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길동(광명)
1. 개요
광명시의 법정동. 1983년에 시흥군 소래읍에서 광명시로 편입된 곳이다. 광명시에서 유일하게 시흥현이 아닌 동네.
2. 역사
원래 광명 옥길동의 남쪽(식곡)과 북쪽(두길리)은 역곡천을 경계로 서로 다른 동네였다. 식곡과 현 과림동 북부의 탄평이 황등천면 3리였고 두길리는 어연, 함박, 옥련과 함께 황등천면 4리였다. 때문에 북쪽 동네들(부평말, 두길리, 봉예골)은 건지산을, 남쪽 동네들(식곡, 해방촌)은 만수산을 주산으로 삼고 당제를 지내는 등 풍속도 달랐다.[1] 하지만 오류동에서 안산 가는 길, 즉 지금의 397번 도로에 해당하는 길이 이미 조선 후기부터 있었던지라[2] 아예 남남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부군면 통폐합 때 3리 식곡만 뚝 떨어져나와 4리와 합쳐져 옥길리가 된 것이 옥길동의 시작.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옥련과 두길리가 이 동네 투톱이었고, 지금도 광명 옥길동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마을이 두길리이다. 1964년 부천군 행정리 개편 때 역곡천 북쪽의 부평말, 두길리, 봉예골[3] 이 옥길1리가 되고 식곡과 해방촌[4] 이 옥길3리가 되었다가 1983년 소래읍 옥길 1, 3리가 광명시로 편입되었다. 사실 이 시기 소래읍에서는 과림, 무지내 쪽에서도 광명시 편입 운동이 있었는데 어찌 옥길리만 광명시 편입에 성공했다. 옥길리만 광명과 부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형태라 정리가 필요했고, 천왕산-만수산을 경계로 나누어 1, 3리는 광명에, 2, 4리를 부천에 편입시켜 버린 것. 그리고 과거 한 동네였던 식곡과 탄평은 '''이 하나로 차원이 갈라져버렸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금오로는 서울과 광명시 구간에선 편도 2~3차로의 꽤 잘 닦인 길인데 시흥시계로 들어가는 순간 '''차원을 이동해버리기 때문이다'''(...)[5]
3. 행정 현황(...)
군 부대가 있으며 '''행정동인 광명6동에서 관할한다'''. 경기화학선 덕분에 철덕들에게는 묘하게 인지도가 있는 동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오류동 생활권으로 광명시 소속임에도 광명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6] 대부분의 소비활동을 오류동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이 오류동행을 책임져 준 버스가 '''화영운수'''의 옛 오류동-도창리 시외버스, 이후의 3번 시내버스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때문에 1980년대 후반까지도 광명에서 옥길동 가려면 140번 타고 종점[7] 에서 내려 천왕동까지 걸어가서 3번을 타거나, 1번 타고 광명6동 들어가서 목감천을 건너 두길리로 들어가든가, 안산 방면 버스를 타고 원광명에 내려 식곡교를 건너 식곡으로 들어가든가 해야 했다. 그나마 광명교(천왕교)가 개통되자마자 개봉여객 140번이 천왕동으로 연장되면서 환승 한번으로 광명사거리까지 나갈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
이후 1990년대 중반에 '''1번의 옥길동 연장'''이라는 대격변(...)을 시작으로 광명사거리로 가는 버스가 폭풍처럼 늘어나고[8] 반대로 오류동으로 가는 대중교통수단[9] 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명실상부한 광명동 생활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13년에 2번 버스가 옥길동으로 연장되면서 ''' 철산동으로 가는 노선이 생겼다'''![10] 이제는 77번까지 옥길동으로 들어오니 그야말로 격세지감.
부천시에 이름이 똑같은 옥길동이 있어서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광명 옥길동과 부천 옥길동은 가운데에 산이 있어서 왕래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다가, 부천 버스는 광명시계 안으로는 안 들어온다. 게다가 광명 옥길동이 그렇게 광명과 연결이 안 좋다고 하던 시절에도 오류동에서 시흥·안산 가는 도로를 낀 덕에 부천 옥길동과 부천시내 연결상태보다는 나은 수준이었다. 때문에 옥길동에 있던 KG케미칼(경기화학)은 회사 부지의 거의 전체가 부천에 있었지만 '''정문은 광명 방향으로''' 냈다.
