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 칸
1. 개요
생몰기간 1131 ~ 1203. 몽골 제국 통일 이전 중세 몽골 시절 고원 최대 세력이었던 케레이트 부족의 마지막 족장. 자무카와 더불어 칭기즈 칸의 통일전쟁 중의 주요 숙적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을 키운 계기를 마련한 사람이다.[1]
이름은 토오릴(To'oril/Тоорил) 혹은 토그릴(Toγril), 그리고 금나라에서 하사한 호칭 왕(王)에서 유래한 옹 칸(Ong Khan/Ван хан)으로도 알려져 있다.
케레이트가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2] 옹 칸은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아시아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기독교 왕국을 통치하는 프레스터 존 왕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쪽 멀리에 있는 총교단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연결 고리가 약했던 탓에 현지화가 많이 이루어져서 사제가 텡그리교의 샤먼처럼 점을 쳐주거나 샤먼처럼 행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2. 생애
그의 아버지 부이르크 칸 쿠르차스쿠는 타타르를 제압하고 케레이트를 몽골의 강국으로 부흥시켰는데, 40여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토그릴은 쿠르차스쿠의 사망 후 동생들과의 내전을 통해 케레이트의 옹 칸에 올랐는데 이에 반발한 삼촌 구르칸[3] 은 나이만 땅으로 도망쳐서 세력을 키운 후 옹 칸을 재차 공격했다. 이 때 위기에 빠진 옹 칸은 일종의 용병집단의 리더인 예수게이(칭기즈 칸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해 구르칸을 몰아내고 다시 케레이트를 되찾는다. 이 때 예수게이와 안다(의형제)를 맺었다.
이 인연이 계속되어 훗날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의 계략으로 허무하게 죽고 아들 테무진이 고난의 세월을 보낼 때 테무진을 도와주면서 테무진과 부자의 맹약을 맺었고,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 납치됐을 때도 도와줬다.
1197년 나이만의 침략으로 옹 칸이 위기에 빠지자 테무진이 도와주는 등 굳건한 동맹관계를 통해 케레이트와 몽골은 막강한 양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199년 테무진과 함께 나이만을 공격할 때 테무진의 원수 자무카의 이간질로 테무진을 놔두고 도망가버려 테무진이 위기에 빠진 사건으로 두 부족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손자 토스부카와 테무진의 딸 코친 베키[4] 와 정략결혼을 통한 혼인동맹을 시도하지만 파혼, 두 부족간의 사이가 나빠질대로 나빠졌고 1203년에 옹 칸의 장남 이루카 센군의 이간질을 계기로 테무진을 습격한다. 옹 칸은 테무진과 맞붙은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에서 승리하며 한때 테무진을 고원 북쪽 끝까지 내모는 데 성공하지만[5] 결국 세력을 되찾은 테무진의 역습으로[6] 케레이트는 모든 세력을 잃고 옹 칸은 별 수 없이 서쪽 나이만의 타얀 칸을 의지하려고 도망갔지만 국경에서 나이만 수비대에게 살해당했고 케레이트는 통일 몽골 제국에 합병, 멸망한다.
3. 가족
3.1. 형제
- 자하감보(자아감부)
옹 칸의 동생. 케레이데가 본명이였는데 탕구트족들 사이에서 명망을 쌓아 그들로부터 '왕국의 크고 높은 장수'라는 뜻의 자하감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칭기즈 칸의 아들들과 자신의 딸들을 결혼시키며 사돈 관계를 맺었다.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와 막내 톨루이가 각각 자하감보의 딸인 벡투트미시, 소르가그타니 베키와 결혼하였다. 자하감보의 또다른 딸인 이바카 베키는 칭기즈 칸과 결혼하였다.[7] 이 중 소르가그타니 베키가 특기할 만한데 그녀의 소생이 바로 몽케 칸, 쿠빌라이 칸, 훌레구 칸, 아리크 부카 형제다.
투항한 후 외척의 신분으로 원래의 부족들을 통솔하였으나 얼마 후 또 반란을 일으켰다가 포로당한다.
투항한 후 외척의 신분으로 원래의 부족들을 통솔하였으나 얼마 후 또 반란을 일으켰다가 포로당한다.
3.2. 자녀
- 이루카 센군
옹 칸의 장남이자 후계자. 그 이름은 "센군" 혹은 "셍굼"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는 중국어 "장군(將軍)"의 음차로 여겨진다. 옹 칸의 옹도 "왕(王)"의 음차이듯이 이 또한 그의 본명이 아니라 일종의 칭호였을 가능성도 있다. 케레이트가 멸망한 후 제베에게 추격당하던 중에 사살되었다.
- 아바쿠
옹 칸의 차남. 그의 딸인 도쿠즈 카툰은 툴루이에게 넘겨졌다가 그의 아들인 훌레구의 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케레이트족 중에서도 독실한 기독교도였고 따라서 훌레구 칸도 친기독교적 성향을 띄었다.
4. 창작물에서
징기스칸 4에서 챕터1 케레이트의 군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정치 63, 전투 77, 지모 65로 뛰어난 능력치를 소유하고 있으나, 하필 이웃 몽골의 칭기즈칸과 그의 부하들이 너무 강력해서 몽골 초원에서는 힘을 못 쓰는 편이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기를 폈겠지만...특기는 외교, 등용(정치)/돌격, 공성(전투)이 있어서 전투시에 보병을 운용하면 강력하다.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 등장. 나이만과의 국경까지 도망갔다가 제베에 의해 죽는다. 그리고 머리 없는 시체를 발견한 나이만에선 처음에는 시체의 주인이 누군지 몰랐으나 십자가 목걸이를 보고 토오릴임을 알게 된다. 같은 네스토리우스파를 믿기 때문에 장례를 치루려 하나 갑자기 시체가 움직이자 놀란 타얀 칸이 막대기로 시체를 매질한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트레저헌트 보상 중에서 옹 칸의 갑옷 지도를 찾으면[8] 보상으로 옹 칸의 갑옷을 받는다. 아이템 보너스는 종교학 및 포술 +1, 복장예절 30이며 황금갑옷 시리즈 색깔놀이로 하늘색이다.
[1] 칭기즈 칸은 옹 칸의 연합을 통해 메르키트로부터 보르테를 찾아올 수 있었고 흩어진 몽골 부족을 규합할 수 있었고 이후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거대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종국에는 케레이트를 흡수했다.[2] 단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단 취급당하는 교파다.[3] 자무카와 다른 사람이다.[4] 보르테 소생.[5] 이 전투 이후 몽골의 병력은 천 명도 채 남지 않았으니 13익 전투 이후 테무진에게 불어닥친 가장 큰 시련이었다.[6] 테무진이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테무진이 케레이트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보낸 서신에 테무진을 추격해서 끝장내는 것을 멈춘 옹 칸의 실책도 있었다.[7] 하지만 이후 칭기즈 칸은 그녀를 그의 장수들 중 한 명인 케흐티 노얀에게 하사한다.[8] 탐색 12, 고고학 14, 인도어 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