동맹 역시 페잔에 판무관 사무소를 개설하여, 양국은 페잔 자치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류하였다.
그러나 제국력 488년 립슈타트 전역 이후 상황이 급변한다. 페잔 회랑을 통해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려던 재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의 계략으로 페잔 자치령은 허무하게 제국군에게 병탄당하고 내정자치권을 빼앗긴다.

4. 인구 논란


앞에서 나왔듯 은하제국이 성립될 당시 전체 인류의 수는 3천억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주 전체의 인구는 4백억, 그나마 은하제국의 인구는 250억에 불과하다. 이렇게 급격하게 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중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인구가 그렇게 확 줄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다나카 요시키가 본작을 쓰던 시점에는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적인 이슈는 아니었기에 언급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은하제국의 인구가 저출산, 고령화로 줄었다고 하면 제국이 세워진 지 500년 가까이 되므로 숫자놀음하기에 따라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당장 대한민국 인구가 현 출산율 추세를 유지한다면 2100년에는 50%로 줄고, 2500년에는 0.7%(33만 명)로 줄어든다는 전망이 있을 정도이니… 그리고 실제로 작중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외동, 혹은 2명 정도의 자녀를 두는 게 대부분인데 어떻게 보면 실제로 출산율이 감소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또는, 설정의 숫자를 언제나 대충 만드는 작가의 실수일지도.
  • 정권 초기의 노골적 대학살
초대 황제였던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 40억 명을 이런저런 수단으로 처형했다. 루돌프의 사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으나 외손자로서 제위를 계승한 지기스문트 1세는 5억에 달하는 반란군을 살해했으며 100억에 달하는 반란군 가족의 시민권을 박탈하여 농노계급으로 전락시켰다. 알레 하이네센의 예에서와 같이 이들은 대부분 가혹한 환경의 변경행성에 보내졌으므로 많은 사망자를 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아우구스트 2세의 공포정치
14대 황제 '유혈제' 아우구스트 2세는 최대 2천만에 달하는 막대한 수의 인명을 학살했고 귀족과 평민을 포함, 상당한 수의 국민들이 외우주로 피난을 떠났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억 단위는 충분히 될 것이다.
  • 외국으로의 이주
하지만 위의 두 가지를 합치더라도 3천억이 250억으로 줄어들 정도의 급격한 감소는 설명하지 못한다. 아우구스트 2세의 경우, 잔인하기는 했어도 국정에 대한 통제 자체는 공정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는 만큼[40] 말 그대로의 소시민이라면 굳이 제국을 떠나려고 할 것까지는 없었을 공산이 크다. 최소한 이 시기까지 제국의 인구는 완만하게 줄기는 했을지언정 급격한 감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행성동맹의 성립과 대체적인 선택의 가능성은 체제에 반항적이던 다수의 제국인들에게 탈출의 여지를 안겨주어 막대한 숫자의 망명자를 발생시켰다. 이것이야말로 제국 인구 감소의 결정적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언뜻 묘사되는 "평민들의 어느 정도 살 만한 모습" 역시 급격한 인구 감소에 당황한 제국 지배층이 유화책으로써 풀어준 형태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그럼 왜 '''동맹과 페잔을 합쳐도 150억밖에 안 되느냐'''인데, 이 문제는 사실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정확한 항로도도 없이 출발한 우주선이 어떻게 제대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느냐는 점을 생각하면. 자유행성동맹을 처음 건립한 최초의 망명자들 역시 40만 명이 출발해서 1만 광년을 떠도는 동안 자손을 낳아 세대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 16만 명만이 살아남아 하이네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제국 전체를 통틀어 수백억은 족히 되었을 망명 시도자들은 무턱대고 길을 나섰다가 우주의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리거나 자유행성동맹 마냥 세대 우주선이 된 함대가 우주 어딘가에서 하이네센 급으로 살기 좋은 행성을 만나 새로운 문명을 만들거나 죽어있을 지도 모르고, 사르갓소 지대나 기타 험지에서 조난당하거나, 감시하는 제국군에게 발견되어 우주선과 함께 먼지가 되는 등 막대한 수로 죽어나갔을 것이다. 그 결과 살아남아 동맹에 도달하는 망명자의 수는 출발자의 수에 비해 지극히 적었을 것이고, 이 점을 감안하면 제국에 비해 극히 적은 동맹의 인구는 그럭저럭 설명이 된다.