참고로 부천에서 과거에 - 함박을 갈아엎기 전에 - 옥길동이라고 하면 옥련마을을 가리켰고 함박(혹은 함백)은 별개로 구분했다. 반면 광명 쪽은 딱히 이런 구분은 없었다. 이미 시흥군 시절에 옥길리의 중심지를 옥련에서 가져간 탓에 두길리는 그냥 자체적으로 두길리라 불러서 뒤늦게 옥길동의 중심지를 칭하기가 애매했기 때문.
아무튼 태생도 그렇고, 실질적인 환경도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광명시민 입장에서도 옥길동은 듣보잡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명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도 옥길동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광명시청 홈페이지 역사란에서도 1983년 광명 편입 내용을 제외하고는 옥길동 일대에 대한 설명(옛 인천의 역사) 자체가 아예 없다.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 개발계획이 실행되었다면 오류동-천왕동-옥길동-과림동/부천 옥길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연담지구가 형성될 뻔도 했지만.... 사업이 망했어요....
그래도 부천 옥길동에 비하면 나은 점도 없지는 않은 게, 옥길동 전체가 단일 법정동으로 형체를 보전했고 향토문화대전 등에 관련 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 부천 옥길동은 아예 옥련은 역곡3동에, 함박은 범박동에 갈라져 들어간데다가, 국책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향토문화대전에 옥길동 항목도 따로 없을 정도로 대놓고 푸대접이다. 게다가 옥길지구 개발로 인한 경계조정으로 경계가 꼬였다. 다만 옥길지구에서 옥길동의 행정동 분동을 요구하는 중이라 앞으로 어찌될지는....
향후 광명시 공영차고지와 광명종합운동장이 옥길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광명, 시흥, 부천을 잇는 교통의 중추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듯
4. 관련 문서
[1] 하지만 두길리에서 당제를 지내던 산은 지금은 밭이 되었다. 물론 건지산을 깎아버린 건 아니고 거기에 달린 야산. [2] 두길리의 이름이 이 '''길 뒤'''에 있다 해서 생겼다. 두길리의 시조(?)는 조선 영조시대에 부평말에 내려와 살던 전 철산부사 하섭이었고 그의 후손들이 정착해 산 마을이 두길리다.[3] 부천 가는 삼거리 있는 동네[4] 옛 경기화학 정문 앞 동네[5] 궁금하다면 네이버 도로뷰 등으로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에 종종 돌아다니는 독일-폴란드 국경 사진 수준의 수준차가 일품. 하지만 과림동과 노온사동을 잇는 금하로는 '''이보다 더하다'''. 이 외에도 버스교통부터 시작해 광명시청과 시흥시청의 행정서비스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6] 1980~90년대 화영운수와 경원여객이 공동배차하던 37번조차 옥길동을 안 거치고 광명사거리-능촌사거리-과림동으로 운행했다. 안습.[7] 옛 개봉극장, 현 광명종합사회복지관 인근. 과거엔 이곳에 '''종점사진관'''이라는 가게가 있었다. 당시에는 광명교(흔히 천왕교라고 불리는 다리)가 없었다.[8] 현재 절찬리에 운행중인 1번, 39번 외에 140번도 1990년대 후반 들어 옥길동을 거쳐 노온사동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140번은 이후 서울 버스 6639로 개편되었다가 폐선.[9] 1980년대에는 3번 버스가, 1990년대에는 111-1번, 지금의 서울 버스 6640이 있었다.[10] 과거에 철산동에서 옥길동을 거쳐 신천동으로 들어가는 37-1번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서야 생긴 이 노선조차 수요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몇 년 못 가 사라졌고 오랜 시간동안 옥길동에서 철산동은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