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원대군

 


'''조선 도조의 왕자'''
'''완원대군
完原大君'''

'''작호'''
완원대군(完原大君)
'''이름'''
자선(子宣)
'''본관'''
전주(全州)
''''''
성수(聖受)
'''시호'''
정효(貞孝)
'''부왕'''
조선 도조
'''모후'''
경순왕후 박씨(敬順王后 朴氏)
'''부인'''
개성 왕씨
'''묘소'''
경기도 삭녕군 마장면 남일원리 간촌
'''생몰기간'''
1331년 ~ 1356년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4. 묘소
5.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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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완원대군은 조선 도조의 셋째 아들로

2. 생애


1331년, 도조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고려에서 완산백(完山伯)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27살 때 죽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대광보국(大匡輔國)에 추증했다.
1872년 12월 3일, 고종 9년에 의해 숙부들, 동생들과 같이 대군 및 영종정경부사로 추봉되고 4세에게도 군으로 습봉되었다.
전주 이씨 완원대군파의 파시조이다.

3. 가족 관계


  • 개성 왕씨(王氏) : 봉양대군(鳳陽大君) 왕부(王浮)의 딸
    • 개흥군 이원(李元)
      • 동양군 이춘 (李春)
    • 개령군 이지(李枝) (1348~1428)
      • 동선군 이상흥 (李尙興)
      • 동계군 이상항 (李尙恒)
    • 개원군 이매(李枚)
      • 동하군 이억천 (李億千)
완원대군은 3남을 두었는데, 세 아들 모두 자식이 많은 편이 아니다.
차남인 개령군은 8세에 부모를 잃었는데, 외가인 개성왕씨 댁에 가서 있던 중 태조의 잠저로 데려왔다. 성장한 이 후 태조 휘하에서 장수로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였고 태조 즉위 후 개국원종공신에 봉해짐과 동시에 영의정과 영돈녕에 올랐다.
대군의 3남인 개원군은 1419년(세종 1)에 충청도우도 수군도만호(忠淸道右道 水軍都萬戶)를 지냈으며 1872년(고종 9)에 군(君)에 봉해졌다. 배위는 청주한씨이고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 동면 마전동에 있다.

4. 묘소


묘소는 경기도 삭녕군 마장면 남일원리 간촌에 있으며 배우자 역시 대군묘에 합장하였다.

5. 후손


원래 이북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일부가 이남으로 남하하여 서울 · 경기 일원에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다.