  • 지속적인 저출산 가능성
여기에 대해서는 작중에 확실한 언급이 없으므로 ‘가능성’으로만 적는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 체제의 극단적인 억압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 애 낳기를 포기했는데, 이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관행처럼 자리잡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IMF 이후 합계출산율이 1.1명대에 머무르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했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나 일본도 1.3~5명대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 상황이 수백년간 지속되면 이론상으로 인구가 수백분의 1까지 감소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 게다가 외부 이민도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이 경우 인구의 10분의 1 감소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극단적으로 2305년에 한국인이 0명이 된다거나, 2500년 기준 30만명대로 줄어든다는 예상도 있을 정도다.[41]
작중의 묘사를 보아도 2명을 초과하는 자녀를 두고 그 자녀들이 전원 살아서 성인이 된 가정은 거의 없다. 게다가 풍족함이 출산을 보장해 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제국의 귀족 여성들은 좋은 가문에 시집가서 후계자를 낳거나 황제 내지 황족의 처첩이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의의라고 교육받고 자라며 문벌귀족들은 혈통을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데, 그 제국 귀족들조차 2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300년 가까이 전쟁중인데다 양쪽 다 정치상태가 개막장이라[42] 힘 없는 사람들이 살기엔 매우 팍팍한 시대다.
또한 열악유전자 배제법으로 인해서 낙태 또한 매우 만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기준이 너무나 높아져 어린 생명들이 태어나지도 못 하고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일부 도시국가나 미승인국을 빼고 저출산 세계 1등을 당당히 질주 중인 대한민국에서 비정상인의 기준이 '''어떤지 보자'''.[43] 그나마도 대한민국의 비정상 기준은 은하제국보다는 낫다. 은하제국은 우생학에 근거했기 때문 달리 말하면 은하제국이 더 막장이다.
다만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우선 엘리트 귀족들의 저출산은 현대 사회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재산을 나누지 않기 위해서는 자녀가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내에서 제국 귀족들의 출산율이 낮다는 서술은 있었어도 제국 서민이나 동맹 국민들의 출산율이 낮다는 서술은 없다. 제국 서민들이야 어차피 나눠줄 부도 없고 인터넷에 '''이 시대에 애 낳으면 노예양산'''류의 글이 퍼지거나 북유럽이 대안이건 동북아 모 국가 같은 상황도 아니고[44] 그렇다고 일자리가 극도로 부족해서 청년 고용 대란이 터졌다는 내용도 없으며 군입대로 출세할 기회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으니 출산율이 크게 낮을 이유는 없다. 동맹 국민들도 생활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기록은 없으며 힘 없는 사람들 살기가 팍팍하고 군대 가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스라엘의 출산율[45]을 보면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다만 '중세시대 농업'을 하고 있다 묘사된 여러 행성들에선 우주시대 주제에 진짜 중세시대마냥 농노들이 괭이 들고 밭갈고 있는걸 보면 그 생산성은...80년대 한국만 해도 트랙터가 농촌에 투입되어 시골의 인구감소를 커버쳤는데, 여긴 우주시대 주제에 경운기도 없다. 이런 중세 농노들의 생산성은 인구통계에 넣을 가치조차 없는 수준이다.
  • 알려지지 않은 인구?
이것도 언급도 없고 개인의 사론에 불과한만큼 그냥 가능성이라고만 치자.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시절은 초기에는 전제군주제 답게 군주의 권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그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군주의 권력은 약해지고 관료와 귀족의 입지가 강해졌다. 문제는 귀족이 강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치면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이는 곧 인구 문제로도 직결될 수 있는데, 즉 귀족이 자신의 영지에 있는 영지민의 숫자를 속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귀족들이 자기 영지를 기반으로 하여 중앙정부를 상대로 반란도 일으킬 정도라면 이미 분권화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제국 말기로 접어든 상황에서조차 엄청난 사병을 보유한 귀족들 등을 보면 은하제국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은 귀족 사유지의 인구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으로 알레 하이네센의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노예계급으로 격하된 이들도 존재한다. 연좌제 등이 횡행하는 골덴바움 왕조의 특성상 노예로 격하된 이들은 언제든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요약하자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이들의 신세와 비슷하다. 그런 이들이 제대로 인구 취급을 받을 수 있을지나 의문. 더군다나 제국은 동맹과 끊임 없이 전쟁 중이다. 특히나 알레 하이네센처럼 노예나 다름없던 이들이 건국한 동맹의 특성상 동맹에게는 제국의 이 행태를 비판하여 정당성을 차지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제국은 이것을 감춰야 한다. 결국 북한이 정치범수용소와 그 규모를 인정하지도 공개하지도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거다. 그렇게 보면 제국에서 노예 신세로 있는 이들의 정확한 규모가 알려질 리 없다.[46]
  • 설정오류
사실 위에서 설명한 가설들은 다 집어치우고 이것만 봐도 된다. 그 어떤 논리로 접근해도 이 정도로 급격한 인구감소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돌프 사후의 반란도 총 연루자의 숫자는 105억에 불과(...)했고 아우구스트 2세의 학살도 억 단위에 이르지는 못했으며,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려 한 자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알레 하이네센 선단의 생존비율과 비교할 때 2,500억 이상이 떠났으면 1,000억은 도착했어야 한다. 물론 1,000억의 인구가 동맹에 합류했으면 제국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인구의 90%가 나라를 버리고 떠날 정도면, 굳이 도망칠 거 없이 그 숫자로 들고 일어나면 정부 전복에 황족들 모가지 댕강댕강 하고도 남을 만하다.'''[47] 적극적 반항자와 소극적 반항자의 차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인구의 90%가 떠날 만한 우주선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라면 충분히 반란도 가능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모든 기반을 버리고 외우주로 떠날 정도면 충분히 적극적 반항자이기도 하고. 그나마 지속적인 저출산이 가능성이 있긴 한데 이것도 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변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면 두세 세대 정도라면 모를까, 10, 20세대씩 지속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골덴바움 왕조가 500년을 버텨온 데서 보듯이 언제나 루돌프 시절만 쭉 이어지는 생지옥은 아니었고,[48]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당장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4차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정작 원래 실업자 일색이던 빈곤층은 20세기 전반까지 영국에서 벌어진 일처럼 다시 출산율이 늘고 있고, 하다못해 한국에서조차 빈곤층의 선택이 두가지로 갈리는데 하나는 결혼 포기. 그러나 또 하나는 출산율 증가다.[49] 게다가 90%가 한번에 훅 줄어드는건 말이 안되므로 인구는 결국 500년에 걸쳐 꾸준히 줄었다는 것인데 이정도라면 스파르타급으로 은하제국의 약체화가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정도면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과의 첫번째 접촉이던 다곤 성역 회전때는 자유행성동맹을 압도할만한 국력이 있었다고 봄이 옳다. 물론 이때의 패전은 꼭 국력의 차이만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유행성동맹의 약체화의 직접적인 이유가 은하제국의 강대함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움을 감안해보면 분명 은하제국의 이만한 인구감소는 국력이 엄청나게 뒤떨어 졌음을 의미하나 전반적으로 보면 은하제국의 국력이 그렇게까지 상했다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은하연방 당시의 인구와 라인하르트 시대의 인구 간에 생기는 엄청난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것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은하제국의 막장성을 강조하려다가 생긴 설정오류로 보는 것이다. 한때 3,000억에 이르던 인구가 오랜 전란과 혼란으로 인하여 250억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설명은 그만큼 골덴바움 통치가 막장이었다는 장치의 하나로 활용된 수치일 뿐이다.
이 설의 주요한 근거로 은하영웅전설에서 다나카 요시키가 보인 수많은 설정오류들, 특히 숫자에 대한 수많은 무개념적인 오류들을 들 수 있다. 즉, 함급별로 한 척의 함선에 몇 명의 병사가 승선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고, 병사 백수십만 명과 영관급 장교 만여 명에 대하여 중장급 지휘관은 단 1명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구 문제에 대해서도 별 생각 없이 썼다는 것이다.
어쨌든 창작물은 어디까지나 창작물이므로 제작자의 실수에 의한 오류가 나타날 수 있으니 이에 대해서 너무 무리하게 설명을 만들어내려고 하지 말도록 하자.

5. 역대 황제




6. 관련 문서


[1] RC 001~009[2] RC 009~490[3] 페잔 자치령 포함[4] 사실상 미래 독일어[5] 제국 연호인 제국력 (RC)으로 표기함.[6]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19[7] 굳이 연결점을 찾자면 누이가 황제의 후궁이었다는 것 정도.[8]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의 대화에서는 골덴바움 왕조는 생겨서는 안되었다고까지 한다.[9] OVA에서는 8억 명.[10] 통치보다는 예술이나 여자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황제로서의 의무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다른 특징없이 통치했다는 언급으로 보아 재위기간 동안 무난히 제국을 다스린 듯하다.[11] 애초에 프로리안을 살해하기 위해 황궁 노이에 상수시에 사병을 끌고온 순간부터 반역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셈이니 어차피 처형 대상이었다.[12] 율리우스는 나랏일은 아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궁에서 적절한 사치와 여색을 즐기며 행복한 노후를 보냈다.[13] 장수만 했을 뿐 아니라 100세 가까운 나이임에도 5명의 총희를 거느렸으며 사슴갈비를 뜯어먹는 모습이 마치 성장기 청소년같았다고 할 정도로 식욕도 왕성했다. 추측하건대 진짜로 독살당하지 않았다면 100세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14] 이랬기에 중신들은 제발 황제가 급사하기라도 바랄 정도였다고(...)[15] '''골덴바움 왕조 황제들 중 최장수'''[16] 이 탓에 아버지 리하르트 3세도 매우 실망해서 아우구스트를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다른 아들 중 한명을 황태자로 삼을까 생각했지만, 그들도 영 자질이 좋지 않아서 결국 아우구스트 2세가 즉위했다.[17] 언뜻 보기엔 오래오래 살며 폭압을 휘두른 것 같지만 재위기간은 꼴랑 6년이다. 6년 만에 제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18] 이때 콘라드 하인츠 폰 로엔그람도 참가했다.[19] ...라면 좋겠지만 사실상 제국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전사자가 항복한 자의 1/20밖에 안 되었을 정도였다.[20] 원래 장남 구스타프를 후계자로 정해두었으나, 그가 선천적으로 몸이 너무 약해 도저히 황제가 될 수 없을 것 같자 나머지 세 아들 중 하급 귀족 여식의 자손인 둘째 막시밀리안을 제외한 셋째 헤르베르트와 넷째 리하르트 둘 중 새로운 후계자 감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한참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황제는 결국 헤르베르트를 후계자로 정했고 대규모 군사작전의 총사령관 자리를 주어 새로운 황태자로서 아들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이었다.[21] 작위가 남작으로 강등되었고 영지의 8할을 몰수당했다. 여기에 제도 오딘으로의 출입을 엄금당한건 덤. 결국 그는 여생을 남은 영지에 틀어박혀 지내다가 죽었다.[22] 이 사람 인생도 참 드라마틱한데, 본디 막시밀리안의 시녀였고 결혼해 황후가 된 뒤에도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가 정치적으로 온갖 위협을 받자 옆에서 직접 권총을 차고 호위를 서기까지 했다. 다곤 성역 회전 전까지 헤르베르트가 인생 전체를 통틀어 겪었던 고작 두 가지 고난 중 하나를 당하게 만든 여인이기도 한데, 헤르베르트가 이 여인에게 추파를 던졌다가 퇴짜를 맞았던 일이(...) 바로 그것.[23] 당시 코르넬리우스 1세 나이 '''28세'''[24] 침공 전 특사를 3차례나 보내 투항을 권유하는 등 명분도 빈틈없이 쌓았다.[25] 황궁 노이에 상수시는 반란 등으로 인해 황제가 위험해질 시 탈출하기 위한 온갖 비밀통로가 많은데, 이 때는 황궁 사람들조차 그 통로들을 다 파악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26] 이들 중 상당수는 수치심에 자살까지 했다고 한다.[27] 한편 은영전 팬들 사이에서는 진짜가 아닌 가짜였는데 시녀와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피를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28] 왜 프리드리히를 뛰어넘었는지는 프리드리히 4세 참조[29] 정확히 말하면 로엔그람 백작의 원수부와 우주함대 사령부. 아직 군무성과 통수본부는 비 라인하르트 파인 에렌베르크와 슈타인호프가 지키고 있었고, 메르카츠나 오프레서 등 군 내부에도 비 라인하르트, 반 라인하르트 파가 있었다.[30] 후지사키 류 코믹스에서는 두 사람 모두 립슈타트 전역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다.[31] 다만 이 장면은 로엔그람 왕조에서의 장면으로 당시 랑은 페잔 폭탄테러사건을 해결한 공으로 10만 제국마르크를 보상금으로 받았다.[32] 참고로 골덴바움 왕조에서는 황제가 죽으면 황제의 재상이 물러난다는 불문율이 있는듯하다.[33] 다곤 성역 회전을 반대한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이복동생임에도 골덴바움 성씨가 아닌데, 지기스문트 1세의 경우처럼 프리드리히 3세가 본래 바르트바펠 가문 출신으로 제위에 올라 골덴바움 성씨를 받은 것이거나, 한 항렬에서 황제가 등극하면 다른 형제들은 골덴바움 성씨를 포기하고 모계 성씨를 따르게 하거나 하는 조치가 취해지는 듯하다.[34] 실제로 이미 프리드리히 4세 전대의 오토프리트 5세 시대에서는 제국기사 칭호는 사실상 똥값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황자 시절의 프리드리히 4세가 '뷔르거' 라는 술집 주인에게 쩔쩔맸던 이유도 사실 이것이 커서 씀씀이가 너무 큰 아들에 대해 분노한 황제가 경제적 지원을 끊은탓도 크지만(아이러니하지만 오토프리트 5세는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들 중 타고난 수준의 짠돌이 황제였다.) 그렇다 해도 작중 설명으로는 몇대 전이라면 빚을 못 갚으면 제국기사 칭호라도 내려 땜빵하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그마저도 안 통할 정도로 가치가 하락했다고...[35] 이는 아마도 군대쪽 인재들은 동맹과이 지속적인 전투로 계속 소모되다가 결정적으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브루스 애쉬비에게 고급장교단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서 인재풀에 거대한 구멍을 남긴 반면에, 관료진들은 상대적으로 인재 손실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된 덕으로 보인다.[36]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이 언어에 기반을 둔 미래언어일 것이다. 작중에서는 극의 편의를 위해 현재 사용되는 언어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오지만, 지금 시점에서 15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이상 단어나 발음 등에 당연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37] 아니면 동맹 정부가 선전용으로 제국어 출판물을 만들었다거나... 라인하르트가 일반 사병도 아니고 유년사관학교를 나온 간부후보생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제국 사관학교에서도 동맹의 언어를 가르칠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특히 포로의 심문이나 적의 문서 같은 것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라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최소한도로 가르쳤다 하더라도 라인하르트처럼 야심과 능력이 큰 경우라면 장래를 위해 독학이라도 했을 것이다.[38] 아니면 동맹 내에도 제국어 사용자가 있어서 출간되었을 수도 있다.[39] 쾨펜힐러는 오랜 동맹 생활으로 유창한 동맹어를 구사했으며 동맹으로 망명한 후의 메르카츠슈나이더의 경우에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 동맹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40] 지기스문트 2세의 과도한 축재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서술자 관점으로 "아우구스트 2세 시절에도 '귀족이건 평민이건 부정한 이득을 챙긴 자는 없었다'는 기술이 있다. 단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공정을 말하는게 아니다. 왜냐면 아우구스트 2세가 이들을 공정하게 대한 방식은 '''살인'''이었다. 그러니까 농노, 평민, 귀족, 황족 가릴 것 없이 평등하게 살해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했기에 공정했지 아우구스트 2세가 이들을 공정하게 대우해서 공정한게 아니다.[41] 단 한국은 국내 동화를 위한 정착이민자의 기준이 까다롭지, 소위 계절노동자의 기준은 그다지 까다롭지 않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틀어막을 의지는 없어 불법체류자와 일반 노동자 등을 합친 체류 외국인이 이미 전국에 도합 3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인구가 3천만명대로 줄어도 다는 아니지만 최소한 부족한 인구의 60~70%분은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계절노동자 집단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42] 은하제국의 상황도 만만찮지만 자유행성동맹 역시 난공불락 요새 앞에 장병들을 제물로 바칠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권 말기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일단 닥치고 이제르론을 공략하러 간다. 이 시대는 한번 원정갔다 깨지면 죽어나가는 장병이 몇십만 단위다. 그 짓을 선거철마다 한다고 생각하면... 오죽하면 제국에서 선거란건 몰라도 선거철이 되면 이제르론에 꼬라박이 발생한다는 논문이 올라왔을 정도[43] 외국에서라면 지적장애 1~3급. 자폐성 장애 1~2급 등 확실하게 사회 적응이 안되는 사람들만이 해당되었을 비정상인의 기준이 한국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져서 GAS점수 91~100. 지능지수 110 이상. 그리고 사회의 모든 눈치와 요령을 완벽하게 숙지하며 외모, 학력,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이 원하는 스펙 이상 등을 '''모두 갖춘 사람'''말고는 다 비정상인 취급이다. 물론 그런 비정상인도 받아주는 일자리가 있기는 한데, 만화 9급 공무원의 주인공이나 갈법한 영세 중소기업이나 블랙기업들이다.[44] 퍼졌어도 아마 제국 공안에 잡혀가서 곤욕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45] 허나 이스라엘의 경우 쓸모없는 하레디들이 평균적으로 여섯 명을 낳기 때문이다.[46] 페잔에서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이나 로엔그람 왕조 성립 이후 이 점이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페잔에게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닐 테고 정치활극이 아니라 군사적인 대결이 주 내용을 이루는 은영전의 특성상 그 규모 따위는 아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안 넣었을 수도 있다.[47] 당장에 오토프리트 2세는 아우구스트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찬탈했는데 아우구스트 2세가 워낙 막장이었던지라 진압군들은 거의 싸우지도 않아 항복한 사람이 전사자의 20배에 달했다.[48] 골덴바움 왕조에서는 명군, 성군, 암군, 폭군 다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암군이나 폭군으로 인해 나라가 기울어질 거 같으면 평범한 군주나 명군 정도는 나와줘서 왕조의 수명이 유지되었다는 거다.[49] 농담 같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엘리트층 내부에서는 출산을 안 하는데 반해 정작 저학력 비숙련 노동자 가정에서 서너명의 자녀를 두는 일을 생각보다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은 빈곤층 한정으로 이런 일이 흔한 반면, 한국은 빈곤층 내부에서조차 이게 주류의 흐름은 아니고 좀 애매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출산율이 급감했다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